제 51화
이제부터는 어른끼리 해결할 문제니까 (5)
1.
띵- 위이잉. 철컥.
“······이야, 아직도 바글바글하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스무 명 가량은 되어 보이는 정장깡패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에 있던 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깜빵에서 나온 이래 만나본 깡패들 중 가장 분위기가 그럴듯한 깡패들을 마주하니 살짝 풀어졌던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산이랑 아래서 줘팬 것들은 진짜 별것도 아닌 놈들이라 속이 좀 덜 풀렸는데. 이 새끼들은 조금 가락이 있어 보이네. 이 정도면 스트레스는 풀 수 있겠는데.
조금 진지해질 필요가 있음을 느끼고 있던 그때, 옆에서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게. 무슨 바퀴벌레냐?”
나를 믿을 수 있겠다고 선언한 뒤 갑자기 자신감이 팡팡 솟구치는 중인 하혁수 씨였다.
뭔데. 왜 하혁수 씨가 갑자기 자신감이 넘치고 난린데.
저기 깡패들이 입을 닫은 채 묵묵히 도열하고 있는 사장실에는 나 혼자만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저 안에는 분명 하혁수 씨가 응당 맡아야할 이도 존재했고, 그렇기에 하혁수 씨가 이런 식으로 자신감이 넘치는 건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하혁수 씨, 저기 있는 저 새끼들이 바퀴벌레처럼 까맣고 바글바글하긴 해도 아래 있던 놈들보다는 좀 치는 놈들인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자신감이 넘치면 곤란한 일이 생겨버릴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물론 저 바글바글한 깡패새끼들 중 그 누구도 하혁수 씨에게 손을 댈 수는 없겠지만, 사람에겐 살기와 살의를 감지하는 능력이란 게 있다.
하혁수 씨가 할 일을 하는 동안에도 저놈들의 살의는 분명 나와 하혁수 씨를 노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하혁수 씨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의에 집중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방심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려던 그때, 하혁수 씨가 내 어깨를 짚으며 말을 끊었다.
“뭐 어때. 네가 다 커버 쳐줄 텐데. 그 정도는 되잖아?”
말을 끊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고, 방심하지 말라는 말이 전혀 먹히지 않은 것도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짜증 대신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하, 하핫. 그건 그렇죠. 하혁수 씨는 하혁수 씨 할 일만 하면 되죠. 내가 그럴 수 있게 만들어줄 테니까.”
날 보는 하혁수 씨의 믿음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 하혁수 씨가 이렇게까지 믿어주는데 나도 믿음에 부응해줘야겠지.
살의와 적의가 하혁수 씨의 싸움에 방해가 된다면, 그 싸움과는 관련되지 않은 모든 이의 살의와 적의가 나를 향하게 만들면 되는 법이다.
나는 그리 할 수 있었고, 그럴 의욕 또한 충만했기에 더 이상의 주의는 필요치 않았다.
“그러면 슬슬 싸우러 가시죠?”
“오냐. 그러자. 지금까지 싸우고 싶던 거 참느라 죽을 뻔했네 진짜.”
그 말을 끝으로 나와 하혁수 씨는 줄과 열을 맞춰 도열한 스무 명의 칼잡이들이 있는 사장실로 당당히 발걸음을 옮겼다.
※※※
“잠깐, 싸우러 온 건 알겠지만 그 전에 우리 통성명이나 하지. 내 목을 노리는 놈이 뭐하는 놈인지는 알고 싶으니까 말이야.”
강진혁과 하혁수가 사장실에 발을 들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스무 명의 칼잡이 뒤에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사장실을 울렸다.
그 누구도 허락 없이 입을 뗄 수 없는 이 장소에서 유일하게 자유롭게 입을 열 수 있는 이.
“통성명을 입에 담은 나부터 하는 게 예의겠지. 이 금일파의 두목 금일수라고 하오.”
금일파를 세우고 이 위치까지 끌어올린, 이 회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위에 서있는 금일수였다.
“금씨? 그러면 그쪽이 금덕수 그 씨부랄새끼 애비요?”
하지만 그의 내막이 어쨌든 하혁수에겐 그냥 자신의 딸을 괴롭힌 아들의 애비에 불과했다.
예의라고는 한 톨만큼도 담겨있지 않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언사에 금일수의 눈썹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애초에 금일수와 하혁수 사이엔 스무 명이나 되는 정장깡패들이 도열해 있었고, 그들에게 가려져 두 사람 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기에 하혁수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하혁수고, 그쪽 애새끼가 괴롭힌 하리라 애비 되는 사람이요. 여기 온 건 부모 대 부모로 이야기 좀 하려고 온 거고. 그러니까 이제 이 새끼들 좀 옆으로 치우고 애비끼리 낯짝 좀 봅시다.”
