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930)

부임(赴任)

묵향은 낙양에 들어섰다. 낙양은 오랜 옛날 수도였던 도시로, 지금도 이 근방의 교통, 상업, 문화, 군사의 중심지이며 황제가 거하는 중경(中京)으로 가는 동쪽 관문이다. 낙양에는 정북원수부(正北元帥府)가 자리 잡고 있으며, 정북원수부 휘하의 20만 정병(精兵)을 이용해 낙양 외곽 수비와 몽고족들에 대한 국경 수비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경에 있는 네 명의 왕 중 한 명인 영양왕(英揚王)의 별장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묵향은 우선 낙양성을 구경하고 분타로 가기로 작심하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남문을 통해 들어가니 성문을 지키는 수비병들이 보였다. 수비병의 복장은 그가 늘 보았던, 각 관청에 소속되어 민생 치안을 담당하며 유사시에나 출동하는 향방군(鄕防軍 : 지방군)과 달리 전투를 전담하는 어림군(御臨軍 : 중앙군)이라 그런지 눈초리가 매서웠고, 잘 발달된 근육이 상당한 훈련을 받은 정병들임을 무언중에 나타내고 있었다.

어림군은 향방군과는 달리 각 장군들이 지휘하며, 순전히 전투를 위해 존재하는 군대다. 이들은 국경을 위시하여 각 지방의 중요 거점, 수도 외곽을 방위하기 위해서 주둔한다. 어림군은 황제가 통솔하는 중앙 정부의 명령만을 받으며 그 수는 112만에 달한다. 어림군 안에는 10만 정도의 직업 군인들로 이루어진 군대와 5만 정도의 외인군(外人軍 : 용병)이 있으며 그들의 전투력은 통상의 어림군보다 강했다.

어림군은 각 지방의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들이나 변경의 요새에 주둔한다. 그 외에 이이제이(以夷除夷)의 원칙에 따라, 교묘한 외교 정책으로 국경을 접한 오랑캐들을 적절히 다스려 그들이 연합하지 않고 서로 다투도록 만들어, 오랑캐들의 세력이 강대해지는 것을 억제하고 있었다.

어림군의 최고 계급은 원수, 대장군, 상장군, 장군의 네 계급으로 구분되며 다섯 명의 원수가 각각 20만 명씩의 어림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면 그 지역의 향방군과 대비군(對備軍 : 각 관청에 소속되며 농한기에만 군사 훈련을 받으며 전쟁이 벌어지면 출동하는 예비군), 타 지역에서 온 지원군을 통괄 지휘하게 되므로 어떤 때는 1백만에 가까운 군세를 한 명의 원수가 지휘하기도 한다.

대원수(大元帥)란 직책도 있긴 하기만 통합된 작전을 위해 전시(戰時)에나 직분이 생기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거의 유명무실해진다. 그가 늙어서 은퇴하면 후임자를 뽑지 않기에 평상시에 대원수란 직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황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군권(軍權)을 집중하면 그만큼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는 낙양성을 구경하고 성에서 나와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낙양의 서쪽 외곽에 천령원(天領院)이라는 큰 장원이 있다. 이 천령원은 부근에 상당한 면적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모든 농토를 소작농에게 대여하고 있었다. 천령원의 주인인 방(龐) 대인은 그런대로 소작농에게 후한 편이라 부근의 주민들에게 평이 좋았다. 그리고 방 대인은 엄청난 자금력으로 주변 상권의 3할을 잡고 있었으며, 많은 장인(匠人)들을 고용해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위인이었다. 근래에는 천령표국(天領慓局)까지 만들어 부근의 물품이나 군수물자 수송 사업에도 참여해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뒷구멍으로는 전장이나 도박장, 주루 등을 만들어 고리대금업 따위의 불법적인 사업을 하여 막대한 돈을 긁어모았다.

묵향은 천령원을 향해 천천히 말을 몰며 다가갔다. 그가 다가서자 정문을 지키던 호위 무사가 그를 제지했다.

“멈추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서 오셨습니까?”

