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930)

일행은 준비를 마친 후 새로운 모험을 향해 활기차게 말을 몰아 성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성문 밖의 나무 아래 어두컴컴한 곳에 모여서 시드미안 경 일행을 기다렸다. 밤인 데다가 달빛까지 나무에 가려서 그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조금 기다리자 급히 말을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네 명의 인물이 모습을 나타냈다. 여행복 안에 가죽 갑옷을 입은 새로운 인물들이 두 명 더 끼어 있었다.

시드미안 경은 일단 이동을 시작하라고 지시한 다음 이동하면서 팔시온 일행을 새로운 동료들에게 소개했다. 팔시온 일행의 소개가 끝나자 이번에는 팔시온 일행에게 새로 합류한 인물들을 소개했다.

“이쪽은 안토니 크로와입니다. 5사이클 마법까지 익힌 마법사죠.”

그러자 너무 학자풍으로 생겨 가죽 갑옷이 안 어울리는, 적어도 마흔은 넘어 보이는 인물이 인사를 해 왔다.

“안토니 크로와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리고 저쪽은 로니에 칸타로와 사제십니다. 샤이하드를 모시는 신관이시죠.”

엄청나게 잘생긴 30대 중반 정도의 금발 미남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그는 미네리아와는 달리 허리에 묵직해 보이는 바스타드 소드를 차고 있었다.

어쨌든 전번 여행의 동료였던 미네리아 로안스에르 사제나 말괄량이 라나 슈바이텐베르크 등 만나는 사제들은 모두 멋진 미남, 미녀인 것이 특이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작은 비밀이 있다. 신을 모시는 사제들은 ‘신께서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는 믿음으로 각종 미(美)에 관계된 신성 마법을 개발했고, 그런 마법에 의해 그들의 얼굴과 몸매가 개조(?)되어 눈에 확 띄는 미남, 미녀가 된 것이지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여자 신관들의 경우 못된 녀석들에게 희롱당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 여자 신관들은 믿음직한 모험가 파티가 결성될 때만 여행을 했다.

시드미안 경의 소개에 팔시온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여기에도 샤이하드를 모시는 신전이 있는 모양이죠, 시드미안 경? 저는 아르곤 제국에만 신전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러자 칸타로와 사제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다른 나라에 포교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크로노스교(敎)를 금하고 있기에 포교는 참 힘들지요. 그 때문에 보통 봉변을 당하지 않기 위해 타국에 나갈 때는 전쟁의 신 아레스의 신관복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렇군요.”

그러자 옆에서 말을 달리던 지미가 팔시온에게 물었다.

“샤이하드라는 신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설명 좀 해 줘요.”

“크로노스교의 경전 ‘니트라’에는 샤이하드 외의 신을 섬기지 못하게 하지. 대단히 폐쇄적인 종교로 이방신을 섬기는 자와는 한자리에서 식사조차 못하게 규정짓고 있어. 그러니 다른 신을 섬기는 신전, 신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악마나 암흑신들과 관계를 맺는 흑마법사나 마나의 힘을 이용하는 백마법사, 정령을 부리는 정령술사까지 전부 다 이교도라고 죽이거나 추방하지. 그래서 아르곤 제국은 마법사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국가가 된 거야. 샤이하드를 섬기는 크로노스교가 아르곤 제국에서 국교(國敎)로 선포되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어. 그렇기에 다른 나라들에서는 마법사들이 주축이 되어 크로노스교가 자국에 들어오는 것을 엄중히 막고 있지.”

아르곤 제국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기에 크로노스교도 여기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두들 팔시온과 지미의 대화에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백마술은 악마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잖아요? 그리고 정령술도…….”

“누가 아닌 걸 모르냐? 하지만 고위 사제들이 그걸 확대 해석하는 바람에 거기에 들어간 거지. 오직 샤이하드만이 제어해야 할 대자연의 원동력인 마나를 한낱 인간이 부리는 것은 샤이하드에 대한 모독이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마나를 부릴 권세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아르곤 제국에서는 그게 정설이야. 그래서 아르곤 제국에서는 백마법이나 흑마법이나 정령 마법을 익힌 자들은 모두 다 악한 마신을 섬기는 자로 몰아서 모두 한꺼번에 처리한 거지. 대신 기사는 좀 달라. 검을 오랜 시간 수련하다 보면 자연스레 몸속의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니까, 그들까지 없앨 수는 없잖아. 그래서 그들은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기사들은 샤이하드의 은총을 받았다고 여기지.”

