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930)

그 집주인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돌아왔다. 집 안이니까 모두들 안심하고 푹 자고 있는데 문이 슬쩍 열리면서 그 남자가 들어왔다.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시드미안이 재빨리 검을 잡고 일어서는 순간, 어제 안토니가 보여 줬던 그 영상과 같은 엘프가 약간은 놀란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를 보고 시드미안은 재빨리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어제저녁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실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용서해 주시기를…….”

그러자 엘프는 빙긋이 미소 지었다.

“괜찮습니다. 어제저녁은 추웠는데 이불이라도 좀 가져다가 쓰시지…….”

“그럴 수야 있습니까? 허락 없이 지붕을 빌린 것만 해도 죄송한데……. 이봐! 일어나. 빨리 일어나.”

시드미안이 깨워 대자 모두들 부스스 일어났다.

“무슨 일이에요?”

“집주인이 왔어. 인사해야지.”

“안녕하십니까? 허락 없이 집에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서로 인사가 시작되자 지미는 시드미안에게 저쪽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수련 중인 다크를 가리키며 조용히 속삭였다.

“다크는 어떻게 할까요?”

“자기가 수련할 때 몸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으니까 옆에 가서 말을 해. 못 듣는 거 같으면 좀 더 큰 소리로 말하고.”

조금 있다가 다크도 그들 쪽으로 왔고, 모두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저도 인간 세상을 조금 떠돌아다녀 봤는데, 모험자 분들치고는 꽤나 예의에 밝으시군요.”

“아닙니다. 과찬의 말씀을…….”

“그런데 이곳에는 무슨 일로? 이 일대는 공포스러운 블루 드래곤 키아드리아스의 영토인데, 혹시 드래곤 슬레이어(Dragon Slayer : 용 살해자)라도 되고 싶으시오?”

카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엘프가 농담조로 말하자 시드미안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드래곤 슬레이어야 꿈만 많은 몽상가들이 하는 소리고……. 혹시 그를 만나면 물어볼 말이 있어서요.”

“드래곤에게 물어본다고요? 당신 제정신이오? 물어보기 전에 뱃속에 들어갈 게 뻔한데…….”

“그래도 목숨을 걸고라도 물어봐야 할 게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나도 젊었을 때는 제법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서 약간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소.”

“그럼, 혹시 블루 드래곤에 뿔이 달려 있습니까?”

무슨 엄청난 거나 물어볼 줄 기대했는지 한참 흥미를 보이던 카렐이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당연히 있죠. 드래곤 중에 뿔 없는 드래곤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 그거 알아보려고 목숨을 거셨소?”

“그건 아니구요. 블루 드래곤의 뿔은 몇 개인가요?”

“여기 살면서 몇 번 키아드리아스를 봤는데, 내가 봤을 때 분명히 하나였소. 이렇게 이마 중간에 뿔 하나가 길게 솟아 있죠.”

그 말을 들은 시드미안은 실망한 듯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럼 블루 드래곤도 아니군…….”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그럼 혹시 이렇게 생긴 짐승이 있는지 아십니까?”

카렐은 신탁에서 받았던 그림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내가 알기로는 푸른색이 나면서 이렇게 생긴 짐승은 없소. 색깔을 무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지. 여행하면서 듣기로 레드 드래곤이 뿔이 3개라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생기지 않았소. 이건 무슨 투구나 마신의 머리 모양 같군요.”

“투구나 마신이라구요? 하지만 투구는 아닐 거고, 마신이라면…….”

시드미안은 안토니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이보게 안토니, 마신 중에서 이렇게 생긴 마신이 있을까?”

“마신들이야 원체 숫자가 많으니까 그 생김새들을 기억할 수는 없죠. 하지만 모양이 꽤 다양하니까 어쩌면 이렇게 생긴 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 그럼 돌아가서 마신에 대해 연구를 해 보면 되겠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데 그러시나요? 그대를 보아하니 꽤 수련을 쌓은 분 같은데……. 그냥 모험가나 할 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예, 저희들은 드래곤 하트를 훔쳐간 놈들을 추격하는 중인데, 신탁으로 드래곤 하트의 행방을 물으니까 달랑 이런 그림이 나왔죠. 그리고 그놈들 중에는 뛰어난 흑마법사까지 있거든요. 그걸 보면 아무래도 이 그림이 마신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드래곤 하트라……. 정말이지 인간들이 가지기에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군요.”