호위 무사의 눈초리나 분위기와는 달리 말은 상당히 정중했다. 아마 손님 접대에 대해서 상당히 훈련을 받은 친구인 모양이다. 묵향은 호위 무사에게 말했다.

“방 대인을 뵈오려고 왔습니다.”

“사전에 약속이 있으십니까?”

“예, 대산(大山)에서 왔다고 하시면 아실 겁니다.”

무사는 ‘대산’이라는 말을 듣고 허겁지겁 안으로 통보를 했다. 대산이라 하면 마교의 본타가 있는 십만대산이 아니겠는가? 봉우리가 10만 개나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봉우리를 가진 절정의 산악에 마교가 뿌리를 내렸고, 십만대산이라 하면 웬만한 멍청이가 아니면 ‘마교’를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험악한 산세와 그 산세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요새들에 힘입어 그 오랜 마교의 전통이 지켜져 내려왔던 것이다.

안으로 들어갔던 무사는 달려 나와서 묵향에게 말했다.

“고삐를 이리 주시고 안으로 드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방 대인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는 서둘러 안에 있는 하인을 불러 묵향을 안내하라고 하고, 또 다른 하인을 불러 말을 마구간으로 끌고 가서 정성껏 돌보라고 지시했다. 묵향은 그가 하인에게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다 못해 말했다.

“그 말은 내가 아끼는 애마도 아니고 그냥 길을 떠나기 위해 구입한 말이야. 그러니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네. 말에 있는 짐은 나중에 내 방으로 보내 주게나. 그럼 수고하게…….”

“알겠습니다, 대인.”

방 대인은 들어서는 묵향을 상당히 반겼다.

“어서 오시게. 기다리고 있었네.”

“안녕하십니까? 소생은 묵향이라 합니다. 주위를 물리쳐 주실 수 있겠는지요?”

그의 말을 듣자 방 대인은 말했다.

“취월아, 차를 빨리 가져오너라. 잠시만 기다리시게나. 차를 내온 후에 같이 얘기를 나누기로 하지.”

묵향과 방 대인은 차가 나올 때까지 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나 쓸데없는 한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녀가 차를 가져오자 그는 하녀에게 일렀다.

“손님과 조용히 할 말이 있으니 주위에 아무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라.”

“예, 나으리.”

취월이 나가자 묵향이 입을 열었다.

“총단에서 왔습니다. 여기 영패와 부임 서류가 있습니다.”

방 대인은 묵향이 내미는 서류와 영패를 보고 난 후 그에게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본타에서는 한 가지 사업을 새로이 시작했다네. 표국(慓局)을 개설했는데 본교의 상층부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계시는 중요한 사업이지. 자네는 혹시 표국 사업에 대해 아는 게 있나?”

“표국에 대해서, 아니 일체의 상행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검술뿐이죠.”

“호, 자네의 말을 듣고 보니 힘이 나는군. 표물 운송 사업이란 게 원래가 신용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보니, 우선 맡은 물건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원하는 장소로 보내 줘야 한단 말일세. 그런데 곳곳의 깊은 산중에는 도적들도 많고, 거기에다가 이곳은 변방이기 때문에 치안이 상대적으로 약한 지역이라, 이번에 총단에 좀 실력 있는 고수들을 보내 달라고 했지. 얼마 전에도 30여 명 정도 도착했는데, 영 내 마음에는 차지 않더군. 그래 자네 나이는 어떻게 되나? 그리고 그전에 한 일은 뭐고?”

“이제 마흔셋입니다. 살수로서 흑살대(黑殺隊)에서 일하다가 20년 전에 검수로 뽑혀 계속 교육을 받았습니다. 20년 만에 세상에 나왔으니 세상사에 어두운 편이라 잘 부탁드립니다.”

흑살대라는 말이 나오자 거드름을 약간 피우던 방 대인의 안색이 확 변했다. 흑살대라면 내총관 직속의 암살대다. 뛰어난 인재들만이 소속되어 있었고, 능력이 엄청나다는 소문을 약간이나마 듣고 있었던 것이다.

“흐…, 흑살대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흑살대에에서 무슨 일을 했나?”

