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9화 (217/930)

모두가 다 옳은 일은 아니었어

“대공 전하, 자리에 누워 계시지 않고 뭐 하시는 것이옵니까?”

병자가 자리에 누워 있지 않고 나무에 기대어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죠드가 키에리의 등판을 향해 따지듯 말하자, 키에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천천히 답했다.

“훗, 자네는 아직도 나를 대공 전하라고 부르는가? 본인은 기사의 맹세를 저버린 몸. 이제 더 이상 기사도, 대공(大公)도 아니라네.”

“그런 말씀 하지 마시옵소서.”

“자네는 왜 돌아가지 않는가? 나는 이제 더 이상 코린트의 귀족이 아닐세. 나를 자네가 더 이상 돌봐야 할 의무가 없다는 말이야.”

“그래도 전하, 상처가 찢어질 수 있사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그렇게 큰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살아나신 것만도 아레스신의 도우심이옵니다.”

“아닐세. 나는 이제 많이 좋아졌어. 이제 더 이상 치료 마법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거야. 자네도 그것을 잘 알 텐데 왜 여기에 남아 있나? 돌아가지 않을 텐가? 제임스의 부탁 때문이었다면 이제 돌아가도 된다네.”

키에리가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죠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그로서는 도저히 키에리를 혼자 놔두고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설혹 조국이 지금 전쟁 중이라고 해도…….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전하.”

“왜?”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전하이시기 때문이옵니다. 전하께서 안 계신 코린트는 생각할 수도 없고, 또 그런 곳에 남아 있고 싶은 생각도 없사옵니다.”

죠드의 말에 키에리는 비웃듯 내뱉었다.

“미친 녀석이군.”

죠드는 그 말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간곡하게 키에리를 향해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상관없사옵니다. 제발 저를 돌려보내지만 말아 주시옵소서.”

“좋아, 자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내 한 가지 부탁함세.”

“뭐든지 하명하소서.”

“나는 더 이상 공작이 아닐세. 그러니 그 망할 놈의 전하 소리는 좀 빼 주게. 그리고 작위에 관계된 그런 존칭은 더 이상 받을 자격이 없으니 말투를 좀 낮춰 주게나. 그렇다면 내가 참고 들어 주지.”

“예, 그게 좋으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아아…, 석양이 참 아름답구먼. 예전에 수련할 때는 석양을 바라보는 것을 참 좋아했었는데, 어떻게 된 것이 그 좋아하던 것을 바라볼 여유도 없이 살아왔군.”

“예, 전하께서도 이제 좀 쉬실 때가 되었지요.”

“전하 소리는 빼래두 그러는구먼.”

“예, 전하.”

“푸흐흐흐, 어쩔 수 없는 놈이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키에리가 말하자, 죠드는 키에리의 뒤에서 난처한 듯이 말했다.

“입에 익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전하가 아니라면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냥 발렌시아드라고 부르게. 그게 어색하면 님 자라도 붙이든지.”

어느덧 해는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고 하늘에는 붉은 기운만이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사위는 어둠에 덮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제 해는 졌으니 들어가시지요. 밤이슬은 상처에 안 좋습니다.”

키에리는 죠드의 부축을 받으며 작은 오두막집을 향해 가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죠드로서는 이렇듯 말 많은 키에리는 처음 겪어 보는 것이었다. 죠드가 알고 있는 키에리는 말수가 적고 엄하며, 불같이 화를 잘 내기도 했지만 관용(寬容)이라는 것이 있었다. 실수를 했을 때 부하를 엄하게 질책하기도 했지만, 부하의 실수를 감쌀 줄도 알았다. 그야말로 죠드가 꿈꾸고 있는 최고의 상관이었던 것이다.

“그냥 드러누워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러네. 리사, 까뮤, 그라세리안 그렇게 넷이서 코린트를 위대한 제국으로 만들자고 맹세했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버렸어. 자네는 이렇듯 후회되는 삶을 살지는 말게.”

“예? 발렌시아드 님의 삶이 어때서 그렇습니까? 발렌시아드 님께서는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복권(復權)되실 것입니다.”

“쯧쯧, 나는 지금 복권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세. 코린트를 키워 놓은 것은 좋았지만, 충성심이란 미명 아래 너무나도 못된 짓을 많이 했구먼. 아마도 그것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만큼 코린트를 위해 열심히 일하신 분이 누가 있으시겠습니까? 자, 전하, 그만 침대에 좀 누우시죠. 그게 편하실 겁니다.”

