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당나라 풍류객 두목(杜牧)의 「기양주한작판관(寄揚州韓綽判官)」으로 무식한 묵향으로서야 그걸 알 리 없지만 달 밝은 밤에 이런 시를 들으니 제법 마음이 동했다. 그래서 한 곡조 더 뜯고 금을 내려놓았다.
“하하, 본좌의 금 솜씨는 누구도 따를 수 없지.”
묵향의 뻔뻔한 자화자찬에 잘 탄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며 되려 퉁명스러운 말이 나왔다.
“너무 잘난 체하지 마세요. 별로 좋은 실력도 아닌 걸 가지고…….”
묵향은 그녀의 면박이 끝나기도 전에 말했다.
“오늘 자리는 이걸로 끝내기로 하지. 내일 보자구.”
괜히 자신이 면박을 줘서 그런 것 같아 옥령인은 아쉬운 마음에 사정했다.
“좀 더 있다가 가지 그래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저기 그 말괄량이가 나오고 있거든…….”
묵향이 일어서자 모두 그 뒤를 따라 나왔다. 높은 자리에서 점잔을 빼면서 재미없는 얘기를 나누고 있던 한영영은 묵향이 웬 여자와 시시덕거리는 걸 보고 열이 뻗쳐 더욱 열심히 맹주와 얘기를 나누었지만 속으로는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공력이 실려서 멀리까지 퍼져 나온 묵향의 금 소리가 들리자 그 감미로움에 매료되어 맹주를 꾀어 함께 묵향과 합석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묵향은 그녀가 다가오자 정자에서 나왔다.
“밤이 늦었습니다. 이제 주무셔야지요.”
묵향의 말투는 사근사근했지만 한영영을 쏘아보는 눈초리는 공포스러운 무언의 압력이 있었다. 한영영은 맹주를 이용해서 묵향의 말을 거부할 생각도 해 봤지만 총단으로 돌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그와 같이 가야 하므로 또다시 상자 속에 갇혀서, 또는 묵향의 위협대로 마차에 묶인 채 끌려서 가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황급히 맹주에게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소녀는 이만 돌아가야 할 것 같군요.”
“좀 더 즐기다 주무시지 않고…….”
다음 날 아침 맹주는 산책을 하다가 바삐 걸어가는 손녀를 만났다. 그녀를 본 맹주는 반갑게 말을 걸었다.
“벌써 일어났느냐?”
“할아버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오냐. 그런데 이번 일은 미안하게 됐구나. 교주에게 정중하게 편지를 보내 네가 원하는 그 녀석을 청했는데도 자신의 손녀를 보냈으니 네 부탁을 지킬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옥령인은 생긋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벌써 이뤄 주셨는걸요. 정말 고마워요.”
“뭐? 이상하군. 네가 원한 사람이 교주의 손녀란 말이냐?”
“아뇨, 함께 온 부교주예요. 지금 만나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가실래요?”
“네 얘기를 듣고 노부도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안내하거라.”
조손(祖孫)은 나란히 얘기를 나누며 한영영 일행이 묵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문을 두드리자 난이 나오며 그녀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예, 난 소저도 안녕하세요? 부교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난은 생긋 웃으며 안내했다.
“저를 따라오세요. 지금 수련 중이시거든요.”
“여기서도 수련을 하세요?”
난도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언제나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으시니까요.”
난을 따라가니 묵향은 가을의 따스한 햇볕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무릎 위에 검을 올린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난이 다가가 속닥거리자 묵향은 난에게 무어라고 지시를 내린 후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난은 옥령인에게 다가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새벽 수련을 방해받고 싶지 않으시답니다. 그냥 돌아가시라는데요.”
“저 수련은 언제 끝나는데요?”
“본교에 있을 때는 몇 날 며칠을 계속 앉아 계시기도 했습니다. 설마 밤까지 계속 앉아 계시지는 않겠죠.”
이때 지그시 묵향을 바라보던 맹주가 옥령인에게 물었다.
