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930)

다음 날 아침 시드미안 경 일행은 또다시 추격을 시작했다. 오랜만의 휴식으로 모두들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몇 사람만 빼고…….

라나는 신관인 주제에 술에 대한 유혹을 참지 못하고―사실 열네 살짜리한테 먹인 놈이 더 나쁘지만―약한 칵테일 몇 잔으로 시작해서 맥주까지 몇 잔 마시고는 아직도 띵한 표정이었고, 라나에게 술을 먹인 장본인인 미디아도 술이 덜 깼는지 얼굴이 부석부석했다. 막강 주량을 자랑하던 팔시온과 미카엘까지 아직도 멍한 표정이었고, 가스톤은 강인한 정신력 덕분에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입에서는 아직도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상태가 그런대로 좋은 인물은 높은 무예의 경지 덕분에 술기운을 제압해 버린 시드미안과 상관의 눈치를 보며 제대로 못 마신 스미온과 안토니, 그리고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몽땅 풀고 기분 좋게 잠든 다크뿐이었다.

“야, 너 괜찮냐?”

입에서 술 냄새를 풍기며 팔시온이 묻자 꺼칠한 수염을 문지르던 미카엘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투덜거렸다.

“말도 마라……. 골이 깨지는 것 같다.”

이들의 하는 짓거리를 보고 있던 가스톤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작작 마시라니까…….”

그러자 미카엘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가스톤도 남의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입에서 술 냄새 난다구. 그리고 술 마시는 게 절제가 되냐? 오랜만의 술 파티인데, 죽기 직전까지 마셔야지. 그건 그렇고 팔시온.”

“왜?”

“점심 먹을 만한 곳은 있냐?”

“있어. 조금 늦은 점심이 되긴 하겠지만 작은 마을이 있더라. 거기서 얻어먹지 뭐. 안 주면 해 먹어도 되고.”

“설마, 그 정도까지 인심이 야박하려고…….”

그들이 마을에 도착한 것은 팔시온의 말대로 점심시간도 한참 지나서였다. 그곳에서 인심 좋은 시골 여자를 만나 일행은 따뜻한 식사를 배불리 할 수 있었다. 물론 돈을 지불하기는 했지만…….

빵을 억지로 씹어 삼키고, 돼지고기가 들어간 뜨끈한 스프를 들이켜고 난 후에야 그런대로 얼굴 표정들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음식을 날라 준 시골 여자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미카엘이 투덜거렸다.

“제길, 조금 더 얼큰하게 끓였으면 좋았을 건데…….”

그러자 미디아가 곧장 면박을 줬다.

“이런 산골짜기에서 고춧가루 구하기가 어디 쉬운 줄 알아? 여기서는 재배가 잘 안 되니까 귀한 거야.”

“하기야…….”

미카엘은 미디아의 말에 수긍하면서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작은 병을 하나 꺼내서는 그 가루를 스프에 조금 뿌렸다. 그 독특한 향기……. 후추였다.

“이봐, 나도 좀 줘.”

팔시온이 말했지만 미카엘의 작은 후추 병은 재빨리 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헛소리하지 마.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

미카엘이 질색을 하는 이유도 있었다. 고추는 웬만한 기후 조건에서도 재배가 되지만 후추는 열대 지방에서만 재배된다. 하지만 열대 지방보다는 온대 지방에 인구가 더 많았고, 또 강대한 제국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타이렌 왕국의 경우 생산지와 소비지의 불일치를 이용해서 후추를 독점함으로써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타이렌이라는 망할 놈의 나라 때문에 후추 가격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쌌다. 그래도 요즘은 가격이 많이 내린 편이지만 예전에는 동일한 무게의 황금과 맞바꿔질 정도로 비쌌던 때도 있었다. 어쨌든 돼지고기의 그 독특한 냄새를 없애는 데는 후추만 한 것도 없었고, 멧돼지 같이 맛은 있지만 냄새가 더 고약한 놈은 후추가 필수였다.

