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930)

“으윽! 이건 뭐야?”

꽁꽁 묶여 있던 여자 애가 떠들어 대기 시작하자 팔시온이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깼군…….”

그러더니 여자 애 쪽으로 자신의 말을 몰고 갔다.

“한숨 더 자지 그래?”

“이 자세로 잠이 오겠어?”

“그것도 그렇군.”

팔시온은 서둘러서 끈을 풀어 줬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에요?”

“아, 네가 잠든 사이에 이동 중이야. 그래서 할 수 없이 말 등에 묶어 놓은 거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냘픈 여자 애를…, 나도 이 정도까지는 안 했는데…….”

“네가 여자냐?”

“…….”

한참 말이 없던 다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어디로 가는 거예요?”

“마도 왕국 알카사스. 거기서 할 일이 있어.”

이때 뒤쪽에서 미카엘이 팔시온에게 소리쳤다.

“야! 마을은 멀었냐? 가까운 데 마을이 없으면 여기서 밥 먹고 가자.”

“저기 고개만 넘으면 마을이니까 조금만 참아.”

과연 고개를 넘자 작은 마을이 나타났고, 그들은 곧 작은 식당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모두 당당히 식당 안으로 들어서서 자리를 차지하고 주문을 해 대기 시작했다.

“오므라이스, 채소 스프, 그리고 갈렛슈 큰 걸로 한 컵 가득!”

열여섯 살 정도 먹어 보이는 급사 소년이 다크를 살짝 훔쳐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다가 그 주문 내용을 듣고는 놀라서 물었다.

“그거, 그거… 너, 네가 마실 거야?”

“빨리 가져와.”

“너, 너는, 너무 어려서… 안 돼! 내가 주, 주인아저씨한테 혼난다구.”

“이런 꼬맹이까지 나를 몰캉하게 봐?”

고운 목소리기는 했지만 약간 언성을 높이며 살기 가득한 표정으로 일어서는 다크를 보고 시드미안 경이 제일 먼저 지금의 사태를 눈치 챘다. 강렬한 살기를 읽음과 동시에 시드미안의 몸은 튕기듯 움직였고, 다크의 샤벨이 매끄러운 발검 동작에 이어 소년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가까스로 잡을 수 있었다. 만약 다크의 힘이 조금만 더 셌다면 막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방금 전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칼날을 생각하며 바짝 얼어 있는 급사 소년을 보고, 시드미안 경이 툭툭 쳐서 정신이 나게 만들었다.

“갈렛슈 큰 거 한 잔… 가득 따라서 빨리 가져와. 죽고 싶지 않으면…….”

소년은 방금 일어난 그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소녀를 힐끔거리며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윽고 식사가 날라져 오자 다크는 그걸 약간만 먹고는 기침을 해 대면서도 갈렛슈 한 컵을 몽땅 목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일행이 식사를 마칠 때쯤에는 완전히 뻗어 있었다. 다크가 픽 쓰러지자 시드미안이 그제야 일행들에게 말했다.

“다크의 칼은 지미 자네가 보관해. 아무래도 지금 저 정신 상태로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야. 사실 도움도 되지 않고…….”

“그러죠.”

“식사 끝났으면 이동하지.”

시드미안의 말이 떨어지자 지미는 다크의 몸에서 검집을 풀어내고, 다크를 어깨에 지고 가서 여태껏 해 오던 대로 말 등에 묶었다.

예쁜 여자 애를 말 등에 묶자 길 가던 사람들이 쭉 늘어서서는 의심스런 눈길을 지미에게 보내며 쑤군거렸다. 중간 중간에 인신매매가 어쩌구 하는 게 들리자 지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제길, 쫄따구인 게 죄지. 나 그렇게 나쁜 놈 아니란 말이에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자기가 가만히 생각해 봐도 인신매매범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춘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억울할 뿐이었다.

“제길…….”

이때 저쪽에서 무장한 경비병 두 명이 다가왔다.

“당신, 통행증 좀 봅시다.”

“예?”

“이 애는 왜 묶는 거요?”

“우리 일행인데 술 취해서 완전히 뻗어 버렸으니 묶죠. 인신매매범 아니라니까요? 자, 봐요.”

모험가 일행으로 알카사스에 무투회 참석차 간다는 인증이 붙은 국경 통행증을 보고는 경비병이 쓴웃음을 지었다.

“고생이 많으시겠수. 술 못 먹게 좀 두들겨 패 버려요. 어디 콩알만 한 게 벌써부터…….”