“1급 살수로서 3년 정도 일했습니다.”

“1급 살수…….”

그는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런 후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더니 말을 이었다.

“20년 전에 1급 살수셨다면…, 대단하시군요. 허허…, 몰라 뵙고 실수를 저질렀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방 대인은 묵향에게서 그렇게 대단한 기도가 느껴지지 않자 총단에서 보내온 하급 무사나 아니면 행정 쪽에 뛰어난 인물인 줄 알고 수하를 다루듯 거드름을 피우다가 묵향의 신상 내력을 알고 난 후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표물의 안전한 운송을 위해 고수를 원하긴 했지만 너무 강한 고수가 온 것이다. 20년 전에 1급 살수였다면, 끅! 그 뒤는 생각 안 해 봐도 알 만하다. 마교란 본래 무공의 고하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는 단체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조바심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자가 상행위에는 거의 백치나 다름없는 순수 무골(武骨)이라는 점이다. 아마 그 때문에 그에게 부분타주의 직위를 맡겨 이곳으로 보낸 모양이다. 그리고 총단에서 직접 온 인물인 만큼 자신에 대한 감시자의 임무도 약간은 띠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방 대인은 이 평범한 옷을 입고 검은색 반월형의 도를 차고 있는 녀석을 식은땀이 날 만큼 조심에 조심을 해서 대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총단으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바로 윗자리도 아닌 한참 윗자리에 포진할 것이 뻔한 이 녀석에게 잘 대해 주고 좋은 인상을 주면 나중에 자신의 꿈인 총단으로의 승진에 보탬이 될지도 모르고, 또 다음에 유력한 후원자가 되어 줄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표국은 요 근래에 시작해서 꽤 장사가 잘되는 관계로 여기저기에 새로 분점(分店)들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흩어져 있는 많은 고수들에 대한 통제도 문제고, 또 제가 벌여 놓은 많은 일들도 있어 직접적으로 표국을 운영할 수도 없습니다. 이번에 총단과 분타들에서 50여 명의 고수들이 새로이 배치되어 왔지만 그래도 역부족이죠. 아무래도 대규모의 표물 운송에는 힘이 부쳐 뛰어난 분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습지요. 그런데 이렇게 높으신 분이 오셔서…….”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엄연히 부분타주로 왔습니다. 저에게 하대를 하십시오.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면 껄끄럽습니다. 그리고 수하들도 이상하게 생각할 거구요. 그냥 수하들에게는 고수를 한 명 초빙해 왔다고 말하고, 그러니까… 제 이름은 유향(柳香)이라고 수하들에게 소개하시죠.”

“이거 원…, 그런데 자네가 이번에 온 것을 모든 사람에게 비밀로 붙여야 하나?”

“그렇게 해 주십시오. 방 대인 같은 경우 믿을 수 있으나 그 나머지는……. 특히 대인의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해 주십시오. 그리고 무공이 있으니 수하들에게 의심받지 않고 움직이려면 표두(慓頭)로 행세를 하는 게 좋겠군요. 그래야 표물 운송에도 참가할 수 있을 것 같구요.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본교의 고수들은 얼마나 됩니까?”

“분타 자체의 인원이 1천여 명 되네. 그리고 각 분타나 총단에서 파견 나온 고수들이 1백여 명 있지. 그중에서 50여 명은 요 근래에 도착한 고수들이네. 그들은 곳곳에 배치되어 일을 하고 있지. 전방, 기방, 전당포 등 안 하는 일이 거의 없네. 합법적인 사업도 많고 불법적인 사업도 많은데, 특히 불법적인 사업의 경우 무력이 많이 필요하네. 지금 낙양 상권의 3할을 잡고 있는데, 표국 업무가 정상화되면 그 비율은 더욱 늘어날 거야. 표국의 신용이 올라가면 변방으로 보내는 병참금의 수송에 관여하면 더욱 큰 돈을 벌 수 있지. 일반 군수 물자들은 대부분 군의 수송부에서 관할하지만 병참금은 돈에 눈이 뒤집힌 산적들이 덤벼들 가능성이 있어 표국을 이용하지.”

