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930)

암흑마교와의 결합

묵향이 교내에 돌아왔을 때는 이상하게 마교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다. 사군자를 보내 알아보니 뭔가 큰일이 벌어질 분위기라는 것이었다. 교주는 묵향이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비밀회의가 있다고 교내의 핵심 고수들을 소집했다. 모두 긴장해서 긴 탁자에 서열 순으로 앉았다. 교주는 혁무상 장로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이번에 토의하게 될 안건은 본교를 탈퇴했던 암흑마교의 교주 흑살마제 장인걸에 대해서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로 무림의 패권(覇權)을 장악하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이번에 다시 본교와 암흑마교를 합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암흑마교의 교도는 5천여 명으로 그중에서 고수급은 많아 봐야 2천여 명 정도입니다. 장인걸은 부교주의 지위로서 자신들의 수하들과 함께 본교에 ‘통합’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토의하기 위한 회의입니다.”

음침한 시선으로 이 혁무상을 바라보고 있던 환영비마(幻影飛魔) 구양운(丘陽雲)이 질문을 했다. 그는 9년 전에 승진하여 천마혈검대 대장에 임명된, 교주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뛰어난 노고수였다.

“만약 암흑마교를 받아들인다면 집 안에 호랑이를 놔 두는 격이 되지 않을까요?”

“그 점도 생각해 봤소. 장인걸이 본교를 탈퇴하면서 이끌고 떠난 고수가 거의 1천여 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장인걸은 그걸 빠른 시간 동안에 다섯 배로 불려 놨습니다. 솔직히 그들의 힘은 대단합니다. 본교에서도 1천여 명을 다시 보충하기 위해서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 만큼 그 암흑마교의 주축 세력인 1천여 명 고수들의 능력은 대단합니다. 그들을 제대로 흡수한다면 본교에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이득을 가져다주겠지만 만약 그들이 두 마음을 품고 들어오는 것이라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여지고 수석장로가 노성(怒聲)을 터트렸다.

“그들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소! 밖의 적은 본교의 사정을 잘 모르므로 기습을 당할 우려가 적지만, 그들이 안에서 반란을 일으킨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오.”

“수석장로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요즘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무림의 정세에 비추어 5천 명의 세력은 꽤 매력적인 제안입니다. 그중에서 최소한 1천 명은 대단한 실력자들입니다. 그 점도 감안을 해야 합니다. 이들을 바로 흡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힘을 적당히 해소한 후에……. 아니면 합병 후 장인걸을 없애 버리면 자연히 그들의 세력은 본교에 완전히 흡수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적당히 해소한다는 건 무슨 뜻이오?”

“그러니까…, 장인걸이 본교로 들어온 이후에 이들을 여러 개의 전투 집단으로 만들어 각각 뭉치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 그들의 일부가 모반을 일으키더라도 본교의 피해는 최소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하! 5천 명 정도니까 실력별로 10개나 20개 정도의 부대로 나눠서 각각 이곳저곳에 배치한다는 말이오?”

“그 의견이 묘하군.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장인걸에게도 일부 세력을 직속 부대로 주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 개로 나눠 놨다 하더라도 은밀히 연락하여 모반을 획책하지 못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이러면 어떨까요? 5천 명 중에서 3백 명 정도의 고수만을 거느리고 본교에 들어오게 해 주는 겁니다. 그들은 장인걸 직속에 배치해 주고, 나머지는 20개 정도로 토막을 친 다음 여기저기 나누어 배치하고 부교주 모르게 그들의 지휘관들을 장악해 나가는 거지요. 본시 본교는 힘의 단체, 그 누구도 의리 따위를 지킬 사람은 없습니다. 강자 밑에 복속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요.”

그러자 교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을 표했다.

“괜찮은 의견인 것 같기도 하군.”

“그리고 장인걸을 철저히 감시해 만약 조금이라도 모반의 증거가 보이면 처치해 버리면 됩니다. 아무리 장인걸이라도 교주님께서 직접 나서시면 처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장인걸이 아무리 4천왕에 들어가지만 4천왕 중 두 명이 협공을 한다면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마교 안에는 4천왕에 들어가는 고수가 세 명이나 있고, 또 이번에 새로 부교주가 된 묵향까지 있으니 그를 처치하는 것은 손쉬우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마교와 암흑마교는 5개월 후 통합되었다. 암흑마교의 교주 장인걸은 부교주로 추대되었으며 여태까지의 예외적인 상황을 감안해서 그가 거느리고 총타로 들어온 3백 명의 고수는 사사혈시마대(邪死血屍魔隊)라는 칭호와 함께 붉은 옷을 입기로 결정되었다. 이들에게 붉은 옷을 입힌 이유는 눈에 잘 띄는 색을 입혀 감시하기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총타에 편입된 3백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30등분이 되어 각 지점에 비밀리에 배치되었으며, 그들이 배치된 곳은 모두 익히 알려진 기존의 거점이나 아니면 기존 분타 중에서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분타들이었다. 즉 이들은 마교가 새로이 만들어 놓은 비밀 분타나 아니면 각종 세력 확장을 위해 만들고 있는 주루나 전방, 표국 등에는 배치하지 않아 마교의 전체 세력을 파악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 외에 여태까지 암흑마교가 만들어 놓은 총타 한 곳과 분타 다섯 곳. 그리고 전방, 기루, 토지 등 각종 사업체도 완전히 정리되었다. 그중 토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암흑마교와 상관없는 것처럼 철저히 파괴하거나 은폐해서 팔아 버렸다. 그런 후 거기서 나온 돈으로 새로운 사업체에 투자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런 식으로 돈줄을 완전히 막아 버리면 또다시 분리하고 싶어도 5천 명이나 되는 인원이 탈퇴해서 나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 외에 암흑마교가 모아 놓은 각종 무공비급이나 무기류는 마교로 운반되어 분배되었다.