“휴, 팰 수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차마 때릴 데가 없는데…….”

마도 왕국 방문

시드미안 일행이 알카사스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였다. 중간에 약간씩 말썽이 있었지만, 요즘 들어 다크의 히스테리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겼기에 일행들로서는 큰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샤벨은 빼앗아 버렸기에 다크의 작고 연약한 주먹으로 맞아 봐야 아플 것도 없었다. 잘못 맞으면 눈탱이 부근에 퍼렇게 멍이나 들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있었다.

다크가 부리는 행패의 대부분은 술주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 근래 한 달 동안 다크는 완전히 자포자기하고 술에 절어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행이 이런 다크의 행패를 참고 있는 것은 잡고 두들겨 패다가 잘못해 뼈다귀라도 부러질까 봐 조심했기 때문이지, 결코 힘이 달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히야, 여기가 마도 왕국 알카사스로군요.”

앞에 펼쳐진 특이한 경치를 보며 지미가 감탄사를 터뜨리자 팔시온이 거보란 듯 말했다.

“어때? 국경을 넘어 오고 나니까 풍경이 완전히 다르지?”

색다른 경치에 경험이 조금 떨어지는 일행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걸 보고, 미카엘이 약간 짜증 섞인 소리로 말했다.

“이봐! 두리번거리면서 촌놈 티 내지 말고 빨리 가자.”

그들이 목적지로 잡은 곳은 알카사스 제국 서쪽에 위치한 대도시 미네온이었다. 미네온은 예로부터 엑스시온의 생산지로 유명한 도시였지만, 요즘은 카로텔이 더 유명하다. 그 이유는 알카사스의 황제가 1.25 이상의 출력을 지니는 엑스시온의 수출을 금지하면서 그 통제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1.20 이상의 엑스시온은 카로텔에서만 생산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카로텔은 강력한 엑스시온을 생산하는 도시로 소문이 났고, 나머지 도시들은 그 명성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들이 국경을 통과한 후 이틀을 소비해 도착한 알카사스의 국경 도시 그렉시아는 거대한 마법진으로 둘러싸인 도시였다. 사방에 수많은 마법진 같은 형상들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마도 왕국다운 도시였다.

“아주 재미있는 구조로 되어 있네. 무슨 성벽을 꼭 마법진처럼 만들어 놨어요?”

라빈의 말에 팔시온이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마법진처럼 만든 게 아니라 마법진이야. 과거에는 성 외곽에 방어 마법진이 구축되어 있어서 웬만한 공격 마법으로는 알카사스의 도시를 공격할 수 없었지. 하기야 옛날에는 방어 마법진이 꽤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타이탄의 등장으로 별로 쓸모없어졌어. 대신 곳곳에 있는 마법진들은 방어가 아닌 실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다시 보수되어 그 나름대로 시민들에게 아주 뛰어난 기능들을 제공하고 있지.”

“뛰어난 기능이라구요?”

“그럼. 저쪽 시 외곽에 있는 엄청나게 거대한 마법진들을 만들어 그쪽에 끌어들인 물을 데워 도시에 공급하지. 그 때문에 알카사스의 대부분의 도시에 있는 상수도관은 온수와 냉수, 두 가지 관으로 되어 있어.

트루비아의 경우 샤헨 등 몇몇 대도시에나 상수도가 설치되어 차가운 물이 공급되지만, 여기 알카사스는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상수도 시설이 되어 있지. 물론 뜨거운 물까지 나오는 상수도가 말이야. 또 방어 마법진은 온도 조절 마법진으로 바꿀 수도 있어. 그래서 알카사스의 도시들은 겨울에도 꽃이 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해.”

“이야…….”

그들이 마도 왕국 알카사스로 들어가는 그렉시아시 외곽에 도착하자 경비병 두 명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통행증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시드미안은 토리아 국경을 넘어오며 발급받은 신분증명서를 그들에게 건네줬다.

“으음, 미네온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무투회에 참가하시러 오셨군요. 무투회에 참가하러 많은 파티들이 오고 있죠. 꽤 특이한 파티군요. 무예 수행자 여섯 명, 노예 한 명, 모험가 한 명, 마법사 두 명에 신관 한 명. 여기 기록되지 않아서 그런데 어떤 신을 섬기시나요?”

그러자 팔시온이 재빨리 말했다. 알카사스는 크로노스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었으며, 샤이하드를 받들고 있다는 게 드러나면 무조건 사형이었다.