키에리는 죠드에게 이끌려 통나무로 얼기설기 짠 후, 그 위에 짚을 채워 만든 매트리스를 깔아 둔 침대에 몸을 눕혔다. 오랜만에 오랜 시간 서 있어서 그런지 상처가 쑤셔 오고 약간 현기증도 나는 듯싶었다. 죠드가 자신의 몸 위에 담요를 덮어 주는 것을 보며 키에리는 약간 힐책하듯 말을 꺼냈다.

“또 전하로군……. 그게 아닐세. 코린트를 위하는 것이라고 그게 다 옳은 일은 아니지. 권력이라는 것에서 떠나는 그 순간 그것을 이해하겠더군. 그리고 그라세리안이 왜 떠났는지도 알겠어. 그는 이제 싫증이 났던 거야. 코린트와 친구들에게서 말이지.”

키에리의 돌연한 말에 죠드는 놀랍다는 듯 물었다.

“예? 떠나시다니요? 코타스 전하께옵서는 행방불명이 되거나 암살당하셨을 확률이…….”

“아닐세. 그건 자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숨어서 마법 실험이나 하고 있던 그 친구를 산속에서 끌고 나온 건 우리들이었지. 그는 정말 대단한 마법사였지. 그는 우리들과 함께 세상에 나온 후 열성적으로 우리들을 도왔어. 하지만 마지막에 적기사를 개발한 후, 더 이상 뛰어난 엑스시온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을 때 그는 회의감을 느꼈겠지.”

“회의감이라니요? 그라세리안 전하께옵서는 저희들 마법사의 꿈이었습니다.”

“그게 아니야. 자신이 처음 개발한 카로사, 그리고 미노바, 그다음 흑기사. 카로사와 미노바야 크라레스 전쟁이 끝난 후에야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지만 흑기사는 달랐지. 개발됨과 동시에 양산(量産)되어 다섯 대가 만들어져서 처음 전쟁에 쓰였을 때 그는 그것이 엄청난 살육을 위한 병기라는 것을 깨달았겠지.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흑기사보다 더 뛰어난 타이탄을 만든다는 목표가 있었어. 그 때문에 수십 년을 틀어박혀 있었지. 흑기사의 엑스시온을 개발하는 데 토대가 된 헬 프로네…, 쿨룩쿨룩!”

상처가 쑤시는지 기침을 해 대는 키에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죠드가 말했다.

“말씀을 너무 많이 하지 마십시오. 아직 상처가…….”

“괜찮네. 지금은 뭐라도 지껄이고 싶군. 그래, 아마도 그 녀석은 주인도 아닌 주제에 헬 프로네에 탑승한 유일한 인물이었을 테지. 그가 내 헬 프로네에 탄 것도 운전석 밑에 보이는 헬 프로네의 마법진을 연구하기 위해서였어. 하지만 모방으로는 흑기사 이상의 출력을 낼 수 있는 엑스시온은 개발하기 힘들었지. 그래서 모든 것을 잊고 그렇게 오랜 시간 틀어박혀서 적기사의 엑스시온을 개발한 거야. 수많은 시험용 엑스시온을 만들며 폭발 사고도 많이 일으켰고, 또 좌절도 겪었겠지. 하지만 그걸 개발하겠다는 일념으로 죽자고 연구를 해 댔으니 그때 친구들인 우리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고, 또 부강해진 코린트가 약소국을 잡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야. 하지만 적기사의 엑스시온은 완성되었고, 그는 그제야 할 일이 없어져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되찾은 거야. 그런 후 환멸을 느꼈겠지. 쿨룩, 쿨룩쿨룩!”

“그 얘기의 뒷부분은 내일 듣겠사옵니다. 이제 그만 주무십시오.”

“아닐세, 좀 더 얘기하고 싶어.”

하지만 죠드는 키에리의 말을 무시하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는 노련한 마법사답게 재빨리 주문을 완성한 후 시동어를 외쳤다.

“슬립!(Sleep).”

키에리의 잠들어 있는 평안한 모습을 보며 죠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생각했을 때 키에리는 권력의 상실에 너무 심한 타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렇게 나약하신 분이 아니었는데……. 그래, 몸이 병들어서 그 때문에 마음까지 약해지신 거야. 나중에 건강이 회복되시면 다시 예전의 자신감을 회복하시겠지.”

