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930)

쾅!

쿠마가 검을 내리찍자 로메로는 재빨리 방패로 막았다. 하지만 상대의 무게가 더욱 무거웠고, 또 출력도 좋았다. 거기에 쿠마에 타고 있는 인물은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쿠마와 맞부딪친 로메로의 기사는 방패에 힘을 주어 밀치기보다는 상대가 내리찍는 힘을 이용해 뒤로 빠졌다.

먼지를 흩날리며 뒤로 거대한 로메로가 후퇴하자, 쿠마가 검을 휘두르며 압박해 들어갔다. 하지만 상대는 방패로 재주껏 막기만 할 뿐 반격을 하지 않았다. 이때 쿠마는 양 옆에서 두 대의 로메로가 뛰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뒤로 힘껏 도약했다.

쿵!

쿠마는 거의 15미터 높이로 도약해서 20미터 정도 뒤로 빠져 버렸고, 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로메로 한 대가 휘두른 검이 처음에 쿠마와 대결하고 있던 로메로의 방패에 직격했다.

쾅!

“제길, 저 자식은 왜 저렇게 눈치가 느려?”

미온지에 폰 크로마스는 멍청한 부하가 적의 움직임에 속아서는 동료를 공격하는 걸 보고 기가 찰 뿐이었다. 거기에 새로이 자신의 종이 된 로슈토르의 힘이나 무게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로슈토르의 육중한 체구를 앞으로 움직이며 외쳤다.

“시드미안! 네 녀석이 3개월만 늦게 왔어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내 귀염둥이의 첫 번째 재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운 좋은 줄 알아라.”

상대가 돌진해 들어오자 쿠마는 곧장 거대한 방패를 들어 상대를 가격했다. 그러자 상대도 함께 방패로 맞받아쳤다.

쾅!

무게가 가벼운 상대의 몸이 휘청하는 찰나 쿠마가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옆에는 또 다른 로메로가 검을 휘두르며 접근하고 있었다.

“제길…….”

챙!

쿠마는 셋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전개해 나갔다. 하다 못해 둘만 돼도 어느 정도 이길 가능성이 있을 텐데……. 거기에 공격을 리드해 나가는 로메로 한 대의 검술 실력은 상당했다.

칼리안은 정말 이렇게 황당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콰콰쾅!

타이탄에 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얄팍한 검 한 자루 들고 있는 검객의 검에서 푸른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그는 방패로 막기 바빴고, 방패에서는 엄청난 폭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적의 공격력은 엄청나다. 방패가 이미 15퍼센트의 손상을 입었다. 반격을 하지 않고 계속 방어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타이탄은 원래가 마법에 의해 만들어진 골렘이란 생명체의 연장선상에 있는 마물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자아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직접적으로 의사 표현도 가능했다.

“제길, 알고 있어.”

칼리안은 자신의 로메로급 타이탄인 그로스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고민했다.

‘어디서 저런 놈이 나왔지?’

이때 그의 눈앞이 벌게지면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꽈광!

저쪽에 있는 마법사 중 한 명이 제법 강력한 마법을 날린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따위 약한 마법으로는 대마법 주문의 벽을 뚫고 자신의 종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7사이클급 이상의 마법이라면 몰라도…….

<위험하다.>

“앗차!”

그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앞에 있던 놈이 또다시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엄청난 강기 세례를 퍼부었고, 그걸 그로스가 직접 움직여 방패로 막은 것이다.

“정말 대단해……. 하하하, 이 정도 엄청난 놈들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거나 먹어랏!”

또다시 검에서 뿜어져 나가는 퍼런 강기의 다발……. 하지만 이번 것은 상대도 막기가 약간 난해했다. 왜냐하면 다크가 그 장기인 경공술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며 타이탄의 등 뒤에서 퍼부었기 때문이다.

순간 그로스는 등을 약간 구부렸다. 그리고 머리도 자신이 숙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숙였다.

꽝!

