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의 적은 코린트가 아니야
초조하게 50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제임스는 이윽고 마법 통신이 개통되자 재빨리 마법사를 밀어내고 말했다.
“로체스터 공작 전하께서는 어디 계시냐?”
“예? 공작 전하께서는 코린티아에 가셨습니다, 각하.”
“코린티아에는 왜?”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전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언제 돌아오시나?”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조만간에 돌아오실 것입니다. 참, 공작 전하로부터의 전언이 있습니다. 새로운 지시가 있을 때까지 합류할 생각하지 말고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라는 전갈이셨습니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근위 기사단 병력의 태반이 이 구석진 곳에 빠져 있으라고? 도대체 공작 전하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 참, 나중에 공작 전하께서 돌아오시면 나하고 통신을 할 수 있게 해 주게. 그리고 크라레스에서 밀고 올라오는 기사단을 얕잡아 보지 마시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각하.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제임스는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기에, 통신권을 마법사에게 넘긴 후 돌아섰다. 제임스는 혼란스러운 정신을 바로잡으려고 애쓰며 로체스터 공작의 의도가 무엇인지 유추해 보기 시작했다. 이렇듯 중요한 때에 전방 사령관이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런데도 지금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크루마의 대군을 막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렇다고 수도와 통신 회선을 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궁금해 죽겠군.’
“제기랄,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제임스는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짜증 어린 말을 내뱉은 후 키에리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키에리는 아직도 창백한 안색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방에 있어야 할 까미유가 보이지 않았다. 제임스는 서둘러 방문을 닫고는 근처에 눈에 띄는 아무나 잡고 물었다. 제임스의 질문을 받은 사병(私兵)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까미유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쪽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급히 방문을 벌컥 열었는데, 그곳에서 까미유는 우울한 얼굴로 포도주를 한 잔 가득 부어 마시는 중이었다.
“술 마시는 중이었나? 나도 한 잔 주게.”
까미유는 말없이 잔을 하나 꺼내어 가득 부은 후 건넸다. 제임스는 잔을 받아 들며 측은하다는 듯 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말게나.”
까미유는 별로 상심할 것도 없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뭐, 자네가 걱정하듯 그렇게 상심하는 것은 아니야. 어머니가 그렇게 짧은 생을 사셨던 것도 아니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겉모습이 젊어서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매우 장수하셨더군. 그런데 허겁지겁 방문을 연 이유는? 내가 자살이라도 할까 봐서?”
그렇게 생각하긴 했었지만 상대가 먼저 물어 오자, 제임스는 시침을 떼고 딴말을 시작했다.
“아니, 자네하고 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뭔데?”
“크라레스가 침공해 들어왔어. 타이탄 약 1백여 대로 이루어진 3개 기사단. 그리고 그 뒤를 받치는 군대는 2개 중장 보병 사단, 4개 경장 보병 사단, 2개 기병 사단 규모라고 하더군. 어때? 놀라운 소식이 아닌가?”
“자네가 그렇게 뛰어 들어올 정도로 놀라운 소식까지는 아니군. 크라레스가 크루마를 도와줬을 때부터 이번 전쟁에 끼어들 것은 정해져 있었어. 다만 본격적으로 마수를 드러내는 그 시기가 언제일지가 불분명했을 뿐이지.”
“그건 그렇군. 하지만 생각 외로 크라레스가 엄청나다는 거지. 자네는 그 생각을 못 했나? 우리가 추격해 온 그 소녀 말이야.”
“그 소녀가 왜?”
“엄청난 검기를 뿌리던 그 검은색 타이탄에 타고 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버님조차도 당해 내지 못한 상대. 기동 연습 때 우리 둘이서 아버지를 상대했을 때, 분명히 우리들은 아버지 한 사람을 당해 낼 수 없었어. 그런데 그런 상대가 그냥 돌아가 버렸지. 그 거대한 타이탄이 뿜어내는 강렬한 투기(鬪氣) 앞에서 심장이 쪼그라들 정도였는데 말이야. 다행히 그 투기가 사라졌을 때 나는 안도감에 힘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런 상대가 우리를 놔두고 왜 돌아갔을까?”
제임스의 말에 까미유는 그따위 것 별로 흥미도 없다는 듯 내뱉었다.
“그놈 속마음을 내가 알 게 뭐야.”
“자, 생각을 해 봐. 아버지까지 쓰러뜨릴 정도의 실력자라면 상대방 기사단장 내지는 사령관이라고 봐야지. 안 그래?”