“예, 드래곤의 마나가 집중된 것이니만큼 그게 나쁜 목적에 사용된다면 큰일이지요.”

한참 얘기를 나누던 카렐은 저쪽에서 또다시 내공 수련을 하고 있는 다크를 보면서 말했다.

“저 아이도 동료인가요? 동료치고는 너무 어리군요…….”

“아주 뛰어난 동료였습니다. 디스라이크라는 저주에 걸려서 저 모양이 되었지만요. 실의에 빠져 한 달 정도 술독에 빠져 있다가 요즘 들어 다시 수련을 시작했죠. 대단한 정신력을 갖춘 검객이죠.”

“후후, 디스라이크에 걸린 것치고는 꽤나 특이한 모습이군요. 그건 그렇고 대단한 젊은이네요. 저렇게 자연스레 마나를 다스릴 줄 알다니…….”

“마나를 다스린다구요?”

“그럼 그대는 그걸 못 느꼈단 말이요? 아주 미약한 양이지만 스스로의 통제에 의해 움직이고 있어요. 그러면서 외부에서 마나를 조금씩 흡수하여 그 덩어리를 키우고 있지요. 대단한 기술입니다. 나는 여태껏 저런 방식으로 수련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그 말에 시드미안의 얼굴에는 약간은 씁쓰레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크에 대해 그렇게 잘 아는 게 약간은 마음에 걸렸지만, 상대는 정령을 부리는 엘프니까 어쩌면 마나의 움직임에 특별히 민감할 수도 있기에 시드미안은 별 생각 없이 말했다.

“그럴 만할지도……. 저주를 받기 전에는 검 한 자루로 타이탄도 박살 냈던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였으니까요. 전쟁의 신전에 등록은 되지 않았지만 그때 그는 아마 마스터의 경지에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지요.”

“서론이 길었던 것 같은데 여기 먹을 것도 좀 있으니까 식사라도 같이 하시겠소? 과일이나 채소뿐이지만…….”

“아닙니다. 지금 동료들이 준비하고 있으니 같이 드시지요. 밖으로 나가시죠. 지금쯤 준비가 다 끝났을 겁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내 것도 가져올 테니…….”

모두 죽 둘러앉아 카렐이 가져온 생과일과 과일 절임을 그들이 끓인 스프, 팬케이크와 함께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그 와중에 카렐은 여자답지 않게 퍼질러 앉아서 무표정하게 음식들을 씹고 있는 다크를 보며 말을 건넸다.

“그대는 누구에게 검을 배웠나요?”

“스승들에게서요.”

“스승들이라고요? 그러면 당신의 스승들도 당신만큼 검을 다룰 줄 압니까?”

“아니요.”

“흐음,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나는 여기 사람이 아니에요. ‘송’이라고 불리는 아주 아주 먼 곳에서 왔지요.”

“송?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당연히 들어 본 적이 없겠죠. 여기와는 차원도, 시간도, 공간도 다른 곳이니까.”

카렐은 경악하며 다시금 다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럼 당신은 이 세계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예, 그렇게 봐야 별로 차이도 못 느낄 거예요. 그놈의 저주 때문에 겉모양이 바뀌었으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예전의 수준까지 올라갈 거라고 생각합니까?”

“10년 이내. 어쩌면 그보다 더 당겨질지도 모르죠. 여기는 내가 살던 곳보다 기…, 아니 마나가 더욱 충만한 곳이니까.”

“그렇다면 겨우 10년 만에 마스터의 경지까지 오를 자신이 있다는 말입니까? 지금의 그 쓸모없는 육체로?”

“내 계산이 정확하다면요. 사실 그보다 더욱 앞당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 정신 상태로는 그건 목숨을 건 도박이라서 실행을 못 하고 최대한 안전한 방법을 택하고 있을 뿐이에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거든요.”

