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9화 (189/930)

금지된 최악의 마법

알렌 왕국 주둔군들이 노획한 타이탄 분배 문제로 인해 단 한 대, 아니 타이탄의 일부도 나눠 받지 못한 엠페른 기사단과 크루마 쪽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있을 무렵 코린트의 상층부는 아예 뒤집혀 있었다. 그 일의 발단은 아침 일찍 까뮤 드 로체스터 공작이 친우이자 코린트 최고의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키에리 발렌시아드를 찾아오면서 시작되었다.

“큰일이 났더군.”

진짜 큰일 난 듯 허둥대는 까뮤를 향해 키에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큰일? 겨우 국지전에서 패배한 것 말인가? 연합국 놈들, 자기들 전투가 아니라고 별 볼일 없는 타이탄과 기사들을 보내 준 모양이야. 기습을 하기 위해 투입된 두 명의 마법사와 타이탄 열다섯 대가 행방불명인 것을 보면 말이야. 처음부터 그놈들에게 별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좀 심하군.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네. 우리들의 힘만 동원해도 크루마가 멸망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게 아닐세. 마법의 탑에서 긴급 전문이 도착했네. 거기서는 즉시 보고서를 올린 모양인데, 도중에 갈 길을 못 찾고 갈팡질팡하다가 나한테 올라온 모양이야.”

친구의 말에 키에리는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마법의 탑? 거기서 무슨 긴급 전문을 보낸단 말인가?”

“놈들이 금지된 마법을 사용했어. 마법의 탑에서 어젯밤, 그러니까 양국 군대가 충돌했을 바로 그때 크루마에서 사용한 모양이더군. 무려 4억 기간트라급 마법이 거의 10회에 걸쳐 사용되었다고 여기 적혀 있네.”

“4억 기간트라? 억 단위면 9사이클급 마법이잖아? 하지만 크루마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걸쳐 9사이클급 마법사는 한 명도…….”

“그게 아니라 마법진을 쓴 거야. 마법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정확한 것은 좀 더 조사해 봐야 하겠지만 유성 소환 마법(Meteor Strike)인 것 같다고 하더군.”

로체스터의 말에 키에리는 경악했다. 유성 소환 마법은 그야말로 악질적인 금지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뭣! 유성 소환? 그렇다면 도착은 언제?”

“한 달 후.”

“한 달? 그렇다면 시간은 충분하니까 빨리 대응을 해야 할 거 아냐? 그라세리안을 불러.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는 그가 잘 알고 있을 거야.”

그 말에 약간은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로체스터가 대꾸했다.

“자네한테 오기 전에 그라세리안에게 갔었네. 원래 마법의 탑은 그의 관할인데 왜 그 보고서가 나한테 올라왔는지 물어보려고 말이야. 찾아가 보니까 그는 없더군. 집사의 말로는 10여 일 전부터 행방불명이래. 자네 아들하고 함께 나간 후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더군.”

“뭐야? 나는 그런 보고는 받은 적이 없는데? 이봐! 밖에 아무도 없느냐?”

“예, 공작 전하.”

“제임스를 불러 와라. 만사를 제쳐 놓고 빨리 오라고 해.”

“옛, 전하.”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제임스가 달려 들어왔다. 그는 어젯밤 있었던 전투에 대한 모든 계획을 추진했었고, 또 통신 마법을 통해 어느 정도 깊이까지는 직접 지휘도 했다. 전투가 끝난 후에 자세한 보고까지 들어야 했었기에 그는 늦게 잠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곤하게 자고 있는 그를 아버지가 신경질 팍팍 난 어조로 찾는다는 하인의 보고였으니 옷만 대충 걸쳐 입고 달려온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버님.”

“그라세리안은 지금 어디에 있냐?”

갑자기 아버지가 질문을 던져 오자, 제임스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아버지 귀에 들어갈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예상보다는 빨랐다. 제임스는 그라세리안 건에 대해서 그 어떤 단서도 잡은 것이 없었다.

“예? 예, 저…, 그게 말이죠.”

“빨리 대답햇!”

제임스는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건, 지금 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라세리안의 집사는 너하고 함께 나간 후부터 행방불명이라고 했다던데 그건 어찌된 일이냐?”

“예, 그게 매우 얘기가 복잡해서 말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임스는 밖으로 달려 나갔다가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서류 뭉치를 들고 들어왔다. 이것은 그라세리안 드 코타스 공작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작성된 보고서였는데, 제임스는 이것을 언제 자신의 아버지에게 전달해야 할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자신의 방에 놔두고 있었다.

“여기 보고서가 있습니다.”

아들이 건넨 서류 뭉치를 찬찬히 읽어 보며 천천히 표정이 굳어 가던 키에리는 이윽고 다 읽은 후 그것을 까뮤에게 넘겨주고는 아들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 그라세리안이 죽었다는 거야? 아니면 납치되었다는 거야?”

죽었다는 말이 나오자 까뮤의 서류 읽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예, 아직 정확히 알아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까미유가 오스카와 함께 추격하고 있습니다.”

“오스카까지 데려갔냐?”

“예, 그리고 마법사는 리카와 스타키를.”

“그 정도 클래스의 인물들이 움직이는데…,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했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아버님. 하지만 워낙 사건이 사건인 만큼 확실한 것이 밝혀진 후에 보고서를 올리려고 했습니다.”

“잘한다. 이런 놈을 아들이라고 높은 자리에 올려놓은 내 잘못이지. 오늘부터 네 녀석의 모든 직위와 권한을 해제한다.”

“아버님!”

“이런 중요한 일을 그따위로 처리한 것을 보면…,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너는 즉시 까미유와 합류해서 그라세리안 공작을 찾아라. 시체라도 찾기 전에는 돌아올 생각하지 마. 알겠냐?”

“예.”

“즉시 떠나라.”

“예.”

제임스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방을 나선 후 키에리는 근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큰일이군. 그라세리안 없이 유성 소환을 방어해 낼 수 있을까?”

“글쎄, 어쨌거나 시도는 한번 해 봐야겠지. 그건 그렇고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설마 그가 진짜로 죽었을까?”

“그건 아닐 거야. 7사이클 마법을 구사하고, 더군다나 뇌전의 정령왕을 부릴 정도로 정령 마법에도 통달한 친구야. 그런 그를 처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마법을 이용해서 육신의 노화(老化)까지도 억제하는 인간 같지도 않은 녀석을 말이야.”

“그래서 그런 그를 납치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납치보다는 죽이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거야.”

“그건 그렇지만, 뭔가 방법이 있었는지도 모르지. 살아만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만약 우리들의 친구 그라세리안이 죽었다면 그의 죽음에 관여한 모든 국가는 강아지 한 마리 남김없이 모두 다 죽여 버릴 거야.”

까뮤는 키에리의 증오에 넘친 마지막 말을 듣고 온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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