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의 말을 빌리면 ‘미친 짓’이라는 수련을 계속해 나가던 따뜻한 봄. 그날 묵향은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려고 소나무 숲을 나섰다. 요즘 들어서는 거의 사흘에서 일주일 단위로 집에 갔다. 소나무 잎을 세지 않을 때는, 사군자와 비무할 때를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많은 잎을 셀 수 있을까 고민하는 데 사용했다. 집에 가까이 오자 누군가가 집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명이군. 제법 뛰어난 실력을 갖춘 자들이다. 그런데 풍겨 나오는 기로 봐서 본교의 인물들은 아닌 것 같군. 그렇다면 어떤 간 큰 녀석들이 본교에 들어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묵향은 집으로 다가갔다. 그렇지만 그는 추호도 자신이 벌써 눈치 채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으로 그는 벌써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고, 또 서서히 진기를 끌어 모았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들 중 하나가 묵향의 목에 비수를 들이댔다. 하지만 살기(殺氣)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묵향은 반격을 하지 않았다. 혹시나 교주가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 보낸 본교의 무사들이라면 죽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비수는 묵향의 목에서 반 치 정도 되는 곳에서 멈췄고, 나지막한 남자의 위협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해!”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또 다른 사람이 묵향의 허리에 찬 검을 빼앗았다. 묵향은 슬쩍 방을 둘러보았다. 그에게서 검을 빼앗은 남자의 호흡이 일정하지 않기에 상당한 부상을 당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저쪽 구석에 누워 있었다. 가슴이 불룩이 솟아 있는 걸로 보아 그 사람은 여자인 모양이다.
‘셋 다 부상을 당한 모양이군. 그렇다면 본교의 인물들은 아닌 모양인데? 지금 해치울까? 아니면 좀 있다가?’
묵향은 후자를 택했다. 이들은 언제나 해치울 수 있는 자들이다. 지금 해치우는 것보다 시간을 끌면서 이들의 정체를 파헤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묵향은 순순히 그들의 말을 들었다.
“여기는 어디냐? 마교의 영역을 벗어나려면 얼마나 더 가야 하지?”
“마교의 영역을 벗어나려면 30리는 더 가야 하죠.”
그러자 칼을 빼앗았던 사람이 절망적이라는 듯 한숨을 쉬었다.
“사형, 어떻게 하면 좋죠?”
칼을 들이대고 있는 인물이 다시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너는 누군데 여기서 살고 있나?”
그러자 묵향은 겁에 질린 듯한 어조로 말했다.
“소인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았죠. 예전에는 마교에서 한자리 했는데 권력 다툼에 밀려서 이곳에 쫓겨난 분이 소인의 선친이시라 여기서 계속 살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무술을 익히면 마교에 들어가려고요.”
“그래?”
그 남자는 부싯돌을 한 번 부딪쳐 잠시 동안 일어나는 불꽃을 이용해서 묵향의 용모를 보더니 옆 사람에게 말했다.
“정말인 것 같군. 마기도 없고 도저히 무술을 잘 알 것 같은 모습이 아니군. 거기다 상당히 젊잖아. 너는 우리를 마교의 영역 밖으로 안내해 줄 수 있나?”
“소인도 목숨이 걸린 일이라. 헤헤…, 돈을 좀 주셔야 겠는데요.”
“돈은 나중에 줄 수 있다. 은자 한 냥이면 되겠냐?”
“쓰는 김에 더 쓰시죠, 나으리.”
“좋아, 다섯 냥 주마.”
“좋습니다. 그런데 저쪽에 계신 분의 몸조리를 하고 나서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소인이 의술을 좀 알고 있으니 상처를 봐도 되겠는지요?”
그러자 그 사내는 비수를 치우며 말했다.
“좋다.”
묵향은 등을 켜고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 여자는 상당한 외상과 함께 심각한 내상까지 입고 있었다.