“그렇다면 전쟁이 벌어지면 타국의 마법사들 때문에 고생하게 될 텐데요? 아무리 기사단이 강하다고 해도…….”

“흠…,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지. 그 나라의 전 국민은 샤이하드를 받들고 있어. 그 말은 그들의 군대도 샤이하드를 받든다는 말이 되지. 하여튼 전 국민이 샤이하드를 열광적으로 받드니까 말이야. 전쟁이 터지면 광신도(狂信徒)들처럼 무서운 미친놈들이 또 어디 있는데…, 험험.”

그러다가 팔시온은 자신의 말이 조금 빗나갔다는 걸 느끼고 헛기침을 하면서 칸타로와 사제를 힐끗 보았다.

“아르곤에서는 신앙심을 꽤 중요시하니까, 신성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의 수가 많아. 어쨌든 기사들 중에서도 사제가 많으니까 말이야. 아르곤의 기사들 중에서 신성 마법을 쓸 줄 아는 기사들을 성기사라고 부른다고 하더군.”

기사들이 신성 마법을 쓴다는데 놀라 지미가 감탄사를 터트리며 말했다.

“와, 기사가 신성 마법까지 쓴다면? 정말 대단하겠군요.”

“물론 신성 마법의 특성상 흑마법이나 백마법처럼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지 못하지만, 그 방어력이나 치유력에 있어서는 흑마법이나 백마법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지. 아무리 흑마법이나 백마법의 파괴력이 뛰어나다 해도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면 모두 소용없는 거야. 그래서 모두들 성기사를 두려워하는 거야. 게다가 성기사는 자신의 몸 곳곳에 신성 마법을 걸어 놓지. 근력 증가의 마법이나 반사 신경이 빨라지는 마법 등……. 그게 신앙심이 유지되는 한은 평생토록 유지되니까 얼마나 근사해?”

“우와, 정말 대단하군요.”

그러자 그 옆에서 듣고 있던 라빈이 경탄 어린 눈빛으로 칸타로와 사제를 바라보았다.

“칸타로와 사제께서도 신성 마법을 쓸 줄 아세요?”

칸타로와 사제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떤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라도 사제급이 되려면 신성 마법을 쓸 줄 알아야 했다.

“우와, 그러면 저한테도 근력 증가 마법 같은 거 걸어 주실 수 있나요?”

그러자 칸타로와 사제는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 걸어 주는 신성 마법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해요. 오래가 봐야 2, 30분 정도지요. 그렇기에 신성 마법을 걸려면 자신의 몸에 걸어 그 신앙심을 흡수하도록 만들죠. 그러면 신앙심이 유지되는 한 그 신성 마법은 영원히 지속되니까 말이에요. 그렇지 않고 타인에게 거는 경우는 전투를 벌이기 직전인 경우나, 전투 중인 경우죠.”

라빈이 약간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 사라질 힘이라면 얻어 봤자 쓸모도 없는 게 아닌가.

“그러면 칸타로와 사제님도 그 마법을 몸에 걸어 놓으셨어요?”

칸타로와 사제는 약간 부끄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예, 저도 근력 증가의 마법이나 뭐 그런 걸 걸어 놨죠. 사실 저는 전문적인 검투(劍鬪) 훈련 같은 것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제 몸을 지키려면 마법을 이용해서 몸을 상향 조정하는 방법밖에 없죠. 그 덕분에 바스타드 소드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것이구요. 저같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도 신성 마법에 의해 검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데, 성기사처럼 검투 교육을 받은 사람은 과연 어떻겠어요? 또 성기사들에게는 검술에 관련된 신성 마법도 전해져 내려온다고 합니다. 어쨌든 제가 알기로는 성기사의 능력은 전쟁의 신전에서 말하는 그래듀에이트급 이상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객관적인 기준이 없잖아요.”

“전에 발트란 공국에서 온 사신 일행 중에 그래듀에이트급 기사 한 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와 성기사가 비무를 한 적이 있었죠. 그때 비무는 성기사의 압승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기에 저의 조국인 아르곤 제국을 근방의 모든 국가들이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샤이하드의 힘은 대단히 위대하답니다.”

