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1화 (219/930)

헤즐링은 아닐 거야

“흡!”

자다가 갑자기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입이 틀어 막힌 사내가 침대 위에 놔둔 검을 잡기 위해 버둥거리자 복면을 쓴 사내는 흉악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이봐, 조용히 해. 안 그러면 죽을 줄 알아.”

상대는 목에서 섬뜩하게 느껴지는 차가운 이물질을 느끼고 버둥거리던 것을 멈췄다. 또 사실상 아무리 버둥거려 봐야 상대의 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몸집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데도 이렇듯 엄청난 힘을 내는 것을 보면 보통 실력자는 아닌 듯이 보였다.

“좋아, 그래야지. 자,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에 성실하게 답변을 하는 것이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알지? 너 하나만 죽는 것이 아니야. 옆에 자고 있는 계집부터 시작해서, 위층에 잠들어 있는 네 아들, 딸들도 목과 몸통이 분리될걸? 시험해 보고 싶어?”

덩치가 우직한 사내는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좋아, 그래야지. 네가 황실 경비대대장 맞지?”

상대가 고개를 까딱거리는 것을 보며 복면의 사내는 흐뭇하게 미소 짓고는 뒤에 서 있는 복면 쓴 여자에게 말했다.

“봐, 제대로 찾아왔다구.”

그런 다음 그 대대장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부터 질문을 하겠어. 다크 폰 로니에르라는 공작을 알고 있지?”

멈칫거리며 상대가 답변을 안 하자 복면을 쓴 사내는 손바닥으로 상대의 배를 가격했다. 상처가 나지 않도록 신경 써서 손바닥으로 살짝 쳤을 뿐이지만 정말 요란한 북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퍽!

“우으윽!”

손바닥으로 입이 막혀 있었기에 대대장의 신음 소리는 별로 크게 들리지 않았다.

“치레아 지구 총독을 경비대대장이 모른다면 말이 안 되지. 알고 있지?”

그제야 사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자네는 이제부터 다크 로니에르 공작이 아닌, 다크 크라이드라는 이름만 나오면 왜 사람들이 친절해지는지 그 이유를 말해 줘야겠어.”

“그, 그건…….”

상대가 대답을 망설이자 그 복면의 사내는 옆에 잠들어 있는 여인의 이불을 슬쩍 걷어 올렸다. 그에 따라 털북숭이 다리 옆에 곧게 뻗은 새하얀 다리가 드러났고, 조금 더 올리자 통통한 허벅지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이 여자는 아주 깊게 잠들어 있지. 무슨 일을 당해도 모를 거야.”

대대장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당연히 마법을 썼지. 이 집 안에서 마법으로 잠재워 놓지 않은 사람은 너뿐이야. 자네가 보는 앞에서 이년을 천천히 즐기며 죽여줄까?”

“으으으…….”

“빨리 선택햇!”

“좋다. 마, 말하겠다.”

복면을 뒤집어 쓴 사내가 기대 어린 눈빛을 던지고 있는 가운데 대대장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다크 크라이드라는 이름이 나온 것은 무시무시한 마법사가 등장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녀의 아버지라고 소개한 그 남자는 고작해야 스물대여섯도 안 되어 보였지. 그런 주제에 자기 아들을 찾아왔다고 난동을 부렸고, 수십 명의 경비병들을 끔찍한 방법으로 죽였다.”

“호오, 난리가 났었겠군. 그런데 그것과 그녀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그렇다면 그녀가 그 아이의 어머니라도 된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러니까 황당한 사건이었지. 그자가 찾고 있는 아들이 다크 크라이드라는 여자였으니까 말이야.”

“이봐,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여자가 어떻게 아들이 된다는 거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건 그렇게 소란이 벌어졌으니 대기하던 그래듀에이트들이 출동했다. 하지만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고, 황제 폐하께서 직접 나가셔서 그 인물에게 사과하고 일을 마무리 지었지. 그다음부터 다크 크라이드라는 이름을 찾아오는 인물에게는 최대한 성의껏 대하라는 칙명이 내려왔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하지만 좀 이상하잖아? 황궁이라면 당연히 우수한 근위 기사들이 있었을 텐데? 그리고 카프록시아를 보유하고 있는 크라레스의 근위 기사단의 실력은 상당히 뛰어나잖아?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고 해도, 타이탄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야.”

