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6화-8권 (176/930)

알카사스 원로 회의

마도 왕국 알카사스는 개국(開國) 이래 줄곧 중립 노선을 걸어온 거의 유일한 국가였다. 그 덕분에 전쟁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먼 국가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알카사스가 지금까지 중립을 지켜 올 수 있었던 것이 막강한 군사력 덕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알카사스의 군사력은 막강했고, 그 뒤를 받치는 마법사들의 힘 또한 세계 최강이었다. 타이탄까지 사용하지 않더라도 웬만한 국가쯤은 마법사들만으로 간단하게 멸망시킬 수 있는 저력이 이들에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옛말이 있다. 개국 이래 역대 왕들과 중신(重臣)들은 이 말을 착실히 실행해 왔고, 지금에 이르러서 알카사스는 4대 강국에 들어갈 정도의 군사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알카사스는 여전히 중립국이었다.

알카사스의 왕궁 지하 4층에 마련된 비밀회의실. 이곳은 튼튼한 강철과 벽돌로 이루어진 매우 튼튼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방의 외곽에는 다섯 겹의 마법 방어막까지 쳐져 있어서 사실상 이 안에 거주하는 한 타살당할 염려는 거의 없었다.

“크루마와 코린트의 움직임이 수상하오. 아무래도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대들의 의견은 어떻소?”

원탁을 중심으로 놓여진 다섯 개의 의자에 앉아 있던 노인들 중 한 명이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나지막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워낙 조용한 곳이라 그 노인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정보에 따르면 양국(兩國) 모두 마법사들을 비밀리에 소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은둔하여 마법 실험에 몰두하던 고위급 마법사들까지 움직이는 것으로 봤을 때 의장(議長)님의 생각이 거의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원탁 한쪽에 앉아 있던 노인이 재빨리 상대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그 노인의 말이 끝났음에도 오랜 시간 그의 말을 받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생각에 잠겨 왕국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모인 다섯 명의 노인들, 이들이 바로 알카사스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개국 초에 형성된 원로원(元老院)은 필요에 의해 왕권을 능가하는 최고의 권력 기관으로 성장해 왔다.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원로원의 멤버는 최고의 마법사들만이 될 수 있었고, 또 종신직이었기 때문에 원로원의 멤버들 모두는 거의 1백 세에 이른 노인들이었다. 그 때문인지 이들은 아직까지 파격적인 일을 행한 적은 거의 없었다. 좋게 말하면 보수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구태의연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런 인물들이 최강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보니, 알카사스는 예로부터 큰 변화 없이 전해지는 대로 마법만을 추구하는 국가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쁜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마법사들이란 원래 지능이 우수해야만 될 수 있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한 노인이 오랜 침묵을 깨며 찌푸린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국왕은?”

“국왕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국왕이 처리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죠.”

“흐음…, 그거야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소. 일단 전쟁이 벌어진다면 최악의 경우 금지된 마법이 사용될 수도 있소. 이번에 전쟁을 벌이려는 국가들은 그 정도 능력을 지닌 마법사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렇기에 우리들도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고, 또 수출용 타이탄의 생산 대수도 좀 늘려 놓을 필요가 있소. 아무래도 전쟁이 벌어진다면 타이탄의 수요는 증가할 테니 말이오.”

“타이탄의 생산량은 어느 정도나 늘리는 게 좋을까요?”

“그대의 생각은?”

“50퍼센트 정도 더 생산해 두면 될 듯합니다. 그 외에 마법 무기들도 좀 더 만들구요.”

“잘만 하면 이번 기회에 왕국 내에서 수십 년 동안 처리하지 못했던 모든 재고품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코린트와 크루마에 사자를 보내 판매 교섭을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들도 교섭에 응해 올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오. 그리고 코린트와 크루마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여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본국에 피해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오.”

여기까지 말한 후 그 노인은 한쪽에 앉아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라지에르 경.”

“예.”

“본국의 마법 방어막은?”

“예, 현재는 생산 에너지의 50퍼센트 정도를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돌리고 있습니다만, 만일의 경우 전량을 방어벽으로 돌리도록 지시해 두었습니다.”

“좋소. 하지만 그 두 국가들이 전쟁을 확대시켜 나간다면 본국도 위험할 가능성이 있소. 이번에 전쟁을 벌이는 국가들은 그만큼 강대한 제국들이기 때문이오. 그대들의 의견은 어떻소?”