“놀랍군요. 그토록 빠른 시간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니…….”

“그건 내가 한 번 지나왔던 길이니까 그렇지요. 그건 그렇고, 당신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입니까?”

다크는 커다란 눈으로 상대의 눈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내 눈과 천천히 다져지는 감각…, 그리고 느낌은 당신이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고 경고를 보내고 있어요. 엄청난 경지까지 검을 이해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안 그런가요?”

카렐은 아직까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하지만 느낌은 종종 틀릴 수도 있지요.”

그러면서 그는 허리에 찬 고풍스런 검을 가리켰다.

“이 녀석은 내가 오래전 세상을 떠돌 때 사용했던 겁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걸 써 본 적은 거의 없어요. 그때 배웠던 검술도 거의 다 잊어버렸구요.”

미소 띤 카렐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다크는 다시 스프를 먹기 시작하며 말했다.

“검이란 것은 배우기도 어렵지만 잊어버리기는 더욱 힘들지요. 나도 배웠던 수많은 검술들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데 40년 정도가 걸렸으니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일행들은 모두 음식 먹기를 멈추고 다크의 예쁜 얼굴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중에는 먹던 게 목에 걸렸는지 기침을 심하게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는 놀라서 입속에 있던 음식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카렐은 좀 더 짙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대가 저주에 걸리기 전에 만났다면 더 좋았을 텐데…….”

다크도 방긋이 미소 지었다.

“나 또한…….”

“그대의 나이는 몇 살이오?”

“일흔둘. 그대는?”

“420세라고 해 두지.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대단히 오래 사셨군요.”

“원래 엘프의 수명은 5백 년 정도니까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요…….”

“그런데 내가 여기 와서 만난 그 어떤 인물보다 강한 무예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왜 이곳에서 숨어 지내고 있죠?”

그러자 카렐은 빙긋이 미소 지었다.

“나는 결코 숨어 지내는 게 아니에요. 다만 추악한 인간들 근처에서 살고 싶지 않을 뿐……. 그 더러운 욕망과 추악한 심성을 그만큼 뼈저리게 느꼈으면 되었지, 더 이상 내가 인간 세상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겠지요. 또 엘프는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 결코 은둔하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 거의 모든 엘프가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지내는 게 좋으시다니 다행이군요. 내가 알고 있던 어떤 선배도 그렇게 세상을 떠돌며 살았죠. 그의 경우는 과거 저질렀던 어떤 실수에 대한 사죄 같은 거였지만……. 어쨌거나 내가 아는 강자들은 이상하게 세상과 떨어져서 살기를 더 좋아하는군요.”

“그도 당신만큼이나 강했나요?”

다크의 눈이 회상에 잠기듯 약간 몽롱해지며 살짝 미소를 띠었다.

“나보다도 더 강했죠. 단 한 번, 잠시 스쳐가듯 만났지만 그에게서 꽤나 많은 걸 배웠지요.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카렐은 그런 다크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러면 나중에 당신이 잊었던 무예를 되찾았을 때 나와 한번 비무를 해 주겠습니까?”

“예, 당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어요.”

그러자 카렐은 빙긋이 미소 지으면서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아름다운 푸른 보석이 박힌 반지를 빼내어 건네주었다.

“이건 내가 오래전 여행에서 얻은 거죠. 원래 나한테 별로 맞지 않는 반지였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가지게 되었지요. 나중에 힘을 되찾으면 이게 필요도 없겠지만, 지금은 이게 당신을 지켜 줄 겁니다. 사양 말고 받아요.”

은근히 권하는 통에 다크는 할 수 없이 그 반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크는 카렐의 굵은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가 자신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끼워지자, 잠시 빛을 내더니 곧이어 자신의 손가락에 딱 맞게 줄어드는 것을 보고 이게 마법 반지라는 걸 알았다.