“······하, 얘들아. 길 좀 터봐라.”
여전히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는 하혁수의 말투에 금일수는 자신의 인내심에 금이 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예 형님!”
그 짧은 명령에 스무 명의 깡패가 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힘차게 대답한 뒤, 홍해가 갈라지듯 좌우로 비켰고 그제서야 하혁수와 금일수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먹 하나로 이름 높은 금일파의 두목 자리에 올랐다는 명성에 걸맞은 장사 체형의 금일수.
동네 태권도장의 사범이자 하리라의 아버지인 날렵한 체구의 하혁수.
두 사람은 그 행색부터가 극과 극이라고 불러도 전혀 무방할 정도로 완벽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쌍판이 꽤 좋네요? 반갑습니다. 이 씨발아.”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하혁수의 입에서 결국 참지 못한 욕지거리가 튀어나갔다.
정말 불쾌하고 당황스러워 분노가 차오를 수밖에 없는, 그런 욕지거리에 금일수는 순간 멍하니 하혁수를 바라보다가 이내 푸흣.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하. 크흐흐······. 면전에 대고 이렇게 욕을 박는 미친놈을 대체 얼마 만에 보는 건지······.”
유쾌하거나 기분이 좋아서가 아닌, 정말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터져나온 웃음소리였다.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읽지 못할 정도로 눈치가 없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의 부하들은 목이 바싹 마르는 것을 느꼈다.
“뭘 쪼개 씹련아. 사람이 얘기하자는데 처 쪼개시면 씨발 그게 예의에 맞아요?”
하지만 금일수가 빡치든 말든 하혁수는 끓어오르는 피와 뜨거워지는 머리에 점점 더 입이 걸어졌고, 두 번째 욕을 들은 순간부터 금일수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예의? 예의는 고작 애새끼들 문제를 이런 곳까지 끌고 와서 다짜고짜 욕지거리를 처박는 당신이 지켜야하는 거 아닌가?”
“뭐?”
“맞잖나. 지금 자네가 하는 짓은 그저 자신의 딸이 내 아들에게 조금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유로 쓸데없이 일을 키우는, 참으로 무책임하고 생각 없는 짓이라고.”
대신 보는 이로 하여금 싸늘하다 느껴질 정도로 완벽히 정색한 채, 예의와 애들 문제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며 하혁수를 천박하고 무지성한 자로 내려까기 시작했다.
“연락을 받은 바로는 내 아들이 자네의 딸에게 혼쭐이 났다는데. 그러면 이제 끝난 거 아닌가? 애들끼리 지금껏 쌓인 은원을 청산했는데, 왜 거기서 끝을 내지 못하고 여기까지 와서 일을 키우느냐 이 말이야.”
애들 일은 애들끼리 끝맺어야한다.
애들끼리는 일이 끝났는데 왜 끝난 일을 여기까지 끌고 와서 큰 일로 만드느냐.
“자네나 나나 가장이고, 지켜야할 가정이 있는데 화가 났다는 이유, 자식의 복수를 하겠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곳에 이렇게 무턱대고 쳐들어오면 되겠나? 자네에게 변고가 생기면, 이제 고작 열아홉 살이 되는 자네 딸은 어떻게 살라는 거지? 정말 무책임한 거 아닌가?”
뒷생각은 안 하고, 딸 복수를 이유로 다짜고짜 자신에게 덤비는 것이 맞느냐.
지켜야할 가정이 있고, 챙겨야할 자식이 있는데 이런 짓을 하는 건 무책임하지 않느냐.
“가장이라는 사람이 그따구로 생각 없이 살면 되겠나? 그렇게 살아서 딸이 자네에게 뭘 배우겠어.”
아비라는 작자가 그렇게 감정적으로 사는데 딸이 뭘 배우겠냐.
“자네가 그리 사는 걸 보면, 자네 딸도 앞으로 어찌 살지 눈에 훤히 보이는군.”
이래서야 그 애비에 그 딸이겠구만.
조금도 쉬지 않고 이어진 금일수의 말은 그대로 비수가 되어 하혁수를 향해 쏟아졌다.
말 하나 하나가 하혁수의 행동을 탓하고, 그의 무책임을 비난하는 날카로운 비수였다.