“내 생각은 이렇소이다. 본국의 기사단은 모두 네 개. 상당한 전력이지요. 하지만 기사단은 이곳저곳에 조금씩 분산되어 있는 게 사실이오. 우선 기사단이 주둔하고 있던 요충 지대에는 중장기병사단(重裝騎兵師團)을 집어넣고, 몇몇 중요한 곳에 기사단 전력을 집중시켜 두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오. 본국은 타국과 달리 공간 이동망이 매우 발달되어 있으니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전력을 집중 투입할 수 있소. 그러니까…, 기사단이 주둔할 곳은 최강의 마법 방어막이 쳐져 있는 5대 도시가 좋겠지요.”

“찬성이오.”

“찬성입니다.”

몇몇 노인들이 찬성의 뜻을 밝혔지만 의장(議長)이라 불린 노인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한다면 국왕 직속의 기사단들까지 우리들이 통제해야만 하지 않소? 근위 기사단이야 모두들 수도에 집중되어 있으니 상관없지만, 레드 이글(Red Eagle : 붉은 독수리) 기사단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여덟 개 도시에 분산되어 있는데, 그들을 한 곳으로 끌어 모은다는 것은…….”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오. 국왕이 정면으로 거부 의사를 밝혀 온다면…….”

“국법에도 정해져 있지만, 위급 시에는 왕권보다는 원로원이 우선합니다.”

“내가 그걸 모르는 게 아니요. 그렇게 된다면 국왕파와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 특히 혈기 넘치는 젊은 기사들의 대부분이 국왕파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오. 여기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국론만 분열시키는 결과밖에 낳지 않는다 이 말이오. 물론 그들 대부분이 그래듀에이트가 아니기에 지금은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나중에 그들이 그래듀에이트로 성장했을 때는 문제가 될 수 있소. 그러니 그것은 내가 국왕과 의논해서 조용히 처리하도록 할 테니까 그대들은 관여하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대신 원로원 직속의 2개 기사단은 회의가 끝난 후 곧장 이동 배치하는 것이 좋겠지요.”

드래곤 하트의 위력

“흠, 그게 아니야. 자네는 인간들 일에 너무 간섭을 하고 있네.”

“예?”

“내가 레어에만 처박혀 있는 것 같지만, 다른 드래곤들과도 간혹 연락을 하고 있지. 이번 일만 봐도 그래. 까딱 잘못했으면 자네는 큰일 날 뻔하지 않았나? 왜 인간들에게 그렇게 강력한 괴물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나?”

그 말에 카드리안은 약간 난처한 듯 미소로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그게…, 재미있어서라고 할까요? 하지만 지금 현재의 타이탄 제조 기술로는 인간이 아무리 잘나 봐야 우리 드래곤들과 상대하기는 힘듭니다.”

“지금은 물론 힘들겠지. 하지만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더욱 강력한 것을 만들지 않겠나?”

아르티어스의 말에 카드리안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엑스시온의 핵에 사용하는 것은 루비죠. 제가 연구해 본 결과 루비로 낼 수 있는 출력의 한계는 2.3이지요. 저는 이번에 그걸 완성해서 ‘적기사’라는 타이탄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출력을 루비로 내려고 했다가는 곧장 출력이 폭주해서 폭발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아마도 루비가 가지는 강도(强度)의 한계 때문이죠.”

“하지만 루비보다도 더 강한 보석도 있지 않은가?”

“예, 물론 있죠. 핑크 다이아몬드. 제가 실험해 본 결과로는 그것으로도 2.5 정도밖에는 낼 수 없습니다. 또 붉은색 다이아몬드는 아주 희귀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타이탄이라면 한 대 만들기도 힘들 겁니다. 그렇기에 타이탄의 성능 향상은 아마도 더 이상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카드리안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잠시 말문을 닫았던 아르티어스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자네…, 드래곤 하트로도 실험을 해 봤나?”

“드래곤… 하트…라고요?”

그 둘은 잠시 벙어리가 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 둘의 모습을 붉은 머리털을 가진 아가씨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젊은 드래곤은 둘의 대화가 가지는 의미를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인간들이 최강의 드래곤으로 꼽는, 레드 드래곤의 일족인 바미레이드는 인간 따위가 아무리 강해져 봐야 그들 일족의 적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러세요? 카드리안 아저씨. 겨우 인간 따위가 아무리 강해져 봐야 브레스 한 방이면 끝장이잖아요?”