괘씸한 놈들

“이봐.”

“예? 예, 나으리.”

겁에 질린 묘인족 특유의 얼굴 모양. 묘인족은 표정이 어떻든 귀의 모양을 보면 그 심리 상태가 아주 잘 드러나는 특이한 종족이다. 평상시에는 뾰족하게 머리 위로 뻗쳐 있다가, 겁을 집어먹거나 하면 귀가 아래로 축 쳐지는 것이다. 물론 귀와 함께 얼굴 표정에서도 겁먹었다는 것이 확실히 드러났지만…….

“내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말해. 안 그러면 알아? 바로 이렇게 만들어 놓을 거야.”

다소곳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묘인족 소녀를 우악스런 눈길로 바라보며, 눈이 위치하는 부분에 두 개의 구멍밖에 뚫려 있지 않은 복면을 뒤집어쓴 그 괴한이 위협용으로 쥐고 있던 몽둥이를 꽉 쥐자 몽둥이의 손잡이 부분이 박살이 나 버렸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손아귀의 힘(握力)이었다.

“뭐, 뭘 말입니까?”

“너는 다크 폰 로니에르 공작의 시종인 세린이 맞지?”

세린은 겁에 질린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한껏 쾌락에 들뜬 것처럼 묘하게 풀려 있었다.

“예.”

“그녀와 만난 것이 언제야?”

“지금부터 한 일 년 반쯤 전이었던가? 그때 만났습니다요.”

“그녀는 지금 어디 있지?”

“전쟁터로 가신다는 것 외에는 잘 모릅니다요.”

“이것이?”

머리카락을 확 틀어쥔 후 괴한이 얼굴을 세린의 얼굴 바로 위로 들이밀었다. 순간 지독한 민트 향기가 세린의 코를 자극했다. 상대는 심문해야 할 대상자가 사람이 아닌 묘인족이라는 점을 상기하여 자신의 체향(體香)을 맡지 못하도록 강렬한 향수를 뿌려 놨던 것이다. 복면 안으로 보이는 희번득거리는 눈에도 불구하고 세린은 묘하게 기분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원래가 고양이들은 민트 향기를 미치도록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무슨 마약이라도 맞은 듯이 기분이 붕 떠 있었던 것이다.

“저는…, 저는 잘 모릅니다요.”

“좋아, 그녀는 어디서 태어났나? 그리고 아버지는 누구야? 누구에게 검술을 배웠어?”

“예? 전에 제가 얼핏 듣기로 그분은 고아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검술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자기는 여자가 아니라고 길길이 뛰시면서 욕도 엄청 잘하는, 별로 힘도 없는 분이셨는데, 언제부턴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강해지셨죠.”

“빠른 속도로 강해졌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요. 옛날에 한 번 도망치셨다가 실바르 경에게 잡혀서 얼마나 맞았는지 완전히 죽은 듯이 뻗어 있던 모습도 봤는걸요. 그렇지만 지금은…….”

“가만, 도망치다니?”

“예? 처음 그분이 오셨을 때는 제가 감시역이었거든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절대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토지에르 나리께서 직접 분부하셨죠. 그때 그분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데도 모든 옷이 이렇게 부풀어 오른 드레스들이나 굽이 높은 구두가 전부였습니다요. 실바르 경이 한 번은 짧은 치마와 굽이 낮은 신발을 사 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걸 입고 도망치셨었죠.”

“그렇다면 말이 안 되잖아. 왜 지금은 엄청난 힘이 있는데도 도망치지 않는 거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텐데.”

“그건 저는 모르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미치셔가지고는 크로돈시를 박살 내고 도망치셨죠. 그때 타이탄까지 나타나서 그분을 잡으려고 했었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평상시의 그분이 아니었어요. 정말 다정하신 분이셨는데……. 그렇게 떠나신 후 한 달 정도 지나서 돌아오셨죠. 하지만 다시 그분을 뵈었을 때는 좀 무서웠어요.”

“왜?”

“뭔가 전에는 느껴지지 않던 그런, 그런…, 이상한 이질감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주인님이셨기에 저는 용기를 내어 다가갔었죠. 다행히 전처럼 잘 대해 주셨어요. 그분은 제가 만난 여러 주인님들 중에서 아주 특별한 성격이셨거든요.”

“성격이 어때서? 사실대로 자세하게 말해.”