“······.”
그 노도와 같이 쏟아지는 말의 형상을 한 비수에 반박할 말이 없는 하혁수가 말문이 막힌 그때, 그의 바로 옆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누수처럼 흘러내렸다.
“뭐라는 거야. 애들 싸움에 칼잡이 보낸 새끼가 누군데.”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목소리에 장내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돌아갔다.
그렇게 강진혁에게 시선을 돌린 이들 중 가장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하혁수가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 뭐? 뭘 보냈다고?”
“칼잡이요.”
“어, 어디에?”
“산에요.”
“허······. 그걸 왜 나한테 말 안 했냐?”
“문제 없었으니까요?”
“이런 미친 새끼······.”
아까는 할 말이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면, 이번에는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 하혁수였다.
그런 하혁수에게서 시선을 돌린 강진혁은 경멸 가득한 눈으로 여전히 사장의자에 앉아있는 금일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야이 양심 없는 깡패새끼야. 너는 하혁수 씨 몫이라 내가 참으려고 했는데 씨발 듣자듣자 하니까 어이가 없어서. 뭐? 애들 싸움? 어른들 일? 애들 싸움에 칼잡이 처 보낸 새끼가 누군데. 미친놈이 입 뚫렸다고 지 좆대로 터네.”
“뭐, 뭐라고?”
정말 날것 그대로의 욕지거리, 상대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아주 조금도 담기지 않은 그 경멸 가득한 비난에 금일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하혁수도 자신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긴 했지만 그는 금일수와 동년배였고 그가 가진 분노 또한 이해는 되었기에 욕을 하는 것을 이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짜증과 경멸을 반반씩 섞어 목소리에 담아 날것 그대로의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는 강진혁의 존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진짜 근본도 없는 깡패새끼가 말투는 왜 그 지랄이야? 뭐 자네? 예의? 책임감? 진짜 지랑 존나 안 어울리고 연관 없는 단어들만 쓰길래 내가 진짜 뭘 들었지? 했어. 이 깡패새끼야.”
새파랗게 어린놈이 다짜고짜 자신에게 욕을 퍼붓는 이 상황을 금일수는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 이이······.”
받아들이지 못하니 인내심 또한 바닥이 나버렸고, 주먹으로 이 자리에 올라온 남자답게 불같은 그의 성정은 그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버렸다.
“아가리를 찢어버릴라 이 싸가지 없는 애새끼가!”
콰당탕탕!
그 결과 심리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려했던 금일수의 계획이 완벽히 무산되고야 말았다.
“그래 새끼야. 그래야 깡패새끼답지.”
원래 말싸움이라는 건 참지 못하고 화를 먼저 낸 쪽이 지는 법이었으니까.
드디어 인내심이 폭발하여 자리에서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킨 금일수의 모습에 강진혁은 한 발자국 뒤로 사뿐 물러났다.
“근데 내 아가리 찢으려면 이 사람 상대부터 해야 할걸?”
그리고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치던 하혁수의 등 뒤로 가 그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도발을 끝맺었다.
“너는 온전히 하혁수 씨 몫이거든.”
“그래 이 씨발 양심 뒤진 깡패새끼야!”
그 말을 신호로 하혁수의 다리가 땅을 박차며, 그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그러자 지금까지 금일수의 명령이 아니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던 스무 명의 칼잡이들이 일거에 그의 전신을 향해 칼끝을 찔러왔지만.
“그리고 니들은 전부 다 내 몫이고.”
카가가가각!
“큭?!”
“무, 무슨?!”
“이런 미친!”
그들이 뻗은 칼끝은 단 하나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채, 강진혁이 휘두른 정장 외투에 휘말려 그 궤도가 틀어질 뿐이었다.
장해물이 사라진 하혁수는 키가 175cm인 자신보다 20cm는 더 크고 70kg인 자신보다 50kg은 더 무거워 보이는 금일수를 향해 수 미터는 떨어진 거리에서 땅을 박차고, 그대로 공중을 날았다.
“넌 그냥 개처럼 처맞자 이 씹롬아!”
쐐애애애액!
공중에서 세 번을 회전하며 나아간 하혁수의 발차기가 금일수를 향해 휘둘러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범죄도시2를 봤습니다.
사실 매니저가 깡패임을 쓰면서 진혁이의 주먹질에 쾅쾅소리가 나고 사람이 휙휙 날아가며 쓰러지는 장면을 쓰면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과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범죄도시를 보니까 괜찮겠더라고요.
마음의 짐을 던 기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