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0화 (218/930)

그늘에 앉아서 팔시온과 체스를 두고 있던 다크는 아르티어스가 뒤로 뭔가를 감추고 싱글거리면서 다가오는 것을 보며 말했다.

“어디 갔다 오시는 거죠? 아까 찾아보니까 안 보이시던데…….”

아르티어스는 웃음을 감추지 않고 답했다.

“헤헤…, 코린티아에 갔다가 왔지.”

“코린티아요? 코린티아면 코린트의 수도잖아요. 거기는 왜?”

의아해하는 다크를 향해 아르티어스는 뒤에 감추고 있던 것을 앞으로 내놓으며 유쾌하게 말했다.

“왜기는 쨘! 이걸 봐라. 이걸 산다고 온 코린트의 상점을 다 뒤졌지.”

“이게…, 뭐예요?”

황당하다는 듯 말하는 다크를 향해 아르티어스는 당연한 듯 말했다.

“뭐기는? 옷이지.”

다크는 아르티어스가 내밀고 있는 옷을 끔찍하다는 듯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했다. 아르티어스가 내민 옷은 보통 16세 정도 되는 여자 아이들을 위해 만든 여름용 원피스로서 아주 밝으면서도 화사한 색상을 지닌 얇은 고급 천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아무리 안이 비치지 않는 옷이라고는 해도 그걸 입으면 어떤 꼴이 될지 대충 상상이 가는지 다크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옷인 것은 알겠는데, 그게 뭐냐구요. 설마 그따위 통자루 같은 옷을 나보고 입으라는 말은 아니겠죠?”

“아니기는 왜 아니냐? 이런 무더운 날씨에 시꺼먼 옷을, 그것도 바지를 입고 있으니 얼마나 덥냐?”

은근히 말하는 아르티어스를 향해 다크는 매우 모질게 대답했다.

“하나도 안 더워요.”

그녀의 말이 사실인 듯 이 무더운 날씨 탓에 팔시온의 목덜미는 땀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땀방울 하나 솟아 있지 않았다.

“설마?”

“나는 아예 털 코트를 입고 있어도 상관없으니까 제발, 그따위 옷은 가져오지 마세요.”

“이게 얼마나 시원한 옷인데 그러냐? 내가 그 먼 코린티아까지 가서 가져온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입어 보는 척은 해 주는 것이 예의가 아니냐? 에구구구…, 처음부터 아들 녀석을 잘못 가르쳤어. 이렇게 애비 말을 안 들을 수가 있나?”

“들어줄 말이 있고 안 들어줄 말이 있다구요. 그 쓰레기 들고 딴 데로 가세요. 나는 체스 두느라 바쁘다구요. 정 입힐 사람이 없으면 그 드워프한테나 입히시라구요.”

“이 옷의 크기를 보고 그런 말을 해라. 그 녀석이 입으면 찢어진다구. 그러지 말고, 응?”

“이번에는 못 들어줘요. 아버지 때문에 이놈의 목걸이도 했고, 또 귀걸이도 했지만, 이번만큼은 절대로 못 들어줘요. 체스 두는 거 방해하지 말고 가시라니까요? 정 상대가 없으면 그 드워프 녀석하고 노시라구요.”

팔시온은 부자의 대화가 오래 지속되자 한심하다는 듯 그 둘을 쳐다봤다. 한사코 하기 싫다는 다크를 잡고 그걸 시키고 있는 아르티어스나, 나중에는 하게 될 것이 분명한데도 죽자고 뻗대고 있는 다크. 하지만 대충 그 결말은 팔시온도 익히 알고 있듯이 정해져 있었다.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자신이 그 오랜 세월 동안 나이를 헛먹지는 않았다는 것을 과시하듯, 다크의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든다면 도저히 성공할 가능성이 없었지만, 죽자고 매달리면서 부탁하면 웬만한 것은 다 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르티어스가 한 시간을 죽자고 따라다니며, 애걸하고, 협박하고, 사정한 후에야 다크는 그 옷으로 바꿔 입었다. 물론 협박이라는 것도 자신의 무력을 과시한 것이 아니라 다크의 검은 옷에 붙어 있는 그 웃기게 그려 놓은 골드 드래곤 문양을 꼬집어 대며 협박하고, 사정했기에 지어 놓은 죄가 있는 다크로서는 반격을 펼치기가 매우 곤란했던 것이다.

“제기랄!”

새침한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는 아들을 보며 아르티어스는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그러냐? 이렇게 잘 어울리는 옷은 처음 본다. 그렇지?”

