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느지막한 시간이 되어서야 남매들은 부스스 일어났다.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숙취 때문에 다들 늦잠을 잔 것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묵향도 멍청한 3류 잡배 하나 때려잡은 걸 가지고 자랑스레 말할 사람도 아니었기에 일은 그렇게 넘어갔고 모두들 세면을 한 다음 1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 도착해 초희가 식당 안을 두리번거리자 묵향이 물었다.
“왜 그러냐?”
“진 대협이 혹시 계신가 하고요…….”
“아, 그 친구라면 아침 일찍 떠났지. 너희들이 자고 있을 때 일이 생겨서 먼저 가니 나중에 안부 전해 달라고 하더군.”
묵향의 얼굴 가죽 두꺼운 설명을 들은 초희는 조금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래요?”
식탁에 모두들 앉았는데도 점소이가 코빼기도 안 비치자 묵향이 버럭 소리 질렀다.
“이봐, 주문받아라.”
“예, 나으리.”
점소이가 묵향의 외침에 어디서 나왔는지 쏜살같이 달려와 섰는데, 그 서 있는 모양새가 뭔가에 겁을 집어먹었는지 부들부들 떨고 있는지라 초희가 물었다.
“왜 그러니?”
“아무것도 아닙니다요, 나으리.”
“그럼 숙취에 좋은 음식 좀 있으면 내오거라.”
“예.”
주문을 듣자마자 점소이는 바람처럼 사라졌고 어제와는 달리 왜 저 아이의 태도가 이상한지 당사자가 말을 안 하니 모두들 제멋대로 상상할 뿐이었다.
늦은 식사를 한 다음 흑풍단이 있을 듯한 위치를 향해 출발했다. 그들은 길을 가는 도중에 포고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잠시 길을 멈췄다.
「찬황흑풍단의 옥영진은 그 지휘관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막대한 재물을 횡령했고, 그것도 모자라 황권(皇權)을 넘보는 가증스러운 모반을 획책한 바, 그 물증을 확보한 금의위에 의해 자택에서 처형되었다. 하지만 그 잔당들의 일부가 숨어 있으니 흑색 갑주를 입은 무리를 보면 관(官)에 필히 연락하라. 그 정보가 사실임이 확인되면 후사하겠다.
금의위 대영반 이세번」
그 글을 읽고 세상모르는 촌민(村民)들이 한마디씩 했다.
“말세로군. 저렇게 높은 양반이 어쩌자고…, 쯧쯧.”
“저런 녀석까지 썩어 있으니 나라가 안 되는 거야.”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가증스러운 녀석이로군.”
그걸 본 초우가 한심하다는 듯이 촌민들을 훑어본 다음 말했다.
“자, 빨리 출발하자. 내일 점심때까지는 백수강을 건너야 한다구.”
“예.”
애송이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쫓아가는 추격술이나 정보의 분석력에서 초우는 묵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솔직히 그에게 묶여 개처럼 끌려가는 단 하나의 이유는 좀 더 빨리 흑풍단을 찾는 데는 이 방법이 좋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으니까…….
초우는 일행들을 몰아서 백수강을 건너 재빨리 이동한 결과 8일 후 흑풍단에 거의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초우는 마지막으로 촌민(村民)들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본 다음 일행들에게 돌아와서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그들은 저기 보이는 와우산(臥牛山)에 숨어 있는 게 틀림없소. 이미 일단의 관군들이 이 근처를 기점으로 움직이고 있는데다 와우산에서 천태산(天態山) 쪽으로 이동하면 청해성이 나오는데 아마도 그들은 아직 온전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정서원수부의 관할 지역 중에서 비교적 병력이 적은 청해성 쪽으로 이동할 생각인 모양이오.”
“이 일대에 퍼진 관군은 얼마나 된다고 하던가?”
“여태껏 촌민들이 알려준 복색이나 인원을 분석해 보면 정서원수부 관할 병력이 2만 정도……. 그리고 정북원수부 소속이 3만 정도인 것 같소. 그런데 가까운 정서원수부에서 보낸 병력이 더 작은 거 보면 아무래도 정서원수부에서는 흑풍단과 싸울 생각이 애당초 없는 거 같고, 정북원수부만 조심하면 될 거 같소.”
“그런데 그들이 와우산에 있는 게 확실한가?”
“그럴 가능성이 9할 이상이오. 그쪽으로 이동한 흔적은 미미하게 보이고, 또 저 촌민의 말이 어제 나무하러 가면서 못 본 말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는 것을 봤다고 하니…….”
