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헨시를 향하여
다음 날 아침, 일행은 여관을 나섰다. 어제와 같은 차림의 다크를 제외하고 모두들 옷차림이 많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골이나 어둑한 산골에만 들어가도 산적 정도가 아니라 바로 몬스터들이 설치는 곳에서 간단한 옷차림에 달랑 돈주머니 하나 들고 여행할 골빈 놈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모두들 말을 가지고 있었고, 가장 가볍게 무장한 사람이 미네리아였다.
미네리아는 35세였지만 절대 25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대단한 미모를 지닌 사제로, 가죽 갑옷을 입고 위에 그 독특한 흰색 바탕에 검은 문양을 새긴 정식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2척 길이의 얄팍한 검을 차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녀의 검술 실력은 형편없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눈에 확 띄는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이유는, 대지의 여신 케레스를 모시는 사제들은 공격 마법을 거의 몰랐고, 대부분 치료 마법 계통을 익혔기에 상대가 해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었다.
미네리아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 미디아 가드너라는 여자였다. 그녀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안에는 사슬 갑옷(Chain Mail)을 입고, 그 위에 가죽 갑옷을 입었다. 말안장 왼쪽에는 자그마한 금속 방패가 매여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활과 화살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2척 반 정도 길이의 내로우 소드(Narrow Sword : 협검, 狹劍)라 불리는, 비교적 가느다란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그 외에 가죽 갑옷 위에는 여덟 개의 투척용 작은 단검이 줄줄이 꽂혀 있었다. 듣기로는 그녀의 단검 투척 솜씨는 대단하다고 했다. 하여튼 여자가 다루기 알맞은 작고 가벼운 무기들을 줄줄이 휴대하고 있었고,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큼직한 망토로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가스톤을 제외한 모든 남자들이 미디아보다 더 엄청난 무장을 갖췄는데, 완전히 중무장을 했다. 상체만이기는 하지만 두터운 강철 갑옷(Half Plate Armor)을 입었고, 두터운 강철 방패, 3척 이상 길이의 검, 심지어 무예 수업자라는 미카엘, 라빈 엘느와 지미 도니에는 한 대 맞으면 아침까지 일어나지 못한다는 공포의 대명사 모닝 스타(Mace : 철퇴)까지 안장에 매달고 있었다.
미카엘이나 라빈, 지미의 경우 셋 다 무예 수업자들이지만 30대 초반의 미카엘에 비해 라빈이나 지미는 20살 정도의 애송이들이었다. 라빈과 지미는 엠페른 왕국에 있는 카로사 아카데미 기사학부를 수료한 동기이자 친구로, 함께 여행을 하면서 무예 수업을 한다고 했다. 아마도 기사(Knight)들은 철퇴를 정식 메뉴로 배워야 하는 모양이었다. 모두들 흉측하게 생긴 철퇴를 안장에 하나씩 매달고 있는 걸 보면…….
이들이 모두 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시장(馬市場)에서 15골드나 주고 말을 사서 합류한 다크―그가 그 돈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슬쩍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모두들 처음부터 그가 꽤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다―까지 일행은 여덟 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이 천천히 말을 몰아 성문 쪽으로 향하는데 뒤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갈라지는 것이 흘낏 보였다.
그것을 눈치 챈 팔시온이 무리를 이끌어 길옆으로 일행을 인도했고, 잠시 후 거의 50기(騎)가 넘는 기마병들이 번쩍거리는 갑주(鉀胄)를 자랑하며 한 손에는 랜서(손잡이 앞부분이 둥그런 찌르기 전용의 장창)를 잡고 보무도 당당히 지나갔다.
다크도 이 정도 장관을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기에 자세히 그들을 살펴봤다. 갑옷부터가 중원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여기서는 완전히 옷처럼 생긴 갑옷을 입었다. 은백색의 철로 빈틈없이 감싼 기마병들 사이로 흑색의 갑주를 입은 한 사람이 보였다. 그들을 보면서 팔시온이 말했다.