아르티어스는 팔시온이 자신의 말에 동조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듯 다크 모르게 팔시온을 향해 인상을 구겨 댔다. 하지만 팔시온은 아르티어스의 협박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녀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잘 어울려요.”

“그렇지? 그렇지? 모두들 그렇다고 하는데 왜 너만 그렇게 이 애비 말에 반발하는 거냐?”

다크는 울분을 씹어 삼키며 팔시온을 향해 말했다.

“으휴휴휴… 팔시온, 체스나 두자.”

“너 둘 차례야.”

팔시온의 말에 다크는 체스 판을 열심히 살펴봤다. 역시 변화는 있었다. 상대의 비숍(Bishop : 승정)이 저 먼 쪽에서 나이트(Knight : 기사)의 비호 아래 슬며시 자신의 룩(Rook : 성장)을 노리고 있었다.

“제기랄!”

다크는 턱을 괴고 앉아, 이리저리 궁리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궁리하던 그녀가 이윽고 룩을 앞으로 다섯 칸 움직여 비호하고 있던 상대방 기사를 포획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팔시온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즉시 또 다른 기사를 집어 드는 찰나, 병사 하나가 달려오며 외쳤다.

“공작 전하, 크로아 전하께서 찾으시옵니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사옵니다. 크로아 전하께옵서는 지금 저쪽 통신실에 계시옵니다.”

팔시온이 말을 들고는 뭘 하려는 것인지 알아챈 다크는 전세가 팔시온 쪽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1실버짜리 내기 체스에서 발을 빼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그래? 헤헤헤. 팔시온 나머지는 다음에 하자구.”

상대의 속셈이 빤히 보인다는 듯, 팔시온은 우람한 근육질의 팔뚝을 흔들며 비웃듯 말했다.

“훗!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나중에 기억해 놨다가 계속할 테니까.”

“좋을 대로 해. 팔시온의 기억력이 그렇게 좋을 리가 없지. 흐헤헤헤…….”

다크가 이죽거리는 것을 보며 여태껏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아르티어스가 말했다.

“내가 대신 둬도 되냐?”

“좋을 대로 하세요.”

다크는 크로아 공작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며 아무렇게나 말했지만, 팔시온의 반응은 달랐다. 팔시온은 아르티어스의 눈치를 살피며 주섬주섬 체스 판을 거두면서 말했다.

“아뇨, 저도 바빠서 그만…….”

팔시온이 그렇듯 내빼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 현재 크로아 공작이 거느리고 있는 주력 부대는 적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보급 사정이 어려워서 매우 천천히 진격 중이었다. 그 때문에 남아도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기사들끼리 자주 체스를 뒀는데, 거기서 불패의 전적을 자랑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이 아르티어스였기 때문이다. 파견 나와 있는 몇 명 안 되는 마법사들마저도 모두들 아르티어스에게 처참하게 박살 났을 정도니까 마법사들보다 두뇌 회전이 떨어지는 기사들은 보나 마나였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 있는 아르티어스를 뒤로하고 팔시온은 체스 판을 챙겨 들고는 다크를 대신할 새로운 만만한 먹잇감을 찾아 황급히 떠났다. 질 게 뻔한 상대하고 체스를 둘 멍충이가 있을까?

통신실에 들어서는 다크를 향해 뭔가 말을 건네려던 크로아 공작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원래 미모가 대단한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대단한 줄은 몰랐던 것이다.

“뭘 그렇게 빤히 보고만 있어? 나를 부른 용건을 말해야 할 거 아냐.”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던 그였기에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 그게 말이지. 구원병이 도착한다고 하더군.”

“그래? 크루마에서 제법 선심을 쓴 모양이군. 그래 얼마나 보내 준다고 하던가?”

“크루마에서 5천 명.”

“뭐? 5천 명? 농담하냐?”

“진담이야. 크루마군 1개 여단이 크로돈에 도착했는데 어떻게 하면 될지 물어 왔거든.”

“아, 그렇다면 부대를 나눠서 보내 온 모양이군. 그렇다면 2진은 언제 도착한다는 거야?”

“2진은 없어. 5천 명이 다야. 와리스 백작의 말로는 상태가 호전된 후에나 보내 준다고 했다더군.”

“언제쯤 상태가 호전되는데? 크루마에서는 전쟁이 끝난 거 아니었나?”

“보내 주지 않겠다는 말을 조금 우회적으로 한 것뿐이지. 5천 명의 병력만으로 끝낼 생각인 거야.”