다크의 강기 세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엄청나게 강한 강철 외피를 뚫지는 못했다. 그와 동시에 그로스가 몸을 뒤로 틀면서 검을 아래로 찍어 내렸다.

펑!

검이 흙 속으로 깊게 뚫고 들어갔지만 토막 난 시체는 없었다. 이미 다크는 옆으로 비켜선 후 위로 몸을 날린 것이다. 그는 약간 흐트러진 상대의 자세를 알아보고는 그로스의 머리에 강기 다발을 토해 냈다. 그리고 그로스는 재빨리 방패로 그걸 막았고…….

펑!

모든 공격이 통하지 않자 다크는 재빨리 뒤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상대가 그대로 도망치도록 놔둘 정도로 킬리안도 멍청하지는 않았다.

쿵, 쿵, 쿵!

타이탄은 그 엄청난 덩치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검객을 향해 돌진해 갔다. 하지만 그자는 이상하게도 팔시온 일행들로부터 5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상대가 다가오기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쿠마는 계속적인 경고를 주인에게 보내고 있었다.

<스커트(치마처럼 여러 개의 강철판을 붙여 다리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장갑판)가 잘려 나갔다. 그리고 흉부 2차 장갑도 파괴되었다. 더 이상 상대와 싸우는 것은 위험하다.>

“헛소리하지 말고 싸움에 집중해!”

시드미안 경은 쿠마에게 소리치며 또다시 공격을 퍼붓는 상대의 검을 방패로 밀어내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놈들은 치고 빠지는 작전을 계속하며, 지속적으로 약간씩의 타격을 쿠마에게 가하고 있었다. 일대일이라면 겁날 게 없는 놈들이지만, 치고 빠지기만을 계속하니 시드미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상처 수복에 마나를 보내지 마라.”

<왜?>

“모험을 하겠다.”

쿠마가 그대로 검을 일(一) 자로 가로 그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검기가 뿜어져 나오며 상대 로메로들을 덮쳤다. 그들은 재빨리 방패로 검기를 막았다. 잠시지만 시야가 자신의 방패에 막힌 것이다. 머리와 가슴 부분이 타이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그쪽을 우선해서 막은 데다가, 또 쿠마의 검기가 때린 곳도 상대의 머리 쪽이었기 때문이다.

쿠마는 검기를 뿌림과 동시에 재빨리 움직여 시야가 막힌 오른쪽 로메로의 다리를 베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런데 쿠마가 시드미안의 명령을 거부했다.

<위험하다.>

쿠마가 시드미안의 마나를 흡수하며 재빨리 방패로 막자마자 엄청난 진동이 전해졌다.

쿵!

<상대가 검기를 사용했다.>

“놀랍군. 보통 실력으로는 타이탄에 타고 검기를 구사할 수 없을 텐데……. 타이탄에 타고 검기를 뿌리려면 보통 때보다 네 배 정도의 마나가 더 드니까. 저기 있는 녀석도 엄청난 놈이었군, 제길…….”

시드미안은 쿠마를 재빨리 뒤로 후퇴시키며 투덜거렸다. 이때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고, 그 소리에 무심결에 뒤로 고개를 돌린 시드미안의 시야에는 뿌연 연기 같은 게 로메로 한 대를 덮치는 모습이 보였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던 다크는 자신을 향해 검을 들고 달려드는 타이탄 그로스를 보며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외쳤다.

“죽어랏!”

그러면서 검을 그대로 땅에 박아 넣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쿠콰콰콰콰……!

다크가 알고 있는 최강의 무공, 즉 자신의 기와 대지의 기를 충돌시켜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내는 무공을 시전했던 것이다. 다크의 검이 땅에 박힘과 동시에 다크의 기와 대지의 기가 충돌하며 무시무시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칼리안은 공격하고자 했으나 그로스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주인의 생명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로스가 방패로 앞을 막음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강기의 폭풍이 그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방패가 박살 나 버렸고 외부 장갑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2차 장갑 파괴, 1차 장갑 파괴, 본체에 12퍼센트의 손상을 입었다. 이제부터 상처 수복에 들어간다.>

“크윽!”