“이야, 안드레이 남작의 행차시군. 저분도 소드 그래듀에이트지만, 아들까지 그래듀에이트 시험에 통과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명문이야.”
“흐음, 소드 그래듀에이트가 무슨 말입니까?”
“뭐? 자네는 왜 그리 모르는 게 많은가? 전쟁의 신 아레스(Ares)를 모시는 신전에서는 각자가 가진 실력을 평가해서 마나를 움직일 수 있는 고수들에게 ‘그래듀에이트(Graduate : 자격을 얻은 사람)’의 칭호를 주지. 검을 쓴다면 소드 그래듀에이트, 맨손 격투술이라면 그래플(Grapple) 그래듀에이트가 되는 거지. 정말이지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마스터(Master : 지배자, 대가)의 칭호를 받을 수도 있어.”
설명을 해 주면서도 팔시온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자네는 도대체 어디에서 살았나? 그런 기초적인 상식도 모른다니…….”
“트레보크 산맥 주변의 사냥꾼…….”
“트레보크 산맥에서 줄곧 살았다면 아무것도 모를 만도 하지.”
그러면서 저쪽 지평선에 아스라이 보이는 높은 산맥을 바라봤다. 트레보크 산맥 부근의 일부도 안드레이 남작의 봉토였지만 사실 봉토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안드레이 남작 자신도 그 근처에는 가지 않을뿐더러, 산세가 지독하게 험악해서 사냥꾼들이나 간혹 들어갈까……. 거기다가 드래곤들이 우글거리니 감히 주변에 사람이 얼씬도 못 하는 곳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 산골짜기 얘기를 꺼내니 정말 세상 물정에는 거의 백치쯤 되는 사람으로 해석하고 팔시온은 차근차근 설명을 계속했다.
“아레스의 신전에서 그래듀에이트의 자격을 얻는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야. 또 그래듀에이트라면 거의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들을 다 가지고 있지. 대단히 강한 인물들이야.
저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코린트 제국의 경우도 그래듀에이트의 자격을 받은 인물은 1천 명이 채 안 되지. 우리들이 살고 있는 트루비아 왕국처럼 작은 나라는 34명의 그래듀에이트밖에 없어. 방금 지나간 대열에서도 단 한 명만이 그래듀에이트였다구.
이들은 엄청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지. 그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래듀에이트라면 백작과 같은 등급에 놓기도 하고, 또 일부 국가들은 공작의 작위에 올려놓은 국가까지 있을 정도라네. 그만큼 허울 좋은 작위 따위보다 강력한 실력이 우선시된다 이 말이야. 다크 자네도 무술을 배우는 입장이니 열심히 해 보게나.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래듀에이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저기 있는 저 친구들도 그래듀에이트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겠나?”
“그래듀에이트가 그렇게 대단한 실력인가요?”
“예를 들자면 방금 지나간 50명이나 되는 기사들 중에서 한 명만이 그래듀에이트지. 하지만 그 그레듀에이트 혼자서 나머지 49명의 기사들을 순식간에 모두 없앨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있겠나?”
‘제기랄, 이해가 안 가는군. 그래듀에이트가 엄청난 실력인 것처럼 말하더니. 나 혼자서도 저런 놈들쯤은 하루아침 해장거리도 안 되는데…….’
말을 달려가는 도중에도 팔시온의 설명은 멈추지 않았다. 그도 이 산골 구석에서 갓 올라온 아이가 헛되이 목숨을 날리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저기, 가스톤이 보이지?”
“예.”
“가스톤은 마법사야. 3사이클 정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꽤 수준급 마법사라네. 하지만 지금 입고 있는 차림을 보라구. 저게 마법사의 복장인지. 옷만 봐서는 검사들과 차이가 하나도 없지. 하지만 가스톤은 옷 속에 마법 매개물을 숨겨 둔 진짜 마법사지. 거기다가 검이라고는 거의 쓸 줄도 모르고……. 그렇다면 가스톤은 왜 저렇게 무거운 차림을 하고 있겠나?”
다크가 고개를 좌우로 젓자 그가 말을 이었다.