“그 녀석의 이름은 아쿠아 룰러(Aqua Ruler : 물의 지배자). 그 녀석을 잘못 사용하면 그대의 목숨이 사라질 수 있지만, 그대가 그런 사악한 인물이 아니라고 믿고 주는 것이니, 그 반지를 사용해야만 할 때는 꼭 세 번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지금 그대의 힘으로는 그걸 사용할 수 없어요. 그러니 그냥 끼고만 있으면 나머지는 그 녀석이 알아서 해 줄 겁니다.”

아쿠아 룰러라는 말이 나오자 그 말이 뜻하는 걸 알고 있는 몇 명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것은 무한한 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걸 모르는 다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그럼 제 힘을 찾을 때까지만 빌릴게요. 내 힘을 되찾았을 때 그때는 이걸 돌려드리겠어요. 사실 그때쯤 되면 이건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요.”

다크의 말을 들은 카렐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가 주인을 꽤 잘 찾아준 것 같군. 그럼 그때 되돌려 받기로 하지요.”

그들은 그곳에 더 이상 있을 이유도 없었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기에 기억에 남을 만한 아침 식사를 끝낸 후 카렐과 작별을 하고 서둘러서 산을 내려갔다.

카렐과의 대화에서 그 그림의 주인공이 아무래도 마신일 가능성이 높아진 이상 마법에 대한 연구가 잘 되어 있는 알카사스에서 그에 대한 단서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빨리 돌아가기 위해 점심은 건조 식량으로 때우면서 길을 재촉했다. 밤이 되어 식사를 끝내고 모닥불 가에 쭉 둘러앉자 곧 다크가 받은 반지에 대한 얘기가 터져 나왔다. 그 이야기의 시발점은 시드미안이 끊었다.

“다크.”

“왜요?”

“카렐이 엄청난 실력의 검객인 건 어떻게 알았지? 나도 눈치 채지 못했는데…….”

“그야 당연하죠. 엄청나게 높은 경지까지 올라가면 자신이 가진 마나를 몸속 깊이 숨겨서 밖으로 드러내지 않죠. 그냥 보면 평범하게 보여요. 나도 오랜 시간 수련을 하며 쌓은 경험에 의한 것일 뿐……. 꼭 뭐라고 집어서 말할 수는 없군요.”

그러자 팔시온이 물었다.

“아까 그 말 정말이야? 일흔두 살이라는 거.”

“정말이에요.”

“이야! 그렇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최고 고령자가 가장 어리게 보이는 소녀로군. 그건 그렇고 이렇게 되면 내가 말을 높여 불러야 할까요, 다크 어르신?”

그러자 다크가 낮은 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킥킥, 그따위 소리 하지 말고 같이 놓자. 그렇게 덩치 큰 인물이 나한테 높임말을 쓰면 다들 미쳤다고 생각할 거야. 아니면 나를 귀족쯤으로 생각하겠지. 하여튼 둘 다 내가 원하는 건 아니야.”

“그도 그렇네. 하기야 엘프들은 1백 살이 다 되어 가지고 세상에 나오면서 스무 살 정도의 외모를 가지지만, 그들이 모험가들과 파티가 되었을 때 모험가들이 엘프에게 존댓말 쓰는 거 본 적이 없으니 뭐 그렇게 하지. 또 갑자기 존댓말 쓰자니까 거북하고…….”

“그런데 어떻게 일흔두 살의 나이에 20대 중반 정도의 외모를 가질 수 있었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이해가 안 가는데……?”

“내가 예전에 살던 곳에서는 ‘화경’이란 단계에 들어가면 체내에 쌓인 그 엄청난 마나로 육체를 완전히 젊게 바꿀 수 있지. 화경이 검강을 뿜어낼 수 있는 단계니까 아마 이쪽의 마스터하고 같은 무예 수준일 거야. 혹시 마스터라고 불리는 사람을 본 적 있어?”

그러자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스터란 존재는 이 세상에 열두 명 정도가 생존해 있을 뿐인, 정말이지 지고무상의 존재였기에 그들과 만날 가능성은 평생 길거리를 가다가 1만 골드를 주울 확률보다 낮았다.