“제길, 겨우 후추 가지고 그럴래?”

“후루룩, 내 것을 내가 안 주겠다는데 왜 그리 잔소리가 많아. 아니꼬우면 너도 가지고 다니라구.”

미카엘이 약을 올리자 팔시온이 미카엘을 덮쳤고, 둘은 겨우 후추 병 하나를 두고 드잡이질을 시작했다.

그들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는 인물들이 있었다. 하는 짓거리를 한참 지켜보던 그들 중 한 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꽤나 유쾌한 패거리군.”

그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인물이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시작할까요?”

“아니야, 나중에 하지. 여기는 지형이 안 좋아서 타이탄을 사용하기는 별로야. 이 산맥을 통과한 후에 하기로 하자.”

“너무 늦지 않을까요?”

“아니야, 이런 산길에서 저놈들이 도망치면 잡기도 어려워. 일단 평지로 나가면 그때 타이탄을 불러내서 시작하기로 하지.”

“예.”

“또 놈들 중에 마스터급이 있다고 하니까……. 만약에 그놈이 타이탄이 없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기회에 죽여 버려야 한다. 산속이라면 추격 자체가 불가능해. 그러니까 지시가 있을 때까지 멀찍이서 추격만 하기로 하자.”

“알겠습니다.”

프로토타입 청기사의 거대한 몸체가 수많은 쇠사슬들에 연결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청기사의 몸체 구석구석에는 대마법 주문들이 기록되어 특이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천천히 올려, 이 새끼들아…….”

청기사의 거대한 몸이 완전히 들렸다가 천천히 눕혀졌고, 기술자들이 달라붙어서 청기사의 몸체 위에 미스릴을 녹인 액체를 부어서 두껍게 코팅을 했다. 한쪽이 모두 끝나면 청기사의 몸을 조금씩 돌리면서 작업을 계속했다. 청기사의 몸체 전체에 미스릴을 입히는 작업을 하는 데 무려 이틀이나 걸렸다.

청기사의 본체가 완성되자 이제는 페인트 공들이 달라붙어서는 조금 짙은 푸른색 페인트를 매끄럽고 세심하게 칠하기 시작했고, 이 작업도 저녁때에 이르러 끝났다. 이제 청기사를 만드는 공정은 완성에 다다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청기사의 조립이 시작되었다. 손, 발, 요부(腰部 : 허리), 흉부(胸部 : 가슴), 견부(肩部 : 어깨)의 요철 부위에 이미 미스릴을 입힌 후 페인트까지 세심히 칠해서 준비해 둔 1차 장갑이 부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청기사의 흉부 2차 장갑을 부착했다. 그리고 그게 떨어지지 않도록 확실하게 마무리한 후, 가장 두꺼운 타이탄의 갑옷인 2차 장갑과 흉부 3차 장갑을 입히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보통의 타이탄은 흉부라도 조금 두껍기는 하지만 2차 장갑을 붙이는 것으로 끝내지만 청기사는 3차 장갑까지 입혔던 것이다.

그날 저녁 늦게야 모든 장갑판들을 청기사에 부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 궁정 제1마법사 토지에르 경이 등장했다. 그는 청기사의 왼손에는 거대한 방패를, 오른손에는 3.6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장검을 장착한 다음 청기사의 위로 올라갔다. 청기사의 머리는 뒤로 젖혀진 상태였기에 토지에르 경은 손쉽게 청기사의 조종석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자리에는 앉지 않고 그냥 선 채로 손을 앞으로 뻗어 주문을 외웠다.

“그대 위대한 힘을 간직하고 있는 자여, 그대에게 새로운 몸이 주어졌으니 이제 잠에서 깨어, 이 세상을 오만하게 굽어보며 그 위대한 힘을 자랑하라.”