“마법사라는 걸 숨기는 거야. 내가 적이라도 기습의 첫째 목표를 마법사로 잡을 거야. 마법사는 회피 동작은 느리지만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거든. 아무리 무식한 오우거(Ogre)라도 그 점은 알고 있다구.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자신들끼리의 공식 집회를 제외하고는 마법사라는 사실을 숨기지.
가스톤의 경우 견습 마법사(Magic User)는 벗어났고, 아직은 수련 마법사(Mage)지. 아마도 운이 좋아서 5사이클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오른다면, 그때서야 마법사 길드로부터 마법사(Magician)로 인정을 받게 되지. 하지만 지금 되어 가는 상황을 본다면 7사이클 이상의 주문을 행한다는 대마법사(Wizard)라고 불릴 가능성은 정말 눈곱만큼도 없어.”
잠시 뜸을 들이더니 팔시온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가스톤은 조금 늦게 마법을 배웠고 아직 별 볼일 없는 마법사라는 거지. 하지만 나중에 몬스터와 싸울 때 그를 본다면 별 볼일 없다는 말이 쑥 들어갈 거야. 그만큼 마법사의 위력은 대단해. 아군 쪽에 있다면 대단한 보탬이 되지만 적이라면 아주 위험한, 그것이 마법사지.
그렇기에 자네도 명심할 것은 어떤 싸움이 벌어진다면 상대방 마법사가 누군지를 빨리 알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지. 그런 다음 마법사를 저세상으로 보내고 격투를 시작해야 해. 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가 상대가 마법을 쓰기 시작하면 아주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구.”
“명심하죠.”
다크는 팔시온에게서 이 시대, 이 세계에 대한 수많은 지식들을 얻어 들을 수 있었다. 하다못해 시 외곽에만 나가도 몬스터들이 출몰하기에 모든 도시들은 두터운 성벽으로 싸여 있었고, 힘없는 주민들은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옳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노예 제도가 있었고, 농노(農奴) 제도를 토착화하고 있었다. 농노 제도 하에서는 영주의 한마디는 곧 법이었다.
이런 지독하게 폐쇄적인 사회였지만, 젊은이들은 단 하나의 꿈을 가지고 무예를 닦았다. 사실 체계적인 수업 없이 무턱대고 노력만 한다고 익혀지는 게 무술이 아니지만, 그래도 운이 좋다면 변방의 수비대 정도로 출세할 수는 있었다. 더욱 운이 좋다면 어떤 도시의 수비대원이 될 수도, 전공(戰功)만 잘 세운다면 수입도 괜찮을 수 있었다. 몬스터는 버글거렸고, 변경에서는 평화 시라도 몬스터와의 전쟁으로 하루해가 뜨고 지는 판이었다.
운이 좋다면, 정말 운이 좋다면 우수한 동료나 상관을 만나 제법 족보에 있는 무술을 배울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실력대로 조금 더 승진할 수 있을 것이고, 돈을 벌어 자신의 아들을 아카데미에 보내 기사나 학자, 혹은 마법사로 키울 수도 있었다. 물론 그 아들 녀석이 잘해 준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야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장사 쪽으로 진출한 자들이 더욱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뛰어난 상인을 아버지로 둔 뛰어난 기사들은 의외로 수가 적었다. 아마도 자라나는 환경 때문이리라…….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자손대대 무가(武家)인 집안이 더욱 유리했고, 또 사실상 대부분의 뛰어난 기사들은 각 명문에서 탄생했다. 게다가 무가의 경우 남들보다 더욱 유리한 점이 있었다. 가전(家傳)의 무술이 그것이다. 뛰어난 기사들을 계속 배출한 집안은 예외 없이 막강한 가전 무예를 보유하고 있었다.
코린트 제국이 자랑하는 소드 마스터(Sword Master) 키에리 발렌시아드 공(公)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은 모두 다 그래듀에이트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고, 키에리 공이 가장 아낀다는 셋째 아들은 다음 세대의 소드 마스터가 될 가능성이 컸다. 아직은 미숙하다고 하지만 황제조차도 그 셋째 아들의 실력을 아낀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뛰어난 무가의 사병(私兵)으로 들어가도 좋은 무술을 교육받을 수 있다. 개인의 군대인 만큼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 가전 무공의 일부를 가르칠 테니 말이다.