“예, 강자에게는 강하게, 약자에게는 약하게… 뭐, 그런 성격이셨어요. 제가 눈물을 흘리는 걸 아주 싫어하셨죠. 노예인데도 제가 부탁하면 뭐든지 잘 들어주셨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도저히 주인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정도였죠. 꼭 누이동생 같기도 하고, 언니 같기도 했구요. 하지만 한 번씩 화가 나시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함께……. 하지만 그렇게 무섭지는 않으셨어요. 아무리 신경질을 내고 위협을 해도 절대로 때리지는 않으시거든요. 말로만 팔아 버린다, 때려 주겠다, 가죽을 벗기겠다고 위협하셨죠. 하지만 울면서 사정하면 투덜투덜하면서도 다 들어주셨어요.”

그러자 그 복면의 남자 옆에 서 있던 몸집이 좀 더 가냘파 보이는 복면 쓴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가 입을 열자 역시나 매우 가느다란 여성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주 특이하네. 전형적인 외강내유(外剛內柔)형의 성격 아냐? 그런 데다가 막강한 실력까지 갖췄으니, 아마도 뭔가 꼬투리만 잡고 있다면 크라레스로서는 부려먹기 딱 좋겠지.”

“흐음, 대충 들어 보니까 뭔가 크라레스와 거래가 있었어. 그녀가 크라레스에 협력할 수밖에 없는 그런 뭔가가 말이야.”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겠는데? 그건 그렇고 이 아이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대충 필요한 것은 다 알아낸 것 같은데, 죽여 버릴까?

그러면서 그 복면 쓴 여자는 세린의 몸 여기저기를 만져 보며 말을 이었다.

“묘인족은 등 부분에 아주 부드러운 털이 나 있다구. 묘인족 한 마리 잡아 봐야 그게 얼마 안 나오니까 아주 비싸지. 어때? 최고급 목도리 하나 필요 없어?”

그 끔찍한 말에 세린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죽일 필요까지 있을까? 그따위 가죽은 필요 없고 노예로 팔아 버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수입이 짭짤할 거야.”

“제, 제발…….”

세린이 겁에 질린 채 사정하는 것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며 그 복면 쓴 여자가 이죽거렸다.

“호오…, 떨고 있는 것 좀 봐. 제법 불쌍하게 보이지? 이러니까 노예로밖에 쓸 데가 없다니까.”

이때 세린은 공포감이 쾌락의 감정을 아예 초월해 버렸다. 다크에게 듣던 팔아 버린다느니, 가죽을 벗긴다는 말과는 차원이 다른 이 위협에 완전히 겁에 질려 버렸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흥분이 극에 달한 세린의 손톱이 길쭉하게 빠져나오며, 동시에 몸집이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을 그 남자가 먼저 포착했다. 남자는 그것을 알아챔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야말로 바람이 일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퍽!

변신을 완료하기도 전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쓰러져 버린 묘인족 소녀를 살펴보며 복면을 한 여자가 말했다.

“어머? 그러고 보니 변신 방지용 목걸이도 없었잖아. 어떤 정신 나간 녀석이 목걸이도 없는 고양이를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는 거야? 죽으려고 작정했나?”

“이봐, 겨우 묘인족 따위가 아무리 설쳐 봤자 한주먹 거리도 안 돼. 그런데 나보다 더 강한 인물이 그 주인이니까 그런 것은 처음부터 걱정도 안 했겠지. 그건 그렇고 진짜 죽일 거야?”

“호호, 농담이야. 저 아이가 슬쩍 없어진 상태에서 우리가 ‘협상합시다’하고 간다면 우리가 범인이라는 말밖에 안 돼. 원래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의 애완동물은 괴롭히는 게 아니지. 기왕에 기절했으니 옮기자고.”

“어디로?”

“어디 나무 그늘 같은 곳에 낮잠 자는 듯 놔두면 되잖아. 그러면 이 고양이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하기 힘들걸? 또 누구한테 이 사실을 말한다고 해도 노예의 말 따위 잠꼬대 정도로 생각할 거야.”

“그건 그렇네.”

남자는 세린을 등에 지면서 투덜거렸다.

“납치해 온다고 온갖 고생을 했는데, 이제는 표 안 나게 돌려 둔다고 고생을 해야 하는군. 제기랄!”

“참아, 얘 덕분에 아주 많은 정보를 얻었잖아. 그건 그렇고 다음에는 누굴 납치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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