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타이탄 헬 프로네
다음 날 아침부터 재개된 가므 방면의 전투는 지독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크루마는 코린트 중앙 집단을 돌파하기 위해 모든 힘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미네르바로서는 지금 알렌 왕국에서 쉬고 있는 살라만더 기사단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새벽부터 벌어진 전투에서 별 성과가 없자, 미네르바는 미란 국가 연합에 압력을 가해 알렌에서 재편성을 끝마친 엠페른 기사단과 연합 기사단을 가므 쪽으로 곧장 끌어들였다. 첫날 있었던 전투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결과 그 둘을 합쳐도 36대밖에 안 되는 타이탄 전력이 남아 있을 뿐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그들에게 동원 가능한 기사단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겨우 36대의 타이탄이었지만, 그들이 새로이 증원되자 크루마 연합군은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가므 왕국 전투에서만 상호 간에 파괴된 타이탄이 거의 120대에 달하는 상태였다. 물론 타이탄의 질에서 월등한 크루마 쪽의 피해가 훨씬 작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거의 50대가 넘는 타이탄이 박살 났던 것이다. 그런데 코린트 쪽은 그 피해가 보충되지 않았지만, 크루마는 36대를 새로이 수혈(輸血)받았으니 상호 간의 힘의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일단 밀리기 시작하자 코린트로서도 그것을 방관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고야 말았다. 그렇다고 수도에 끌어 모은 철십자 기사단을 가므 전선에 선뜻 투입할 수는 없었다. 알렌 왕국에는 강력한 위력을 선보인 정체불명의 살라만더 기사단이라는 적이 남아 있었다. 이 기사단이 어딘가로 투입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한 수도를 비워 둘 수는 없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코린트로서는 최후의 카드를 쓸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가므 쪽부터 손봐 나가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버님.”
“네가 이곳을 책임져라. 수도 방어에 만전을 기하도록 해라.”
“옛.”
“한쪽에 떨어져서 힘을 키우고 있는 살라만더 기사단의 움직임을 언제나 주시하도록 해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즉시 연락해라.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책임질 수 있겠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 보거라. 나는 가므 침공군에 합류할 생각이다.”
천천히 문을 나서는 키에리를 바라보며 로젠은 물었다.
“제임스와 까미유를 부를까요? 아마 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아니, 그놈들까지 부를 필요는 없을 거야. 또 그 녀석들은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아들에게 당부의 말을 한 후 키에리는 옆에 대기하고 있는 마법사 죠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죠드.”
“예, 공작 전하.”
“지금 곧 가므의 전쟁터로 1천 명 정도 되는 인원에 해당하는 무게를 공간 이동시킬 수 있겠나?”
“옛, 공작 전하. 곧 준비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드디어 철십자 기사단을 투입하는 것이옵니까?”
죠드의 말에 키에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만 갈 것이다. 현재 놈들의 살라만더 기사단이 움직이지 않는 한 철십자 기사단도 수도 방어를 위해 움직일 수 없다.”
“알겠사옵니다, 공작 전하.”
푸캉! 팡! 쿵!
수백 대에 이르는 거대한 타이탄들이 집단전을 벌이고 있다. 거의 비슷한 등급의 기사가 엇비슷한 성능의 타이탄을 타고 싸운다면 승부가 좀처럼 빨리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상대를 치고 때리고 해도 거대한 방패로 막으면 그만. 서로 간에 실컷 상대의 방패만 두들기면서 힘을 빼는 것이다.
코린트가 코란 근위 기사단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면 크루마 쪽은 레디아 근위 기사단과 라이오네 근위 기사단을 주축으로 한다. 코린트가 보유한 흑기사의 성능이 엄청나기는 했지만 크루마의 안티고네 또한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안티고네는 흑기사의 성능을 앞서고 있었다. 문제는 안티고네의 수가 흑기사보다 적다는 것이었는데, 크루마 쪽에서는 그 약점을 약간 성능이 떨어지는 에프리온과 새로운 주력 타이탄 카마리에의 엄청난 숫자로 메우고 있었다.
코린트는 숫자가, 크루마는 성능이 앞선 형태로 전선은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 평형도 무너지고 있었다.
쾅!
“제길, 햄리쉬! 저 드래곤 슬레이어 마크를 단 녀석을 막아. 빨리!”