“저자가 묵향이란 부교주냐?”
“예.”
“젊은 나이에 대단하군. 뇌전검황이 스스로 비무를 청했다기에 별일이다 싶었더니 노부도 맹주란 직위만 아니면 비무를 청하고 싶구나. 이보게.”
“예.”
“자네 주인에게 노부와 술 한잔하면서 논검(論劍)할 기회를 좀 달라고 부탁하지 않겠나?”
맹주가 그렇게 말하자 난이 매우 놀란 표정으로 살짝 맹주를 바라보더니 다시 묵향에게 다가갔다. 난이 묵향에게 가는 걸 보면서 맹주가 옥령인에게 말했다.
“제령문에서 사람이 와서 뇌전검황이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 그에게 물어보니 검황은 저자와 밤새도록 논검을 했다고 하더군.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꼭 새겨들어 기억하라고 일렀다는 거야. 그래서 노부는 제령문으로 직접 달려가서 여러 가지 조사하는 중에 그 논검한 내용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지. 하지만 누구도 알려 주려 하지 않더군. 원체 오래전의 일이라 다 잊어버렸다는 거야. 하지만 사부님이 목숨을 바쳐 제자들에게 알린 거라 외부에는 극비로 하는 걸 게야. 비밀리에 알아보니 그때의 대화 내용을 책자로 만들어 소중히 간직하는 모양이더군. 너는 잘 모르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에 다다르면 오히려 쓸데없는 비급보다 그런 대화가 더욱 소중한 거란다. 무림 최고의 비급이라 불리는 북명신공도 비급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후배들에 대한 권고사항을 나열한 책이라고 봐야지. 그런 무림의 무상지보(無上之寶)가 실전되어 버린 것은 정말 크나큰 손실이야.”
난이 돌아와서 맹주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틈을 봐서 말했다.
“논검도 하시기 싫으시답니다. 대신 조금 있다가 수련이 끝나니 옥 소저께서는 남아 계시다가 함께 비무를 하자고 하시더군요.”
“그럼 폐가 안 된다면 노부도 남아 있다가 손녀가 비무하는 걸 구경할까 하네.”
이때 묵향이 일어서더니 맹주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묵향은 정중히 포권하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맹주도 답례를 하며 말했다.
“들으셨겠지만 폐가 안 된다면 노부도 남아 있다가 손녀가 비무하는 걸 구경할까 하는데, 허락해 주게나.”
“그러죠. 따라와라.”
옥령인이 묵향을 따라 조금 널찍한 곳으로 나오자 묵향이 말했다.
“어제 질문했던 걸 다시 설명해 봐.”
“그러니까 3초 적하정심에서…….”
그러면서 초식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여기가 이상해요. 구결대로 진기를 움직이는데도 잘 안 돼요.”
“그 부분의 구결을 전음으로 말해 봐.”
“…….”
묵향은 전음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거기 말고도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냐?”
“예, 8초와 12초, 16초, 21초.”
그러면서 잘 안 되는 부분의 초식들을 펼쳐 나갔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던 묵향이 말했다.
“초식을 펼치면 이상하게 진기가 잘 안 흐르는 것 같고 또 힘이 막 빠지고 거기에 갑자기 피로감이 증대되고, 또 어떤 때는 진기가 역류하는 것 같기도 하지?”
“예! 맞아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묵향은 가엾다는 듯한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가야, 그건 네 내공이 워낙 보잘 것 없어서 그런 거란다. 내공을 증진하기 위해서 좀 더 힘을 쓰면 모든 게 저절로 해결되지.”
“이걸 좀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어요?”
“방법은 있지만 그건 네 자질에 달려 있어. 자, 손을 줘 봐. 진맥을 한 번 해 보자.”
묵향은 진맥을 하면서 자신의 진기를 옥령인의 몸속으로 집어넣어 구석구석을 훑었다. 한참이 지나자 묵향이 기쁜 듯이 말했다.
“영약을 복용하지 않았구나.”
