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찾기
당황, 당혹, 황당. 그 어떤 단어로도 지금 수라도제의 마음을 표현하기는 힘들었다. 만반의 준비를 다하여 총공격을 가하고 보니 상대는 이미 오래전에 도망치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당황하기는 질문을 받은 쪽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연히 가주인 수라도제보다는 책임감의 무게를 덜 느꼈기에 그들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말라붙은 검붉은 피가 군데군데 묻었지만,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옅은 청의를 입은 50대 중반쯤 되는 인물의 대답은 꽤나 빨리 튀어나왔다.
“적의 간계에 걸린 것 같습니다, 가주님. 빨리 결정을 내리십시오. 놈들에게 역으로 포위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수라도제는 아차 하는 심정으로 흑의를 걸친, 날카로운 인상의 나이든 무사에게 소리쳤다.
“자네는 파마대(破魔隊)를 이끌고 반경 1백 리 이내를 철저히 수색하라.”
“존명!”
“그리고 자네는 파사대(破邪隊)를 이끌고 반경 3백 리까지 수색하라.”
“존명!”
각기 2백여 명의 무사들로 이루어진 파사대와 파마대는 파요대(破妖隊)와 함께 서문세가 최고의 정예였다. 사악한 마교의 무리들이 이곳에 어떤 함정을 마련해 놓고 외곽으로 빠졌다가 다시 외곽에서부터 압박해 들어온다면 상당한 타격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자네는 각 문파들에게 적의 습격에 대비하라고 전해 주게.”
“예.”
“놈들이 이토록 철저하게 준비했을 줄이야…….”
자책 어린 가주의 혼잣말에 나이든 노신(老臣)들은 몸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놈들이 어떤 식으로 나오든, 허무하게 당하는 것만은 절대로 막아야 했다.
수라도제의 명령으로 그들은 적의 외습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그리고 내부에 있을 함정, 예를 들면 독 같은 것을 피하기 위해 내부로 진입했던 모든 무사들을 재빨리 철수시키고 몇몇 뛰어난 고수들을 보내어 샅샅이 수색을 시작했다.
모두 독에 대비하기 위해 즉시 운기요상(運氣療傷)까지 해 봤지만 독 따위는 없다는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그리고 독 따위를 살포하기 위한 그 어떤 기관 장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곧 밝혀졌다. 안으로부터의 우환거리는 없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이, 외곽을 정찰하기 위해 나갔던 파마대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마교도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수라도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놈들의 속셈은 뭐지? 더욱 아리송하군.”
“혹시 이곳 섬서분타의 전투는 뭔가 또 다른 큰일을 벌이기 위한 미끼가 아니었을까요?”
“미끼? 그럴지도 모르지. 자네는 개방에 연락을 보내게나. 혹시나 맹(盟)이 공격당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서문길제는 말을 여기서 끊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기는 했지만, 차마 그것을 입에 담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굳어진 서문길제의 표정을 보고 노신들은 노가주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눈치 채고는 얼굴이 핼쑥하게 질려 버렸다. 화경의 경지에 이른 노가주가 저렇듯 굳어진 표정을 짓게 만들 만한 일은 몇 가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가에 빨리 전서구를 띄워라.”
한 노신의 우렁찬 음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문길제는 나지막하게 뇌까렸다.
“놈들이 본가에 노부가 없는 틈을 노린 것이었다면, 마교도의 씨를 말려 줄 것이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가주님.”
“너무 오랜 시간 떠나 있었다. 첫 목표는 달성했으니 돌아가기로 하지. 각 문파에 연락해라. 노부는 떠나겠다고.”
“알겠습니다, 가주님.”
수라도제 서문길제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들이 마교와 같은 강대한 단일 집단이어서 본가를 수비할 만한 충분한 세력이 남아 있다면, 그는 결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가 만약 서문세가의 가주가 아니라 그저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노신이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서문세가의 가주였고, 또 서문세가의 거의 모든 정예를 끌고 전장에 나왔기에 빈 집을 털릴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문길제는 나중에야 마교 내의 권력 다툼에 대한 정보를 주워들었고, 또 그때 섬서분타에 마교가 수백 명 정도의 고수를 투입한 것도 대단히 무리한 행위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정말이지 땅을 치며 통곡하고 싶은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미 물 건너간 일이었다.
그때 서문길제가 마교의 형편을 알고 있었다면 섬서 쪽에 퍼져 있는 모든 마교 세력은 완전히 근절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무영문의 할망구는 일부러 알려 주지 않았고, 모든 기회가 지나가 버린 후에야 그것을 넌지시 알려 주어 서문길제의 속만 벅벅 긁어 놨던 것이다. “정보력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이제 알겠어요? 호호호호”하고 비웃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