“하지만 말 발자국만 보고 그들이 흑풍단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걸?”
“그렇긴 하오만 그 말 발자국은 밤새 생긴 것이니……. 관군이 왜 위험을 무릅쓰고 야행을 하겠소? 잘못해서 무공까지 강한 흑풍단의 매복에라도 당하면 전멸을 면치 못할 텐데…….”
“그도 그렇군. 하지만 와우산을 넘어 다른 곳에 박혔을지도 모르잖아?”
“아니요, 와우산은 산세가 거칠어 이동하기 힘든데 우회하지 않고 와우산 위로 올라간 것으로 미루어 험하긴 하지만 산길을 택해서 몰래 이동할 심산인 모양인데……. 잘 갔다 하더라도 와우산 옆에 있는 우미산이나 장천산쯤까지밖에 못 갔을 거요.”
여기까지 물어본 묵향이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좋아좋아……. 이제부터는 산길 이동이니 자네들의 도움은 필요 없겠군. 본인도 그런대로 추적술은 자신이 있으니까……. 발자국만 따라가면 될 테니……. 자 이제부터는 나는 나대로 행동할 테니, 이 수갑이나 풀어 주게나.”
“그건 안 되오. 그대가 첩자인지 그들에게 확인해 보고…….”
“할 수 없군.”
뚝!
묵향이 손을 벌리자 썩은 밧줄처럼 간단히 수갑의 사슬이 끊겨 버렸다.
“그, 그대는 혈도를…, 거기에 그건 오철인데…….”
“네 녀석이 잡은 혈도 따위 푸는 데 별로 시간도 안 걸려. 자, 내놔.”
묵향이 손바닥을 내밀자 아연한 표정으로 초우가 바라봤다.
“예?”
“내 비수 내놓으란 말이다.”
얼떨결에 초우가 내놓은 비수를 받은 후 묵향이 쓱 하고 비수를 꺼내는데, 싸구려 같은 검집과는 달리 안에서 나오는 비수는 놀랍게도 묵빛 광택이 나는 것이 보통 비수가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
묵향이 비수를 꺼내자 일순 모두 긴장하여 묵향과의 거리를 재며 발검(拔劍)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들이 정작 놀란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묵빛 비수가 갑자기 청색 화염이 올라오듯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억!”
비록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말로만 들어오던 전설의 어검술(御劍術)이 틀림없었다. 그것을 본 순간 그들의 마음에서 투지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도저히 이길 상대가 아님을 그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묵향은 그 비수를 이용해서 썩은 무 자르듯 간단히 손목에 걸린 오철로 만든 수갑을 잘라 낸 다음 비수를 품속에 집어넣으며 멍청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는 세 명을 휙 둘러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수갑을 채운 네 연놈들을 몽땅 죽여 없애고 싶지만 그래도 여태껏 정이 든 데다 빨리 흑풍단을 찾아준 성의를 생각해 살려 둔다. 만약 다음에 누구한테 내 혈도를 잡고 손목에 수갑 채웠다는 말을 하기만 하면 혓바닥을 뽑은 다음 목을 비틀어 버릴 테니 자나 깨나 명심하도록.”
그와 동시에 묵향의 신형은 말 위에 앉은 채로 튕겨 오르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와우산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순식간에 하나의 점이 되어 가는 묵향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초희가 말했다.
“저거 어검술 맞죠?”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나도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라 뭐라 말할 수가 없구나.”
“무슨 경공술이 저렇게 빠르죠? 말 타고 달리는 것보다 더 빠른 것 같이 보이는데요?”
“글쎄, 태산을 몰라보고 있었구나……. 아마 여태껏 그가 떠들어 댄 말이 모두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무림은 넓구나. 아버님의 말씀이 무림에는 지금 드러나 있는 2황5제4천왕이 강하다고 하지만 산골짜기에 그보다 더 강한 자들이 은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었지. 나는 그 말씀을 믿지 않았는데 사실이었구나…….”
“하지만 오빠, 아무리 그래도 명문의 무공이 가장 강하다고 배웠고, 또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명문의 자제들이 가장 강하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초야(草野)에 묻힌 사람이 더 강할 수가 있죠?”
“되지도 않는 무공을 숨어서 수십 년 익혀 봐야 될 게 아니지. 아버님 말씀으로는 천운을 만나 기연을 얻는 수도 있다고 하셨지만…….”
“기연이라면 어떤?”
