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60/930)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꺄하하하…….”

어제저녁 잠들기 전까지는 그래도 봐 줄 만하던 지미와 라빈의 얼굴은 아침이 되자 그야말로 대단했다. 멍의 색깔은 그야말로 최고의 절정기를 나타내는 검푸른색을 뽐내고 있었고, 두들겨 맞은 곳은 퉁퉁 부어올라 이게 사람의 얼굴인지 몬스터의 얼굴인지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웃지 마세요.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지미는 가급적이면 라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배꼽이 빠져라 웃어 대는 다크에게 항의했다. 그들끼리도 서로의 얼굴을 보고 배를 잡고 웃었는데, 이번 일을 일으킨 당사자가 이 얼굴을 보고 웃지 않으면 아마 천사의 탈을 뒤집어쓴―겉모양은 아름다우니까―‘악마’일 것이리라.

“전… 다크 님께서도 마법을 익히셨는데, 혹시 치료 마법은 배우지 않으셨습니까?”

“꺄하하하호호호호……. 난 그런 거 몰라.”

“제길 할 수 없군. 이 얼굴로 어떻게 밖에 나가지? 안 그래, 라빈? 풋후후후…….”

지미는 라빈의 얼굴을 보면서 말하다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누르기 바빴다. 자신의 처참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떡이 된 라빈의 얼굴만 보이니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한쪽 눈이 퍼런 데다가 얼굴 반쪽은 퉁퉁 부어오른 라빈의 얼굴에서 과거 그 준수하던 얼굴을 떠올린다는 것은 정말 무리였다.

“웃지 마. 제길, 아야야……. 이제는 이쪽 이빨까지 흔들거리네. 너는 이빨 괜찮냐?”

“말도 마라. 앞니 하나가 부러졌어.”

지미가 이가 빠져나가 찬바람이 드나드는 검은 구멍을 보여 주자 라빈도 급기야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푸헤헤헤…….”

“기껏 보여 줬더니 친구를 비웃어? 못된 녀석.”

“헤헤……. 야, 밥 먹으러 가자. 더 이상 죽치고 있어 봐야 답도 안 나온다.”

“가시죠.”

지미와 라빈은 식당으로 가는 길에 잡화점에 들러 1골드를 주고 포션(聖水) 두 병을 구입했다. 원래가 아르곤 제국의 주력 수출품 중 하나가 이 ‘샤이하드의 숨결’이라는 포션이었는데, 보통 포션보다는 가격이 반밖에 안 될 정도로 저렴하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었다. 대신 포션에 기록된 ‘주의 사항’에 자신이 해당된다면 샤이하드의 은총은 바랄 수 없기에 모두들 그 주의 사항만은 꼭 읽어 보고 구입했다.

사실 주의 사항이란 것도 별것은 아니었다.

※ 주의 사항

1. 샤이하드 외의 타 신을 믿는 자에게는 효과가 없습니다.

(무신론자는 상관없음)

2. 마음이 사악한 자에게는 효과가 없습니다.

3. 효과를 보지 못하셨다고 해도 절대 환불해 드리지 않습니다.

4.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그런데 이 샤이하드의 숨결의 가장 큰 논란이 되는 문제점이 2번 사항이었다. 누가 사악하고 사악하지 않은지 알 재주가 없었기에, 일부 악덕 상인들이 성수가 아닌 그냥 물을 넣어 팔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 놓고는 효과 없다고 따지면 ‘당신의 속마음이 사악하기 때문이다’라고 우기면 어쩔 건가? 그 때문에 생겨난 조항이 4번 조항이었다.