‘흑마장에 당했군. 이쪽 상처는 칼에 긁힌 상처인데… 별로 깊지는 않아. 그 외에 몇 대 더 먹었는데 가장 심하게 당한 건 유마권(柔魔拳)이야. 본교의 무형마공 중 무형의 권풍을 일으키는 유마권을 사용한 자의 수준이 그렇게 깊지 않았던 데다가 현문의 정순한 내공을 지니고 있어서 죽지는 않은 모양이야. 아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맞았겠지. 내상이 심해서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겠어. 그런데 이 얼굴은 낯이 익군…, 누구더라? 꽤 오랫동안 현문의 정통 심법을 수련한 사람 중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없는데…….’
묵향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 여자의 옷을 벗기고 침을 찔렀다. 옷을 벗기고 보니 그렇게 심각한 외상은 많지 않았다. 묵향은 품속에서 금창약(禁瘡藥)을 꺼내어 발라 주고, 마교에서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하는 단환을 세 알 먹였다. 그리고 두 남자도 치료해 줬다. 검을 빼앗았던 남자는 복부에 깊은 검상이 있었지만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단환을 먹이고 함께 금창약을 발라 줬다. 무림인들이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이 금창약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금창약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걸 보면 일단 잡혀서 금창약 등을 빼앗기고 나서 탈출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묵향으로서는 알 수 없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여자는 현문의 정통 심법을 익혔는데, 두 남자는 현문의 심법을 익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내력은 두 남자가 여자보다 강했지만 그 정순은 여자가 더욱 뛰어났다. 아마도 이삼십 년이 지나면 여자가 두 남자들을 앞서갈 것이 분명했다. 왜 이들은 심법이 서로 다를까? 이것이 묵향의 의문 중 하나였다.
다음 날 아침 난이 수련을 하기 위해 묵향의 식사를 가지고 왔다. 묵향은 마루에서 명상을 하며 기다리다가 난에게서 음식물을 받아 들고 말했다.
“고마워, 영영! 집에 쌀과 반찬이 떨어졌는데, 사다 주지 않겠어? 나도 계속 얻어먹을 수만은 없잖아. 집에서 해 먹어야겠어. 그리고 금창약하고 내령마속환(內逞魔屬丸)이 떨어져서 그러니 한 서른 알 정도 가져다줘.”
그러면서 묵향은 약간의 은자를 난에게 건넸다. 난은 묵향의 말이 평상시와는 다르다는 걸 알고 약간 당황하여 전음(傳音)을 보내왔다.
<왜 그러십니까, 부교주님? 혹시 탈출한 무리들이 이곳에 왔나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내가 지시한 걸 좀 가져다줘. 알아볼 게 있다.>
“알겠습니다. 곧 가지고 올게요.”
한 시진 반 정도 지나자 난은 세 명의 하인들을 시켜서 음식물들과 약품들을 묵향에게 가져다줬다.
“수고해 줘서 고마워. 잘 먹을게.”
묵향은 하인들에게 동전 세 냥씩 수고료를 쥐어 줬다. 그러면서 난에게 전음을 보냈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는 않았겠지?>
<알리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모두 이들이 부교주님 집에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부교주님이 그냥 계시니까 가만히 있는 거죠. 교주님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나는 바빠서 오래 얘기를 나눌 수 없군. 잘 가.”
<이들은 누구냐?>
“몸조심 하세요. 다음에 뵈요.”
난은 하인들과 함께 천천히 멀어지면서 전음을 보내 왔다.