마교에 돌아온 장인걸 부교주는 교주에게 직접 몇 권의 무공비급들을 바쳤다.

“교주님, 이것들은 제가 힘들게 모은 것들로 아주 대단한 비급들입니다. 받아 주십시오.”

교주가 보니 무공비급에는 각각 응혈신장(凝血神掌), 귀혼강신대법(歸魂殭身大法), 응혈귀조(凝血鬼爪)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을 본 교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 처음 보는 무공들이군. 이것들은 어떻게 구했나?”

“예, 우연한 기회에 응혈귀조라는 무공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그걸 좀 더 강력하게 발전시킨 무공이 응혈신장입니다. 조법(爪法)을 장법(掌法)으로 만들었는데, 그 위력이 더욱 강력합니다. 이것들은 격중되면 사람의 피를 엉기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공으로, 아주 지독한 무공입니다. 한 번 격중되면 거의 치료가 불가능한 무공들입니다.”

“대단하군.”

“그리고 귀혼강신대법은 마교의 마공과 혈교의 사술을 혼합하여 만든 것으로 이것을 대성하면 거의 강시에 가까운 육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익히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불사(不死)에 가까운 육체를 만들 수 있는 마공입니다.”

“불사라구?”

“예, 이 마공을 익히면 육체의 복원력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증폭되어 칼로 베어도 죽지 않게 됩니다. 칼에 베여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그것을 주워 붙이기만 하면 순식간에 원상태로 붙어 버립니다. 그리고 육체를 나무토막처럼 만들어 웬만한 도검은 뚫고 들어오기 힘들죠. 약점이라면 황제가 가지고 있는 복마천신검(伏魔天神劍) 같은 사마(邪魔)를 제압할 수 있는 신병(神兵)으로 공격당했을 때 상처의 복원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그 외에도 몇 가지 극성을 가지고 있는 무공이 있으나 그리 대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대단하군. 이 마공을 익힌 사람이 있소?”

“익힌 사람은 1천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그중 5성 이상 성취한 이들은 이번에 제가 이끌고 온 3백 명 정돕니다. 이 마공을 이용하여 진기를 내뿜었을 때 그것에 격중된 사람은 급속도로 살이 썩어 들어가므로, 아무리 고수라도 방심하고 있다가 가벼운 상처라도 입으면 나중에는 치명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대단하군. 사용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도움을 주고 상대에게는 조금의 상처라도 치명상을 입히다니……. 그대는 어느 정도까지 연성했소?”

“9성까지 연성했습니다. 교주님께서도 한번 연성을 해 보심이 좋을 것입니다.”

“그것도 좋겠군. 고맙소.”

장인걸이 마교에 합류했지만 마교의 수뇌부의 걱정과는 달리 큰 문제가 벌어지지 않았다. 교주는 암흑마교에서 새로이 입수한 열두 가지 마공들을 묵향에게 주어 검토해 보라고 했고, 묵향은 그것들을 세밀히 살펴보았다. 묵향은 상당히 파격적인 공격법이나 치밀한 수비법, 거기에 공격에 있어 상대를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고야 마는 그 악랄한 수법들에 혀를 내둘렀다. 이 무공들 중에 일부는 혈교의 요술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고, 정통 무공들만을 수련한 묵향으로서는 그것들을 익힌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예상과 달리 암흑마교와 마교 간의 합체는 아주 부드럽게 이루어졌고, 장인걸이 몇 가지 사건들을 해결해 내자 마교 내에서 그의 위치도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특히나 장인걸이 거느린 3백 명의 고수들은 고수들과의 싸움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무림인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수들과의 싸움에서 괴력을 발휘했다. 그들은 거의 강시에 가까운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특이한 사술도 많이 사용해 정력(靜力)이 적은 상대를 대량으로 살상하는 데 특히나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생일 축하객

장인걸이 마교에 합류한 지도 거의 8개월이 흘러 어느덧 가을이 찾아왔다. 그날도 묵향은 언제나와 같이 소나무 숲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때 한 괴영(怪影)이 은밀하게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묵향에게 접근해 왔다. 3장 거리까지 접근하자 소나무 사이로 먼 산을 바라보던 묵향이 갑자기 괴영을 향해 강기를 뿜었다. 괴영은 경악하여 피하려고 했지만 묵향의 강기는 엄청난 속도로 다가와 그의 몸을 두 토막으로 만들었다. 천천히 묵향이 괴한에게 다가오자 그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묵향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허리 부분이 두 토막 나서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 묵향이 그의 앞에 다다를 즈음 그의 상처는 거의 다 나은 것이다. 그는 묵향을 향해 부복(俯伏)했다.