일부 돈 없는 여행객들의 경우 이 샤이하드의 숨결을 사서 가지고 다녔지만, 경험 있는 여행객들은 절대로 샤이하드의 숨결을 구입하지 않는다. 그만큼 가짜가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아르곤과의 국경에 위치한 도시였기에 그들은 가짜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전제 하에 샤이하드의 숨결을 구입했다. 일부는 얼굴에 바르고 일부는 입을 헹궜다. 이 상태로는 입속이 다 터져서 밥도 못 먹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곳에서 파는 샤이하드의 숨결이 가짜는 아닌 모양인지 둘의 얼굴 모양새가 확실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부러져 나간 이빨이야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흔들리던 이는 단단히 고정되었다. 어제 저녁밥을 먹었던 식당은 완전히 박살 나서 내부 수리 중인지 문을 열지 않았기에 일행은 그 옆에 있는 여관의 식당으로 갔다.

될 수 있으면 자극성 없는 음식을 시켜서 먹는 일행의 주위로 왔다 갔다 하는 남자 손님들 중 태반이 얼굴이 떡이 된 걸 보면 과연 어제의 집단 난투극에 참가자가 많기는 많았던 모양이었다.

“도대체 어제 왜 그랬습니까?”

“뭘?”

“몰라서 물어요? 충분히 혼자서 해치우고도…, 아니지, 그놈들뿐 아니라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떼거리로 덤벼도 이길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소름끼치는 연극을?”

“그야 물론 재미있으니까 그랬지. 너희들은 재미없었니? 나는 아주 재미있었는데…….”

“으으으윽! 악마!”

“내가 악마인 거 이제 알았냐? 식사 다 했으면 나가자. 오늘도 또 유쾌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시간 죽일 필요는 없겠지.”

새로운 모험 파티

대 아르곤 제국의 서부에 위치한 거대 도시 트로이데. 트로이데는 아르곤 제국이 가진 5개의 수도(首都) 중 하나였다. 아르곤은 대 제국이란 칭호가 어울릴 정도로 거대한 국가였기에, 전 국토를 5개로 나누어 4명의 법왕(法王)이 각기 하나씩 다스렸고, 남은 하나는 현재 교황(敎皇)인 고도 5세가 직접 다스렸다.

트로이데는 아르곤의 서부에 위치한 안지오 지역의 수도였고, 아르곤 서부의 종교, 교통, 상업, 문화, 군사, 정치의 중심지였다. 트로이데의 주민 수는 무려 45만에 달했고, 트로이데 일대에는 2개 기사단과 3개 사단이 주둔했다. 그야말로 트로이데의 규모는 이제 신흥 제국인 크라레스의 수도 크로돈에 비해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정말 대단하군. 하지만 ‘중원’의 도시들에 비하면 별건 아냐.”

여기저기 이색적인 석상(石像) 등 각종 종교적인 예술품들이 눈에 띄었고, 가옥의 구조도 크라레스가 돌이나 나무를 사용하는데 반해 여기서는 벽돌을 애용했다. 곳곳에 색유리를 이용해 특이한 그림들을 그려 놓은 거대한 창문이 난 건물들도 보였다. 그 건물들의 규모는 매우 대단해서 수백 명이라도 들어가서 살 수 있을 정도로 커 보였다.

하여튼 크라레스에 비해 아르곤의 도시들은 아주 호화롭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도시에는 거대한 분수대가 설치된 공원이 있었고, 색유리로 모양을 낸 창문이 달린 큰 건물이 적어도 하나 이상씩은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날개 달린 사람이나, 아름다운 여인 또는 남자들을 흰 대리석으로 조각한 조각상들이 있었다. 이 모든 걸 본다면 엄청나게 호화로운 도시이고, 또 부유한 게 틀림없어 보이는데도 사람들의 복장은 매우 수수했다. 어떻게 보면 옷에 신경 쓸 돈으로 도시를 단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말 아름다운 도시야. 아르곤의 도시들은 모두 깨끗하고 아름답군.”

“그렇네요.”