<그들은 천지문(天地門)의 제자들입니다. 천지문과 본교가 충돌했고, 그들 중 3백여 명을 뇌옥에 가둬 두었는데, 그들의 일부가 탈출을 시도했어요. 모두 잡아들였는데 그중 세 명만이…….>
<나중에 매보고 지붕에 올라오라고 해. 물어볼 것이 있으니까.>
‘천지문이라…, 낙양에 있는 문파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도대체 알 수가 없군. 매는 비영대 출신이니까 좀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묵향이 그들을 치료하고 있을 때 지붕 위에 사람이 올라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매의 은잠술이 뛰어나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묵향은 매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들은 누구냐?>
<천지문의 제자들입니다.>
<천지문의 제자들이 왜 본교에 있지?>
<두 달 전에 천지문과 본교 간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천지문은 낙양에서도 알아주는 대문파입니다. 그렇다 해도 본교에 도전할 정도는 안 되는데, 본교의 비밀 분타를 건드린 게 화근이죠. 낙양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본교의 고수들과 충돌해서, 몽땅 다 잡아다가는 뇌옥에 넣어 뒀는데 이들이 도망친 겁니다. 감시를 엄밀히 했는데도 제법 실력이 있는 자들이라 그만……. 그래서 본교의 고수들이 출동해서 다시 다 잡아들였는데 이쪽으로 도망친 세 명만이 아직 잡히지 않았죠. 교주님께서도 왜 부교주님께서 이들을 그대로 두는지 궁금해하고 계십니다. 부교주님이 하시는 일이라 어쩌지 못하고 있지만 이 근처에 다섯 명의 고수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부교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하명해 주십시오.>
<너는 교주님께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려라. 이번에 사로잡은 천지문의 인물들은 어떻게 한다고 하던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천지문도 고수의 3분지 1 정도를 상실했기 때문에 상당히 당황하는 모양입니다. 그들로서도 이렇게 될 줄은 알 수 없었겠죠. 비밀 분타는 노출되었기 때문에 팔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옮겼습니다. 이들을 천지문에 돌려주고 몸값을 받을 건지 아니면 모두 처형해 버릴 건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여지고 수석장로에게 이 일은 내가 처리할 생각이니 내 얼굴을 봐서 간섭하지 말라고 전해 주게. 천지문 녀석들이야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과거 수석장로는 마천검귀 여절파였지만 그가 죽고 난 후 그의 아들인 천도왕(天刀王) 여지고(呂志高)가 진급하면서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마교 내의 여(呂) 씨 가문은 대단히 뛰어난 무가(武家)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해 두겠습니다.>
<부탁하네.>
<존명!>
<참, 천지문은 현문의 한 갈래인가?>
<아닙니다. 도가 계통이라기보다는 불가 계통이라고 보시는 것이 옳습니다. 천지문을 일으킨 시조가 소림사의 속가제자라고 들었습니다.>
<알겠네. 지시할 사항이 생길지도 모르니 하루에 한 번은 지붕 위로 오게나. 이제 그만 가 보게나.>
그와 동시에 지붕 위에서 사람의 기척이 사라졌다.
묵향은 그들을 한 달 정도 치료하면서 여러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묵향이 낯익었던 여자의 이름도 알 수 있었다. 남자들은 여자를 소 사매(蘇師妹)라고 불렀고, 묵향에게 칼을 들이댔던 사람이 그들 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모양인데 전 사형(田師兄)이라 불렸으며, 묵향에게서 칼을 빼앗았던 또 다른 남자는 임 사제(林師弟)라 불렸다.
‘소 사매라. 그러면 성이 소(蘇) 씨군. 소 씨 여자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소 씨라, 소 씨……. 그리고 현문의 정통……. 그렇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걸 눈치 챈 다음부터 묵향은 이들에게 상당히 정성을 쏟았다. 한 달 정도가 지나자 그들의 상처가 거의 나았다. 그들은 묵향이 자신들을 성의껏 대해 주는 걸 알고 상당히 기뻐했고 속으로 의심하던 마음도 차츰 풀려 갔다. 이들이 회복되자 묵향은 이들을 모아 놓고 탈출할 방도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여기서 마교의 영역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도 최소 세 번 이상 마교의 눈길에 걸리게 됩니다. 아무리 숨어서 나간다 해도 어떻게 할 수 없죠. 변장을 하고 당당하게 나갈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그래도 경비가 허술한 곳이 없습니까?”
“경비가 허술한 곳은 없어요. 탈출은 이쪽을 통해섭니다.”
