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2화 (192/930)

다크는 미네르바로부터 도착한 전문을 통해 그날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부터 전문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대기에 가득 찬 살기(殺氣)만으로도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날 새벽, 모든 살라만더 기사단원들이 무장을 갖추고 도열한 가운데 크로아 백작과 다크, 아르티어스, 그리고 린넨 백작이 밖으로 나오자 모두들 자세를 꼿꼿이 했다. 크라레스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첫 전쟁이니만큼 모든 기사들의 긴장감이 눈에 보일 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열해 있는 모든 기사들이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는 것 같자, 바지오 남작은 이들의 실전 경험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전쟁이라고는 치러 본 적도 없는 병사들이 적진 앞에 섰을 때와 같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기사들. 그런 긴장감이 서서히 전염되고 있는 듯 바지오 남작이 거느리고 있는 기사들까지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이때, 밖으로 나온 크로아 백작이 바지오 남작 앞으로 다가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바지오 남작, 정찰대는 몇 명이나 보냈지요?”

“예? 저, 마법사가 오늘 정찰을 할 필요는 없다고 전달하셨기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만약 전투가 벌어진다면 타이탄을 서포트해야 하는 정찰대가 먼저 공격을 당한다면서, 쓸데없는 희생은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바지오의 답에 크로아 백작은 씩 미소 지으면서 뇌까렸다.

“그렇다면 정찰대는 보내지 않은 것이군요.”

상대의 의미 모를 미소와 그 말투의 미묘한 어감 때문에 바지오의 기분은 매우 나빠졌다. 혹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나? 그렇게 생각한 바지오는 재빨리 질문을 던졌다.

“예, 지금이라도 보낼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바로 이때, 소녀가 기사들이 도열해 있는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경들, 조국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경들은 이 머나먼 타국 땅에 왔다. 이 전쟁터에서 경들이 피를 흘려야 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 전쟁의 승패가 조국에 안겨 줄 파장은 엄청나다. 아름다운 크로나사 평원을 경들은 기억하는가? 물론 본관은 그곳에 가 보지 못했기에 잘 알지 못하지만, 경들 중에는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크로나사 평원이 본국에 귀속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이번 전쟁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영달만이 아닌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을 생각하라. 경들의 어깨 위에 조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생각하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잊어라. 중압감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있는 실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경들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 이 자리에 섰을 것이다. 자, 모두들 눈을 감고 예전에 받았던 지독하게 혹독했던 훈련을 기억하라. 그때 그 훈련장이 경들의 앞에 펼쳐져 있다. 경들은 이번 훈련을 우수한 성적으로 끝낼 수 있겠나?”

소녀의 말에, 모든 기사들은 투지를 불태우며 외쳤다.

“옛, 공작 전하.”

공작 전하라는 외침이 터져 나오자 바지오 남작 및 그의 부하들은 놀라운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봤다. 바지오는 지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소녀가 공작이라면 그렇다면 저기 서 있는 공작은 또 뭐지? 다만 한 가지 바지오 남작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는 단어는 ‘당했다’라는 것이었다. 바지오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을 때 뒤에 뭔가 걸리는 것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의 뒤에는 린넨 백작이 서 있었다.

“어디 몸이 안 좋나요? 바지오 남작.”

바지오는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에 본색을 드러낸다는 것은 더 이상 감출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멍청하게도 가장 정찰 활동이 왕성해야 하는 이때 공작의 부탁을 듣고 단 한 명도 정찰을 내보내지 않고 있었다. 상대가 정찰 활동을 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몸이 안 좋으신 모양인데 좀 쉬시면 괜찮아질 겁니다.”

“아, 아니요, 나는 괜찮습니다.”

바지오 남작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부인하자 린넨 백작은 음흉하게 미소 지으면서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에 맞춰 백작의 부하들도 검을 뽑아 들었다. 바지오 남작의 손은 무의식중에 자신의 검이 있는 곳을 더듬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기사급인 자신과 타이탄을 조종할 권리를 부여받게 되는 그레듀에이트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실력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바지오 남작 자신도 알고 있었다.