“예, 언니는 먹었는데, 저는 보시다시피 무공에 별로 소질이 없다며 약이 아깝다고 안 주셨어요.”
“영약을 안 먹었다면 한 번의 기회가 있지.”
묵향은 자신과 옥령인이 나누는 대화를 맹주가 체통도 잃고 유심히 듣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공력을 주입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네 공력은 엉망이라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해. 가장 좋은 방법은 네 쓸모없는 공력을 완전히 없애 버리고 다시 진기를 채워 넣는 방법이지.”
“공력을 없앤다구요?”
“왜? 겁나면 안 해도 돼. 나는 최선의 방법만 말해 주고 있을 뿐 선택은 자유니까.”
묵향이 자신을 불신해서 망설이는 게 아닌가 싶어 약간 불쾌해하자 옥령인은 다급히 말했다.
“아뇨, 당신을 못 믿는 게 아니라 고통이 심할까 봐…….”
“고통이 좀 있지만 참으라구. 좀 아프겠지만 온몸을 꿈틀대도 상관없으니 입만 열지 않으면 돼. 할 수 있겠냐? 입을 열면 모든 게 끝장이야.”
“해 볼게요.”
“해 볼게요가 아니라 해내야 해. 안 그러면 최악의 경우 무공을 상실할 수도 있어. 알겠어?”
“좋아요, 해낼게요.”
“좋아. 가부좌를 틀고 앉거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앉아 있어. 모든 건 내가 알아서 해 줄 테니까. 이봐, 난! 너는 호법을 서라.”
옥령인의 등에 장심을 붙이고 있던 묵향이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말했다.
“공력은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부터 대자연(大自然)의 숨결을 네게 전해 주겠다. 그걸 내가 이끄는 대로 일주천시켜라.”
시간이 흐르자 옥령인의 머리 위에는 옥령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가 응축되어 구름 모양이 생겼다. 옥령인이 고통스러운 표정인데 반해 묵향에게서는 아무런 이상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자 옥령인의 표정이 변해 갔다. 점점 더 평안한 표정을 짓더니 2각 정도가 지나자 완전한 평온함에 빠져 들었다. 반 시진 정도가 더 지나자 옥령인은 묵향의 유도로 머리 위에 응축된 기를 코로 흡입하면서 모든 작업을 끝마쳤다. 묵향은 그녀가 일어서자 아주 기쁜 듯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건 처음이 중요한데, 잘 참았다. 정말 잘했어.”
그리고는 난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이제 호법은 필요 없으니 쉬도록 해라.”
“그런데 방금 한 것 있지요. 제가 지금까지 배운 토납술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맑게 가라앉으면서 평안한 게……. 이게 뭐예요?”
“그건 태허무령심법이지. 원래 이건 처음부터 익혀야 하는데, 네 내공이 워낙 정순하지 못해서 최후의 수단을 쓴 거야. 다음부터 운기조식은 태허무령심법만 해야 해. 안 그러면 지금의 고생이 물거품이 된다구. 알겠어?”
“예.”
“태허무령심법은 정통적인 현문의 토납술인데 오랜 시간 익히면 익힐수록 더욱 정진이 빨라지는 이점이 있고 또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므로 절대 주화입마에 걸릴 염려가 없지.”
“정말 이상한 건 당신이 가르쳐 준 무공 중에서 사파의 무공은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본교의 무공을 아무에게나 가르쳐 줄 수는 없지. 그리고 그때 한 약속은 지금도 유효한 거야.”
“무슨 약속이요?”
묵향은 옥령인을 쥐어박으며 말했다.
“무공을 익히면서 맹세한 거 잊었어?”
“하지만 제가 말 안 해도 다른 사람이…….”
“절대 그럴 리 없어. 태허무령심법은 정파에서는 이미 절전된 지 오래야. 만약 세상에 돌아다닌다면 너밖에는 범인이 없다구.”
“알겠어요.”