묵향은 붓을 들어 종이에 대강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했다.
“여기서 이쪽을 통해서 나가면 다섯 번 보초에게 발각되게 되죠. 그리고 여기저기 매복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도 띌 겁니다. 하지만 이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서 내가 앞장서서 나가면, 나는 자주 이곳을 왕래했기 때문에 별로 의심받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변장을 잘 해야 해요.”
그러자 전 사형이라 불린 사람이 의심에 가득 찬 눈초리로 묵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말한 곳은 너무 눈에 잘 띄는 길이에요. 산길을 타고 갈 수는 없습니까?”
“산길에는 매복이 더 심하죠. 그리고 각종 진법들이나 기관 매복이 깔려 있습니다. 이곳은 마교의 총타가 위치한 곳입니다. 1천 년의 역사를 가진 마교가 아직 단 한 번도 총타를 적에게 내준 적이 없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혹 산속이 총타의 내부보다 매복이나 함정들이 적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첩자들이 저세상으로 떠날 정도로 강력해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거라면 좀 더 편하고 그러면서 가능성이 많은 쪽을 택하는 것이 좋을 거요.”
소 사매가 묵향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 길이 가장 안전하다는 말인가요?”
“그래요. 나는 이 길의 통행증을 가지고 있고 또 자주 왕래하기에 지키는 사람들과 안면이 많습니다. 모두 망태기를 지고 속에다가 약초 등을 집어넣어 시내에 내다 팔 약초를 캐 오는 길이라고 하면 되죠. 얼굴에 진흙을 묻히고 옷은 내가 줄 테니 그걸 입고 나가면 됩니다. 당신들이 입고 있는 그 옷을 입고 나가면 1리도 못 가서 잡혀 갈 게 뻔합니다.”
그들은 어찌 되었던 묵향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기에 묵향을 따라나섰다. 허름한 옷과 망태기에는 약초를 몇 뿌리씩 넣고 그들은 길을 재촉했는데, 이미 묵향의 지시를 받은 보초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묵향은 그들을 데리고 십만대산을 내려와서 말했다.
“십만대산을 기준으로 1백 리 안쪽은 마교의 영향권 안이오. 일단 1백 리만 벗어나면 그래도 안심할 수 있지요. 낮에는 쉬고 밤에는 걸어가면 괜찮을 겁니다. 헤헤…, 그런데 돈은 어떻게? 지금 계산하시겠습니까?”
“지금은 돈이 없습니다. 나중에 본문에 돌아간 다음 사람을 보내어 계산해 드리죠.”
“제 칼도 돌려주시죠. 이제 위험은 벗어났는데, 제 칼까지 뺏어 가는 건 너무하시는 처사인데요.”
임 사제라는 사람이 등에 진 봇짐을 풀어 검을 돌려주며 말했다.
“정말 좋은 검이더군요. 잘 썼습니다.”
묵향은 검을 받아 허리에 차고는 싱긋 웃었다.
“아주 예의가 없는 친구들은 아니군.”
묵향의 말투가 갑자기 바뀌자 그들은 안색이 변했다. 그리고 모두 진기를 끌어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다. 묵향은 그들의 행동에 아랑곳 하지 않고 외쳤다.
“난!”
그러자 난이 숲 속에서 섬전과 같은 속도로 뛰어나와 묵향의 앞에 부복했다. 그 전에 식량과 약재들을 가져다줬던 여자임을 알아본 그들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지며 긴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부탁한 걸 주게나.”
“여기 있습니다.”
묵향은 난에게서 건네 받은 작은 꾸러미를 소 사매라 불린 여자에게 내밀었다.
“갑자기 닥친 일이라 좋은 걸 준비할 수 없었다. 작지만 나의 성의로 알고 받아 주렴.”
묵향이 부드럽게 말하자 소 사매라 불리는 여자는 망설이는 기색으로 그 꾸러미를 받아 들었다. 묵향은 꾸러미를 건넨 후 품속에서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그걸 전 사형이라 불리는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이 안에 은자가 약간 들어 있다. 모두 무일푼일 테니 여비로 쓰게나.”