“아니, 당신은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소.”

일단 바지오 남작 건이 해결되자 다크는 아르티어스에게 전투가 끝날 때까지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전한 후 자신의 휘하에 있는 두 개 기사단에 통신을 보냈다. 그녀는 수정 구슬에 상대편 마법사가 나타나자 늘 하던 대로 말했다. 대외적으로 그녀는 ‘공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작 전하께서는 각 기사단이 현 위치에서 수비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적들의 타이탄은 엄청난 숫자입니다. 합류하여 함께 행동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공작 전하께서는 여러분들이 현 위치를 고수해 주시기를 바라십니다. 혹시 뒤쪽으로 이동 마법을 통한 기습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으니 그에 대한 대비를 부탁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각 기사단 지휘관의 재량에 맡긴다고 하셨으니, 퇴로 확보에 주의하십시오. 귀 기사단의 무훈을 빕니다.”

“알겠습니다. 니케(승리의 여신)와 함께하는 하루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상대방 마법사가 수정 구슬에서 모습을 감추자 다크는 생글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자, 이제 무대는 갖춰졌으니 한바탕하러 갈까? 한번 해 보니까 타이탄을 가지고 싸우는 거 정말 재미있던데 말이야. 호호호.”

살인 기계 안드로메다

점령지를 관리하는 데는, 기사단보다는 숫자가 많은 군대가 더욱 요긴하게 쓰인다. 그렇기에 지오르네 후작은 전투가 끝난 다음을 위해서 군대에게 현 위치를 지킬 것을 지시한 후,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많은 타이탄을 보유한 기사단을 전장에 투입했다. 며칠 전 15대가 행방불명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의 휘하에는 3백 대에 가까운 타이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상대방은 이쪽의 반 정도밖에 타이탄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그에게는 작전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매우 넓었다.

지오르네 후작이 여러 나라에서 파견되어 온 많은 기사들과 의논을 하여 선택한 작전은 타이탄 전투에 있어서는 매우 상투적인 전법이었다. 적과 아군의 병력이 비슷하거나 또는 전력이 비슷하다면, 승리하기 위해 별의별 작전을 짜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압도적인 병력의 우위. 이런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병력을 나누어 별동대로 하여금 퇴로를 차단하게 하고, 정면에서 밀어붙이는 포위 작전이 최고였다.

그런데 적은 포위당하는 것을 꺼린 탓인지 세 개의 부대로 꽤 거리를 두고 포진한 상태였기에, 지오르네 후작도 자신의 부대를 세 개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지그무스 후작은 타이탄 50대를 이끌고 우측으로 폭넓게 돌아 30여 대 정도로 추측되는 상대의 좌익이 아르곤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압박한다. 그리고 크발리에 공작이 이끄는 타이탄 50대는 좌측으로 폭넓게 돌아 36대로 편성된 적의 우익 부대인 엠페른 기사단이 쟈렌 왕국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압박하며 공격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130여 대로 이루어진 본대를 이끌고 적의 본대를 제압한다. 적의 본대가 보유한 타이탄은 기사의 수를 따져 봤을 때 최대한으로 잡아도 60대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로안스엘 공작이 이끄는 별동대 50대는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뒤에서 압박한다.

지오르네 후작이 세운 작전은 여러 기사들과 의논에 의논을 거듭한 결과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포위 공격이었다. 이렇게 단순한 작전이 세워진 이유는 뚜렷하게 작전을 담당할 참모가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모두들 한 가지씩 작전을 떠들어 댔으므로 그중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작전을 선택하게 된 결과, 가장 무난하고 또 흔히 쓰이는 작전이 채택되었던 것이다.

별동대는 새벽 4시에 마법진을 통하여 적의 후방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그때를 즈음하여 후작 휘하에 있던 모든 정찰조들이 상대의 정찰조들과 격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둔하고 있는 적의 군대는 아예 건드리지 않았기에, 미란 국가 연합의 알렌 주둔군 보초들 중에는 저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었다.