그와 동시에 엑스시온에서 희미하지만 영롱한 빛이 뿜어 나오기 시작했고, 토지에르 경은 재빨리 프로토타입 청기사에서 내려왔다.

“두부를 원상 복구하고 청기사 주변에 있는 모든 철 구조물을 치워라.”

“예. 야, 모두들 빨리 움직여라. 이봐, 그 사다리 빨리 치워. 머리에 감긴 사슬 천천히 내려, 이 새끼들아, 너희 마누라 유방 만지듯 살살……. 옳지, 그렇지.”

청기사의 머리가 닫히고 쇠사슬까지 완전히 제거되자 토지에르 경이 기술자들의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자네 아랫사람 부리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군. 나는 완전히 조립이 끝나려면 내일 점심때는 넘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우두머리는 상급자의 칭찬에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감사합니다, 토지에르 경.”

토지에르 경은 품속에서 제법 묵직해 보이는 가죽 주머니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모두들 함께 술이라도 한 잔씩 하게나. 청기사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된 데 대한 폐하의 기쁨의 표시라 생각하고 오늘은 모두들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보게.”

“감사합니다, 토지에르 경.”

평지에서는 그런대로 따라왔지만 험난한 산길을 통과하게 되자 라나가 드디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그런 여행을 감당할 만큼 체력이 따라 주지 못했던 것이다.

“팔시온, 발 아파요. 좀 쉬었다가 가요.”

워낙 험한 산길이어서 말을 탈 수는 없었고, 적당히 짐만 싣고 끌고 다녀야 하는데, 라나는 조금만 걸으면 “발 아파요”였고 약간만 강행군을 하면 얼굴색이 하얘지면서 뒤로 넘어갔다. 그야말로 체력은 완전 꽝이었던 것이다.

이 짐 덩어리로 인해 시간은 더욱 지체되고 있었고, 모두 곱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당연했다. 거기다 약간만 힘든 일을 시키면 연약한 여자가 어쩌구 해 대면서 반항하고……. 심지어는 설거지조차 안 하려고 드니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말이다.

“제길, 그때 꽁꽁 묶어서 병사들 편에 보내 버리는 건데…….”

시드미안의 투덜거림에 팔시온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보냈어야 하는 건데…….”

“그래도 중간에 도망쳐서 또 따라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나.”

“이왕에 데리고 왔으니 일단 이 산맥을 넘어야지요. 놈들의 흔적으로 봤을 때 아무래도 토리아 왕국 쪽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토리아와는 사이가 안 좋으니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요?”

“흐음, 토리아의 국경 요새를 거치지 않고 들어가는 길은 없나?”

“몇 군데 있습니다. 사실 그 넓은 곳을 다 지킨다는 건 무리니까요. 요새가 건설된 곳은 많은 군사들이 통과할 만한 널찍한 산길들이죠. 좀 험하더라도 돌아가면 길은 많습니다.”

“좋아. 제일 안전한 곳으로 부탁하네.”

“하지만 라나가 따라올 수 있을지…….”

그러면서 둘은 저 뒤 말 등에서 위태위태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소녀를 쳐다봤다. 이렇게 험한 산길에서까지 말을 타야만 하는 짐 덩어리라니…….

충돌Ⅲ

미온지에 폰 크로마스는 자신이 데리고 온 수련 마법사가 책을 들여다보면서 마법진을 그리는 모습에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마법사라고 불리는 인물들은 지금 모두 청기사 제작에 참여하고 있었기에, 그나마 4사이클급이라도 할당받은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마법사들과 함께 다녔던 과거를 생각해 보면 하는 짓이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다 끝났습니다, 크로마스 경.”

큼직한 마법진의 중간에 수정 구슬을 놓고 주문을 외워 마법진을 가동시킨 수련 마법사가 크로마스에게 알렸다. 크로마스는 수정 구슬로 다가갔다.

“토지에르 경!”