“대신 네 자식에게는 전수해 주는 걸 허락하지. 하기야 태허무령심법은 정순함을 그 생명으로 하기 때문에 여태까지 다른 토납술을 사용하던 사람이 이걸 사용해 봤자 득보다는 실이 더 많으니 가르쳐 준다는 건 상대를 주화입마 상태로 만드는 거나 다름없지.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본좌가 전수해 준 적하마령검법을 한번 펼쳐 보라구.”
옥령인이 검법을 펼치는데, 그 전과는 사뭇 기세가 달랐다. 매 초식마다 웅후한 기상과 힘이 느껴졌고, 그녀의 검을 통해 끊임없이 붉은 노을 같은 검기가 뻗어 나왔다. 그녀가 잘 안 된다고 짜증을 부리던 검초들에 이르러는 검 전체가 엷은 붉은빛이 돌며 그녀의 수준이 미숙하기는 하지만 어기충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매 검초마다 붉은 검기가 뻗어 나가며 그사이로 한 번씩 붉은빛 검기의 덩어리가 뻗어 나가 흙과 부딪치면서 폭발을 일으켰다.
그녀의 어기충검은 초식에 따른 어기충검으로 공력만 심후하게 쌓은 후 초식에 따라 내력을 운용하면 생기는 결과다. 화경에 이른 사람이 자유자재로 만들어 내는 어기충검과는 그 질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녀의 36초식이 끝나자 묵향은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이제 제법 모양이 갖춰졌군. 이제 비무를 해 보자.”
“좋아요.”
그녀는 자신 있게 묵향을 향해 검초를 펼쳤다. 묵향은 그녀의 만만했던 사형과는 완전히 달랐다. 검초의 사이사이로 검을 찔러 들어왔다. 그때마다 옥령인은 경악성을 터트리며 초식을 끝까지 펼치는 것을 포기하고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묵혼검은 그녀가 검으로 막으면 다시 옆으로 꺾어져 나가며 다시 다른 허점을 찔러 댔다. 반 시진 정도 지나자 옥령인의 몸은 완전히 땀투성이였고, 묵향은 숨 한 점 흩어지지 않고 상대를 농락하고 있었다. 옥령인은 시간이 갈수록 절망감을 느꼈고 급기야는 울고 말았다. 옥령인이 울음을 터트리자 묵향이 다가가서 달랬다.
“네가 초식을 잘못 운영해서 결과가 이렇게 된 거야.”
그러자 옥령인은 훌쩍이면서 반박했다.
“저는 초식을 제대로 펼쳤다구요.”
“너와 내가 비무를 하면서 서로의 거리가 어느 정도였지?”
“1장 정도? 아니면 그보다 조금 더 가까웠든지.”
“적하마령검법은 근거리의 적에게는 그렇게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 36개의 초식 중에서 근거리에 사용할 수 있는 초식은 열 개 정도에 불과하다구. 거의 대부분이 검기 종류를 이용해 상대를 공격하기에 상대방이 최소한 1장 밖에 있어야 되지.”
“그러면 가까이 다가온 상대는 어떻게 해요?”
“아주 가깝게 다가온 상대는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급소를 치거나 아니면 발로 차야 하지. 그리고 그보다 좀 더 떨어진 상대는 직접 검으로 공격해야 하는데…, 그건 숙달되어야 하는 거야. 네 응용력 정도로는 어쩔 수 없지.”
“그건 속성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요?”
“있긴 있어. 이건 누구나 사용하는 방법인데 접근전에는 눈보다는 오감(五感)을 사용해야 할 경우가 많지. 그런 감각을 키우려면 가만히 눈을 감아 봐. 그리고 소리를 들어 봐. 바람 소리, 새 소리, 발자국 소리, 수많은 소리들이 들리지? 그걸 들으면서 그것과 너 사이의 거리를 생각해 보라구.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놓치면 안 돼. 노승들이 면벽수련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구.”
“모두들 그렇게 수련해요?”
