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2/930)

총타 공격

마교의 총타가 있는 곳은 대산(大山)이었다. 십만대산(十萬大山)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수많은 봉우리를 가진 대산은 매우 험악한 산세를 자랑한다. 그 산세를 의지하여 대산 깊은 곳에 마교가 똬리를 튼 후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마교는 대산 곳곳에 수많은 함정과 기관, 진세를 설치했고, 중요한 교통로에는 요새들을 건설했다. 지금에 이르러서 십만대산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 있었다. 수많은 명문 정파들이 한 번씩은 자신의 집구석을 털려 보았지만 마교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향해 공격해 들어가는 무리가 있었다. 흑의를 입고 오른쪽 어깨와 왼쪽 발에 자그마한 흰색 천을 붙인 무리들이었다. 각자 가지고 있는 검(劍)은 그을음을 묻혀서 빛이 하나도 반사되지 않았다.

그들은 개개인이 대단히 뛰어난 무공을 지닌 듯 그 움직임은 매우 재빨랐고, 그들의 행동을 눈치 챈 몇몇 보초들은 거의 순간적으로 목숨을 내주어야 했다. 그들이 통로를 개척하자 그들보다는 조금 무공이 떨어지는 무리가 그 뒤를 이어 이동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는 도저히 무림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수천의 무리가 뒤따랐다. 중후한 갑주를 걸치고, 달빛에라도 반사되어 빛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각자 흑색의 펑퍼짐한 옷을 갑주 위에 입고 있었다. 그들은 갑주의 무게 때문인지 경공술을 쓰는 대신 거대한 말을 타고 있었는데, 말발굽에는 두꺼운 천을 덧대어 발굽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술을… 드셔도 괜찮겠습니까?”

설무지의 조심스런 물음에 묵향은 입에 대고 있던 술병을 내려놓으며 씩 웃었다.

“바야흐로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복수가 이루어지려는 순간인데, 축배(祝杯)가 빠질 수는 없지. 장인걸 녀석, 뒤통수를 얻어맞은 걸 깨달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그 녀석도 나를 함정에 밀어 넣을 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흐흐흐…….”

묵향이 음흉한 미소를 흘리고 있을 때 산봉우리 쪽에서 빨간 불빛이 세 번 반짝이고 사라졌다. 웬만해서는 알아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희미했지만, 묵향도 설무지도 그 불빛을 놓치지 않았다. 설무지는 바위 위에 앉아 뭐가 좋은지 혼자 키득거리는 묵향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세 번째 목표인 마천령(魔泉嶺)을 점령했다는 보고입니다. 아직까지도 조용한 걸 보면 천리독행 장로님이 상당히 분투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수석장로는 어디로 갔나?”

“예, 차석장로님과 함께 천랑대 제5대를 거느리고 총타 반대쪽으로 가셨습니다. 잘하면 그분께서 가장 큰 공을 세우실 수 있을 겁니다.”

“도주로를 차단하러 갔군.”

“예.”

“하지만 쓸데없는 일이야. 도망치려고 하는 극마에 오른 고수를 그 정도 인원으로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수하들도 분투하고 있는데, 이제 슬슬 본좌도 가 봐야겠군. 자네는 여기 있게나. 전체적인 대국(對局)을 바라보며 인원을 움직일 인물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묵향의 말에 설무지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부교주님.”

묵향이 앞으로 달려가자 주위에 서 있던 10여 명의 흑의인들이 그의 뒤를 좇았다. 이들은 묵향의 호위들로 천랑대에서 뽑은 정예였다.

“무슨 일이냐?”

요란스레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경악한 장인걸은 잠자리를 박차고 나와 부서질 듯 문을 열고는 호위 무사를 향해 외쳤다. 문 앞에 서 있던 호위 무사는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옛, 제1급 비상 신호음입니다. 교내에 적이 침입한 모양입니다.”

“적이라고? 제길! 어떤 미친 녀석이 감히 1천 년 동안 한 번도 외인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이곳을 넘본단 말이냐? 혁무상 장로를 불러라.”

“옛!”

급히 답한 호위 무사는 재빨리 혁무상 장로의 거처로 뛰어갔다.

호위 무사가 달려 나간 후 반 각(약 8분)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마기를 뿜어내는 인물이 장인걸 앞에 나타났다. 교주 독립 호위대의 대장인 마혈검귀(魔血劍鬼) 왕천(王擅)이었다. 왕천은 도착과 동시에 3교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독립 호위 대원들을 황급히 불러 모으는 한편, 교주의 원거리 호위대인 수마대(守魔隊)에 특급 경계령을 내렸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학살인도(虐殺人屠) 박용(朴龍)이 거느리는 교주 직속의 무력 단체인 사사혈시마대(邪死血屍魔隊)에도 전령을 보냈다.