묵향은 아주 먼 곳을 바라보는 듯 추억에 잠긴 시선으로 소 사매라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나서 반가웠다. 몸조심하거라.”
묵향은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때 소 사매라는 여자가 그 꾸러미를 풀어 보자 그 안에는 예쁜 귀걸이 한 쌍과 작은 보석이 달려 있는 금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 여자는 그걸 보면서 한참 말이 없더니 급기야 뭔가 떠오른 듯 멀어져 가는 묵향을 향해 외쳤다.
“아저씨!”
그렇지만 묵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난이 궁금한 듯 묵향에게 물었다.
“누굽니까?”
“응, 내 양녀(養女)지. 낙양에 있을 때 거두었는데……. 천지문에 들어갔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군. 무림인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그러면 아는 체라도 하시는 것이…….”
“아니야, 나는 사파고 저 아이는 정파니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게 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을 거야. 그리고 내가 이렇게 젊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다른 두 명이 설마 의심하겠어? 그냥 내가 저 여자 애에게 흑심을 조금 품었나 하고 생각하겠지. 죽에게 연락해서 천지문에 도착할 때까지 저들이 모르게 호위해 주라고 하게나.”
묵향이 집으로 돌아오자 국(菊)이 초조한 듯 기다리고 있다가 말했다.
“교주님께서 찾으십니다. 빨리 오시랍니다.”
“알겠네.”
묵향이 교주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자 그곳에는 장로들과 능비계 부교주까지 앉아 있었다. 묵향이 다가가 교주에게 인사하자 교주는 약간 노기가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묵향 부교주, 이번 일은 어떻게 설명하겠나? 왜 그들을 놓아줬지?”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인지 확정되어 있었습니까?”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자네 혼자서 독단으로 처리할 정도로 가벼운 사항은 아니었어.”
“감히 교주님께 청합니다. 천지문의 포로들을 돌려보내고 그들과 비밀리에 교섭을 하여 될 수 있으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갑자기 자네가 왜 그러나? 천지문이란 곳이 2천 명 정도의 제자들을 거느리는 제법 큰 방파라 하더라도 우리가 숙이고 들어갈 필요 없이 정예 고수들을 보내어 초토화를 시켜 버리는 것은 간단해. 왜 쓸데없이 그들과 협정을 맺느니 어쩌니 해서 시간을 낭비하나? 이번에 놓아 준 사람 중에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예.”
교주는 탁자에 놓인 서한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묵향에게 말했다.
“자네가 여자 애한테 그 정도로 빠질 줄은 몰랐군.”
“제 양녀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년도 전에 낙양에서 헤어졌고 또 핏줄도 아닌데, 자네가 그 정도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들을 놓아줄 필요가 있나? 그렇다면 사전에 나한테 상의라도 했어야지.”
“죄송합니다.”
교주는 들고 있던 서한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흐유, 자네가 그렇게 정이 많은 사람인 줄은 몰랐군. 겨우 낙양에서 3년 정도 같이 있었고, 거기에 그 여자 애는 자네가 부리던 하녀의 자식이 아닌가?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네의 무예를 전수받은 제자도 아니고……. 그런 비렁뱅이한테 상당한 재산까지 투자해서 독립시켜 줬으면 자네가 할 도리는 다한 것이 아닌가?”
“그래도 저의 양녀인지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자네가 저지른 일이니 자네가 수습하게나, 그럼. 혁무상 장로.”
“예.”
“자네가 묵향을 도와주게. 그리고 이번 일에 책임을 물어 묵향 자네는 이번 일을 수습하는 대로 5년간 근신할 것을 명하네.”
“교주님의 은혜 감사드립니다.”
“그만 물러가게나……. 쯧쯧, 모두들 물러가게.”
교주는 능비계 부교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는 남게나. 내 할 말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