“실력으로 생각한다면 그게 맞겠지.”
“크루마의 사령관은 미네르바. 나중에 우리들한테 걸려서 혼쭐이 났었잖아? 미네르바가 헬 프로네의 주인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구. 그렇다면 그 검은색 타이탄은? 그게 만약 크라레스의 신형이라면 설명이 되지. 우리가 추격하면서 알아낸 바로는 소녀는 치레아 총독이자, 파견군 사령관이었어. 그렇다면 그 타이탄에 타고 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까미유도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그 가냘픈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이성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감정상으로 그녀를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설마…….”
“설마가 아니야. 검은색 타이탄에 타고 있던 사람이 그 소녀라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될 수 있지. 우리들이 그녀에게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또 적기사를 이미 아르곤에서 봤기에 그 안에 우리들이 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눈치 챘겠지. 우리들이 나섰을 때 그녀는 우리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외모에…….”
“그게 아니라니까.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아르곤에서 처음 만났을 때 마스터인 나를 앞에 두고도 비웃는 듯한 어조로 ‘겨우 그 실력으로?’하고 말한 것.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확신하고 있어. 그녀는 검객이었어. 그것도 엄청나게 강한.”
“이리저리 맞춰 보면 검객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외모는…….”
마지막까지 부인해 봤지만 까미유도 대충 그녀가 범인일 것이라고 이성적으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데다가 제임스는 마지막으로 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외모야 마법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 만약 그녀의 외모가 약간 나이든 우락부락한 남자였다면 처음부터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안 그래?”
“그거야…, 그렇지.”
“별로 마음에 내키는 것은 아니지만 크라레스에 그녀 같은 고수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야. 그녀를 어떻게 해치우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뀔 거야. 그건 그렇고 이제는 아버님도 위기를 넘긴 상태고……. 원래는 건강이 약간 회복되면 쟈크렌 요새로 이동해서 본대와 합류할 예정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로체스터 공작 전하께서는 이곳에 우리들이 남아 있기를 바라셔. 그래서 말인데…, 내 생각에 여기는 별로 안전하지 못하다는 거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나도 자네 의견에 동감이야. 공작 전하의 지시가 그렇다면 일단 지켜야 하겠지. 녀석들도 우선 굵직한 영지들과 잔여 병력들을 소탕한 후에는 아마도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겠지. 그 전에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좋아. 그런데 근위 기사단원들만 해도 거의 1백여 명인데 자리를 잡을 만한 곳이 있을까?”
“지금 로체스터 공작 전하께서는 코린티아로 가신 모양인데, 곧 돌아오실 예정이라고 하니까 돌아오시는 대로 보고를 드리고 전투에 불필요한 인원은 돌려보내야겠지. 그때를 위해서 남아야 하는 인원을 자네가 한번 뽑아 봐. 그리고 우리들이 머물 만한 장소도 한번 알아 보고 말이야.”
까미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자네는 옛날부터 내가 편히 쉬는 꼴을 못 봤으니까…….”
“자네니까 부탁하는 거야. 영광으로 알라구.”
까미유는 이제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생겼기에 술잔을 놓고 밖으로 나갔다. 제임스는 방을 나서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아버지가 죽은 것도 아니고 중상을 입었을 뿐인데도 자신의 마음이 이런데, 전사한 경우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거리를 만들어 까미유가 딴 생각을 못 하게 도와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다크와 그 일행이 크라레스 제국의 수도 크로돈에 도착했을 때, 토지에르가 몇몇 중신(重臣)들과 함께 일행을 마중 나와 있었다. 토지에르는 다크의 모습이 나타나자 재빨리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 왔다.
“어서 오시옵소서, 공작 전하. 먼 길에 수고 많으셨사옵니다.”
“그러는 자네도.”
“개선 사령관을 영접하는 데 너무 소홀한 것 같아 송구하옵니다.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자네가 요즘 들어서 매우 바빴다는 것은 알지만, 내가 왔던 세계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조사해 봤나?”
“예, 당연히…, 20여 명의 마법사들을 풀어서 조사하는 중이옵니다. 만약 돌아가는 방법이 있다면 기필코 찾아낼 테니 안심하시옵소서.”
토지에르의 말에 다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잊지 않고 있었다니 고맙군. 그건 그렇고 코린트 전선은 어떻게 되어 가나?”