“말대로 기이한 인연이지. 어쩌면 우연히 은거기인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될 수도 있고, 또 기인의 무공비급을 얻을 수도 있겠지. 또 영약을 얻을 수도 있고……. 그렇지만 첫째가 가장 현실성이 있고 나머지는 아냐. 보통 비급이라면 정상적으로 기록한 경우는 없고 대부분이 암호나 뭐 그런 비슷한 방식으로 말뜻을 축약하거나 빙빙 돌려놔서 그 오의(悟意)를 깨닫기가 무척 힘들거든. 그리고 설혹 비급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일정한 바탕이 되기 전에는 비급을 얻어도 그건 그냥 종잇조각에 불과한 거야. 또 보통 사람이 영약 따위 먹어 봐야 보신이나 될까, 무공과는 상관없으니까. 아마도 첫 번째가 가장 현실성이 있겠지.”
“과연 은거기인의 눈에 띄어 그에게 무공을 전수받는 게 가장 현실성이 있겠군요. 하지만 그렇게 강한 사람이 은거를 할 리가 거의 없잖아요. 안 그래요?”
“아니야. 여태껏 무림에는 수많은 명문거파들이 나타나고 또 사라졌지. 아마 사라진 문파들의 후손일지도 모르고……. 또 일부 명문에서 파문당한 고수들도 있고, 심한 경우 무림공적(武林共敵)으로 몰려 숨은 자도 있잖냐? 아마 묵향이란 사람도 사문이 있다고 했으니… 어떤 명가에서 쫓겨난 반도 정도겠지. 아마도 사문에서 쫓겨난 다음 어디 산골짜기에 숨어서 죽자고 무공을 익혔는지도 모르고…….”
“글쎄요, 그의 말로는 파문은 아니라던데……?”
산속에 세워진 자그마한 정사(靜舍). 얼핏 보면 근방의 유려한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대갓집에서 세운 듯 제법 운치를 가진 자그마한 집이다. 그 정사의 앞쪽으로는 수려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자연 경관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문제라면 그 낭만과 운치를 간직한 정사를 감싸고 있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사의 30장(약 90미터) 밖에는 10인 정도의 인물들이 주위를 경계하며 살벌한 안광(眼光)을 내뿜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무형의 기운만으로도 아무리 무공에 문외한이라도 무시무시한 고수임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극강(極强)의 기운을 뿜어내는 인물들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기를 밖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그들이 암습 따위의 얄팍한 술수를 익힌 자들이 아닌 정면대결을 위해 그 무공을 익힘에 있어 정도(正道)를 걸어온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자리는 아마도 비무대(比武垈) 위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아마도 누군가의 호위를 위해서임이 분명했다. 이렇게 무식할 정도로 정직한 무예(武藝)를 익힌 자들을 써먹을 곳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호위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극강한 기운을 뿜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까…….
하지만 더욱 큰 의문점은 그들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는 숨이 막힐 정도의 마기(魔氣)를 내뿜는 반면 나머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정파의 고수들도 지니기 어려울 정도로 정순(靜純)한 기운을 갈무리한 것을 보면 더욱 아리송해진다. 왜 이렇게 물과 불처럼 어울릴 수 없는 자들이 한자리에서, 그것도 한 채의 정사를 호위하며 눈에 불을 켜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정사 내부를 보면 소유주의 품격을 나타내는 듯 대단히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장식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텅 빈 실내지만 몇 가지 준비된 필수품, 예를 들어 탁자라든지 의자 따위 같은 것은 얼핏 보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수수하지만 자세히 감정을 해 보면 뛰어난 장인의 화려한 솜씨가 돋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그마한 탁자에는 찻잔이 놓여져 있었고 두 명의 젊은이가 차를 들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껄껄, 처음에 만날 때는 몰랐었는데, 5년 동안 한 번씩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떻게 보면 서로가 많은 부분에서 통하는 점이 있구려.”
그러자 그 청년의 앞쪽에 앉은 청년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 청년의 피부색은 기괴하게도 자색을 띠고 있었고 은은한 마기를 자연스럽게 흘리는 것이 아마도 촌민들이 봤다면 귀신이라도 만난 줄 알 것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소? 그 사건이 있은 후 사후 처리를 위해 만난 것이 발단이 되었었는데……. 시간이 그렇게 흐른 줄은 몰랐구려. 그리고 이번에 본교에서 처리하기에는 껄끄러웠던 놈들을 공적으로 몰아 없애 줘서 고맙소이다.”
“뭘요, 그대도 껄끄러운 애송이들 처리에 도움을 줬으니 당연한 것이지요. 요즘 본맹(本盟)을 우습게 보는 것들을 귀교(貴敎)처럼 공개적으로 없앨 수도 없으니 난처한 노릇이었지요. 그렇다고 몰래 암살을 하자니 본맹이 의심을 받을 게 당연하고……. 난감했소이다. 참, 그런데 내 보고받은 바로는 묵향이 살아 있다던데…….”