사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대대장은 말을 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궁전 내 제1급 비상령이 내려진 가운데, 유령 기사단에 타이탄 사용 허가와 함께 스바시에와 치레아에까지 나가 있던 모든 기사들에 대한 소환 명령이 떨어졌었다. 하지만 스바시에로 피신하실 예정이셨던 폐하께서 나타나시면서 일이 간단하게 마무리 지어졌었지.”

“유령 기사단? 크루마 전쟁에 투입되었던 그 시커먼 타이탄을 보유한 기사단 말이냐?”

“잘 알고 있군. 바로 그 기사단이다.”

퍽!

“아니 왜 그러는 거야? 더 물어볼 것이 많았는데?”

“더 이상 물어보면 안 돼. 잠깐만 기다려.”

복면을 쓴 여자는 이제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남자의 머리 위에 손을 놓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희뿌연 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랩스 오브 메모리(Lapse of Memory : 잘못된 기억)!”

주문을 끝마친 여자는 사내를 향해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물어볼 필요 없어. 이제 기억을 뒤헝클어 놨으니까 별 문제 없을 거야. 대충 감을 잡았으니 빨리 여기를 떠나자.”

그들은 은밀하게 그 집에서 빠져나왔다. 그 집에서 나오자마자 그들은 복면을 벗어 호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복면 속에 감춰졌던 얼굴은 까미유와 마도사인 지레느였다. 다크라는 정령 냄새를 풍기는 아가씨를 찾기 위해서는 마법사보다도 정령술을 알고 있는 지레느 쪽이 훨씬 더 적합할 것 같아서 데려온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복면까지 감춰 버린 상태였기에 천천히 걸어가면서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뭘 알아냈다는 거야?”

“물론 알아낼 것은 다 알아냈지. 그 소녀를 찾아온 남자, 엄청나게 강한 마법사라고 했지?”

지레느의 물음에 까미유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대답했다.

“그랬지.”

“네가 생각했을 때 여러 명의 기사들과 함께 싸울 수 있는 마법사가 있을까? 그것도 기사들이 상대가 마법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정면 대결에서 마법사가 기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아무리 6사이클급에 이르는 숙련된 고위 마법사라도 그래듀에이트를 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근위 기사단에 소속된 뛰어난 실력을 보유한 그래듀에이트라면 절대로 이길 가능성이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까미유는 이윽고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며 궁색하게 말했다.

“그, 글쎄……. 코타스 전하 정도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지레느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코타스 공작 정도라면 이길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거기에 대해서 반론을 펴는 대신 딴 것으로 물고 늘어졌다.

“그렇다면 타이탄은? 지금 가지고 있는 군사력으로 봤을 때 크라레스가 여기저기에 파견된 타이탄까지 불러들였다면 아마 1백 대가 넘을 텐데, 그 1백 대나 되는 타이탄과 혼자 싸울 수 있는 마법사가 있어?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어 황제가 직접 나가서 사죄해야 할 상대는?”

물론 없었다. 하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평상시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지만 일단 화가 나면 국가 하나쯤 잿더미로 만드는 것은 간단하게 생각하는 악마 같은 존재. 힘과 공포의 상징. 그것이라면 타이탄 1백 대쯤은 간단하게 해치울 수도 있을 것이다.

“설마, 드래곤?”

“그 설마가 맞을 거야. 그것도 웬만한 국가쯤은 겁내지도 않는 강력한 녀석이겠지.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그 소녀에 대한 궁금증도 풀리게 되지.”

“헤즐링(어린 드래곤)?”

“헤즐링은 아닐 거야. 전에 드래곤 사냥하는 것 못 봤어? 헤즐링은 결코 그녀 정도의 힘을 낼 수 없어. 아마도 헤즐링은 벗어난 드래곤일테지. 그것도 마법보다는 검술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변종 드래곤.”

“호오, 그래서 아들이 되었다 딸이 되었다가 하는 거로군.”

“그렇지. 드래곤은 양성체(兩性體)니까 말이야. 또 그녀가 드래곤이라면, 그것도 1천 년 넘게 살아온 드래곤이라면, 그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의문도 풀리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통 드래곤은 3천 살을 전후해서 새끼를 낳는다고 하니까 아마도 그 드래곤은 3천5백 살은 넘었겠지? 그 정도의 드래곤이라면 코린티아시에 나타나서 대 학살극을 벌여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놀라운 사실이군. 빨리 쟈크렌 요새로 돌아가자. 공작 전하께 이 놀라운 사실을 보고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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