그러자 라빈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럼 성기사의 수는 얼마나 돼요?”

“제가 알기로는 3천 명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지미의 입이 딱 벌어졌다.

“성기사가 3천 명이나 된다구요?”

“예.”

“그럼 성기사 중에서 마나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얼마나 돼요?”

“잘은 모르겠지만 샤이하드의 축복으로 마나를 다스릴 수 있는 성기사는 3, 4백 명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지미는 약간 김이 빠지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진짜 실력자는 3, 4백 명뿐이라는 말이 아닌가? 웬만큼 큰 국가들도 그래듀에이트급 기사 3백 명 정도는 기본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에이,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 그래듀에이트급 기사와 비무했던 성기사는 직위가 낮은 사람이었어요. 마나를 다스릴 권능을 부여받은 성기사가 그런 하찮은 타국 기사와 비무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 말에 다크를 제외하고 모두들 놀라움을 느꼈다. 마나도 다스릴 줄 모르는 성기사가 마나를 다스릴 수 있는 그래듀에이트급 기사를 이기다니……. 물론 신성 마법의 덕분이겠지만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놀라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마법이란?

그들은 계속 길을 달려갔다. 물론 무작정 달려가는 것은 아니다. 보통 팔시온이 주축이 되어 무예 수행자들이 정보를 모은답시고 동분서주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크나 그 외 다른 사람들은 별로 할 일이 없었고, 그래서 심심한 김에 다크는 가스톤 기빈에게서 마법을 배웠다.

처음에 다크는 정신을 집중하며 외운 주문을 통해 마나를 체외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몸속의 마나를 꺼내어 외부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체외에 존재하는 대자연의 근원인 마나를 응축하여 움직인다?

어떤 면에서 보면 북명신공(北冥神功)하고 비슷한 이치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마나를 설혹 체외에서 어떤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손 치더라도 이놈의 주문은 또 뭔가?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들을 중얼중얼, 그것도 정해진 몸동작에 따라 손발을 움직여야 하다니…….

‘염병할…, 이러고 앉아 있다가 먼저 칼 맞아 죽겠다.’

다크의 생각은 과히 틀리지 않았다. 그전에 만났던 흑색 갑옷을 입은 멋쟁이 마법사도 주문 외우다가 칼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뺑소니치지 않았던가? 그래서 마법사란 직업은 아주 처량한 것이다.

그날도 다른 사람들은 이리저리 모두 다 상대를 찾는답시고 뿔뿔이 흩어지고, 가스톤과 다크만 남아서 파이어 볼의 순서를 연습하다가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게 아니고 이렇게.”

가스톤 기빈은 다시 한 번 설명했다.

“화염 마법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파이어 볼’인데 먼저 손을 이렇게 공을 쥐듯이 한 자세에서 시작하는 거야. 그런 다음 주문을 외우면서 손을 천천히 머리 위로 높게 올린다. 이때쯤 되면 주문은 거의 다 끝나고 점점 불덩어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구. 이제 마지막 주문을 외우면서 오른손을 뒤로 천천히 빼는 거야. 물론 주문의 속도에 맞춰서 말이지. 주문을 빨리 외우면 빨리, 천천히 외우면 몸동작도 천천히……. 알겠나? 오른손이 뒤로 완전히 빠진 후에 주문이 끝나면 시동어인 파이어 볼을 외치면서 그 공을 원하는 표적을 향해 던지는 거지. 알겠어?”

“대강 알겠어요. 다시 한 번 시범을…….”

“자, 잘 보라구.”

가스톤은 마법을 구사하기 전에 일단 동작에 맞춰 손을 뭔가를 쥐듯 앞에 끌어 모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몸속에 타오르는 불의 기운이여, 만물을 불사르는 뜨거운 화염이여…….”

어쩌구 저쩌구 고대 마법어인 룬어의 주문이 진행될수록 가스톤의 손은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의 양 손바닥 사이에서는 작은 불덩어리가 생겨 점점 커졌다.

다크는 가스톤이 주문을 외워감에 따라 그의 주위에 큰 기의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기의 흐름을 통해 방대한 힘이 가스톤의 양 손바닥 사이에 집중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곧이어 작은 불덩어리로 바뀐 것이었다.

“파이어 볼!”