비참한 지경에 처해 있는 농노들은 신분 상승의 가장 확실한 방법인 무예 수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 단계씩 차곡차곡, 성문 수비병이라도 좋았다. 언젠가 자신의 아들은 진짜 수비병이 될지도 몰랐고, 손자는 뛰어난 무가의 사병이라도 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런 식으로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기사를 바라보고 노력하다 보면 이름난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때는 외곽 수비대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수도 있었다.
한밤의 방문객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길을 가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고, 일행은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준비했다. 가스톤은 의외로 상당히 부지런해 보였는데, 특히 먹는 것에 더욱 부지런했고 또 그만큼 신경을 썼다. 그는 점심은 여관에서 산 빵과 햄 등으로 해결했지만, 야영을 시작하자 곧바로 모닥불에 냄비를 올리면서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다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가스톤과 오랜 시간 함께 생활했기에 그런 것에 익숙한 듯했다. 팔시온은 조금 떨어진 개울에서 물을 길어 왔고, 미네리아와 미디아는 요리하는 것을 도왔다. 미카엘, 라빈, 지미는 이곳저곳을 뒤지며 땔감을 모았다. 다크도 눈치를 살피고는 주변을 돌면서 땔감을 줍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모닥불 주위에는 충분한 땔감이 쌓였고, 맛있는 스프 냄새가 사방에 퍼졌다. 사람들은 모닥불 주위로 모여들어 미네리아가 돌리는 스프 그릇을 받아 들고는 시장에서 충분히 구입한 빵과 햄, 소시지 등을 돌리며 만족스런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하면서 가스톤이 팔시온에게 물었다.
“야영을 하면서 보초를 세울 필요가 있을까?”
“여기는 시가 가까워서 별 필요는 없을 거야. 하지만 중부 대로에서 벗어나는 모레부터는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야겠지.”
“그 근처에서 가장 위험한 몬스터라면 어떤 게 있나?”
그러자 팔시온이 음식을 우물거리며 자신의 짐 보따리를 뒤지더니 책 한 권을 꺼내 뒤적였다.
“뭐 별로 대단한 건 없어. 위어울프(Werewolf : 늑대 인간) 정도군. 원래가 겉모양도 사람이고, 또 사람과 같이 살다가 보름달만 보면 발작을 하는 놈들이니……. 도시 주변에도 자주 나타나는 모양이지.”
세 명의 남녀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밤이기에 눈에 잘 띄는 불빛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아주 부드럽고도 긴 금발머리를 가진 여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옆 사람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여자의 귀는 조금 특이하게 생겼다. 사람의 귀라고 보기에는 너무 크고 뾰족했다.
“네가 말한 녀석이 저들 중에 있는 게 확실하냐?”
“예.”
“어떻게 생긴 녀석이야?”
“보통 그냥 여행자 옷을 입었어요. 검은색 망토에 갑옷은 없었구요. 그리고 응…, 얼굴은 20대 초반 정도로 아주 젊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여자는 저 멀리 보이는 불꽃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쏘아봤다. 대강 잡아도 5백 미터는 족히 넘는 거리였기에 사람의 얼굴은 좁쌀 알갱이보다 작게 보였다. 하지만 여자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저기 보이는군.”
“지금 공격할 건가요?”
“아니, 나중에 잠들면. 그런데 그 남자가 그렇게 실력이 뛰어나다는 게 사실인가?”
“예, 검술은 잘 모르겠지만 격투술은 대단하던데요. 거의 손도 못 써 보고 칼 뺏기고, 돈 뺏기고, 옷 뺏기고, 익사할 뻔했다구요.”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덧붙였다.
“그 녀석 마법도 쓸 줄 안다구요. 피하지도 않고 화살을 막은 걸 보면 무슨 방어 마법을 쓴 것 같았고, 또 곧바로 내 쪽으로 파이어 볼이 날아왔다니까요. 그때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흥, 겨우 파이어 볼 가지구……. 좋아 저놈은 내가 처리해 주지. 자, 배고프니까 식사부터 하자구.”