“낙양에 이곳 말고 표국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표국 다섯 개가 더 있네. 그중 세 곳은 작지만 두 곳은 상당히 크지. 어차피 그들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어. 그렇지만 실지 외부에서 표물을 거의 위탁받지 않더라도 낙양분타에서 돌리는 물자가 엄청나기 때문에 그것만 해도 상당하지. 그 외에 변방에서 말이나 양, 모피 등 많은 물자들을 수입해 올 생각인데, 그쪽의 통로가 개척되면 변방으로 가는 무역로가 열려 막대한 이익을 줄 것으로 생각하네. 그 외에도 인력과 돈만 있으면 정당한 방법으로도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네.”

“집안의 하인들은 어떻습니까? 본교의 인원들인가요?”

“아닐세. 지금 원체 사업을 확장해 놔서, 그 정도 여력이 없어. 기밀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아주 중요한 곳에 출입하는 자들과 밀정으로 심어 놓은 자들만 본교의 인물들이지.”

“그렇다면 저에 대한 비밀을 철저히 유지해 주십시오. 암수에 걸려 목숨을 잃기는 싫습니다. 아무리 고수라도 암수에 걸리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가는 것이 정석이니까요. 그리고 대인께서 알아두셔야 할 점이 있는데…, 저는 동자공을 익혀 여색을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여자를 청한다면 그건 가짜라고 보면 옳겠죠. 그리고 또 대인이 저에게 여자를 붙여 준다면 그 또한 대인이 가짜라고…….”

“알겠네,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 그런데 가족에게도 안 되나?”

“예, 많은 사람이 알수록 비밀이 샐 가능성이 더욱 높아집니다.”

“할 수 없군. 그런데 미리 양해를 구해 두겠는데, 자식들 중에 몇 명이 아주 버릇이 고약한 놈들이 있으니… 그 때문에 실례를 범할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일세.”

“그 정도는 상관없습니다. 상대를 안 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제 방은 좀 작은 걸로 해서 안채와 떨어진 곳이 좋겠는데……. 괜찮은 곳이 있습니까?”

“흠, 표사 중에 한 명이 쓰던 집이 있는데 낡기는 했지만 수리를 하면 쓸 만할 거야. 하지만 너무 집이 작아서…….”

방 대인은 묵향의 눈치를 봤다. 그로서는 묵향의 취향을 가늠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작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밥을 지어 줄 하녀는 제가 구해서 쓸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오늘은 물러가겠습니다.”

인연의 시작

묵향이 머무르게 된 집은 작은 방이 세 개, 부엌이 한 개, 천장에 다락이 한 개 있는 자그마한 초가집이었다. 묵향은 우선 하인들이 머무르는 작은 방을 하나 차지하고 앉아서 집의 수리부터 시작했다. 그가 수리를 하기 위해 나온 인부들에게 지시를 한 지 나흘 만에 집은 깨끗이 수리되었다. 방 한 개를 욕실로 만들고 천장이나 벽을 수리하는 작업이었기에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방 대인이 하녀를 한 명 주겠다고 했지만 식사는 표국에서 했으므로 목욕하고 잠만 자는 집에 하녀를 둘 필요는 없었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표두로서 물품이 안전하게 운송되도록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자 얼마 되지 않던 인원들이 3백 명 정도로 늘어났고, 표국은 각종 화물이 출입함에 따라 쉴 사이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묵향은 바쁜 와중에서도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 시간이 없으면 잘 시간을 줄여서라도 운기조식을 했다. 그는 여러 가지 무공을 익히고 있었는데, 요즘 그가 힘쓰고 있는 것은 어검술(御劍術)이었다. 어검술이란 글자 그대로 칼〔劍〕을 다스리는〔御〕 기법이다. 강기와는 달리 어검술은 진기를 이용하여 검이 가진 모든 힘을 밖으로 끌어내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그렇기에 어검술을 사용하면 보통의 강철 검으로 신검(神劍)과 같은 파괴력을 낼 수 있다. 그의 어검술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다. 검강을 뿜어내기 직전 검에 붉은빛의 강기가 뇌전이 흐르는 것같이 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어검술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이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노릇인지 궁금증만 쌓여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날도 묵향은 검과 씨름을 하다가 골치가 아파짐을 느끼고 밖으로 나왔다. 여러 가지로 심경이 복잡할 때는 바람을 쐬면서 걷는 게 상책이다. 집구석에 들어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보다가 한 계집아이가 만두를 훔치는 것을 봤다. 그 아이는 만두를 가지고 얼마 가지도 못해 잡혀서 뭇매를 맞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다 못한 묵향이 끼어들었다.