이윽고 5시 정도가 되어 먼동이 틀 때쯤, 코린트 연합군은 조용하게 진격을 시작했다. 엄청난 수의 대군(大軍)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고, 마법사와 기사들로 이루어진 3백 명 남짓한 인원이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었기에 그렇게 소란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3백여 명의 인원으로도 멸망시키지 못하는 나라는 몇 개 되지 않을 정도로 괴력을 낼 수 있는 것은 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타이탄의 덕분이었다.

그 3백여 명의 인원은 바실리시 외곽에서 세 개의 부대로 나누어 이동을 시작했다. 두 개의 작은 부대들은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돌아갔고, 이들에 의해 적의 좌우익에 포진하고 있는 기사단이 밀려서 중앙으로 몰려들 것이다. 두 개의 부대가 분리된 후, 본대는 천천히 이동을 시작하여 국경 가까이까지 접근했다. 그런 후 잠시 동안 기다렸다. 네 방향에서 적을 압박하여 중앙으로 몰아넣어 섬멸하려면 시간이 정확히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 부대라도 시간을 어긴다면 불행하게도 각개 격파당할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지오르네 후작은 자신이 보유한 타이탄이 원체 많았기에 그런 걱정까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약속된 시간입니다, 후작 각하.”

마법사의 말에 후작은 마시다가 남은 차를 단숨에 들이켠 후, 잔디 위에 펴 놓은 모포에서 몸을 일으켰다.

“미안하군. 아침에 차를 꼭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말일세.”

후작의 말에 마법사는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죄했다. 향긋한 차를 마신다는 것은 귀족들이 누리는 매우 사치스러운 습관이었다. 물론 서민들을 위해서도 여러 종류의 차가 공급되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향이나 맛이 훨씬 떨어지는 하급품들이었다. 향긋한 차를 마시는 행위, 그 행위가 매우 고상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기에 귀족들은 마시기 싫어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셔야 했고,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값비싼 차를 구입한다고 막대한 돈을 낭비하고 있었다. 물론 지오르네 후작도 부하들에게 자신의 교양이 얼마나 고상한지 과시하기 위해 차를 마셨을 뿐, 남들이 보지 않을 때는 포도주를 마셨다.

“아닙니다, 후작 각하. 각하의 고상하신 취미 생활을 방해하게 된 것이 송구할 따름입니다.”

“전쟁 때문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자, 경들 이제 토끼 사냥하러 갈까요?”

지오르네 후작의 농에 모두들 미소를 지으면서 말에 올랐다. 물론 후작의 지시를 받은 몇 명은 타이탄을 꺼내어 경계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찰조의 보고에 따르면 이 일대는 완전히 자신들의 정찰조가 제압한 상황이었기에 타이탄을 꺼내어 호위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한 행위였다.

세 시간 정도 달려 들어가자 가장 선두에 섰던 기사가 말을 멈추며 손을 들었다. 그의 행동에 맞춰 모두들 말을 세웠고, 선두의 기사는 뒤쪽으로 달려오며 지오르네 후작에게 보고했다.

“적들이 보입니다.”

“뭐? 진형은?”

“이미 우리가 올 줄 알았는지 전투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준비성이 좋은 놈들이군. 좋아, 내려가자.”

후작의 부대가 언덕에서 달려 내려가 적의 진형 앞에 자리를 잡았다. 후작의 부대는 타이탄 전투를 벌이기에 최적의 거리인 2킬로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진형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재빨리 통신용 마법진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후작의 지시를 받은 기사 한 명이 흰 깃발을 들고 상대편 진영을 향해 말을 달려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상대를 기습하지 않는 한, 정규전을 그것도 기사단들끼리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의례적으로 행해지는 몇 가지 행동들이 있었다. 기사라는 지위 자체가 기사도를 숭상하는 무리들이었기에, 될 수 있다면 전투도 기사도의 원리에 입각하여 행해야 했다. 그중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먼저 도착한 쪽에서 상대가 진형을 갖추기 전에 공격을 시작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이쪽에서 기다려 준 것을 치하하고, 또 자신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서 전투를 하러 왔음을 전하기 위해 전령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전투를 하게 된 목적을 밝히고 상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후퇴하든지 아니면 항복하라고…….