첫 번째 화살은 어두운 밤하늘에서 갑자기 날아왔다. 저녁때부터 감도는 희미한 살기(殺氣) 때문에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다크는 간단히 그 화살을 포착할 수 있었고, 곧바로 허리에 매여 있던 샤벨이 날아갔다.
쾅.
놀라운 일이었다. 화살과 검이 부딪치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챙? 아니면 화살 잘리는 소리, 싹둑 정도 되려나? 하지만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화살에 폭탄이라도 장착했는지 화살은 강렬한 힘으로 폭발했고, 아무 생각 없이 샤벨을 거기에 가져다 댄 다크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물론 호신강기(護身剛氣) 덕분에 큰 부상은 면했지만 그래도 타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앞부분의 옷이 폭발의 충격으로 너덜너덜해졌으니까…….
그 폭발음과 동시에 가스톤이 외쳤다.
“마법입니다. 모두들 조심하세요.”
그런 다음 그는 중얼중얼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그의 뒤에서 미네리아도 함께 주문을 외웠다. 이때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서 날아올지 모를 마법 화살을 막으려고 주위를 살폈다.
무예 수업자들은 방패를 꺼내어 들었고, 미디아도 얄팍한 방패로 마법사들의 앞을 가렸다. 그들은 자신의 몸이야 어찌 되든 우선적으로 마법사를 보호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또 다른 화살이 몇 발 날아왔지만 이번 것들은 폭발을 일으키지 않았다.
다 찢어진 옷을 보면서 망연히 서 있는 다크를 보고 팔시온이 물었다.
“몸은 괜찮아?”
“아…, 괜찮아요. 그런데 방금 그게 마법입니까?”
“그렇지. 나도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 마법사들 중에 궁술(弓術)을 배운 자들을 위해 화살의 파괴력을 높이는 몇 가지 마법이 있다고 언젠가 들었어.”
“그러니까 상대는 마법사면서 궁수라는 말인가요?”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강한 마법사는 아니야. 어이, 이봐!”
그와 동시에 다크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때 또 앞에서 다른 화살이 날아왔다.
‘알고도 당할 바보는 없지. 무상검법(無上劍法) 1장 4절, 방(防)!’
다크의 앞쪽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둥그런 막이 형성되었고, 그 화살은 방에 격중된 다음 강렬한 열기를 뿜으며 폭발했다. 하지만 방을 뚫지는 못했다. 다크는 마법이 방을 뚫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더욱 빠른 속도로 경공술을 펼쳐 접근해 갔다. 드디어 나무 옆에 몸을 반쯤 감추고 화살을 날리는 상대가 보였다.
‘한 놈, 두 놈, 세 놈…….’
그중에 화살을 활에 먹인 상태에서 중얼거리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다크의 몸은 그쪽으로 날아갔다. 여자는 다크가 자신을 향해 접근해 오는 것을 보며 주문을 완성할 시간도 없이 곧장 화살을 날렸고, 그 화살은 허무하게도 샤벨에 막혀 버렸다. 그와 동시에 날아드는 다크의 주먹…….
퍽!
“꺅!”
‘그다음 우아하게 몸을 선회하여 저 녀석…….’
팍!
“윽!”
‘나머지…, 응? 어디선가 본 여자 같은데…….’
퍽!
“악!”
다크는 한 대씩 맞고 기절해 버린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를 보고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이 녀석 체격이 나하고 비슷하군.’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타 버린 옷을 벗어 버리고 그 남자의 옷을 벗겨서 입었다.
“뭐, 쓸 만하군. 옷을 태웠으니 보상을 해야지.”
옷을 바꿔 입고, 세 명의 손과 발을 꽁꽁 묶고 난 다음 그들을 툭툭 발로 차 깨웠다.
“이봐!”
그들이 깨어나자마자 다크의 심문(審問)이 시작되었다.
“방금 공격한 이유가 뭐야?”