“전쟁의 신 아레스를 섬기는 사제시죠.”

여행 중이기에 신관의 옷이 아닌 가죽 갑옷만을 입고 있다는 점을 악용해 팔시온이 시치미 뚝 떼고 말하자, 상대는 존경스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신관’을 바라본 후 정중하게 말했다.

“아… 그러십니까? 여기 통행증 있습니다. 미네온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무투회는 마법사들이 많이 참가하기에 기사들은 거의 안 오시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무투회는 한 달 후에 열리는데 좀 빨리 오셨군요. 그런데 저 노예는?”

그러면서 말안장에 꽁꽁 묶여 있는 예쁜 여자 애를 가리켰다.

“예, 토리아에서 구입했죠. 노예 매매 증서도 보여 드릴까요?”

그러면서 시드미안은 뻔뻔하게도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있지도 않은 서류를 찾는 척했다. 술에 취한 엘프는 말도 안 되기에 이번에는 다크를 노예로 둘러 댄 것이다.

“아닙니다. 그걸 보여 주실 필요까지는 없구요. 여기 알카사스는 사람을 노예로 부리지는 않습니다. 노예로 쓴다면 엘프나 드워프, 수인족(獸人族) 같은 거죠. 하지만 저 아이는 사람인데……. 그러니까 여기 알카사스에 있을 때는 저렇게 묶어 놓지 마세요. 보기에 안 좋으니까.”

“하지만 그러다가 도망치면 당신이 책임져 줄 겁니까? 어제도 도망치려고 해서 아예 술을 잔뜩 먹이고 이렇게 묶어 놨는데…….”

“예, 어쨌거나 여기서는 사람을 노예로 쓰는 곳이 아니니까 좀 눈에 띄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럼, 무투회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공간 이동 문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쪽에 파란색 건물 보이시죠? 저기에 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팔시온이 모두를 인도해서 파란색 건물로 다가가자 지미가 궁금한 듯 물어 왔다.

“공간 이동 문이 뭐예요?”

“알카사스는 마도 왕국이란 명성에 어울리게 각 도시를 잇는 이동 마법진이 건설되어 있지. 그래서 왕국의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는 데 1분도 안 걸린다구.”

그 건물 한쪽에는 「입구」, 한쪽에는 「출구」라고 쓰여 있었고, 입구라고 쓰인 곳 앞에 탁자를 하나 놔두고 앉아 있던 사람이 물었다.

“어디로 가시나요?”

“미네온으로 갑니다.”

그 사람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두꺼운 책을 꺼내서 이리저리 뒤적거리더니 옆에서 푸른색 종이를 한 장 꺼내 기록했다.

“으음, 열한 명하고 말 열한 마리. 사람은 30실버, 말은 40실버에요. 그러니까 모두 770실버입니다.”

“여기 있소. 15골드 20실버.”

“감사합니다. 여기 있는 표를 가져가서 나중에 보여 주세요.”

그러면서 그 사람은 「그렉시아, 사람 11, 말 11, 770실버」라고 쓰인 파란 종이를 건네줬다. 돈 계산이 끝난 후 팔시온은 입구 쪽으로 말을 끌고 갔고 모두들 뒤따라서 들어갔다. 그 안은 거대한 공간으로, 1백 명 정도는 너끈히 서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모두 안으로 들어오자 팔시온이 외쳤다.

“미네온, 이동!”

주변이 뿌옇게 흐려지다가 암흑 속에 묻히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또다시 뿌옇게 흐려졌다가는 다시 그 마법진 안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미네온에 왔다. 자, 나가자구.”

문 입구에는 여러 명의 무장한 경비병들이 서 있다가 밖으로 나오는 팔시온 일행에게 말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렉시아에서요. 통행증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이용권도…….”

팔시온이 내미는 서류와 그렉시아에서 받았던 파란 표를 본 후 경비원이 말했다.

“모두 토리아에서 오셨군요. 그런데… 이 아이는 왜 통행증이 없죠?”

“그쪽에서도 말했지만 노예한테 무슨 통행증이 있다는 말이오? 안 그래도 도망치려고 한 벌로 꽁꽁 묶어 놨는데…….”

“흐음, 노예라구요?”

경비병은 말 등에 꽁꽁 묶여 있는 다크의 아름다운 얼굴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찬찬히 살펴보더니 말했다.

“통과!”