물론 그 자리에서 항복하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전투를 선택하게 된다. 전투를 하려고 할 때, 상대는 전령이 들고 간 흰 깃발을 상대 쪽에서 잘 보이도록 높이 들어 그 깃대를 꺽은 후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이것이 바로 쌍방 간에 교섭이 결렬되었다는 신호가 되고, 곧바로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이때 화가 난다고 전령의 목을 벤다든가 하는 야만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적 진형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기사가 후작에게 말했다.

“교섭이 결렬되었습니다. 상대방이 타이탄을 꺼내고 있습니다.”

기사의 보고를 들은 후작은 항복 따위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자, 모두들 전투 준비! 타이탄을 꺼내라. 적들의 타이탄은 뭐지?”

후작의 물음에 기사는 망원경을 이용해서 적진을 다시금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기사의 시력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하게 좋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자세히 관찰하기에는 기사들의 시력으로도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 모두 시커먼 색을 칠해 놨는데……. 예, 저 뒤편에 있는 것은 로메로입니다. 그리고 저건 가만있자…, 안토로스 같은데요?”

부하의 말에, 후작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 이리 줘 봐.”

후작은 부하의 손에서 망원경을 뺏듯이 받아 들고는 상대편 진영을 쏘아봤다. 부하의 말은 사실이었다. 후작의 눈으로 봐도 안토로스가 분명했다. 안토로스는 과거 14대밖에 생산되지 않았지만 매우 뛰어난 타이탄들 중의 하나였다. 지금도 몇 대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것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세 나라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고, 또 그 세 나라는 매우 잘 알려진 나라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안토로스가 맞군. 시뻘건 도마뱀의 문장. 그 반대편에 붙어 있는 쌍두 사자의 문양. 틀림없는 트란 근위 기사단의 문장이야.”

“예? 트란 근위 기사단이면 멸망한 트루비아의 기사단 아닙니까?”

“그렇지. 트루비아 전쟁에서 적 타이탄을 구경도 하지 못했었는데 여기에 와 있었군.”

“예, 아마도 크루마에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저 앞쪽에 도열해 있는 타이탄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아니, 나도 처음 보는 타이탄이야. 상당히 육중해 보이는데, 50대 정도나 모여 있으니 상대하기 힘들 것 같아. 기껏해야 60대 정도로 생각했는데, 저 녀석들 예상외로 타이탄을 많이 가지고 있군. 또 성능도 상당히 우수한 것 같고…….”

“그래도 이쪽이 50대 정도 많습니다, 각하.”

“숫자야 그렇지. 하지만 성능은 어떨지 모르지.”

기사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던 후작은 뒤에서 통신을 시도하고 있는 마법사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딴 부대로부터의 연락은?”

후작의 질문에 한 마법사가 재빨리 답했다.

“예, 지그무스 후작 각하로부터의 연락입니다. 현재 적 기사단과 대치 중. 적 기사단의 타이탄 수는 숨겨 놓은 것이 없다면 로메로 27대, 노리에 5대, 합해서 32대라는 보고입니다. 모두 검은색을 칠했고, 붉은색으로 뱀의 문장을 그려 놨다고 합니다.”

“알겠다. 8시 정각에 작전을 시작하라고 전해라. 그 전까지는 대충 상대방과 비슷한 수의 타이탄만 꺼내어 적이 안심하게 하는 것 잊지 말라고 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딴 곳에서는 연락 없나?”

이번에는 그 마법사의 옆에 앉아 있던 마법사가 말했다.

“크발리에 공작 전하로부터의 연락입니다. 산드라 요새에 접근, 대치 중이라고 합니다. 요새에 가려 상대 타이탄의 수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쪽에도 8시에 공격하라고 전해.”

“예, 각하.”

그 마법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또 다른 마법사도 급히 보고를 올렸다. 타이탄은 마법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기에 기사단들끼리 타이탄을 앞세워 전투를 할 때 마법사는 이런 식으로 기사들을 보조했던 것이다.