상대를 줄기차게 막고 있던 시커먼 타이탄이 무릎을 꿇어 버리자 리사는 재빨리 외쳤다. 자신 또한 한가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이런 난전 속에서도 지휘자의 시각은 넓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상대의 거대한 검이 그녀의 방심을 알고는 사양하지 않고 허점을 찔러 왔다. 가까스로 그녀가 방패를 이용해서 막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흑기사가 충격에 흔들거렸다.
“괴물 같은 타이탄……. 이쪽보다 훨씬 뛰어난 파워에 더욱 육중한 덩치. 루엔 따위에게 이렇게 밀리다니, 정말 한심하군.”
지크리트 루엔 공작과 리사 드 크로데인 후작 부인. 두 사람은 모두 마스터였고, 타이탄 전투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일대일의 대결을 치르고 있었다. 아무리 집단 전술 기동을 하여 충돌한다고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각 타이탄들끼리의 격투는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 둘의 격투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쪽 저 멀리에는 양군의 사령관인 미네르바 켄타로아 공작과 까뮤 드 로체스터 공작이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갑자기 자신이 드래곤 슬레이어임을 표시하는, 킬러 마크를 붙인 타이탄 한 대가 흑기사를 헤치고 돌파해 들어왔다. 리사는 그것을 보고 햄리쉬를 그쪽으로 돌리려고 했지만, 햄리쉬 또한 그 괴물 같은 덩치를 지닌 또 다른 안티고네에게 막혀 어쩌질 못하고 있었다. 그 드래곤 슬레이어 마크를 단 녀석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던 흑기사를 가까스로 해치운 후 밀집된 흑기사들의 진형을 파고들며 리사를 협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루엔을 상대로 약간 우세한 공격을 퍼붓고 있던 리사는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가 기사들끼리의 접전에서는 일대일의 대결을 원칙으로 했지만, 서로 국가 존망을 건 싸움인 만큼 그따위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어제도 오늘도 2대 1 심지어 3대 1까지의 격투도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리사는 둘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 내며 자신을 도와줄 만한 동료가 없는지 살폈다. 하지만 저쪽 한구석에서 미네르바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까뮤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미네르바가 워낙 뛰어난 검객인 데다가 그녀가 가진 타이탄 또한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수 위인 미네르바와 헬 프로네를 상대로 로체스터가 저토록 분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곳이 장애물이 많은 전장의 한복판인 덕분이었다.
“제기랄, 하다못해 내 아들만 여기 있었어도…….”
리사와 루엔의 검과 방패는 둘 다 푸르스름한 은은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것들끼리 부딪칠 때마다 불꽃을 튕기고 있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시작해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다가, 갑자기 상대가 거의 40여 대의 증원까지 받아 힘차게 밀어붙이자 균형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제 상대방은 성능도 우세한 데다가 그 숫자 또한 밀리지 않는 많은 타이탄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전력을 이용하여 끈질기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리사의 타이탄은 양쪽의 협공을 받아 점점 더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흑기사의 두터운 장갑으로도 계속되는 적의 공격을 막아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어느 순간 리사가 루엔의 검을 방패로 막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 옆에 있던 킬러 마크를 붙인 타이탄이 얼마 되지 않는 좁은 틈을 비집고 검을 쑤셔 넣었다. 다행히 그 검은 2차 장갑을 뚫긴 했지만 그렇게 깊이 들어오지는 못하고 멈췄다. 흑기사가 반사적으로 몸을 살짝 뒤틀자 상대의 검이 쩡 하는 소리를 내며 두 조각이 나 버렸다.
상대의 검이 바로 지척까지 뚫고 들어온 것을 알고 반사적인 행동을 한 리사와, 또 자신의 본체에까지 검이 박혀 들어와 잠시 마나의 흐름에 장애를 받은 타이탄. 이들이 순간적으로 방심 상태에 빠진 그때, 루엔 공작의 검이 아예 흑기사의 방패를 뚫고 들어왔다. 루엔의 검은 충만하게 마나를 간직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방금 전의 그 킬러 마크를 붙인 타이탄의 검처럼 얕게 들어오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그 검은 리사의 복부와 흑기사의 엑스시온에 치명적인 검상을 남긴 후 사라졌다.
쿵!