“5천 명 가지고 충분해?”

“아니, 적어도 새로운 병력이 투입될 때까지 최소한 그 열 배는 있어야 해. 대신 미란에서 4만 명을 보내 주겠다고 했다는군. 오늘 제1진으로 4천 명이 도착했대. 앞으로 9일 동안 계속 4천 명씩 도착할 거라고 하더군.”

“미란이라면 이번에 내가 싸운 그 전쟁터 말이야?”

크로아 공작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보며 다크가 열 받은 듯 말했다.

“아무리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악독하게 나올 줄은 몰랐어. 여기서는 동맹이라는 것이 그렇게 하찮은 거야? 하기야 내가 열 낸다고 될 일도 아니지. 자네가 사령관이니까 알아서 해.”

“나 혼자서 독단으로 처리해도 돼?”

“물론이지. 자네가 사령관이고 나는 부사령관이니까. 나는 다시 체스나 두러 가 볼까? 팔시온은 너무 강하니까 미디아하고 붙는 게 좋겠군.”

중얼거리면서 나가는 다크를 크로아 공작이 재빨리 제지했다.

“잠깐!”

“뭔데?”

“결정을 내렸어. 지금 여기는 별로 일이 없으니까 자네가 크로돈으로 가. 거기서 토지에르하고 상의를 한 후에 결정하라구. 미란에서 병력을 대규모로 파병했기에 급한 불은 껐지만, 그래도 그따위 짓거리를 한 크루마를 그냥 놔둘 수는 없지.”

“왜 내가 가야 해?”

시큰둥하게 물어 오는 다크를 향해, 크로아 공작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사령관이고 자네는 부사령관이니까. 원래가 사령관은 전장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거든. 대신 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면 이쪽으로 날아오면 되겠지.”

“별 귀찮은 일을 다 시키는군.”

“자네가 좀 해 줘. 요즘 할 일도 없어서 맨날 체스나 두던지 아니면 자네 아버지하고 놀러 다니고 있잖아?”

“좋아, 기분 전환 겸, 갔다 오기로 하지.”

“대답이 시원해서 좋구먼. 고마워, 대신 나중에 근사한 선물을 꼭 할게.”

“기대하겠어.”

아르티어스는 통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나오는 다크에게 아르티어스가 달라붙어서는 추근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왜 여기 와 계신 거예요?”

“네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헤헤,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거냐?”

“아뇨. 그런데 저하고 꽤 오래 함께 계셨는데, 뭐 딴 볼일은 없으세요?”

다크의 모진 말에 아르티어스는 한껏 슬픈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한탄조로 말했다.

“이제는 내가 싫어진 거야? 이 애비가 따라 다니는 것이 그렇게 귀찮냐?”

슬쩍 가슴이 뜨끔해진 다크는 모질게 끊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건 아니구요.”

그 말에 아르티어스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헤헤, 그렇다면 된 거지 뭐. 나의 기나긴 삶에 비했을 때 이건 너무나도 짧은 순간일 뿐이야. 사랑하는 아들에게 시간을 조금 투자하는 것이 뭐가 아깝겠냐? 그리고 여기 음식은 드워프나 먹지 나는 도저히 못 먹겠다.”

“에구구구…, 돌아버리겠군.”

잠시 작은 소리로 재빠르게 말한 후 다크는 아르티어스를 향해 말했다.

“크로돈시로 갈 거예요.”

“왜? 무슨 일인데? 황제 녀석이 불러?”

“내가 알아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해결사 노릇은 신물이 난다구요.”

“해결사? 또 무슨 일이 터졌구나.”

“글쎄요. 그걸 알아 보러 가는 길이잖아요. 기다릴 테니 가서 드워프를 데려오세요.”

“드워프는 왜?”

“여태까지 데리고 다니셨잖아요.”

“흐흐흐, 이번에는 데리고 가지 않을 거야. 또 여기 놔둔다고 해도 도망칠 녀석도 아니고 말이야.”

아르티어스는 생긴 것 답지 않게 손아귀에서 우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힘껏 잡으면서 살기 넘친 어조로 말했다.

“제깟 놈이 튀어 봐야 벼룩이지. 감히 내 손아귀에서 도망칠 정도로 간 큰 놈은 여태껏 없었어. 또 세상 끝까지 도망쳐 봐야 그 녀석 잡아오는 것은 일도 아니지. 그건 그렇고, 그 녀석에게 시켜 놓… 아니, 부탁해 놓은 일이 있어서 말이야.”