그러자 마기를 풍기는 젊은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믿기 어려울 테지만 사실이오.”
“흐음, 그때 완전히 없애 버린 줄 알았건만……. 안타까운 일이오.”
“그러게 말이오. 이거 완전히 잠자는 호랑이의 수염을 뽑은 꼴이 되었으니 딱한 노릇이외다.”
“악독한 놈의 손에 두 손녀가 죽은 것만 해도 억울한데, 그런 놈이 살아서 돌아다닌다니……. 하여튼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놈이오. 그놈을 이번에는 완전히 없애 버려서 후환을 제거해야 하오.”
“글쎄 말이오. 하지만 예전에는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쯧쯧.”
“왜 그러시오? 일단 없애기로 한다면 믿을 만한 수하를 시켜 살인, 강간 등을 시킨 다음 모두 그놈에게 뒤집어씌워 무림공적으로 선포하고 그 녀석을 주살하면 간단할 텐데?”
“예전이라면 그게 통하겠지만 지금은 너무 커 버렸소.”
“왜요? 그는 언제나 혼자서 행동할 텐데. 예전에도 그랬잖소? 그 덕분에 전에도…….”
그러자 마기를 풍기는 젊은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힘없이 말했다.
“휴, 그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오. 본좌가 멍청하게도 기억을 잃은 그 녀석을 끝장내겠다고 천랑대와 염왕대를 보냈는데, 그 녀석들이 묵향 편에 붙어 버렸소.”
“그럴 수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결과외다. 그가 기억을 잃은 상태라면 몰라도 기억을 찾았다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지니 말이오. 그는 아직도 본교의 인물이고, 또 그의 직위도 살아 있소. 그러니 그 자신이 본교의 율법을 들고 나온다면 이것은 문파 간의 투쟁이나 반도 처리의 문제가 아니오. 다만 교내의 권력 다툼이 된다 이 말이외다. 그러니 수하들은 모두들 각자 그 권력 암투의 도중에서 누군가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고, 십중팔구 그들은 강자의 편에 붙을 수밖에 없소이다. 본교 내의 모든 권력은 약육강식의 율법을 따르기 때문이오. 만약에 그가 예전의 장인걸처럼 새로운 문파라도 만든다면 오히려 간단한 일이지만 그가 본교의 부교주란 점을 계속 내세운다면 본교에서 고수들을 투입할 수 없소. 고수들을 보내 봐야 그자가 나보다 강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에……. 그가 그 점을 내세운다면 모두들 그의 편에 설 것이오.”
“흐음, 극강을 자랑하는 마교도 여태껏 그 강함을 지탱해 준 율법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일이 생기는군요. 그럼 본좌가 나서서 그 일을 처리해야 한단 말이오?”
“그래 주실 수 있겠소? 하지만 그놈이 거느린 세력은 웬만한 문파쯤은 한 시진도 안 되어 가루로 만들 정도로 강하오. 그 정도 힘을 겨우 맹내(盟內)의 힘만으로 처리하긴 힘들 거외다.”
“흠, 그건 본좌도 알고 있소. 어떤 뚜렷한 명분이 있어야 그 멍청이들을 설득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참! 문제는 그놈 하나니 살수를 고용하면 안 되겠소?”
“그 정도의 고수를 처리할 만한 살수가 있겠소?”
“요즘 맹위를 떨치는 살수 집단이 하나 있소이다. 그들에게 청부를 해 볼까 하오. 일단 공통의 적이니 그 비용은 서로 반씩 부담함이 어떻겠소?”
“좋소이다. 그런데 그 살수 집단이라면?”
“아마 그대의 짐작대로일 거요. 요즘은 살수 집단 중에서 흑월회(黑月會)의 솜씨가 제일 좋다고 들었소.”
“과연, 하지만 소문대로 그들의 실력이…….”
“클클,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살수들의 생명은 정보라고 봐야 하오. 개방(쾬幇)과 무영문(無影門)의 할망구한테 의뢰를 해 놨으니 그의 겨드랑이 털 수까지 알려 줄 거요. 그만한 정보를 가지고도 어쩔 수 없다면 비밀리에 처리하긴 힘들 거외다.”
“흠, 그렇다면 본좌도 삼비대에 연락해서 쓸 만한 정보가 있으면 그대에게 넘겨 주겠소. 하지만 그놈의 행태가 희한해서 아마도 외부에서 포착해서 암습하기는 힘들 거외다.”