리사가 애용하던 흑기사가 쓰러졌을 때, 그녀의 가물거리는 시선에는 뭔가 하늘 위에서 빛을 뿜으며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그것이 저쪽에서 고전하는 자신의 친구의 상대 타이탄과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숨이 멈췄을 때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타이탄에 탑승한 채 공간 이동을 해온 키에리 발렌시아드는 자신의 타이탄이 안전을 위해 지상에서 20미터쯤의 높이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 전황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 그 순간에 이곳 가므 침공군은 거의 붕괴 직전의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키에리의 헬 프로네는 하늘에서 떨어지자마자 그 밑에서 격투 중이던 흑기사의 어깨를 밟고는 그대로 다시 도약했다. 그러면서 그 흑기사와 격투를 벌이고 있던 거대한 타이탄의 머리를 사정없이 발로 차 버렸다. 상대편 타이탄은 머리가 완전히 으깨진 채 뒤로 붕 떴다가 땅에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그제야 땅에 착지한 헬 프로네의 검은 희미한 빛을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거의 불타오르듯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불을 뿜어내는 드래곤이 그려진 또 한 대의 헬 프로네. 이것의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헬 프로네가 모습을 드러내자 밀리고 있던 코린트 기사단의 사기는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코린트 전 군(全軍)의 최고 사령관이자 최고의 검객이 타이탄을 이끌고 직접 나타났는데 사기가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헬 프로네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두 대의 카마리에를 방패째 두 토막 낸 후, 리사를 해치우고 또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던 루엔 공작과 그 드래곤 슬레이어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타이탄이 부러진 검을 버리며 재빨리 뒤로 빠진 후 리사의 타이탄이 남긴 검을 줍는 순간, 루엔 공작과 키에리의 대결은 시작되었다.
“안 돼!”
미네르바는 자신이 아끼던 부하가 상대해야 하는 적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경고성을 외치며 자신이 키에리를 상대하려 했다. 하지만 까뮤는 그녀가 그쪽으로 달려가게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몇 시간에 걸쳐 자신을 이토록 고생시킨 상대를 순순히 놔 줄 수가 없었다.
까뮤가 사력을 다해 미네르바를 잡고 있는 그때, 루엔은 이미 상대 타이탄을 향해 일격을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왼팔의 소드 스토퍼로 루엔의 검을 막는 그 순간 검으로 루엔이 타고 있는 타이탄의 오른손을 가격했다. 불꽃이 튀며 안티고네의 오른팔이 검을 쥔 채 떨어져 나갔다. 오른손까지 날아가 전투 불능이 된 루엔은 재빨리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을 집어 든 드래곤 슬레이어가 루엔 대신 헬 프로네를 막아섰다.
하지만 헬 프로네는 루엔을 향해 달려가는 그 여세를 죽이지 않고 바로 그 이글거리는 검으로 드래곤 슬레이어의 방패를 후려쳤다. 루엔 정도의 마스터급이라면 마나를 방패나 검에 밀어 넣어 그 강도를 올리는 기법을 알고 있지만 그 외의 인물들은 그렇지가 못했다. 순식간에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검은 드래곤 슬레이어 문장이 붙은 안티고네를 방패째로 관통하고 지나갔다. 헬 프로네가 루엔의 뒤를 쫓아 도약하기 시작했을 때, 드래곤 슬레이어의 타이탄은 천천히 상체의 윗부분이 떨어져서 땅에 곤두박질쳤고, 곧이어 하체도 땅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게 완료되었을 때쯤에는 루엔이 타고 있던 타이탄은 등 뒤에서부터 상대의 검을 맞고 자빠지고 있었다.
“루엔!”
미네르바는 자신이 아끼던 부하의 이름을 외쳤지만 쓰러진 그 타이탄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투구에서부터 시작해서 곧장 아래로 내려찍었으니 루엔 공작이 살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미네르바는 격렬한 공격을 가해 까뮤의 타이탄을 밀어붙였다. 그런 후 순식간에 여섯 대의 타이탄을 파괴한 키에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가오는 최강의 대결
“피해는?”
미네르바는 피곤에 찌든 표정으로 부하에게 말했다.
“예, 전하. 라이오네 근위 기사단 전멸, 엠페른 기사단 42대 상실, 레디아 제2근위대 전멸. 루엔 공작 전하께서도 전사하셨음이 확인되었사옵니다. 레디아 제1근위대 안티고네 7대 상실. 지발틴 기사단…….”