“로안스엘 공작 전하로부터의 연락입니다. 현재 퇴로 장악 완료. 상대의 정찰조 세 개를 포착, 격멸했다고 합니다.”

“조금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니까 적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으라고 전하라.”

“예, 각하.”

일단 휘하 부대와 연락이 끝나자, 후작은 또 다른 마법사를 향해 외쳤다.

“본국을 불러라.”

그 마법사는 열심히 주문을 외워 댄 후 후작을 행해 말했다.

“각하, 본국이 나왔습니다.”

후작이 수정 구슬 앞으로 다가가자 수정 구슬 안에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마법사는 후작을 알아보고 공손히 절을 하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후작 각하.”

“그래, 자네도 안녕한가?”

“예.”

“발렌시아드 대공 전하께 전해라. 현재 적 타이탄과 대치 중이다. 살라만더 기사단이 가지고 있는 타이탄은 로메로 20대 정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신형 타이탄 50대 정도다. 그리고 그들 속에 트루비아의 기사단도 보인다. 상대 타이탄의 모습을 전송하겠다.”

여기까지 말한 후작은 마법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봐, 기억을 전송할 준비를 해 주게.”

“예, 각하.”

마법사는 수정 구슬 위에 손을 얹고 주문을 몇 마디 외운 후 후작에게 말했다.

“구슬에 손을 대시고 전송할 타이탄의 모습을 기억하십시오. 예, 됐습니다, 각하. 전송이 끝났습니다.”

후작은 다시금 시선을 수정 구슬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방금 보낸 검은색 타이탄에 대해 조사해서 발렌시아드 공작 전하께 전해라.”

“알겠습니다, 각하. 무훈을 빕니다.”

“고맙군.”

이제 모든 것이 다 갖춰졌다고 생각한 후작은 기사들을 향해 우렁차게 외쳤다.

“자, 8시가 다 되어 간다. 모두들 준비하도록.”

이때 한 기사가 후작을 향해 말했다.

“각하께서도 싸우실 겁니까?”

“아니, 나는 여기서 지휘를 하기로 하지. 자네가 전방 지휘를 해 주겠나?”

“영광입니다, 각하.”

쌍방은 타이탄들을 꺼내어 전투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선두에 서 있는 타이탄들은 모두 보조 무장으로 창을 한 자루씩 가지고 있었다. 일단 상대와 격투에 들어가기 전에 그걸 던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뒤쪽 열에 있는 타이탄들은 각자 취향에 따라 거대한 철퇴나 도끼를 오른손에 쥐고 있었다. 타이탄의 손이 두 개밖에 없다 보니 무기를 추가로 가지고 가는 것에는 한도가 있었다.

타이탄들끼리의 전투에서도 보병들끼리의 전투와 마찬가지로 육중하고 두터운 장갑을 가진 것들이 선두에 서게 된다. 선두에 서서 상대방과 격전에 들어갈 타이탄들은 뒤로는 아군이, 앞으로는 적군이 몰려들어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좁기에 강력한 장갑으로 몸을 보호하며 죽자고 검을 휘둘러야 했다. 하지만 양쪽 측면이나 뒤에 위치하는 타이탄들은 가볍고 기동력이 빠른 것이 사용되었다. 이들의 경우 움직이는 데 충분한 공간이 있었기에, 무식하게 방패와 장갑만으로 적의 공격을 막아 내지 않아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상대방도 크고 몸집이 좋은 신형을 중앙에 배치하고 로메로를 좌우 측면에 배치했다. 예법에 따라 상대방의 진형이 다 갖춰질 때까지 기다린 후작은, 적들도 모든 준비를 갖췄다고 생각되자 우렁차게 외쳤다.

“전원, 돌격 준비!”

이때, 후작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갑자기 적들 타이탄의 뒤쪽에서 거대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몸통은 앞쪽에 도열해 있는 타이탄들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세 개의 뿔이 나 있는 거대한 머리통과 가슴 위쪽은 앞을 막아서고 있는 많은 타이탄들에도 불구하고 명확하게 보였다. 그 말은 앞에 서 있는 타이탄보다 최소한 1미터는 더 크다는 말이었다.