그러자 수정 구슬에 노마법사의 모습이 나타났다.

“예정 시간보다 좀 늦었군.”

크로마스는 특별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관계로 연락을 위해 수련 마법사를 할당받았고, 연락 시간은 언제나 저녁 9시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산길이다 보니 널찍한 공터를 찾기 힘들어서 오늘은 약간 늦은 것이다.

“예, 혹시 새로운 정보가 있습니까?”

“있네. 이건 트루비아에서 나온 정보인데, 시드미안이 트루비아 국왕에게 보낸 전갈에 따르면 지금 그와 함께 행동하는 인물들은 단순한 모험 파티야. 그들은 무예 수련자 세 명, 여자 용병 한 명, 3사이클의 수련 마법사 한 명, 모험가 두 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신관 한 명과 5사이클 마법사 한 명, 기사 한 명을 데리고 시드미안이 합류한다고 되어 있더군.

지금까지는 코린트에서 사람을 파견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네. 정보에 따르면 그 후에 국왕이 타이탄 쿠마 사용 허가서를 시드미안에게 보낸 모양이야. 그걸 보면 아마도 타이탄은 쿠마 한 대뿐인 것 같으니 잘해 보게.”

“알겠습니다. 힘이 나는 것 같군요. 하하하…….”

통신을 끝내고 수련 마법사가 마법진을 지우고 있는 사이, 기사들은 모여서 공격 계획을 짰다.

“놈들의 이동 속도가 형편없으니까 자네는 뒤에서, 자네는 오른쪽, 자네는 왼쪽, 나는 앞으로 간다. 공격 시간은 2일 후 놈들이 평원으로 나간 다음이다. 공격 개시 시간은 오전 10시. 놈들로부터 10킬로미터 밖에서 타이탄을 불러내 탑승한 후 돌격해 들어간다. 알겠나?”

“예.”

“사방에서 포위하며 압박해 들어가야 하니까, 시간을 철저히 지켜야만 한다.”

“예.”

“지금까지의 정보로는 놈들의 타이탄은 한 대다. 하지만 그 정보가 틀릴 수도 있으니 두 대의 타이탄이 나타나면 무조건 후퇴한다. 알겠나?”

“예.”

“먼저 세 대는 쿠마를 공격하고, 자네는 검은색 옷을 입은 검사가 있으니 그놈을 공격해라. 딴 놈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우선 그놈부터 죽이고 다른 놈들을 죽여라. 모두 죽이면 우리와 합류해서 함께 쿠마를 요리하기로 하지.”

“명심하겠습니다.”

시드미안 경 일행은 근 14일을 소비해서야 산맥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토리아 왕국에 들어섰으므로 대단히 조심해서 이동해야만 했다.

토리아 왕국은 트루비아 왕국보다는 덩치가 훨씬 더 큰 왕국이었다. 하지만 그 두 나라 사이에는 거대한 산맥이 가로막고 있었기에 토리아에서 트루비아를 직접 공격하기는 아주 어려웠다. 또 트루비아도 토리아의 이런 약점을 이용해 약소국임에도 불구하고 당차게 나갔으므로, 사이가 아주 좋지는 않았다.

“이제부터 토리아 왕국인데……. 혹시, 토리아에서 꾸민 짓이 아닐까요?”

“흠,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앞으로 행동 조심하게. 트루비아 사람이란 걸 들키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까.”

팔시온의 말에 시드미안 경은 침착하게 대꾸하고, 일행을 지휘해 계속 이동했다. 시드미안 경은 보통 남자들이 그러하듯 콧수염만 짧게 길렀지만, 여행을 시작하면서 한 번도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랐다. 만약 예전부터 알던 인물이라도 얼핏 보면 알아보기 힘든 형상을 하고 있었다.

평지에 도착해 이틀째가 되자, 시드미안 경은 팔시온에게 물었다.

“언제쯤 인가가 나올까?”