“행태라뇨?”
“보통 느지렁거리면서 다니다가 한 번씩 경공술을 써서 이동하는데, 그 속도가 정말이지 무식할 정도로 빨라서 완전히 몸을 드러내고 뒤쫓아도 못 따라가는데 어찌 숨어서 미행을 하겠소?”
“쯧쯧, 그런 문제가 있구려.”
“거기다 예전에 그의 수하로 있었던 놈들의 말을 들어 보면 밖에 나가면 거의 잠도 안 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본거지에 있을 때는 한두 시진 정도는 자는 모양이오. 그러니 그놈을 덮칠 곳은 본거지뿐이다, 이 말이오.”
“그렇다면 참고로 알아 둘 만한 그놈의 약점 같은 것은 없소?”
“글쎄요…, 그놈의 특기는 강기(剛氣) 종류지만 공력이 비교적 적게 드는 어검술 종류를 더욱 좋아하오. 그렇기에 떼거리로 덤벼드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을 거요. 그리고 아마도 그놈은 본교가 자랑하는 흑미륵신공(黑彌勒身功)을 익혔을 테니 웬만한 공격으로 결정적인 타격은 줄 수 없소. 하지만 흑미륵신공 자체가 금강불괴(金剛不壞)처럼 외부에서 타격을 막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충격을 분산시켜 흩어 버리는 것이니, 아마도 장법이나 권법 같은 것보다는 무기를 이용한 공격이 타격이 클 거요. 하지만 흑미륵신공 자체가 혈관과 혈도, 뼈를 무쇠처럼 단단하게 해 주니, 그도 장담은 하기 어렵소이다. 아마도 선택된 살수는 무쇠도 손쉽게 자를 수 있는 신병이기(神兵異器)를 사용해야 할 거요.”
“그렇지……. 그때 한 번 보니 그놈의 무공은 상당히 특이했소. 보통 귀교의 무공은 강대한 공력을 바탕으로 하는 장력이나 강기류가 주 무기인데 반해 그자는 검을 이용해서, 그것도 최소한의 공력만을 이용해서 적을 없애는 아주 실용적인 검법을 구사하는 것 같더군.”
“그게 가장 큰 문제라는 거외다. 보통 강한 위력에만 의존하는 놈들인 경우 떼거리로 덤비면 나중에는 공력이 고갈되어 제풀에 뻗게 되어 있는데, 아마 그놈을 제풀에 뻗게 만들려면 본교 세력의 절반을 잃을 각오까지 해야 할 판이오.”
“그렇게까지나…….”
“아마 그게 맞을 거외다. 그놈은 아주 실리적인 놈이라……. 거기다 우리와 정면으로 싸워야 할 만한 약점 따위도 없소. 그러니 치고 빠지는 식의 공격을 계속한다면 그놈의 경공술은 자타가 공인하는 것이니, 어디 포위가 되겠소? 그냥 계속 쫓으면서 놈의 공력이 고갈되기를 기다려야 할 텐데?”
“흐음, 그렇군. 그럼 예전과 같은 방법을 한 번 더 써 보는 것은 어떻소?”
“예전과 같은 방법이라면?”
“혹시 그놈이 아끼는 사람은 없소?”
그제서야 상대의 음흉한 속셈을 감 잡은 교주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오… 맞소. 그러고 보니 그놈이 아끼는 양녀(養女)가 하나 있소. 그 아이를 인질로…….”
“아니오. 인질만으로 해서는 큰 효과를 보기 힘들 거요. 귀교에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술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흐흐흐, 거 참 모르시는 게 없구려. 마령섭혼심법(魔靈攝魂沁法)이 있소이다. 그걸 아주 교묘히 이용하면 될지도 모르겠군.”
“껄껄껄, 초고수에게 사용할 것도 아니고 그냥 어린 계집아이만 사술(邪術)에 거는 거니 아마 손쉬울 거요. 그놈이 아이를 구한답시고 쳐들어왔을 때 치열한 접전의 와중에 그 아이를 이용해서 암습을 하게 만든다면……. 하하하, 그땐 우리가 원하는 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거요.”
“하지만 그놈이 들은 척도 안 한다면? 어쩌면 능히 그럴 수도 있는 놈이니 하는 말이오.”
“그러면 계획대로 살수를 보내는 것으로 합시다. 쓸데없이 먼저 살수를 보내어 경각심(警覺心)을 일깨울 필요는 없으니 말이오.”
“좋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