미네르바는 노장군의 보고를 들으며 오늘 악몽과 같았던 전투를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던 많은 타이탄들. 그리고 그들을 무자비하게 베어 가던 그 무시무시한…….
“그만! 아∼ 끝장이군. 겨우 키에리 단 한 명이 가세했을 뿐인데 이 모양이라니.”
그날 하루. 오전 내내 최고의 전력을 자랑하던 크루마 연합군은 놀랍게도 상대방의 키에리 드 발렌시아드 대공이 타이탄을 타고 직접 전장에 나타나는 바람에 최악의 상태로 곤두박질쳤다. 키에리는 그 놀라운 검술로 눈에 띄는 대로 크루마 연합군의 근위 타이탄들을 파괴해 나갔다. 미네르바는 그 악마를 막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아니 그 이상으로까지 발휘해 봤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그녀가 조종하는 헬 프로네의 왼손이 떨어져 나가고 생명까지 위태로워지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그 부근의 실력 있는 기사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가 더 많은 피해만 자초했다.
“이 상태라면 본국의 엘프란 기사단을 끌어들인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사옵니다. 키에리 같은 검객을 상대할 자는 최소한 근위 기사급은 되어야 하옵니다. 하지만 그를 없애기 위해 수많은 기사들이 협공했지만, 결과는…….”
“결과는 알고 있다. 나도 그를 당해 내지 못했으니까. 오늘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지. 나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유능한 기사들만 잃었구나.”
“너무 자책하지 마시옵소서, 전하. 오늘의 전투로 키에리를 상대할 사람이 없는 한,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밝혀졌사옵니다. 차라리 본국으로 후퇴하여 마법을 이용하는 것이 확률이 더 높을 것이옵니다. 만약을 대비하여 마리아 방어선에 대타이탄용 공격진을 설치 중이옵니다. 그곳으로 후퇴하시는 것이 어떠하올지…….”
노장군은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만약 지금 시점에서 후퇴한다면 후퇴가 아니라 패주로 전락, 적의 추격을 받아 최악의 경우 전멸의 가능성마저도 있었다.
“후퇴하면 더 비참해질 뿐이야. 우리가 본국으로 후퇴한다면 몇 남지 않았지만 우선 미란의 기사단이 등을 돌리게 될 거야. 그리고 몇 대 살아남지도 못했지만 그 외의 동맹국들도 등을 돌리겠지. 그 녀석들이야 모두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또 하나…….”
미네르바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자신이 그 망할 계집에게 주눅이 들어 별로 말대꾸도 못하고 쫓겨 온 그날의 일을 부하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뭔가 말을 하다가 중단하자 부하는 예의상이라도 질문을 던져 왔다.
“무엇이옵니까?”
미네르바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놈들은 이 한밤중에 야간 전투를 벌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마법사들을 동원하여 빛을 뿜는 마법을 사방에 펼쳐 대낮같이 해 놓고 싸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이 강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바에야 낮에 그렇게 설쳐 댔으면 밤에는 쉬어야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러면서 놈들은 내일 있을 총공세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내일 새벽까지 키에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크루마는 미란 국가 연합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네르바는 어젯밤 일을 곰곰이 생각하는 중이었다. 다크 폰 로니에르 공작. 검집이나 손잡이는 수수했지만 내용물은 정말 고급인 특이한 검을 착용하고 있던 소녀. 키도 작았고, 아직까지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걸 보면 절대로 어떤 마법이나 그런 걸 이용해서 노화를 억제하고 있는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이 미네르바보다 더 뛰어난 검술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자꾸 막고 있었다. 미네르바도 예전에 경험했지만 중년에 이르러 마스터의 경지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몸이 젊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건 한참 젊을 때로 돌아간다는 의미였지, 아예 성장기 때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게 문제야. 그녀가 과연 놈을 막을 수 있을까? 아니, 못 막더라도 상관없지. 지금 타이탄 60대가 얼만데…….”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듯 미네르바는 노장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살라만더 기사단으로 갈 테니까 준비해 줘.”
그녀의 말에 노장군은 즉각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노장군 또한 그녀가 어젯밤에 살라만더 기사단의 로니에르 공작을 찾아가서 둘 사이에 뭔가 협정을 맺었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그것에 대해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작전관인 그에게 여분의 기사단이 놀고 있는 것에 대한 해명을 해 줄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옛,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