“아직 어린앤데 너무 심한 게 아니오?”

묵향은 코피를 흘리고 있는, 때가 꼬질꼬질 묻은 옷을 입은 비쩍 마른 열두 살가량의 소녀를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심한 게 아니오. 얘는 맞아야 해. 어디 가서든 일해서 벌어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도둑질부터 하려고 드니…….”

주인은 그러면서 또다시 그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이는 그냥 포기한 듯 맞고만 있었다. 반항하지도 않는, 아니 반항할 기운도 없는 그 아이를 보고 묵향의 마음이 움직였다. 묵향은 또다시 쥐어박으려는 가게 주인의 손을 잡았다.

“아이를 놓아 주시오.”

묵향이 잡은 손에 힘을 약간 더 주자 사내는 바로 손을 놓았다. 그러자 묵향도 주인의 손을 놨는데 그 손에는 붉게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묵향은 소녀를 보고 물었다.

“왜 훔쳤니? 일을 해서 벌 수는 없었냐?”

“저는 너무 어려서 아무 일도 시켜 주지 않아요.”

아이는 힘없이 대답했다. 묵향이 바라보니 아이는 그렇게 맞았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너 요리 잘하냐?”

“예? 못해요.”

“할 수 없지. 날 따라 오너라.”

아이가 주춤주춤 망설이자 묵향이 말했다.

“일자리를 주려는 거다. 일을 하고 싶냐?”

그 말을 듣자 아이는 조르르 따라왔다. 묵향은 천천히 걸으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냐?”

“소연(蘇衍)이요.”

“좋은 이름이구나. 식구는 있냐?”

“집에 아픈 엄마가 있어요.”

“아버지는?”

“재작년에 돌아가셨어요.”

“너희 집이 어디냐?”

“그건 왜 물어요?”

“너에게 일을 시키려면 너의 어머님께 허락을 받아야 될 것이 아니냐.”

“응…, 그럼 따라오세요.”

소연이의 집은 낙양 구석의 빈민가에 있었다. 다 쓰러져 가는 작은 집으로 소연이는 묵향을 안내했다. 묵향은 망설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창을 넘어 들어온 하수구 냄새 때문인지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고, 방구석에는 다 떨어져 걸레가 된 이불을 덮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소연이 어머니의 병세가 심각한 것처럼 보였기에 묵향은 소연이의 어머니를 안고는 급히 의생(醫生)을 찾아 갔다. 가마 따위를 부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안고 가는 것이 환자에게 충격이 적게 가기 때문에 그냥 여인을 안고 갔다. 의생의 말로는 여인의 병은 과로와 영양실조가 원인이었다. 그는 의원 부근에 자리를 잡고 그 여인이 적당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마를 불러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다음부터 묵향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여인은 한 달가량 영양 있는 음식과 탕약을 먹으며 몸을 조리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묵향은 그 여인을 가정부로 고용하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돈을 가져다주었으므로 집은 작은 편이었지만 모녀에게는 상당히 풍족한 삶이 시작되었다.

여인은 어려운 생활 때문인지 음식 솜씨가 형편없었지만 묵향과 소연이가 열심히 먹어 대는 동안 어느덧 차차 나아졌다. 그리고 소연이는 점점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소연이와 함께 집 앞에 작은 정원을 만들고 꽃씨를 뿌렸다. 그리고 소연이에게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글이나 그림, 음악 등을 가르쳤다. 소연이가 곧잘 했으므로 바쁜 와중에서도 소연이를 가르치는 것은 묵향의 조그마한 기쁨이었다.