하지만 바미레이드의 천진난만한 의견에 대해 카드리안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그들을 남몰래 비웃으며 언제나 품어 왔던 우월감. 그러니까 카드리안에게는 인간들 시계(視界)의 좁음과 편견, 고정 관념을 비웃으며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우월감이 타이탄을 단 한 대도 만들어 보지 않은 한 늙은 드래곤에 의해 처참할 정도로 찢겨져 버린 것이다. 그 자신도 인간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어느덧 그들이 가지고 있던 타성에 젖어서 엑스시온은 무조건 붉은색 ‘보석’으로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드리안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금속, 마법의 불이 아니면 녹이지 못하고,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기에 최고로 귀한 물건, 즉 드래곤 본(Dragon Bone)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붉은색을 띠는 드래곤 하트는 엄청난 마나의 집약체이기에, 드래곤 하트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카드리안은 ‘그것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만으로도 오랜 세월 타이탄을 연구해 왔던 그에게는 어렴풋이나마 그 위력을 짐작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실험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괴물이 만들어질지…, 만들어 보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그것을 사용한다면 아마도 최소한 2.5의 벽은 깰 수 있을 겁니다. 거기서 더욱 발전한다면 우리 드래곤은 더 이상 최강의 생명체가 될 수 없을지도…….”

아르티어스는 상대가 의외로 순순히 수긍하고 들어오자 조금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레드 드래곤이었다면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박박 우기려고 들었을 테니까.

“내가 우려하는 점이 바로 그거라네. 인간은 건드려서는 안 될 영역을 건드리고 있어. 원래가 인간이라는 이기적인 동물들이 마나의 강대한 힘을 깨닫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네.”

“아르티어스 님, 그렇게 너무 비약해서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의 마법 능력이라는 것은 드래곤에 비해 형편없고, 또 드래곤 하트를 사용해서 엑스시온을 만든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설혹 인간들 중에 엄청나게 뛰어난 마법사가 태어나 드래곤 하트를 이용해서 엑스시온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대량 생산은 불가능하죠. 또 대량 생산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이용해서 드래곤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기사는 몇 명 되지도 않습니다. 이게 얼마나 확률이 낮은 가정(假定)인지 아시겠죠?”

“아무리 확률이 낮다 하더라도 그만큼의 위험성은 존재하는 거야. 불가능해 보였던 많은 것들을 인간들은 해냈어. 설혹 인간들이 해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네 같은 드래곤들이 인간들에게 자신이 연구한 성과를 알려 준다면 그것 또한 같은 결과가 아니겠나? 나는 자네가 인간들의 역사에 너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인간 세상에서 거의 80년 이상 생활하면서 그들의 변화와 탐욕을 지켜봤던 카드리안은 아르티어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자신은 이미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순순히 대답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가 인간 세상에서 마법사 노릇을 한 것, 그리고 코린트를 최강의 제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 그 모두가 몇몇 인간들을 제가 좋아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것에 대해서도 회의적(懷疑的)이 되어 가는군요. 사실 아르티어스 님이 말씀하지 않았더라도 슬슬 정리하고 레어로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잘 생각했네. 인간들의 일은 인간들의 손에 맡기는 것이 제일 좋은 거야.”

“험험…,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아르티어스님도 저 아이를 위해 인간 세상의 일에 간섭하실 생각이 아니십니까?”

카드리안이 슬쩍 가리킨 것은 물론 절벽 아래를 따분한 듯 내려다보고 있는 다크였다.

“그렇지 않아. 저 녀석이 나한테 그런 걸 부탁할 리도 없고 말이지. 그리고 아버지한테 그런 걸 부탁할 정도로 저 아이가 힘이 없지는 않거든. 실은 너무 ‘부탁’을 안 해서 문제지. 참, 저 녀석을 너무 기다리게 했구먼. 이제 돌아가세나.”

카드리안은 레어 입구까지 따라 나오며 말했다.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한동안은 저 아이를 따라 다녀볼까? 사실 레어 안은 너무 심심하거든.”

그 말에 카드리안은 빙긋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그 고독이란 병 때문에 모두들 인간 세상에 나가고 싶어 하는 거겠죠. 아들과 함께 좋은 꿈꾸시길 바랍니다.”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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