교내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천마혈검대가 교내에 없으니, 두 번째 전투력을 지닌 수라마참대는 아마도 소무면 장로의 지휘 아래 적이 침입한 곳으로 직행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 번째 전투력을 지닌 사사혈시마대를 불러 들여 교주가 기거하는 천마대전(天魔大殿)을 호위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장인걸이 팔짱을 끼고 묵묵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도 사태는 매우 급박하게 움직였다. 박용이 끌고 온 사사혈시마대가 천마 대전의 외곽에 포진했고, 흑수천마(黑手千魔) 여진(呂震)이 거느리는 호법원의 고수들이 재빨리 장인걸의 가족들을 천마대전으로 모아 들였다.

장인걸은 두 명의 처와 열두 명의 첩을 거느렸고, 서른 명에 가까운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있었다. 그들을 빠른 시간 내에 끌어 모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호법원의 고수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일을 완수해 냈다.

그러는 사이 장인걸에게 전령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적의 주력은 북쪽에서 공격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6진부터 3진까지 돌파하고 파죽지세로 진입 중입니다. 속하가 달려올 때 삼면인마 장로께서 수라마참대를 거느리고 그곳으로 직행하고 계셨습니다.”

전령은 혁무상 장로에게 몇 가지 지시를 받고 전장으로 다시 달려갔다. 첫 번째 전령의 보고를 들은 장인걸은 내일 아침이 되면 이번 습격을 잘 막아 낸 소무면 장로에게 보검을 한 자루 선물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소무면 장로가 거느린 수라마참대라면 상대를 충분히 격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채 반 각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전령이 달려와 보고를 올렸다.

“북동쪽에서 자성만마대와 적이 충돌했습니다.”

혁무상은 신중한 태도로 전령의 보고를 들으며 머리를 회전시켰다.

‘놈들은 양동작전(陽動作戰)을 펼치는 것이군.’

“놈들의 수는?”

“옛! 대략 7천 정도입니다.”

“뭣이, 7천? 이런 험준한 요새를 향해 7천이나 투입했다는 말이냐? 정파 놈들이 아무리 대가리가 굳은 놈들이라고 해도, 변변한 방어 장비도 없이 그 정도 인원을 이런 험준한 곳에 투입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텐데…….”

무림인들은 원래가 갑주나 방패 따위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둘의 사용 방법이나 효능을 몰라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걸리적거리기 때문이었다. 또 그런 것을 가지고 이동한다면 도중에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관군들이 그들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그래서 무림인들의 표준 장비는 장식용으로 인정되는 검(劍)이나 도(刀) 정도가 한계였다. 창을 사용하는 인물들은 보통 서너 토막 친 칼을 가지고 다니다가 적이 나타났을 때만 연결해서 사용했다.

아무리 무림의 일을 관이 묵인해 준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무림인인 척하고 중무장을 한 군대가 침입해 올 가능성이 있는 한 무림인은 절대로 전투용 중장비를 휴대할 수 없었다.

전령은 곧 혁무상의 의문에 답했다.

“무영신마 장로께서는 상대가 아무래도 무림인이기보다는 군대(軍隊)인 것 같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올지 하명해 주십시오.”

혁무상은 기가 차다는 듯 되물었다. 군대가 마교를 건드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진천왕이 반란을 일으켜서 시국이 어수선한 때였다.

“군대라고?”

“옛! 강노(强弩)와 강궁(强弓)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매우 치밀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거대한 마상용 장도(長刀)에 중갑주를 입은 것으로 보아 무림인은 아닌 듯 생각됩니다.”

한밤의 기습이었기에 상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무림인들과 관군들은 그 싸우는 방식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군대는 기계 장치를 이용해 수 개에서 수십 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장치인 노(弩)라든지, 투석기, 충차(衝車 : 성문을 부수는 데 애용됨) 등의 효과적인 대량 살상 무기를 사용했고, 개개인의 무술 실력보다는 집단적인 힘을 강조했다. 그 때문에 각종 진법(陣法)이나 병법(兵法)을 집중적으로 교육받았다.

하지만 무림인들은 전체적인 틀보다는 개개인의 무술 실력을 중시했다. 칠성검진 따위의 각종 진세가 발전하기도 했지만, 군대의 진법과는 달리 개개인의 무술 실력에 따른 융통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혼자서만 움직인다면 몰라도 수백, 아니 수천 명이 이동하면서 전투를 한다면 서로의 차이점은 확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상대는 수천 명이었고, 또 그들이 집단적으로 공격해 오는 모양새를 보고 무영신마는 곧 그들이 군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챘던 것이다. 전령의 보고를 들은 장인걸은 의문에 빠져 들었다.

“군대가 왜……?”

장인걸이 깊은 생각에 감겨 있는 동안, 혁무상은 재빨리 혓바닥을 놀렸다.

“이 일을… 너는 원로원에 보고하라. 본교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옛!”

전령이 원로원으로 달려가는 것을 볼 겨를도 없이 혁무상은 짙은 수염을 길러선지 퇴폐적인 인상을 지닌, 50대 초반의 인물에게 고개를 돌렸다.

“박용 대주는 사사혈시마대 5백 명 정도를 거느리고 가서 무영신마 장로를 도와주시오. 상대가 관군이라면 귀혼강신대법(歸魂?身大法)을 익힌 사사혈시마대가 더 효과적일 것이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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