건물 안은 바뀐 게 하나도 없었기에 반신반의하던 일행은 밖으로 나오자 완전히 풍경이 바뀌어 있는 걸 보고는 놀랬다. 국경 부근의 작은 도시였는데 여기는 완전히 번화한 대도시였던 것이다.

“정말 신기하네요.”

“이래서 마도 왕국이란 칭호가 붙은 거지. 마법을 실생활에 적절히 이용해서 사람이 살기에 대단히 쾌적하게 만들어 놨어. 여기서는 사시사철 따뜻한 물이 나온다구.”

“정말이요?”

“그럼, 수도꼭지에서…….”

“수도꼭지가 뭔데요?”

“이런 무식한!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까 길거리에서 이러지 말고 가자.”

알카사스의 햇살은 매우 부드럽고 따스했다. 팔시온의 설명으로는 이곳의 온도는 언제나 따스한 봄. 이 모두가 마법진의 위력이라는 게 조금 꺼림칙했지만 사람이 살고, 생활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조건임은 분명했다. 이것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게 조금은 특이할 뿐…….

그들은 길을 가면서 특이한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경비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경비원들은 보통 두 명씩 짝을 지어 다녔는데 허리에는 장검을 차고 있었다. 그들을 멀찍이 보면서 팔시온이 설명했다.

“알카사스는 풍요로운 국가야. 그렇기에 그만큼 치안 상태도 아주 좋지. 아마 소매치기를 걱정 안 해도 되는 국가는 알카사스와 아르곤뿐이겠지. 아르곤에서는 잡히기만 하면 샤이하드의 율법에 따라 도둑질한 팔을 자르니까 소매치기가 성행하기 힘든 거지만…….”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물론 여관을 잡으러 가는 거지. 일단 여관을 잡은 다음 갈 데가 있어.”

“어디 아는 여관이라도 있어요?”

“물론… 없지. 나도 여기는 처음이니까. 저기 여관이 그럴듯해 보이는데 들어가자구.”

그들은 ‘수정 지팡이 여관’으로 우루루 들어갔다. 여관의 1층은 보통 여관들이 그러하듯 식당이었다. 여행객이 들이닥치자 예쁘장하게 생긴 주인 여자가 나오며 그들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

“방이 있소?”

“예. 그런데… 저 아가씨는?”

여자가 가리킨 곳에는 지미가 말 등에 꽁꽁 묶여 있는 다크를 풀어 주고 있었다.

“예, 도중에 몸이 아프고 열이 심해서……. 그래서 말 등에서 안 떨어지게 묶어 놓은 거죠. 방 있어요?”

“예, 방은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다 묵을 방은 없는데요. 방이 세 개뿐이라……. 무투회가 벌어질 때가 다 되어가니까 요즘 타지의 손님들이 많이 오시거든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방 세 개면 충분하지. 어떻게 구성을 맞춰 잠자든 그건 우리들 책임이고 말이오. 말들이 지쳤으니 콩을 듬뿍 섞어서 여물을 부탁하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식사를…….”

“예. 네리! 말들을 마구간에 넣어라. 손님들은 저를 따라 오시죠.”

그 여자는 앞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 후 2층에 방 하나, 3층에 방 둘을 보여 주며 알아서 들어가라고 한 후 내려갔다. 그런데 문제는 모두 다 4인용 방이라는 데 있었다.

“그럼 2층의 방은 미디아 양과 다크가 쓰고, 3층 첫 번째 방에는 팔시온, 미카엘, 지미, 라빈, 가스톤이 그리고 남은 방에는 나하고 스미온, 안토니, 로니에 씨가 쓰면 되겠군.”

그러자 미카엘이 투덜거렸다.

“이건 불공평해. 누군 4인용 방을 둘이 쓰고, 누군 4인용 방에 다섯이 껴 자란 말이에요? 그래 봐야 땅바닥에 잘 사람은 정해져 있으니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구요. 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요.”

“아,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나중에 방이 비면 바닥에서 잤던 사람은 독방을 쓰는 행운을 주지. 어떤가?”

“그건 별로 좋은 의견이 아니에요.”

“그럼 어쩌자는 말이야?”

그러자 스미온이 절충안을 제안했다.

“그럼 제비를 뽑아서 하나를 여자들 방에다 집어넣으면 어떨까요? 그러면 침대 수와 인원이 딱 맞잖아요.”