“아마 그들도 나처럼 젊은 육체를 가지고 있을 거야. 또 몸속에 쌓인 마나의 양이 많다면…, 그러니까 지금 시드미안 정도의 양만 있다면, 어느 정도 기술만으로도 노화를 막을 수 있어. 노화를 억누르는 것은 마나만 많다면 결코 어려운 게 아니니까.”

그러자 솔깃해진 시드미안이 관심을 보였다.

“그 기술 나한테 좀 가르쳐 줘.”

다크는 씩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래 봐야 겉모습뿐이야. 근골의 노화는 똑같이 진행되니까 말짱 헛거야. 대신 너희들이 말하는 마스터부터는 다르지. 그때 완전히 몸이 새로 재구성되는 ‘환골탈태’라는 걸 경험하게 되는데, 그걸 여기 말로는 잘 모르겠어. 그걸 거치면 어거지로 노화를 억누르는 게 아니라 진짜로 몸이 젊어진다고.

여기서는 마나를 이용한 여러 가지 기법들이 발달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들 정도 경지까지 올라갔다면 그따위 기법은 필요 없이 저절로 몸이 젊어지게 돼 있어.”

미카엘은 그 말을 듣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대단하군. 나는 마스터라면 엄청나게 늙은 인물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닐 줄이야. 앞으로는 젊어 보이는 사람들한테도 조심해야겠어.”

“그건 그렇고 다크 너, 그 아쿠아 룰러가 뭐 하는 반지인 줄 알고 있는 거냐?”

시드미안의 물음에 다크가 고개를 가로젓는 걸 보면서 지미가 궁금한 듯 말했다.

“우리들한테도 말해 줘요. 우리들도 그게 뭐 하는 건지 잘 모르니까.”

시드미안이 쭉 주위를 둘러본 후 말했다.

“내가 설명하기는 좀 그러니까 전문가인 안토니가 설명해 주게.”

“예, 그러니까 아쿠아 룰러는 물의 지배자. 물을 지배하는 강력한 마법 반지죠. 전설에 따르면 물의 정령왕 나이아드(Naiad)의 힘이 봉인되어 있다고 전해지는 봉인 반집니다. 그 힘을 모두 끌어내면 폭우를 부를 수 있다고 전해지는 엄청난 물건입니다.”

안토니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라빈이 물었다.

“그런데 정령왕이 봉인되어 있다면 이 세상에 물은 없어야 되잖아요. 또 홍수도, 비도 없어야 하는데 왜?”

“아, 그건 라빈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말이 봉인이지 사실은 봉인이 아니거든. 이 세상에 정령을 봉인할 수 있는 물건은 없어.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있을 뿐이지. 저 아쿠아 룰러를 통해 나이아드는 자신의 힘을 원하는 자에게 주겠다고 계약을 맺었을 뿐이지. 그러니까 결론은 저 아쿠아 룰러가 곧 나이아드고 나이아드가 곧 아쿠아 룰러가 되는 거야. 언제라도 아쿠아 룰러를 매개체로 나이아드를 불러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아마도 카렐이 한 말은 아쿠아 룰러 자신이 파괴되지 않도록, 또는 그걸 가진 자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지켜 준다는 계약도 있는 모양이지. 그러니까 저걸 가지고만 있어도 어느 정도 힘이 되어 줄 거라고 하는 거지.”

지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아쿠아 룰러가 그렇게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까요?”

“아무렴. 과거 저걸 이용해서 도시 하나가 완전히 물속에 잠긴 일이 있었지. 하지만 그 후로 거의 3백 년간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설마 카렐이 그 사건의 주인공은 아니겠지?”

안토니가 농담 삼아 뒷얘기를 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미디아가 말했다.

“어쩌면 카렐이 그 나쁜 놈을 죽이고 그걸 빼앗았는지도 모르죠. 카렐이 말했잖아요. 나쁜 일에 쓰면 목숨이 날아간다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화가 계속 이어지자, 시드미안이 손을 저으며 일행의 대화를 끊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그만 자자. 내일도 엄청나게 걸어야 하니까.”

『<묵향6 : 외전 - 다크 레이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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