마지못해 대꾸하는 지미와 라빈의 얼굴에는 그새 수많은 상처들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들의 망할 상관이 가는 곳곳마다 말썽을 불러 일으켜 대니 지미와 라빈의 몸이 성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거의 4일에 한 번씩 패싸움을 해야 했고, 이틀에 한 번 이상 결투를 해야만 했다. 여행이 시작된 후 겪은 그 수많은 칼부림 속에서 아직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기적같이 느껴지는 지미와 라빈이었지만, 사실 그 둘은 절대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살아 있는 것이다. 언제나 다크가 시비를 건 상대는 그들과 비슷한 실력이거나 다수인 경우 한 수 처지는 인물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도둑도 없고, 시비 거는 사람도 없고, 약간의 다툼만 벌어지면 수비대원들이 칼을 들고 뛰어오니 별로 재미없다는 게 좀 단점이긴 하지만…….”

“그건 그래요.”

그러면서 히죽거리는 지미. 변방에서는 몰랐지만 이런 도시에서는 다크가 아무리 시비를 붙여 싸움이 나도 어디서 나타나는지 수비대원들이 뛰어와서 싸움을 말렸다. 그 때문에 지미와 라빈은 꾀가 생겨서, 크라레스에서는 인적 없는 곳만 찾아서 다녔지만 아르곤 깊숙이 들어온 다음부터는 치안이 좋은 도시에서 도시로만 이동해 왔다.

이때 다크는 저 앞쪽 마차 옆에 서 있는 젊은이가 자신을 홀린 듯이 멍청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끼고, 빙그레 미소 지으며 라빈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봐, 라빈. 저 앞에 서 있는 저 녀석 보기에 어때?”

갑작스런 상관의 질문에 라빈은 그 상대를 자세히 쳐다본 후 상대에게서 느낀 점을 솔직히 얘기했다.

“예? 제법 옷차림이 그럴듯해 보이는데요. 여태껏 저 정도로 옷을 잘 입은 사람이 별로 없었던 걸 보면 꽤 높은 집안의 자제인 것 같습니다. 롱 소드를 차고 있는 데다, 팔의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는 걸 보면 검술도 꽤 연마한 것처럼 보이구요.”

“꺄하하하…….”

라빈이 얘기를 하는 동안에도 그들이 타고 있던 말은 계속 전진했기에 그 젊은이와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져 있었다. 이때 다크가 그 젊은이를 힐끔거리면서, 의도적으로 크게 웃으며 들으라는 듯 약간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건 실례잖아요, 라빈. 아무리 상대가 실력이 없어 보이더라도 겉멋만 잔뜩 든 멍충이라니…….”

그 젊은이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지는 듯하더니 곧 시뻘게졌다. 눈앞의 이 아름다운 소녀가 말하는 ‘겉멋만 잔뜩 든 멍충이’가 누군지 재빨리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런 무례한 녀석!”

“아, 아니…, 제가 뭐라고…….”

이 능구렁이 같은 상관의 속임수에 넘어간 걸 재빨리 깨달은 라빈이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다크는 일부러 라빈에게 말을 걸었고, 라빈이 한참 말하게 놔둔 후 상대에게 가까이 접근해서는 상대가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을 떠들어 댔으니, 결과는 당연했다.

정말 보기 드문 미녀를 보고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있던 그 젊은이는 자신이 숙녀 앞에서 어떤 무뢰배에게 매우 심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고는 재빨리 다음 행동을 취했다.

그 젊은이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들고는 라빈의 얼굴에다가 냅다 던지면서 외쳤다.

“무례한 녀석! 숙녀 분 앞에서 나를 모욕하다니……. 결투를 신청한다. 말에서 내렷!”

“아…, 그게, 그게 아니고…….”

“라빈, 저런 애송이 따위는 한주먹 거리도 안 된다면서요. 빨리 처리하고 가요. 예?”

살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하지만 상대가 들으라는 듯 적당히 큰 소리로 얘기 하는 소녀와 ‘안 됐군. 한두 번 당해 보냐? 알아서 조심해야지’라는 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미를 의식하며 라빈은 할 수 없이 말에서 내렸다.

기사는 상대가 결투를 신청하는 절차로 던진 장갑에 맞으면 그건 피할 수 없었다. 그다음부터는 정의와 함께 하시는 신께서 누가 옳은지를 결정지어 주는 게 정확한 순서였다.