“예, 순조롭게 진격 중이옵니다. 하지만 곳곳의 지방 영주들이 사병들을 거느리고 저항하는 바람에 진격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못한 편이죠. 아마도 문제가 없다면 6일 후에는 크라레인시에 도착하게 될 것이옵니다. 오랜 시간 고생이 많으셨으니 한 며칠 쉬시고 크라레인 공방전에 참석하시면 될 것이옵니다.”
“알겠다. 자네는 아버지와 내 일행들에게 숙소를 마련해 드리게. 폐하는 어디에 계시나?”
“예, 중앙 홀에 계시옵니다.”
다크가 중앙 홀에 들어설 때 황제는 몇몇 중신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반겨 맞이했다. 다크는 황제에게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그의 뒤에 서 있는 장교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검이 매우 눈에 익은 것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자자, 어서 오게나. 그 엄청난 무훈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네. 짐의 휘하에 키에리를 패배시킬 무인이 있다는 것은 정말 신의 도움인 것이야.”
“소임을 다한 것뿐이죠. 그런데 저 검은?”
다크의 경우 궁중 언어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황제는 그녀에 한해서 묵인을 해 주고 있었다. 그는 신하의 말투가지고 마음 상할 정도로 쪼잔한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아, 저건 경의 아버님이 짐에게 선물로 준 것이지. 대단한 명검이지 않나?”
그 말에 다크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티어스가 벌레만도 못 하게 생각하고 있는 인간 황제에게 저런 검을 선물할 리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르티어스가 여기서 뭔가 사고라도 친 게 아닐까하고 의심했다.
“그런 것 같군요, 폐하. 그런데 혹시 아버지가 뭔가 실례되는 행동이라도 한 것은 없습니까? 여기에 들렀다고 하던데…….”
다크의 말에 황제는 약간 찔리는 구석이 있었지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인했다. 아르티어스가 황제에게 검까지 선물한 이유는 절대로 그 사실이 아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한 입막음용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우둔한 황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일은 없었네. 전시가 아니라면 무도회라도 열고, 거창한 열병식을 하며 경을 환영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좀 힘들군. 이해해 주게나.”
“마음 쓰지 마십시오.”
“점령지를 넓혀 가는데 코린트의 저항이 워낙 거세다 보니 병력이 많이 들어가는구만. 아마도 일주일 후에는 제2진을 투입해야 할 것 같아. 치레아, 스바시에, 크라레스 각 지구에 보병 사단 하나씩만 남겨 놓고 모든 병력을 집어넣어야 하겠지. 말토리오 산맥에 출몰하던 모든 오크들을 경이 전멸시켜 둔 덕분에 병력을 빼는 데는 별로 무리가 없더군. 지금 국경선 부근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는 중이지.”
“국지전에도 타이탄을 넣는 것은 어떻사옵니까?”
“안 그래도 그렇게 하고 있네. 각 사단에 콜렌 기사단에서 저급 타이탄 두 대씩을 지원해 주고 있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방 영주들을 진압하는 것만도 벅찰 거야. 덕분에 콜렌 기사단의 전력은 지금 반으로 줄어 있다네. 코린트가 힘을 못 쓰는 형국인데도 매우 힘들구만.”
“모든 것이 잘될 것이옵니다, 폐하.”
“그래야 하겠지. 오랜만에 경하고 함께 식사나 할까?”
“좋사옵니다. 그런데 오늘도 돼지고기를 넣은 채소 수프인가요?”
상대의 말에 황제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경은 그게 별로 구미에 안 맞는가 보군.”
“아뇨,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별로 음식을 가리지 않습니다.”
역시 황제의 점심 식사는 다크의 예상대로였다. 개선장군을 맞이한 매우 경사스러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절약 정신은 변함이 없었고, 다크는 그런 황제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황제가 그렇게 투박한 음식을 즐기는 것이 노랭이라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크는 황제와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누며 적당한 시간을 함께하다가 물러나왔다. 그녀는 아르티어스가 있는 곳으로 갈까 하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서 토지에르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토지에르는 집무실에 있지 않고 타이탄 제조창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갔다.