가스톤이 시동어를 외침과 동시에 그의 오른쪽 손바닥에서는 거대한 불꽃 덩어리가 확 피어올랐고, 가스톤은 그걸 아무 곳에나 던져 버렸다. 원래 이래서는 안 되지만 적이 없으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 알겠나?”

“그러니까 그냥 주문을 외우다 보면 마나가 모인다는 말입니까?”

“아니야, 주문만 외워서는 안 되지. 정신을 집중해서 그 주문의 틀에 맞춰 마나를 모아야만 해. 계속 주문을 외우면서 주위에 만들어지는 마나의 흐름을 함께 통제해야만 하지. 주문이란 주위의 마나를 흡수하여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는 도구일 뿐이지. 그 미세한 흐름 하나하나는 시전자가 직접 통제를 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주문을 외우다가 마나가 폭주해 잘못하면 사망하는 수도 있다구.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주문을 외우면 주위의 마나가 모여들어 그 마나의 흐름이 도넛처럼 둥근 원통형을 형성하며 빠른 속도로 흐르기 시작하지. 이때 마나의 흐름을 더욱 가속시키면서 원통의 안으로는 압축하고, 원통 밖으로는 마나를 계속 흡수해야 해. 이건 아주 어려운 작업이지.

마나의 흐름이 그 원통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안 돼. 만약 벗어난다면 주문은 폭주하고, 바로 대 폭발로 이어진다구. 주문이 잘되어 성공한다면 그 원통을 통해 마나를 압축하여 일직선 또는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지. 그런 다음 마지막 시동어를 통해 그 압축된 마나를 불꽃으로 형상화시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글쎄요, 이해가 안 가는데요…….”

“제길, 원래 차근차근 처음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데……. 좋아, 처음부터 시작하자. 혹시 이 세상을 이루는 네 가지 원소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냐?”

“없어요.”

“이 세상을 형성하는 네 가지 원소는 불, 물, 바람, 흙이지. 이것을 4대 원소라 부르고, 그 각각을 관장하는 정령을 4대 정령이라고 부른다. 그 외에도 잡다한 정령들이 있지만 4대 정령이 가지는 힘이 가장 커서 보통 정령 마법사들은 그것들을 부린다고 하더군. 참, 무슨 말을 하려다가 이리 왔더라? 그래! 그런 식으로 마법도 몸속에 내재된 각 원소를 이용하는 것이지. 정령의 힘 따위는 필요 없이 마법은 자신의 몸속의 기운을 통제하여 끌어내는 거야. 물론 그때 사용되는 엄청난 양의 마나는 무사들과 달리 자신의 몸속이 아닌 체외에서 떠도는 마나를 이용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그러고 나서 시동어를 외치는 것이 바로 그 응축된 마나와 시전자가 원하는 마법의 염원(念願)을 뒤섞는 작업이지. 그게 성공하면 불덩어리가 되든지, 물덩어리가 되든지 하는 거야. 알겠어?”

“흐음, 그렇다면 일단 마법을 쓰려면 몸 주위에 거대한 원반형의 마나 덩어리를 가속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거군요.”

“그렇지. 하지만 그 마나의 덩어리를 가속하는 작업을 인간의 힘으로 혼자 할 수는 없어. 그걸 좀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주문이지.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그걸 통제한다는 게 불가능하거든. 물론 고위 마법사로 올라갈수록 그 주문을 오랫동안 써 본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빠른 속도로 주문을 외우게 되거나 그 주문을 생략하기도 해. 하지만 마나의 흐름을 유지, 가속, 압축, 혼합, 발사하는 과정은 변함이 없지. 이게 바로 백마법이야.”

“백마법? 그럼 흑마법도 있어요? 아니면 회색 마법이나…….”

“흑마법도 있지. 흑마법은 자신이 직접 마나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그 악마와의 계약에 의해 힘을 받아 행하는 마법인데……. 으음, 그 계약을 한 악마의 등급에 따라 그 위력이 완전히 달라진다고나 할까? 하여튼 별로 좋은 의미의 마법은 아니야. 흑마법을 써서 잘된 인간은 한 명도 못 봤으니까. 그리고 흑마법 외에 정령 마법이 있지.”

“정령이란 게 뭐예요?”