칼리안은 자신의 몸속에서 방대한 마나가 유출되기 시작하는 걸 보고 신음성을 터뜨렸다.

“그만……. 상처 수복은 필요 없다.”

<너와 엑스시온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소한 1차 장갑만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로스는 자신의 주인인 칼리안의 말을 무시하고 상처 수복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정도 엄청난 타격을 입었을 때는 재빨리 타이탄에서 탑승자가 내려야 한다. 안 그러면 최악의 경우 타이탄까지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칼리안은 움직이지 못했다. 엄청난 마나가 빠져나감으로 인해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상대의 움직임이 거의 멈추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당량의 기가 느껴지자 다크는 그대로 상대를 향해 강기를 퍼부었다.

쿠쾅!

타이탄의 내부는 주물(鑄物)로 만들어진 본체와 강철판으로 된 1차 장갑, 또 그 위에 더욱 두터운 강철판으로 된 2차 장갑이 있다. 그 말은 곧 가장 외부의 2차 장갑은 깨부수기 어렵지만, 1차는 그래도 2차보다는 쉽고, 가장 내부인 주물로 된 본체는 1차 장갑보다 훨씬 약하다는 말이 된다. 그 본체에 강기가 격중되자 본체 부분이 퍽퍽 패였다.

<이번 공격으로 장갑이 더욱 얇아졌다. 이제 같은 곳을 동일한 힘으로 두 번 더 직격당하면 엑스시온이 파괴된다.>

그로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쾅하는 굉음과 함께 또다시 진동이 느껴졌다.

<적의 공격력이 수복력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더욱 많은 마나가 필요하다.>

“…….”

하지만 더 이상 칼리안의 대답은 없었다. 엄청난 마나의 손실로 이미 기절해 버린 것이다.

다크는 상대방에게서 더 이상 괴이한 마력이 느껴지지 않음을 느꼈다. 그로스는 자신의 주인인 칼리안의 마나를 더 이상 뽑아내면 죽을 것이라는 걸 알고, 엑스시온에 저장된 자신의 마력을 상처 수복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엑스시온이 엑스시온으로서 동작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마력(魔力)이 있어야만 한다. 그게 본체를 수복하기 위해 소모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엑스시온은 폭주했고, 곧이어 그 생명력을 잃고 고철 덩어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엄청난 광경을 보며 넋을 잃었는지 모두의 움직임이 잠시 중지되었다. 하지만 곧이어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나게 큰 검이 다크에게 날아왔고, 다크는 그걸 재빨리 피했다.

그 틈을 이용해서 로메로 한 대가 재빨리 다가오더니 파괴되어 쓰러져 있는 로메로를 들고 도망치기 시작했고, 나머지 두 대의 로메로들도 그 뒤를 따라 엄청난 속도로 도망쳐 버렸다.

다크는 상대의 뒤를 추격할까 했지만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공포와 긴장으로 굳었던 몸을 푸는 걸 보고는 추격을 포기해 버렸다. 사실 강기 세례를 퍼붓느라고 그의 공력도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봐, 다친 사람 없나?”

시드미안이 재빨리 쿠마에서 뛰어내리며 일행들에게 다가갔고, 일행들은 서로를 두리번거렸다.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군요. 저 아이 빼고…….”

팔시온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옮긴 인물들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라나를 볼 수 있었다.

“흐음, 별건 아니군. 아마도 공포 때문에 기절한 것 같아. 미디아 양이 라나를 간호해 주겠나? 나는 저 녀석의 상처가 너무 심해서 치료를 도와야겠는데…….”

시드미안 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쿠마가 느릿느릿 걸어 다니며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파편들을 줍고 있었다.