크라레스의 타이탄 제조창은 예전부터 외부 사람이 잘 모르도록 매우 비밀리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코린트가 30년 전 전쟁 이후로 크라레스의 타이탄 생산을 엄금하고 있었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타이탄의 거대한 덩치를 생각했을 때 제조창은 당연히 아주 크면서도 모두들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건물이어야 했다. 그리고 웬만큼 많은 사람이나 화물이 들락거려도 이상하지 않은 곳. 그렇게 생각한다면 선택의 폭은 몇 가지로 줄어든다. 크라레스의 타이탄 제조창은 크루마의 신전 양식(神殿樣式)에 가깝게 지어 놓았고, 또 건물 밖에 포진하고 있는 경비병들은 모두들 신관(神官)의 복장과 무장을 하고 있었다.
다크가 거대한 신전 건물에 다가서자, 그녀를 알아본 신관이 인사를 건네 왔다. 얼룩덜룩한 수많은 무늬를 집어넣고 그 사이사이에 물고기라든지 해일, 폭풍을 형상화한 것 등등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복장. 이 신전은 바다의 신 넵튠(Neptune)의 신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이 이 신전을 말토리오 산맥 속에 지어 놨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넵튠의 신전은 해안가에 지어져 있었다. 그래야 그 신을 필요로 하는 어부라든지, 아니면 바다와 연관된 일을 하는 무역상인 등이 참배를 하기에 좋다. 물론 크라레스에서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산골짜기에는 넵튠을 신봉하는 인물들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넵튠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만약 진짜 넵튠 신도가 참배를 하겠답시고 오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것도 없으니까.
거대한 신전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완전히 경관이 바뀌게 된다. 거대한 공장. 타이탄의 작은 부품 하나하나는 여기저기 딴 곳에서 제작되고 그것들이 이곳에 운반되어 와서 여기서 조립되어 그 안에 크로네를 채워 넣고, 미스릴을 입히는 것이다. 내부는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기 덕분에 후덥지근했는데, 그런 와중에 한쪽 귀퉁이에서 마법사들이 웅성웅성 모여서 막 틀에서 뽑혀 나온 엑스시온을 앞에 두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토지에르는 앞의 마법사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제조창 안으로 경비병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서는 소녀를 보고는 재빨리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이시옵니까? 전하.”
“이제부터 정식으로 싸워야 하니까 타이탄의 도장(圖章)을 새로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황제께서 말씀하셔서 말이야. 아주 바쁜 것 같군.”
여기저기에 뼈대를 입히고 있는 20여 대의 타이탄을 바라보며 다크가 감탄 어린 어조로 말하자, 토지에르는 맥이 빠진다는 듯 대꾸했다.
“예, 노획 타이탄이 거의 2백여 대가 넘게 들어왔으니 당연한 일이옵니다. 하지만 저것들이 실전에 배치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지…….”
“이번에도 테세우스를 생산하는 것인가?”
“예, 이제 대 제국으로서의 위풍을 세워 나가려면 카프록시아를 생산하는 것이 더 좋겠지만…, 카프록시아는 외장에 꽤 신경을 쓴 녀석이기에 짧은 시간에 대량 생산하는 데는 힘이 좀 들지요. 아주 단순한 외형을 하고 있는 테세우스 쪽이 생산 시간이 적게 드니 어쩔 수 없사옵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이때 그녀의 뒤쪽 공간을 열고 엄청나게 거대한 청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장을 새로 칠하는 작업은 언제 끝나게 되지?”
다크의 질문에 토지에르는 저쪽에 도열해 있는 테세우스 여덟 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들에는 여러 명이 달라붙어서 새롭게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 정식으로 입혀지는 테세우스의 색상은 카프록시아와 같은 붉은색과 푸른색이었다.
“이번 전투로 인해서 모두들 엉망진창이니까 한…, 3일쯤 후에나 칠하게 될 것이옵니다.”
토지에르는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청기사를 세심히 살펴보며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여기저기에 검상을 입었던 흔적이 보이는군요. 거의 무적일 것이라고 생각한 타이탄이 이 모양이니 테세우스들의 표면이 그렇게 많이 상한 것은 당연한지도…….”
토지에르가 우려 섞인 어조로 말했지만, 다크는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뭐, 걱정하지 말게나. 더 이상 페인트를 새로 칠해야 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을 거야. 그건 그렇고 치레아로 가려고 하는데, 보내 줄 수 있나? 바쁘면 아버지한테 부탁하고.”
“치레아와 스바시에에는 영구 이동 마법진을 건설했사옵니다. 그걸 이용하면 마법사의 도움이 없어도 이동이 가능하지요. 경비병들에게 물어보면 공간 이동문을 가르쳐 드릴 것이옵니다.”
“좋아, 6일 후에 보기로 하지.”
“예,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