“정령이란 이 세상을 유지하는 각각의 어떤 원소를 다스리는 자를 말하는 건데, 그 정령에도 등급이 있지. 정령, 상위 정령, 정령왕. 이렇게 세 가지 등급이 있는 정령도 있고, 어떤 정령은 정령왕이 존재하지 않던지, 아니면 아예 상위 정령조차 존재하지 않는 정령도 천지야. 정령왕의 힘은 대단하지. 그 정령을 이용해서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게 정령 마법이야. 정령 마법에는 세 가지가 있어. 하나는 정령을 소환하지 않고, 계약도 하지 않은 채 그 정령의 이름으로 그 힘을 빌려 쓰는 거야. 하지만 그 정령과 사람은 계약을 맺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떤 매개물은 필요한 마법이지. 그러니까 어떤 책, 반지, 검 따위 말이야. 그걸 매개체로 시전자는 자신이 모은 마나를 계약된 정령에게 건네주고 정령은 자신의 힘을 빌려 주어 정령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이지.”

“백마법이랑 비슷하군요.”

“응, 하지만 나머지는 완전히 달라. 두 번째는 정령과 계약을 맺은 후 그 정령을 직접 소환하지 않고 그 정령의 주특기인 마법만을 구사하는 방법이야. 이건 마나를 응집시키거나 하는 따위의 행위는 필요 없고, 그 정령과의 약속된 약속어만 떠들면 되니까 아주 편하지. 거기에다가 마나의 응집이나 뭐 그런 게 보이지 않기에 아주 조심해야 한다구.”

“대단하군요. 그렇다면 그냥 약속어만 떠들면 펑펑 마법이 날아간다는 말인가요?”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그 정령이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그들의 힘을 이 세상에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힘을 시전자가 포기해야만 해. 그러니까 그것도 많이 쓰면 피곤하기는 매한가지지.”

“그렇다면 마지막은?”

“마지막은 계약을 맺은 정령을 소환하여 그를 부리는 거야. 정령의 힘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대단히 강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지. 하지만 정령 마법은 정령과의 친화력을 가진 인물만이 쓸 수 있으니까, 웬만한 사람들은 익힐 수조차 없는 게 단점이야. 이것도 정령의 힘을 현세에 나타내기 위한 통로 역할을 시전자가 해 줘야 하기에 강력한 힘을 쓸수록 피곤하기는 매한가지지.”

“마법은 그거뿐이에요?”

“아니 큰 갈래로 본다면 하나 더 있지. 마지막 것이 신성 마법인데, 신을 섬기면서 그 신이 축복으로 내린 힘을 사용하는 거지. 자신의 몸이 매개체가 되어 신성 마법을 돌리게 되는 거야. 하지만 이것도 흑마법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몸을 통해 신의 힘이 들락거려야 하기 때문에,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 육체가 갖추어져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 완전히 거저인 것 같은 이 힘도 많이 쓰면 쓸수록 지치기는 마찬가지야.”

“큰 갈래라면 작은 갈래도 있어요?”

“그럼, 부적 마법(符籍魔法)이라든지 마법진(魔法陣)을 이용한 마법이라든지…, 수많은 종류가 있지.”

“그럼 제가 익힐 수 있는 마법은 백마법뿐이라는 말인가요?”

“그렇지. 혹시 나중에 악마 녀석과 계약할 수도 있으니까 흑마법, 백마법은 누구나 익힐 수 있는 선제 조건은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겠지.”

“방금 설명한 것들 중에서 제일 이해가 안 가는 게 섞는 부분 있잖아요? 응축된 기와 자신의 염원을 섞는 거…….”

“당연히 이해가 안 가겠지. 파이어 볼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마나가 있어. 그 이상의 마나만 공급해 준다면 그 마법을 구동시킬 수 있게 되지. 몇 가지 요령만 터득하면 자신의 염원과 응축된 마나의 덩어리를 혼합하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야. 하지만 실패한다면 정말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만…….”

“그럼 그 염원과 마나가 섞이는 것을 어떻게 좀 느끼게 해 주실래요?”

“그건 어려운 게 아니야. 자…, 조용히 눈을 감고 감각을 집중해 봐.”

가스톤은 다크의 뒤에 서서 손목을 잡은 후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다크와 가스톤을 중심으로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크는 그 움직임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가스톤은 주문을 외우면서 다크의 손목을 잡고는 형식에 맞춰 이리저리 움직였고, 드디어 주문이 완전히 완성되었다.