“설마, 또 말도 안 되는 걸 만들라고 협박한 것은 아니겠죠?”

“물론… 으음, 아니지. 지가 좋아서 만들고 있는 것을 내가 어쩌겠냐. 나는 그 녀석이 뭘 만들지에 대해서 힌트를 준 것밖에 없다구. 원래 드워프란 놈들은 심심하니까 계속 뭔가 만들려고 하지. 거기에 적당한 자극만 주면 아주 열심히 좋은 걸 만들어 낸다구.”

아르티어스는 수긍을 하려다가 아차하고는 재빨리 변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변명이란 것이 빤히 보이는 것이었기에 다크는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적당한 자극이요? 전에 내가 봤다구요. 그게 적당한 자극이면, 이 세상에 고문이란 말은 벌써 없어졌을 거예요.”

아르티어스는 펄쩍 뛰며 그런 악질적인 중상모략을 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무슨 끔찍한 말을 하는 거냐? 어떻게 아들 녀석이 아버지를 그렇게 못 믿는 거냐? 이 세상의 도덕과…….”

또다시 아르티어스가 주절거리자 다크는 고개를 흔들며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그만 해요. 그래요, 나는 도덕 따위 모르고 도의 따위도 배운 적 없으니까 강요할 생각하지 마시라구요. 그건 그렇고 데려갈 사람도 이제 없으니까, 크로돈으로나 빨리 가요. 토지에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러지 뭐.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니니까. 크로돈이라고 했지? 자, 공간 이동(空間移動).”

아르티어스는 주문 따위를 외울 필요도 없이 엄청난 양의 마나를 끌어 모아 곧장 마법을 시전했다.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 크로돈까지 이동하는 데는 주문을 외우는 수고를 할 필요 없이 용언 마법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희뿌연 빛이 번쩍하고 사라진 순간 나타난 두 명을 보고, 토지에르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평상시에 꼭 남자 같은 옷에다가 장신구라고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아쿠아 룰러만 끼고 있었기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나니 옷이 날개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 어서 오시옵소서, 공작 전하.”

감탄했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토지에르를 향해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며 다크는 일부러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래, 자네는 별로 안녕하지 못한 것 같군. 그건 그렇고 어떻게 처리해 주면 되지?”

토지에르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다크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허리에 검을 차고는 있었지만, 아름다운 원피스에 작고 깜찍한 귀걸이, 그리고 그것에 잘 어울리는 목걸이. 거기에다가 왼손에다가는 가느다랗고 예쁜 쇠사슬형의 팔찌까지 달고 있었다. 그 모든 장신구들은 오직 그녀만을 위해 파이어해머가 꽁지 빠지게 만든 세공품답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저… 저, 그러니까 일단 협상을 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새,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이봐, 나를 보고 얘기해. 도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 거야?”

다크의 질책에 토지에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중얼거리고야 말았다.

“저, 정말 잘 어울리시는군요.”

“죽고 싶냐?”

싸늘한 살기를 피워 올리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는 찔끔해서 토지에르가 황급히 답했다.

“아뇨.”

“그럼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요점만 말해.”

“예, 일단 크루마가 우리를 일부러 도와주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뭔가 항의를 하든지, 아니면 실력 행사를 해야만 하옵니다. 안 그러면 전쟁이 더욱 어려워지게 되어 있지요. 한 달만 잘 버티면 되옵니다. 그때는 새로운 병력을 투입할 준비가 완료되니까 말이옵니다.”

“그래, 얼마나 많은 병력을 빌려오면 되는 거지?”

“많을수록 좋지요. 게릴라들 덕분에 후방 보급로는 완전히 붕괴 직전이고, 그놈들 잡는다고 병력이 엄청나게 투입되어 있지만 그들만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옵니다. 최소한 잘 훈련된 5개 사단은 더 있어야 하옵니다.”

“5개 사단이라……. 그럼 크루마에 가서 누구를 만나서 따지면 되지? 미네르바를 만나면 되나?”

“미네르바 전하를 만나는 것은 힘들 것이옵니다. 아마도 외교 담당관 가레신 후작을 만나시게 될 테지요.”

“가레신 후작이라. 알았어. 빨리 좌표나 말해. 빨리 일 끝내고 돌아가서 체스 둬야 하니까.”

다크는 토지에르를 통해 크루마 황성의 좌표와 이번 회담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몇 가지 들은 후 즉시 공간 이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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