어느 날 밖에서 놀다가 들어온 소연이가 마루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묵향에게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도 무술을 해요?”

“뭐?”

퍼뜩 정신이 든 묵향이 되물었다.

“아저씨도 무술을 할 줄 아느냐고요.”

“왜 그러니?”

“오늘 거리에서 칼싸움을 하는데, 사람이 하늘로 새처럼 붕붕 날았어요. 아저씨도 날 줄 알아요? 아저씨도 칼 차고 있잖아요? 가르쳐 줘요.”

아마 소연이는 근처 마을에 놀러 갔던 모양이었다. 묵향이 거주하고 있는 곳은 소연이가 살던 낙양성에서 좀 떨어진 곳이다. 그래서 심심하면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위해 가까운 마을로 갔다. 이번에는 아마 무림인들이 싸우는 걸 보고 놀란 모양이다. 소연이의 말도 안 되는 질문에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아저씨는 하늘을 날 줄 몰라.”

“아저씨는 약해요?”

“응, 약하지. 그러니까 이렇게 작은 집에서 살고 있잖아. 내가 강하면 많은…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이만큼 큰 집에서 살겠지.”

묵향이 과장스럽게 손짓을 하며 말하자 소연이는 이해한 모양이다. 묵향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후 까불다가 잠든 소연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소연이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이 좋을까? 쓸데없이 피비린내 나는 무림의 세계에 발을 들이밀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리 저리 생각하다가 아무리 여자 애라도 약간의 호신술을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연이도 무술을 배우고 싶냐?”

“예.”

“그럼 가르쳐 주기로 하지. 내가 잘 모르니까 그렇게 대단한 건 못 가르쳐 준다. 그렇지만 무술을 배우면 심신을 닦는 데 많은 도움이 되니 한번 배워 보렴.”

“예, 그러면 아저씨가 내 사부가 되는 거예요?”

“아니, 그냥 배우는 거지 사부는 무슨……. 나는 제자를 받을 생각은 없어. 우선 심법부터 배우는 게 좋다. 이건 태허무령심법(太虛無靈心法)이란 것으로 정통적인 도가의 내공수련 심법이지. 이걸 꾸준히 익히면 무병장수할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예뻐진단다.”

“아저씨도 그걸 익혔어요?”

“익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너에게 가르치겠냐?”

“하지만 아저씨의 모습은 예쁜 게 아니잖아요?”

“음, 그러니까 내 말은… 실수했구나. 예쁜 게 아니라 튼튼해지는 것이다. 이건 우연히 내가 배운 것인데―마교에서 훔쳐 배웠다고는 죽어도 못 가르쳐 주지―여태까지 내가 익히던 것보다는 더 뛰어난 심법이지. 이것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내가 좀 수정을 해서 만든 것이니 다른 이들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알겠냐?”

“예.”

“그리고 이걸 익히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와 자기 전에 2각에서 4각(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매일 수련해야 한다. 할 수 있겠냐?”

“예.”

“이걸 익히기 시작한 다음에는 다른 심법은 익히지 말고 언제나 이것만을 익혀야 한다. 안 그러면 내공이 정순(靜純)하지 못해서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단다.”

“예, 그런데 내공은 뭐고, 정순하다는 건 또 뭐예요?”

“내공이란 건 몸속에 쌓이는 형태가 없는 힘인데, 이걸 이용해서 네가 말한 대로 날아다니는 거란다. 너도 날아다니는 걸 봤다면서?”

“예, 그게 내공을 이용해서 날아가는 거예요?”

“그렇지, 정순하다는 건 맑고 순수하다는 말이야. 내공이란 건 정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네가 말한 대로 날아다닐 수 없어. 알겠니?”

“예.”

“도가의 심법은 마음을 편안히 다스리는 데 그 모든 요결이 있지. 그 때문에 심마(心魔)에 빠지지 않고…….”

“심마가 뭐예요?”