“어때 뭔가 느껴지는 게 있나?”

“아주 뜨거운 어떤 게 느껴지는데요?”

“당연하지. 자네 바로 손 앞에 마나의 덩어리가 있어. 이제 시동어를 외울 거야. 파이어 볼!”

그와 동시에 가스톤의 염원 덩어리가 가스톤이 꼭 잡고 있는 다크의 손목을 통해 전달되었고, 그것은 곧이어 다크의 손을 통과해서 마나의 덩어리와 합쳐졌다. 그와 동시에 다크의 오른손 위에서 확 하고 불덩어리가 생겨났다. 가스톤은 다크의 손을 앞으로 당기듯 하면서 불덩어리를 던졌고, 그 덩어리는 앞에 있던 땅바닥에 맞아 폭발을 일으켰다.

“이해하겠나?”

“뭔가 제 손을 통과해서 나갔는데…….”

“그게 불의 염원을 담은 덩어리지. 그 둘이 합쳐져서 하나의 마법을 만든 거야.”

“흐음, 이거였나? 아니 이거였나?”

다크가 한참을 궁리하더니 가스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가네요.”

“사실 염원이란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야. 단지 ‘이렇게 되어 주세요’하는 거니까. 가장 중요한 건 필요한 만큼의 마나를 응축시키는 거라구.”

“최고 주문은 몇 사이클까지 있어요?”

“내가 듣기로는 9사이클까지 있다고 하더군. 뭐 9사이클 정도 되면 도시 하나를 묵사발을 낼 수 있다나? 나도 잘 모르겠어. 어쨌든 그 정도까지 배운다는 건 불가능해. 마법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 즉 1, 2사이클을 사용할 수 있는 인물들을 견습 마법사, 3, 4사이클은 수련 마법사, 5, 6사이클은 마법사, 7사이클 이상은 대마법사라고 하는데, 대마법사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몇 명 되지 않아. 그 정도로 마법은 어려운 거야. 어때? 지금부터 룬어를 좀 배워 볼래?”

“그 전에 파이어 볼 시범 한 번만 더 보여 줘요.”

“뭐 그건 어려운 게 아니지.”

다크는 또다시 가스톤이 기나긴 주문을 외워 파이어 볼을 날리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다. 아니 그의 행동이 아니라 그의 주위에서 흐르는 마나의 흐름을 지켜봤다는 말이다. 복잡한 것 같지만 단순한 흐름을 가지는 마나의 흐름…….

다크는 슬며시 북명신공을 응용하여 주위의 기를 끌어들여 하나의 원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힘들 게 없었다. 원통 내에서의 가속……. 이때 원통의 겉 부분으로 기를 흡수하여 그 원통의 중앙 부분으로 압축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양의 기를 압축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다크는 죽자고 기를 가속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압축시켰다.

이제 제법 압축되었다고 생각되자 다크는 그 강력한 힘을 가진 기의 덩어리를 오른손 쪽으로 유도했다. 동시에 손을 앞으로 쭉 뻗어 몸속에 있는, 가스톤이 지적한 불의 기운을 담은 염원을 가져다가 둘을 합쳤다.

퍽!

작지 않은 소리가 나면서 손바닥 앞쪽에 진홍색으로 불타는 축구공 크기의 불덩어리가 만들어졌다. 갑자기 생긴 불덩어리에 옆에서 지켜보던 가스톤은 놀라서 기절하기 일보 직전의 표정이 됐다. 곧이어 다크는 그 불덩어리를 기를 이용해서 앞으로 날려 버렸다.

쿠왕!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가스톤의 파이어 볼의 수십 배는 되어 보이는 불의 힘! 아무래도 가속과 압축을 너무 과도하게 한 모양이었다. 다크가 처음 성공한 마법을 통해 이 마법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구동하게 되는 것인지를 다시 마음속으로 정리하고 있을 때, 그제야 이성을 회복한 가스톤이 놀랍다는 듯이 떠듬떠듬 물었다.

“자네 마법을 할 줄 아나?”

“예? 방금 할 수 있게 된 거 보셨잖아요?”

“그게 지금 배우고 한 거란 말이야?”

“그렇죠.”

“자네 천재인가? 난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군.”

“별로 어려운 게 아니던데요? 자, 봐요.”