“제기랄, 정말 싸우기 싫은데…….”

어제 결투에서 찔린 허벅지 때문에 라빈은 약간 다리를 절면서 상대 앞에 다가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제가 졌다고치고 이 결투를 끝낼 수는 없을까요?”

그 말에 상대는 이제 완전히 무시까지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안색이 새파래지며 분노를 억누른 음성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닥치고 검을 뽑아라. 샤이하드께서 정의의 편에 선 자가 누군지 밝혀 주시리라.”

라빈은 투덜거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롱 소드를 뽑아 들었다. 라빈의 롱 소드는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기에, 몇몇 전쟁터와 요 근래에 자주 겪은 결투 덕분에 칼날이 많이 상해 있었다.

“무슨 일이니? 피러스!”

막 결투를 시작하려던 두 사람의 움직임은 다급하게 들려온 높은 목소리의 인물에 의해 멈춰졌다.

“왜 검을 뽑아 들고 있는 거냐?”

재빨리 건물에서 뛰어 나오는 여인은 젊은이와 같은 엷은 갈색의 머리카락과 눈을 가지고 있었다.

“누, 누나.”

“무슨 일이야, 응? 이런 곳에서 결투를 하려는 거냐? 저, 제 동생이 무슨 실례를 저질렀는지?”

그 여인의 말에 라빈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일부러 다리를 더욱 심하게 절룩거리며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공손하게 설명했다.

“약간의 오해가 있었을 뿐입니다. 저희 일행이 워낙 장난을 좋아해서 동생 분이 오해를 하셔서 말이죠.”

“오해라고? 네 녀석은 분명히 나를 모욕…….”

“가만히 있거라, 피러스. 다리까지 부자유스러운 분인데, 네가 또 오해한 모양이구나. 저렇게 정중하신 분인데 너를 모욕했을 리가 없잖아?”

그녀는 동생에게 따끔하게 말한 후 미안한 듯 라빈에게 얼굴을 돌렸다.

“저, 무사님. 대단히 죄송한 부탁이지만 결투는 없었던 걸로 해 주시겠습니까?”

“저야 말로 그렇게 해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름다우신 레이디.”

“헛소리하지 마. 네 녀석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피러스! 결투를 금한다는 아버지의 엄명이 있었잖니? 말 안 들으면 아버지한테 말씀드릴 거야.”

피러스라 불린 그 젊은이는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더 이상의 볼일은 끝났다고 생각한 다크는 지미에게 눈짓을 하면서 말을 앞으로 몰았다. 속으로는 ‘오늘도 잘하면 한판 하는 거 구경할 수 있었는데’하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다크와 지미, 그리고 라빈은 갑작스런 여인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혹시 여행객들이시라면, 저희 집에서 묶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아버님께서는 과거 여러 곳을 여행하셨고, 또 여행담 같은걸 좋아하시기에 잠시 시간을 내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갈 길이 바빠서…….”

다크는 거절하고 계속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지미가 그녀의 말〔馬〕 꼬리를 붙잡고 가지 못하게 했다. 운 좋으면 오늘 저녁은 맛있는 식사와 조용한 잠자리가 보장되는 것이다. 지난번에 갔던 도시에서는 패싸움을 벌이다가 몽땅 잡혀 감옥에서 밤을 새웠는데, 지미는 이 도시에서까지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이 도시는 처음이라 생소한 점이 많았는데, 부탁드립니다. 저희들은 크라레스의 견습 기사(見習騎士)들로 저는 지미 도니에라고 하고, 이쪽은 다크 크라이드, 저쪽은 라빈 엘느와라고 합니다.”

“호호호, 예, 크라레스 분들이셨군요. 이쪽은 제 동생 피러스 도우러, 저는 앤 도우러입니다. 집이 약간 먼데, 따라오세요. 피러스 가자.”

피러스는 원망 가득한 표정으로 누나를 쏘아봤지만, 곧 다크 쪽으로 시선을 한번 던진 후 마음을 고쳐 잡고는 집을 향해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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