“그러니까, 에… 심마란 여러 가지 잡념을 말하는 거야. 오욕칠정(五慾七情)에―이런 말을 해서 알아듣나?―아니, 심마란 나쁜 거란다. 이게 생기면 아주 나쁜 일을 당하게 되니까 그냥 그렇게 알고 있거라.”

“예…….”

묵향은 소연이에게 약간씩 무공을 가르쳤다. 그는 소연이에게 위험 부담이 대단히 큰 마교의 심법을 가르치기보다는 도가 계통의 것을 가르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현문의 내공심법을 익히면 사술(邪術)에 걸리지 않는다. 심신을 맑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묵향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 작고 귀여운 소녀에게 사술에 걸리지 않게 해 주는 현문의 심법을 가르치기로 작정한 것이다.

정통 마교의 고수들과는 달리 살수 등 특수한 계층에 종사하는 마교의 고수들은 다른 사파나 정파의 무공을 폭넓게 익힐 수 있다. 그 무공의 장단점을 알아야 기습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무공들은 마교가 한 번씩 정파와 충돌을 벌이면서 습득하거나 훔쳐 낸 것들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소림이나 각 문파들보다 더 많은 정파의 무공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마교라고 볼 수도 있다. 마교의 본거지인 십만대산은 자타가 공인하는 천험(天險)의 요새였고, 그 덕분에 한 번도 본거지를 습격당한 적이 없다. 그리고 관부에서도 손을 못 쓰기 때문에 그 결과 수많은 무공들을 소장하게 된 것이다. 그에 비해 정파의 무리들은 황궁의 압력에 못 이겨 많은 수의 무공서적들을 넘겼다. 다만 각 문파의 최고 무공은 약탈하지 않는 한 압력을 가한다고 뺏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소연이에게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후 묵향은 매일 밤 소연이의 방에서 두세 시진을 보냈다. 묵향이 처음 소연이가 잠든 방에 들어왔을 때 소연이의 어머니는 약간 놀랐다. 방에 들어온 묵향이 다짜고짜 소연이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묵향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으리, 어째서 이러십니까?”

“왜 그러시오?”

“소연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그게 아니오. 나는 다만 안마를 해 줄 뿐이오. 지금 아이에게 무공을 약간 가르쳐 주고 있는데, 밤에 안마를 해 주면 좀 더 빨리 익힐 수 있소.”

“그렇습니까?”

그녀는 반신반의하며 물러섰다. 그러자 묵향은 속옷만 남긴 채 옷을 다 벗기고 천천히 내력을 쏟아 소연이의 혈도를 뚫어나갔다. 거의 두 시진 동안 안마를 한 묵향은 아직도 자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 주시오.”

“꼭 비밀로 해야 합니까, 나으리?”

“그럼 내가 맨날 안마한다고 온 마을에 떠들 것이오?”

“알겠습니다, 나으리.”

대강의 내용을 안 그녀는 손쉽게 허락했다. 하지만 묵향이 말하지 않은 것이 몇 가지 있으니, 낮에 무공을 익히거나 심법을 익힐 때는 내력이 강제적으로 혈도를 돌아 천천히 내공이 쌓이지만 밤이 되어 잠이 들면 그 내력은 멈춰 원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밤에 내공의 고수가 혈도를 타고 강제적으로 내력을 돌려 주면 낮에 익히는 것의 두 배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모든 사부(師父)들이 제자에게 이걸 해 주지 못하는 이유는 이 작업은 먼저 시술자가 2갑자 이상 되는 내력이 있어야 한다는 기본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정도에 이르지도 못했는데 이러한 방법을 시도하다간 시술자의 몸이 견디질 못하고, 또 진기의 유도에 실패하면 상대방도 심한 내상을 입을 수 있다. 그리고 2갑자에 이른다 하더라도 매일 몇 시진씩 이런 시술을 해 대면 내력의 소모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칫 진원지기(眞原之氣)를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시진에 걸친 이 인타유기혈공(引他誘氣穴功)을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했기에 그녀는 그가 단순한 안마를 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다음 날 딸이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나서 심법을 행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묵향을 완전히 믿었고 더 이상의 의문은 제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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