미디아는 담요를 펴서 라나를 눕힌 후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말을 끌어다가 햇빛을 가리고, 수건에 물을 적셔 닦아 주고……. 그러고 있을 때 안토니 크로와는 치료 마법으로 라나의 원기를 북돋아 주고 있었고, 나머지는 식사 준비를 한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쿠마는 탑승한 시드미안의 마나를 흡수하며 자신의 몸에 떨어져 나갔던 조각들을 붙이고 있었다. 스커트의 잘린 부분을 딱 맞붙이고 재생해서 매끈하게 연결하고……. 또 찢겨지고 떨어져 나갔던 가슴 부분 2차 장갑 조각도…….

다행히 놈들이 치고 빠지면서 타격을 가했기에 큰 상처는 없었지만 2차 장갑이 거의 너덜너덜해 진 것만은 사실이었기에 그 복구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쿠마를 공간 저편으로 보내 버리면 나중에 복구는 되겠지만 그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걸릴 것이기에 이렇게 복구를 하는 것이다.

쿠마의 복구를 완료한 시드미안은 천천히 쿠마를 몰고 와서 상대가 다크에게 던졌던 그 검을 잡고는 완전히 가루가 날 때까지 박살을 내 버렸다. 화풀이라도 하듯이 검을 부수고 있는 시드미안을 향해 미카엘이 물었다.

“화풀이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시드미안이 빙긋이 미소 지었다.

“잘 봤네. 화풀이하는 중이지. 타이탄의 검은 단 하나야. 처음 엑스시온이 동작하면서 몸에 부착했던 검 한 자루. 이걸 내가 가루로 만들어 버리면 놈이 나중에 이걸 찾으러 와서는 신경질이 머리끝까지 오르겠지. 어차피 나중에 복구가 되겠지만 검 한 자루 복구하는 데 들어가는 마나가 꽤 되거든.”

“모두 끝났으니 이리 와서 식사나 하시죠.”

“작전은 완전히 실패입니다.”

미온지에 폰 크로마스의 보고를 들은 토지에르 경은 약간 놀란 듯이 말했다.

“놈이 타이탄을 가지고 있었나?”

“아닙니다.”

“그렇다면?”

“검 하나만 달랑 들고 타이탄 한 대를 완전히 박살 내 버렸습니다. 가지고 왔으니까 나중에 한 번 보시죠. 타이탄은 완전히 죽어 버렸고, 타고 있던 기사는 너무 많은 마나를 상실해 5개월은 정양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로메로 정도 되는 타이탄을 겨우 검 한 자루 들고 박살 낼 만한 실력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마스터급이 강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정도나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강하더군요.”

“그렇다면 그자를 없애려면 어느 정도 숫자의 타이탄이 필요할까?”

“글쎄요, 그 엄청난 기술을 연속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 테니까 열 대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사람 하나 죽이자고 로메로를 열 대나 소모한다는 말인가? 그거 말고 딴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

“저, 토지에르 경.”

“왜 그러나?”

“저는 검만을 써 왔기에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만…, 상대가 정말 강할 때 힘으로 그를 제압하기는 힘듭니다. 속임수를 쓴다든지, 아니면 인질이나 뭐 그런 걸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적과 싸우는 데 꼭 검에는 검으로 대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흐음, 하지만 타이탄을 박살 내고, 그 엄청난 파멸의 불꽃을 맞고도 살아난 놈인데……. 어떻게? 그렇다면? 아! 그 방법이 있었군. 그놈은 검술은 강하지만 마법은 잘 모르는 것 같았어……. 흐흐흐.”

노마법사의 눈이 점점 생기를 되찾았고, 그는 큰 소리로 제자를 불렀다.

“다론!”

조금 지나자 그의 제자가 달려왔다.

“예.”

“나하고 갈 데가 있다. 자네도 함께 가겠나? 우리의 강력한 적이 사라지는 순간을 구경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잘 안 될지도 모르지만 의외의 성과가 있을지도 모르네.”

“예,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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