이때 미카엘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이 지미나 라빈을 넣기로 하지. 녀석들은 어려서 무슨 짓을 하지는 못할 테니…….”

그러자 지미가 펄쩍 뛰었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술에 취해 곤드레가 되어서 술주정이나 하는 계집애와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싫어요. 다크하고 같이 있기는 싫다니까…….”

“그건 저도 싫어요. 뒤치다꺼리할 게 뻔한데…….”

미카엘이 주먹을 지미의 눈앞에 들어 보이며 험상궂은 얼굴로 말했다.

“너희들이 지금 싫고 좋고 따질 위치냐? 좋게 말로 할 때 들을래? 아니면 몇 대 맞고 들을래?”

“좋아요……. 누가 싫다고 했나요? 헤헤, 제비뽑기 할래?”

역시 눈앞의 주먹에는 약해지는 것이 인간인가……. 지미의 말에 라빈이 말했다.

“야, 그냥 둘이서 같이 들어가자. 서로 번갈아가며 치다꺼리하면 편하잖아.”

“좋아.”

“야, 다크 데리고 따라와.”

나머지 일행들은 3층으로 올라가고, 지미는 쓰러져 있는 다크를 어깨 위에 짐짝처럼 메고는 2층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제법 넓었고, 창문이 커서 꽤나 실내가 밝았다. 좌우로 2층 침대 두 개가 놓여 있었는데, 지미와 라빈은 오른쪽의 침대들을 점령했고 여자들은 왼쪽을 차지했다.

미디아는 일단 방에 들어오자마자 목욕부터 하겠다고 목욕탕으로 들어갔고, 피 끓는 두 젊은이는 앞으로 들려올 오묘한 음향(?)을 감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이어 쩔그렁하는 소리와 뭔가 가벼운 게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옷 벗는 소리 같은데?”

“아마 조금 지나면 물소리가 들리겠지.”

하지만 곧이어 들린 소리는 그 소리가 아니었다.

“아악! 어떻게 하면 물이 나오는 거야? 물은 어디 있는 거지?”

덜컹!

살짝 방문을 열고는 미디아가 머리만 꺼낸 상태로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어떻게 하면 물이 나오는 거야? 팔시온 좀 데려와.”

“예.”

팔시온이 막 라빈과 함께 들어섰을 때 다크가 갑자기 침대 밖으로 상체를 기울이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우웨… 웩… 웩!”

속이 편해지자 다시 침대에 눕는 다크를 보고 팔시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누가 데리고 살지 걱정된다. 걱정돼.”

투덜거리는 팔시온을 보고 미디아가 다급하게 물었다.

“팔시온, 물은 어떻게 하면 나오는 거야? 여기 목욕탕이라고 해 놓고 물이 없어.”

“이런 멍청하기는……. 철로 만든 휘어진 것들이 벽에 붙어 있는 게 보이지?”

“응.”

“그 위에 보면 십자 모양이 붙어 있지?”

“응.”

“그걸 오른쪽으로 돌리면 물이 나오고, 왼쪽으로 돌리면 안 나오게 되어 있어. 하기야 대도시에 와 본 적이 없으니 수도꼭지도 모르지.”

“그래, 난 변두리 전쟁터만 쫓아다녔다. 보태 준 거 있어?”

“빨리 씻고 아래로 내려와. 밥 먹고 미네온 마법사 길드에 갈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다크 정신 좀 차리게 만들어. 알았어?”

팔시온은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가 버렸고, 이제 지미와 라빈에게는 웬수덩어리가 토해 놓은 오물을 뒤처리하는 임무가 남아 있었다.

“으이그…….”

“휴, 냄새 한번 고약하네. 토하려면 마시지를 말지…….”

“뭐 다크가 토한 게 한두 번이야? 제기랄, 기집애 뒤치다꺼리하자고 따라나선 여행이 아니었는데…….”

둘이 투덜거리면서 깨끗이 바닥 청소를 끝내고 다크의 예쁜 입술까지 닦아 주고 나자 미디아가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닦으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녀를 보고 지미가 서둘러서 말했다. 빨리 내빼지 않으면 또다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우리들은 샤워하기 전에 밑에 내려가서 수련 좀 할 테니까 그때까지 다크 좀 부탁드려요.”

“알았어.”

두 남자가 나가자 미디아는 문을 잠그고 다크의 옷을 벗겼다.

“충격이 크긴 컸던 모양인데, 도대체 방법이 없을까? 이래 가지고는 몸만 더 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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