“그럼, 최소한 사군자는 그렇게 수련시켰지. 덕분에 사군자는 근접전에서는 본교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라구. 내가 열심히 가르쳤거든.”
“그럼 사군자는 당신의 제자겠군요. 그리고 저두요.”
“아니야, 나는 절대 제자를 받지 않아. 그냥 약간씩 인연이 닿으면 내가 알고 있는 무공의 일부를 전수해 줄 뿐. 진정한 내 무공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 준 적이 없어. 또 알려 줄 생각도 없고.”
“왜요? 당신이 가진 무공이 그냥 사라진다면 무림의 크나큰 손실이 아닐까요?”
“아니지, 무림의 복이기도 하지. 이걸 좋은 녀석이 이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피바람이 불겠지. 나만 해도 혼자서 웬만한 문파 하나쯤은 절단 낼 수 있으니까.”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평가한다구. 누구든지 잡고 물어봐, 이 무식한 아가씨야. 현경의 경지에 다다른 고수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펼치는지. 그리고 나는 그냥 현경이 아니라 내 느낌으로는 지금 거의 생사경을 눈앞에 두고 있다구.”
“정말이에요?”
“그렇지. 하지만 생사경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과 진짜 생사경은 달라. 예를 들면 생사경에 근접한 현경인 나와 지금 현경에 근접하고는 마지막 벽을 뚫지 못해서 저기서 귀를 기울이는 네 할아버지와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큰 실력 차이가 난다구.”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그 벽을 깨고 현경에 들어선다면요?”
“그러면 나와의 실력 차이는 현격하게 좁혀 들지. 그래도 현경의 아래와 위에도 차이는 있으니까, 최소한 내가 지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그렇다면 지금은요?”
“네 할아버지 같은 고수 열 명이 덤벼도 안 돼.”
“하지만 곧 할아버지는 현경에 들어가실 거예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아니지, 곧 현경인데도 그 마지막 벽을 못 뚫은 사람이 한두 명인 줄 알아? 수많은 무림인이 화경에도 못 올라가는 게 현실이고, 또 그 화경을 넘어 현경에 올라간 사람들도 고작 나까지 두 명 정도야. 네 할아버지가 이 상태로 계속 화경에 머무르다 간다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지.”
“하지만 당신의 말은 신빙성이 없어요. 그 한 단계 차이를 너무 심하게 과장한 거 아니에요? 말해 봐요. 내 말이 맞죠? 과장이죠?”
그러자 저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맹주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이 맞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대는 북명신공을 익힌 모양이군.”
맹주의 말을 듣고는 묵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하시죠?”
“내가 들은 바로는 북명신공은 대자연의 숨결을 흡수하여 자신의 공력을 높인다고 들었어. 자네는 방금 자네의 진신 내력을 저 아이에게 전해 준 게 아니라 자네의 몸을 통해 대자연의 기를 흡수해서 저 아이에게 전해 준 매개자 역할밖에 하지 않았어. 그렇지 않다면 자네가 그렇게 방대한 진신 내력을 방출하면서도 땀 한 방울 안 흘릴 리가 없지. 북명신공은 천마신교에 있나?”
“그 대답은 할 수가 없군요. 만약 제가 답을 한다면 맹주님을 죽여야 하거든요. 더 이상 그건 묻지 말아 주십시오.”
“알겠네. 충고 고맙군. 쓸데없는 걸 물어서 미안하구먼. 손녀와의 비무도 끝난 것 같은데 같이 논검이나 하는 게 어때? 내 가장 아끼는 후아주(侯亞酒)를 대접함세.”
“할아버지도 참, 아침부터 술이에요?”
“술 때문에 내일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상관없어. 이 정도 고수를 만나기가 어디 쉬운 줄 아냐? 이것도 기연이라구. 내 평생 기연이라고는 만난 적이 없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정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한잔하기로 하죠. 하지만 영영이가 심심할 테니까 같이 데리고 가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옆에 없으면 무슨 말썽을 부릴지 불안해서…….”
“자네 좋을 대로 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