“저…, 저건 또 뭐야?”

후작의 당황한 태도에 마법진 앞에 앉아 있던 마법사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예? 뭐 말입니까? 각하.”

“저 뒤에 서 있는 타이탄 말이야.”

“예? 뒤에 말입니까?”

원래가 마법사의 시력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한 보통 사람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에, 마법사는 후작의 옆에 놓여 있던 망원경을 집어 들고 나서야 후작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큰 타이탄입니다. 백기사하고 거의 비슷한 크기겠는데요?”

마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후작이 지시했다.

“맞아. 바로 저 녀석이다. 본국에 지급으로 다시 연락을 넣어라.”

“옛, 각하.”

이때 상대방 타이탄들이 돌격해 왔기에 코린트 동맹군의 타이탄들은 후작의 명령 없이 상대방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원래가 전투는 기세(氣勢)에는 기세로 대응해야 했기에 적이 돌진해 들어오는데도 가만히 서서 기다리다가는 먼저 주눅이 들게 되기 때문에 취해지는 행동이었다. 부하들이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후작은 재빨리 마법사에게 외쳤다.

“로안스엘 공작에게 급전을 보내라. 퇴로 차단 명령을 철회하겠다. 지금 즉시 별동대를 이끌고 이리로 달려오라고 전해라.”

로안스엘 공작과의 마법 통신을 담당하고 있던 마법사는 즉시 지시를 전달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했다.

“각하, 그렇게 되면 포위망에 구멍이 생기게 됩니다.”

“포위망이 구멍이 나건, 무너지건 상관없다. 문제는 저 큰 타이탄이야. 아마 저 녀석이 대공 전하께서 찾고 계시던 녀석일 거야. 그건 그렇고, 아직도 본국에 연락이 되지 않았나?”

후작의 투덜거림에 본국을 향해 통신 마법을 다시금 구사하고 있던 마법사는 재빨리 답했다.

“예, 이제 연락이 되었습니다, 각하.”

“에잇, 비켜라. 이보게.”

다급한 후작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수정 구슬 안에 비춰져 보이는 늙은 마법사는 느긋한 어조로 대답했다.

“예, 후작 각하.”

“최대한 빨리 이 타이탄에 대해 조사해 봐라.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덩치가 크다. 백기사와 맞먹는 것 같은데 이놈이 대공 전하께서 찾고 계시던 타이탄인 것 같다.”

허둥대는 후작을 향해 노마법사는 역시 느긋한 어조로 답했다.

“예, 확인해 보겠습니다. 빨리 모습을 전송해 주십시오.”

상대 마법사의 주문에 후작은 자신이 하는 것보다는 통신을 담당하는 마법사가 직접 하는 것이 더욱 안정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본국과의 마법진을 연 마법사를 향해 말했다.

“망원경을 보고 자네가 직접 전송해.”

“옛, 각하.”

“자네는 이제부터 저 타이탄이 움직이는 모습을 모두 다 전송해라. 딴 일은 안 해도 좋아. 저 타이탄만 주시해라. 알겠나?”

“예, 각하.”

마법사가 망원경을 들고는 상대 타이탄을 주시하며 그 영상을 본국으로 전송하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후작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별동대와의 연락을 담당하는 마법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마법사는 지금 통신 마법진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뒤쪽의 풀숲을 화염 마법으로 불태운 후 그 위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로안스엘 공작에게는 연락이 되었나?”

마법진을 그리고 있던 그 마법사는 즉시 후작을 향해 답했다.

“예, 지시를 전달했습니다, 각하.”

“언제 도착한다고 하던가?”

“여러 개의 퇴로에 산개해 있는 기사들을 소집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들이 모이는 대로 곧 마법진을 통해 이쪽으로 오실 것입니다, 각하. 아마 10분 정도 걸리실 거라는 보고입니다.”

마법사의 대답에 후작은 시선을 격렬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는 전장으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10분이라. 늦지 말아야 할 텐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