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무면 장로께서 개선하시는 모양입니다.”
멀리서 엄청난 마기를 피워 올리는 고수들이 달려 올라왔다. 그것을 보고 수마대의 고수 하나가 내뱉은 말이었다.
닭들이 모인 곳에 오리 한 마리가 있다면 금세 알아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묵향이나 장인걸 둘 다 마교의 중추적 인물들이었고, 그들의 수하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이 정파라면 그 풍기는 기운이나 무공 따위를 보고 적이라는 것을 곧 알아챘겠지만, 엄청난 경공술을 발휘하여 돌진해 오는 인물들은 틀림없는 마교의 무공을 썼고 또 막강한 마기를 뿜어냈다.
소무면 장로가 거느린 수라마참대의 인원들은 천랑대의 무사들보다 한 끗발 높은 실력을 가졌다. 그 때문에 천랑대원들이 뿜어내는 마기는 약간 미약하겠지만, 그래도 수라마참대와 구분하기 힘들 만큼 엇비슷했다. 따라서 상대가 적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천랑대가 접근해 올 때 박용은 5백여 명의 사사혈시마대 대원들을 거느리고 자성만마대를 지원하기 위해 출발하고 있었다. 개선해서 도착한다고 생각하던 무리와 이제 전장으로 떠나는 무리는 한순간 섞일 수밖에 없었고, 바로 그때 칼부림이 시작되었다.
수십 명에 이르는 사사혈시마대 대원들이 기습 공격을 받고 허무하게 머리통이 깨져서 뒹굴 때에야 장인걸 쪽에서는 그들이 아군이 아니라 적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사사혈시마대 5백여 명과 천랑대 8백여 명은 치열한 난타전을 벌였다.
“뭣들 하는 짓이냐?”
정말이지 고막이 터져 버릴 것 같은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 때문에 몇몇 무공이 약한 시비들이 기절해 버렸을 정도였지만, 이곳에는 그 정도에 타격을 받을 만큼 나약한 인물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 괴성 속에 내재된 막강한 마기에 모두 움찔 했고, 혼전으로 치달으려던 싸움이 일순 멈춘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한쪽에서 노기등등한 표정으로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10여 명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이건 뭣 하는 짓이야? 겨우 집안싸움 때문에 본좌를 부른 것이냐?”
매서운 표정으로 사내는 장인걸을 쏘아보며 외쳤다. 하지만 장인걸은 사내에게 고개를 돌릴 정신이 없었다. 저 멀리서 히죽 웃고 있는 흑의 사내를 쏘아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좌의 말이 말같이 안 들리는가, 교주?”
“예? 예, 태상교주님.”
장인걸은 시간을 끌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재빨리 두뇌를 굴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도 그의 머릿속은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조금이라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험험, 원로원에 지원을 요청한 것은 변절자를 처리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본교의 율법에 따라 원로원은 본교의 흥망에 관계되는 일이 아니면 그 어떤 일에도 참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테지?”
이때 혁무상 장로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예, 그러니까 원로원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지요, 태상교주님. 본교 내의 권력 다툼에서 원로원이 중립을 지킨다는 것을 속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묵향 부교주 측에서 군대를 동원했다면 말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본교의 일에 외부 세력을 개입시키는 자는 율법에도 나와 있듯 참형(斬刑)에 해당합니다.”
혁무상의 말에 태상교주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다.
“어디에 군대가 있다는 말이냐? 본좌의 눈에 외인(外人)은 보이지 않는데?”
“맹호령(猛虎嶺) 쪽에서 약 7천의 군세를 무영신마 장로가 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외인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저 녀석의 말이 사실이냐?”
태상교주의 말에 묵향은 슬쩍 비웃음을 흘렸다.
“반쯤은.”
“네놈은 외세를 개입시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냐?”
태상교주는 매서운 표정으로 묵향을 쏘아보며 질책했지만, 그에 반해 묵향은 유들유들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보면 일부러 태상교주를 약 올리는 듯 느껴질 정도로.
“아니, 군대를 끌어 들였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지. 내 수하들의 상당수는 해체된 찬황흑풍단의 무사들이니까 말이오. 그건 그렇고, 태상교주는 빠지시오. 이건 장인걸과 본좌 사이의 일이니.”
묵향의 반말지거리에 분노를 터뜨린 것은 태상교주가 아닌 그를 수행하여 함께 온 두 노인들이었다.
“닥쳐라, 은퇴하셨다고는 하지만 네 녀석이 얕잡아 볼 정도로 태상교주님의 권세가 낮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의 노성은 태상교주에 의해 가로막혔다.
“조용해야 할 것은 자네들이야. 본교의 율법은 바로 힘. 저 아이의 무공이 본좌보다 강하니,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찬황흑풍단은 이미 해체되어 버린 단체. 그들을 흡수했다면 외세를 개입시킨 것은 아니지. 원로원은 중립을 선언하겠으니 둘이서 잘 해결해 보게나.”
태상교주는 마치 그곳에서 지독한 악취가 풍기기나 하는 듯 서둘러서 떠나 버렸다.
이제 방해자는 없어졌지만 장인걸의 수하들과 묵향의 수하들은 서로 병장기를 들고 상대를 노려볼 뿐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이때 묵향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수하들을 쓸데없이 희생시키느니 일대일 대결이 좋지 않겠소?”
묵향과의 거리는 10장(약 30미터). 이 정도 거리에서는 암습 따위 할 수도 없었다. 서로 간의 거리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장인걸은 묵향이 더 이상 접근하지 않자 한숨을 푹 쉬면서 어기전성(御氣傳聲)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의 여지를 남겨 두기 위해서였다.
《대결할 필요도 없이 본좌가 졌네. 사실 자네가 이렇듯 빨리 손을 써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지. 나는 율법에 따라 은퇴하겠네. 패자에게 더 이상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겠나?》
묵향은 장인걸의 말에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손쉽게 발을 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본좌를 건드린 이상 저세상에 가서 휴식을 취하라구.”
그와 동시에 묵향의 몸이 날아올랐다.
장인걸은 천마혈검대도 없는 상황에서 묵향과 정면 대결을 벌인다는 것이 자살 행위라는 것을 알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것은 다만 말뿐, 이 상황을 넘기기만 한다면 구양운 장로와 합류하여 다음 기회를 엿볼 생각이었다. 마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인물에게 더 이상 위해를 가하지 않았기에 ‘은퇴 선언’은 장인걸이 택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하지만 묵향은 자신을 놓아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모양이니 장인걸로서는 또 다른 방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쳐랏!”
“우와아아아아아!”
장인걸의 명령에 따라 마교의 고수들이 묵향을 공격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들은 장인걸이 묵향을 상대로 죽음을 무릅쓰고 사투를 벌이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묵향은 사방에서 자신을 향해 돌진해 들어오는 고수들을 베면서 장인걸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장인걸은 묵향과 정면으로 검을 섞으려고 들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는 달려오는 묵향을 향해 최대한 공력을 끌어 모아 흑살마장(黑殺魔掌)을 한 방 날린 후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