다크는 호승심이 발동하여 두 개의 원반을 만든 다음 맹렬히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압축된 기를 전처럼 한 군데로 합치지 않고, 길쭉한 상태로 둘을 합쳐 기를 손가락 끝 쪽으로 보내서 불의 기운과 합치게 만들었다. 그러자 역시나 예상대로 붉은 화염 막대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좀 전 1사이클로 날릴 때보다 더 시간이 적게 들었다. 물론 이건 요령이 붙어서 단축된 시간이었다.

꽈꽈꽝!

“봤죠? 방금 건 2사이클이었다구요. 이제 3사이클에 도전해 볼까?”

가스톤이 마법을 사용하는 모양을 몇 번 봤으므로 그 원반들이 어떤 형식으로 교차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물론 3사이클까지였지만……. 하지만 지금 여기는 없지만 5사이클을 구사하는 진짜 마법사도 한 명 더 있으니까, 그것도 알아내는 데 별로 어려울 게 없을 것이다. 급속도로 가속, 압축, 혼합, 발사!

쾅!

지축을 울리는 폭음과 함께 시뻘겋게 솟아오르는 불덩어리…….

“어때요? 3사이클 주문의 위력이 맞죠?”

다크가 쏘아 대는 파이어 볼을 보면서 경악감에 입을 딱 벌리고 있던 가스톤이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저게 3사이클이라고? 5사이클이라도 저 정도 파괴력은 안 될 거다.”

“으윽! 기를 너무 많이 압축했나? 어쨌든 아주 재미있군요. 원리만 이해하면 아주 간단한 거예요. 흡수, 가속, 압축, 혼합, 발사라…….”

“자네는 보면 볼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군. 아무것도 모르다가 가르쳐 주기만 하면 사람을 놀라게 만드니……. 참, 시간이 많이 흘렀어. 빨리 가자구. 합류 장소에 가서 나머지 설명을 더 해 주지.”

“그러죠.”

일행들은 가스톤과 다크가 둘이서 뭐가 좋은지 쑥덕거리며 떨어지지 않는 걸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마법이란 게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들로서는 복잡한 마법 주문인 룬어나 기타 그런 것에 대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실드란 것은 말이야 마법을 막는 매직 실드와 화살 같은 걸 막는 포스 실드가 있지. 하지만 그 둘을 한꺼번에 막지는 못한다 이 말이지. 그걸 한꺼번에 막으려면 바리어를 쳐야 하거든. 바리어는 3사이클부터 사용하는 마법인데, 4사이클 이상부터는 방어력에는 변함이 없는 대신 그 방어하는 면적이 늘어나. 그건 실드도 마찬가지야. 주문은 알려 줄 필요가 없다고 했으니 넘어가고, 그건…….”

저녁 식사를 끝낸 후에도 둘이 누워서 쑥덕거리는 걸 보면서 시드미안 경이 팔시온에게 물었다.

“저 둘은 사제지간인가?”

“아닙니다. 이번 길에 만난 동료지요, 시드미안 경.”

“보통 딴 사람에게는 마법을 잘 가르쳐 주지 않는 게 상식인데……. 저 가스톤이란 사람은 꽤나 열심히 가르치는군.”

“글쎄요.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크한테는 죽도록 붙어서 가르치는군요. 내가 전에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을 때는 며칠 가르치다가 그만둬 놓고…….”

사실 그때 가스톤은 팔시온을 며칠 가르쳤지만, 자신의 가르치는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포기했던 것이다. 배우는 상대가 잘 이해하면 가르치는 사람도 엄청 재미있는 것이 상식이니까…….

“그런데 저 다크란 사람은 왜 데리고 다니는 건가? 이번 추격을 하는 데 아무런 보탬이 안 되고 있잖아? 가스톤이라면 수련 마법사니까 싸우는 데 필요하겠지만…….”

그러자 팔시온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직 적과 만나지 않아서 모르시는 거죠. 다크의 검술 실력은 저희 파티에서 최고라구요. 전에 그래듀에이트급 기사를 해치우는 걸 봤지요. 경의 동생 분을 죽인 기사 말입니다.”

시드미안 경은 새삼스레 다크를 바라본 다음 말했다.

“그렇게 대단한 실력을 지닌 것 같진 않은데……. 그렇게 검술 실력이 뛰어나단 말인가?”

“거짓말 같지만 진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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