“국경 근처 마을은 경비가 삼엄하기 때문에 돌아왔으니까, 아마 한 3일 정도 더 가야 할 겁니다.”

“3일이라……. 어?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야?”

아주 약한 쿵쿵거리는 소리와 미세한 땅의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라뇨? 아무것도…….”

시드미안 경의 말과 동시에 안토니 크로와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드미안 경은 안토니의 주문이 끝나기를 기다려 줄 입장이 아니었다. 땅을 울리는 이런 진동음은 타이탄 외에는 내지 못한다. 그것도 한두 대가 아니었다.

입으로 외치지는 않았지만 시드미안 경의 마음과 연결된 타이탄 쿠마가 공간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시드미안 경은 쿠마의 머리통이 위로 들리는 것을 보면서 안토니에게 외쳤다.

“모두 조심해. 타이탄이 한두 대가 아니야.”

그는 쿠마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후 위쪽에 마련된 좌석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위로 올려졌던 머리가 다시 아래로 내려왔고, 좌석의 앞쪽으로 밀려 있던 철 구조물이 시드미안 경의 몸쪽으로 바짝 붙으면서 안전벨트 역할을 했다. 시드미안 경은 쿠마의 머리에 뚫려 있는 여러 개의 구멍들로 밖을 바라봤다. 자신의 위치가 5미터나 높아진 만큼 더 멀리까지 보였다.

“으음…….”

시드미안 경은 사방에서 달려오고 있는 네 대의 타이탄을 보면서 신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법사들은 일제히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공격 마법을 외우기 시작했고, 로니에 사제는 각 무사들의 검에 마법을 걸어 주고는 샤이하드의 축복을 내리기 시작했다. 축복을 받으면 어느 정도 두려운 마음이 가라앉고 방어력이 상승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타이탄에게 한 방 맞았을 때 그게 과연 효과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신관 라나는 사방에서 달려오는 거대한 타이탄을 보고는 완전히 두려움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고 난리였다. 그녀는 신관이었기에 샤이하드의 축복이 아예 통하지 않았다. 샤이하드는 다른 신을 받드는 자에게는 힘을 내려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드미안은 사방에서 타이탄 네 대가 달려오며 포위망을 좁히는 것을 보고 경악해서 중얼거렸다.

“로메로급이 네 대나……. 하지만 토리아 왕국에는 로메로급이 없을 텐데?”

로메로급 타이탄은 마도 왕국 알카사스에서 총 242대가 생산된 대단히 우수한 타이탄이다. 과거에는 알카사스가 주력 타이탄으로 사용했었지만, 노리에급으로 대체되면서 모두 다 외국에 수출해 버렸다. 그 때문에 상당수의 국가들이 약간씩 가지게 되었다. 로메로는 미스릴을 상당히 얇게 입혔고, 높이 4.6미터인 작은 체구에 출력은 1.0배짜리 엑스시온을 가지고 있었다. 표준보다 조금 작고 뼈대도 쓸데없이 두껍게 만들지 않아 아주 가벼운 타이탄이었다.

그렇다 보니 스피드가 아주 빨라 상대하기 매우 까다로운 타이탄들 중의 하나였다. 거기에 여러 나라에서 몇 대씩 보유한 매우 널리 알려진 타이탄이었기에 모든 표식이나 문장을 다 지워 버린 상대의 타이탄만 보고는 어느 나라 것인지 알아보기가 매우 힘들다는 이점도 안고 있었다.

“최악이군. 포위망이 좁혀지기 전에 선수를 치기로 하지.”

쿠마가 빠른 속도로 한 대의 타이탄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다른 쪽에서 달려오던 두 대가 쿠마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남은 한 대는 일행들이 모여 있는 쪽을 향해 계속 달려왔다. 타이탄들이 가까워지자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쿵, 쿵!

“흠…, 저 녀석은 내 거라 이거지.”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다크가 검을 뽑아 들며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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