“교주께서 부르십니다.”

묵향은 상대에게 싸늘히 말했다.

“네 녀석은 누구냐?”

“속하는 장인걸 부교주님의 수하이옵니다. 교주님께서 묵향 부교주님을 부르려고 하시자 장 부교주님이 저를 보내 통지하라 하셨습니다.”

묵향은 이자가 귀혼강신대법을 익힌 고수라는 사실을 눈치 챘다.

‘겨우 이따위 마공을 익힌 주제에 나를 시험하려고 들어?’

묵향은 귀혼강신대법을 보고, 자신이 그걸 익히기에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아서 그만뒀지만, 대신 그 약점은 파악하고 있었다. 귀혼강신대법이 가장 강한 위력을 보일 때는 상대가 검이나 도 같은 무기로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처 크기가 작아서 손쉽게 상처 수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철퇴 같은 것에 한 대 맞으면 그 상처가 엄청나게 크므로 수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특히나 머리에 맞아 완전히 머리가 부서져 버리면 수복은커녕 목숨까지 날아가는 것이다.

“흥! 본좌는 내 근처로 모습을 감추고 숨어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네 녀석의 머리통을 부숴 버리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으로 생각해라. 혹시 다음에 본좌의 부근에 숨어드는 녀석이 있다면 골통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

상대는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묵향이 교주에게 인사를 드리자 교주는 장인걸과 얘기를 나누다가 묵향을 반겼다.

“어서 오게나. 이쪽은 알고 있겠지? 장인걸일세.”

“안녕하셨습니까, 장인걸 부교주님?”

“그대도 안녕하셨소? 본교 최고의 고수를 뵙게 되어 영광이군. 공식적인 행사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셔서 오늘에야 만나게 되는군요.”

“죄송합니다.”

서로 간에 인사가 끝나자 교주가 입을 열었다.

“실은 묵향 부교주에게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서 불렀소.”

“무엇입니까?”

“이번에 무림맹주 옥청학이 1백 40세 생일을 맞이해서 본교에 초청장을 보내왔지. 도대체 그놈의 속을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여태까지 무림맹과 서로 인사를 나눈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갑자기 그러는 이유를 알 수 없어. 하지만 무림맹주의 생일 인사니 아무나 보낼 수 없고……. 그래서 내 손녀를 보내기로 했지.”

“…….”

“그런데 이 아이가 원체 방자해서 웬만한 교내의 고수를 붙여 놔도 통제가 불가능이란 말씀이야. 그래서…….”

“장인걸 부교주님께서 동행을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영영(韓永瑛)은 장 부교주님에게는 고양이 앞의 쥐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장 부교주에게 부탁했더니 한사코 싫다는 거야. 자네도 들었을 테지? 하나뿐인 손녀라고 애지중지 길렀더니 버릇이 없어. 그래 자네를 불렀지. 꼭 자네가 해 주게나.”

묵향은 한영영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익히 그 더러운 소문을 듣고 있었다. 버릇없기로 천하제일이며 수하들을 마음대로 구타하고 등등……. 그따위 계집을 호위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 목구멍 위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교주의 애원하는 듯한 시선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제가 하죠.”

“껄껄, 고맙네. 자네가 간다면 내 안심할 수 있지.”

“출발은 언젠가요?”

“사흘 후. 모든 준비는 다 해 놓을 거야. 호위는…….”

“사군자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예물을 들고 가기도 귀찮은 노릇이니 그리 중요한 예물이 아니라면 표국에 맡겨서 우리가 도착하기 하루 전쯤에 전달되게끔 만들어 두십시오.”

“그편이 편하다면 그리 해 주겠네.”

한영영은 한중길의 손녀로 현재 소교주의 딸이다. 천마신교의 법전에 의하면 마교에서는 교주, 소교주 등의 지위는 무공이 뛰어난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으며, 교주의 아들딸이라도 그의 무공이 강해서 한자리 차지하지 않았다면 사실상 권력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주의 친족들이 권세를 부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교에서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한영영이다. 그녀는 아름다운 용모에 많은 책을 읽어 총명하고, 또 그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무공을 익혔다. 하지만 그녀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워낙 귀하게 대접받아서 그런지 완전히 안하무인(眼下無人)이라는 점이었다.

스물세 살이란 나이에 무공을 익혔으면 얼마나 익혔겠는가. 모두 그녀를 두들겨 패거나 핍박할 수 없으니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하는 식으로 슬금슬금 그녀만 나타나면 도망쳤고, 재수 없게 그녀에게 걸린 사람들은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여지고 수석장로조차 30년을 애지중지 길러 온 수염을 홀랑 태워 먹었을 정도니 다른 사람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 못 말릴 아가씨는 오늘도 어디 먹이가 없을까 해서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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