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화 (93/930)

갑작스런 기습으로 마교 총타가 갈팡질팡하는 동안 마교의 중심부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진격해 들어가는 무리들이 있었다. 이들을 막아서는 인물들이라고 해 봐야 총타 외곽 호위 무사들 정도로, 그 실력이 많이 떨어졌기에 이들을 막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기습해서 들어오는 무리들은 다름 아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솥밥을 먹던, 호위 무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정예들. 어디에 기관 장치가 있고, 또 어디가 매복하기 좋은지는 환히 알고 있었다. 또 외곽 호위 무사들이 경계를 위해 주둔한 위치까지도.

그렇기에 외곽 호위진은 매우 빠른 시간 안에 무너져 버렸고, 침입자를 포착한 것은 적이 중심부에 근접해 들어왔을 때였다. 서둘러 출동한다고 했지만, 소무면 장로의 수라마참대는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기도 전에 적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사방에서 칼부림이 벌어지고, 맹렬한 육박전이 시작되었다. 소무면 장로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상대가 정파의 무공이 아닌 마교의, 그것도 상승의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소무면 장로는 제발 자신의 짐작이 틀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짐작은 점점 현실로 나타났다. 저쪽에서 자신도 익히 잘 아는 인물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색 옷을 입은, 적당히 마른 체구의 인물. 격전이 벌어지는 사이를 느긋하게 걸어왔지만, 그를 막는 자는 없었다.

어쩌다 병장기나 강기의 파편이 그쪽으로 날아갔지만 그의 몸에 어떤 피해도 줄 수 없었다. 오히려 그쪽으로 검을 날렸던 사람들의 무기가 뭔가에 막힌 듯 튕겨 나가며 자세가 허물어졌고, 여태껏 싸우던 상대방에게 목숨을 날렸다.

“부, 부교주님.”

경악감에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가 소무면 장로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에 답하는 목소리는 소무면 장로를 놀리는 듯 부드러웠다.

“오랜만이군, 소무면 장로.”

“어떻게, 어떻게…….”

도저히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기에 소무면 장로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아군일 때는 매우 든든하지만, 그 반대로 적일 때는 최악의 상대. 마교의 1천 년 역사를 통틀어 최강의 고수가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소무면 장로가 검을 뽑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청하게 서 있자 묵향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본좌는 본교의 율법을 바로 세우려고 왔다. 자네는 본교의 율법을 수호해야 할 아홉 명의 장로 중 하나. 선택은 자네에게 달려 있네. 어떻게 할 텐가?”

소무면 장로는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묵향을 바라봤다. 소무면 장로와 눈이 마주치면서 묵향은 그가 더 이상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눈은 죽음을 각오한 눈빛이었다.

‘기어이 피를 볼 생각인가?’

묵향은 상대가 먼저 손을 써 오기를 기다렸지만, 소무면 장로는 검을 뽑는 대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율법을 바로 세운다 하시면 어떤 뜻입니까?”

소무면 장로의 말에 묵향은 나지막하지만 힘 있게 답했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비열하게 암습을 해서 본좌를 해치고, 또 교주를 해친 인물을 척살하고자 한다.”

“그다음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것은 엄연한 개인적인 복수. 개인적인 복수를 가지고 율법을 운운하실 수는 없습니다. 복수 후에는 어쩌실 겁니까?”

“강자지존(强者之尊)!”

묵향의 대답은 단 한 마디. 하지만 그 짧은 한마디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소무면 장로의 머릿속에는 마교에서 자라나며 뿌리 깊이 박힌 하나의 이상이 있었다. 바로 그것은 힘, 순수한 힘에 대한 열정이었다. 마교에서 가장 인망이 높은 소무면 장로가 장인걸의 독주를 제지하지 않았던 것도, 전대 교주였던 한중길은 마교의 이상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한중길 교주가 소무면이 지닌 이상에 맞게 행동했다면, 마교는 일찌감치 그 강대한 무력으로 마도천하를 이룩하기 위한 어떤 행위에 들어갔어야 했다.

묵향은 다른 의미에서 소무면 장로의 이상에 맞지 않았다. 묵향은 힘을 추구하기는 하되, 오로지 개인적인 힘에 국한시켰다. 사람이 발휘하는 힘은 하나 더하기 하나를 했을 때 열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묵향은 집단의 힘을 등한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수련에만 빠져 들며, 마교가 추구하는 힘의 율법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묵향이 지금 ‘강자지존’을 들고 나왔다. 그 말은 곧 마교라는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뜻. 그가 교주가 된다면 더 이상 마교 내의 반목은 있을 수도 없었고, 또 그를 중심으로 마교도들은 빠른 시간 안에 단합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단합된 힘을 이용하며 마도천하를 이룩할 가능성이 최소한 장인걸보다는 높았다. 그는 강했기 때문이다.

“전투를 중지하랏!”

웅후한 음성으로 외친 소무면 장로의 몸은 마치 힘이 다해 버린 듯 천천히 아래로 무너졌다. 소무면 장로는 무릎을 꿇고 검을 뽑아 무릎 앞쪽 땅속 깊이 박아 넣었다. 그는 검 손잡이를 잡은 채 포권하는 듯한 형상으로 정중하게 말했다.

“속하, 본교의 장로로서 율법을 바로 세우지 못한 죄, 처분을 기다립니다.”

깊은 공력이 내재된 소무면 장로의 음성은 벼락 치듯 아수라장을 관통했고, 곧 싸움은 멈췄다. 수라마참대 소속의 고수들은 그들의 대주인 삼면인마 소무면 장로의 행색을 보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재빨리 눈치 챘다. 자신들의 우두머리는 더 이상 싸움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약간은 허탈한 표정이었지만 묵묵히 소무면 장로와 같은 행동을 했다. 상대가 검으로 친다면 조용히 죽어 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묵향이 거느린 고수들은 재빨리 무릎 꿇은 그들의 옆을 지나쳐 들어갔다. 처음부터 묵향이 노린 목표물은 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상자들을 돌보라. 그들은 이렇듯 헛되이 피를 흘리도록 키워지지는 않았다. 그들은 장차 본교를 위해 더욱 값진 피를 흘릴 수 있을 것이다.”

묵향은 소무면 장로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재빨리 돌아서서 수하들을 뒤따랐다. 묵향이 사라지고도 한참 동안 소무면 장로의 숙여진 고개는 들릴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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