하지만 상대로부터 답은 없었다.
“좋게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런 거야?”
퍽!
거의 벌거벗은 채 묶여 있는 남자가 정통으로 배를 채여 고꾸라졌다.
“말로 할 때 들으라구. 왜 습격했지?”
그러자 저쪽에 있던 금발 여자가 매서운 눈매로 다크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 녀석이 더 잘 알 거 아냐? 불케인시의 도둑 길드 회원을 건드렸고, 또 도둑 길드에는 신고도 안 하고 도둑질을 했지? 그러고도 네 녀석이 무사할 줄 알았냐?”
다크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야 처음부터 무사할 줄 알았고, 또 지금도 무사하잖아. 가만있어 봐라……. 일단은 그냥 놔두고 가고 싶다마는 그랬다가는 또 따라올 테고……. 어떻게 하지?”
잠시 궁리를 하던 다크는 좋은 방법이 떠올랐는지 곧장 달려들어서 그 두 여자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끼약! 뭐 하는 거야? 이 파렴치한 놈.”
“이 치한!”
저마다 한소리씩 했지만 남자의 힘을, 그것도 무술 고수의 힘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그들의 속옷을 제외하고 홀딱 벗겨 버린 다크는 그녀들의 짐 보따리들과 뒤에 매여 있던 말 세 필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압수, 아니 그야말로 약탈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어쨌든 압수했다.
“두고 보자. 이 나쁜 놈!”
“죽여 버릴 거야…….”
“흐흐흐, 좋으실 대로……. 다음에 또 봅시다.”
다크는 휘파람을 불며 새로 생긴 말 세 필에 짐을 싣고는 일행에게 돌아갔고, 짐은 물론 옷까지 다 뺏긴―거기다가 앞부분이 타 버린 옷까지 몽땅 다 가져가 버렸다―두 여자와 한 남자는 이를 갈면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남자라면 몰라도 여자가 속옷만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었고, 또 무기는 물론 말, 식량, 돈까지 다 빼앗겼으니 추격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다크가 말 세 필을 끌고 오자 모두들 궁금해했다.
“그건 웬 말이야?”
“까불기에 몽땅 다 뺏어 왔죠. 옷이고 식량이고 말이고 다 뺏겼으니, 꼼짝없이 다시 불케인시로 돌아가야 할 겁니다. 아, 알고 보니 저한테 원한이 있는 녀석들이더군요.”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마법을 걸어 놓은 화살까지 날아오나요?”
“뭐, 별짓 안 했다구요. 불케인시로 들어가는데 웬 여도적이 돈 달라기에 잡아서…….”
“수비대에 넘겼나?”
“아뇨. 돈 뺏고, 옷 뺏고, 무기도 뺏은 다음 손만 묶어서 강에다가 던져 버렸죠. 그래도 인간적으로 손만 묶었으니까 익사는 안 했다구요. 그때 가게에서 팔았던 게 그 도둑 물건이니까…….”
“꺄하하하…….”
기발한 대응책에 모두들 배꼽을 잡았지만, 뭐 그래도 도둑 길드의 회원을 건드리는 것은 별로 장수(長壽)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팔시온은 먼저 그 점을 상기하며 걱정을 해 줬다.
“그래도 상대가 도둑 길드의 회원이라면 조금 귀찮아질 텐데…….”
“상관없어요. 방금 그 녀석들도 도둑 길드 회원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몽땅 다 뺏어 왔죠.”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미디아가 다크에게 조언을 했다.
“그건 현명한 방법이 아니군. 나도 어렸을 때는 도둑 길드에서 일한 적이 있지. 단검 던지기도 그때 배운 거고, 도둑들은 하급 인생이라는 열등감 때문인지 자존심이 강해. 그래서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살리기 위해 더 강한 사람하고 다시 올 거야. 그땐 아주 귀찮아지게 되지.”
“뭐 괜찮을 거예요. 멀리 도망치면 찾기도 어려워질 거고, 기껏 찾아서 복수 따위 한다고 해도 막대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아마도 포기하겠죠.”
“그렇다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