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8화 (244/930)

아르티어스의 바보스러운 모습

“여기는…….”

“오오, 이제 정신이 드냐?”

다크는 자신을 향한 한없는 사랑을 가득 담고 있는 자애로운 아르티어스의 눈동자를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된 거죠? 이상한 밀림이 우거진 곳에서…….”

“아, 거기가 정령계일 게다. 5대 정령의 힘이 절대적으로 행사되는 미지의 세계지. 하기야 물, 불, 바람, 번개, 대지의 정령이 함께 어우러져 있을 테니 어떤 꼴을 하고 있을지는 대충 감이 잡힌다마는……. 그래, 네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감사하고 있다.”

아르티어스는 자신도 모르게 누워 있는 아들을 두 손으로 일으켜 꽉 껴안았다. 정말 그에게는 지금 아들의 건강과 행복 이상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처음에는 조용히 안겨 있던 다크의 얼굴빛이 핼쑥해지면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으으…, 숨 막혀요.”

“으엑, 미안하구나. 내가 힘을 너무 줬나?”

아르티어스는 숨 막혀 하는 아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품으며 뒤로 물러선 후에야, 아들이 어떤 꼴을 하고 누워 있는지 불현듯 깨달았다.

방금 상체를 일으킨 덕분에 새하얀 이불이 아래로 내려가고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뽀얀 상체가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아들 녀석은 그런 것에 아무런 신경도 안 쓰고 있는데, 오히려 아르티어스가 민망해졌다. 아르티어스는 오래전부터 오랜 시간 인간계를 떠돌았기에 인간들의 생활을 꽤 많은 부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만 기다려라. 옷을 장만해 올 테니…….”

아르티어스가 나가고 잠시 후 웬 녹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아름다운 미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흔히 엘프들이 그러하듯 그녀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엘프들의 경우 숲에서 생활하기에 치마는 짧게, 그렇지 않으면 바지나 반바지를 애용했다. 그렇게 해야만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르티어스와 격전을 치른 탓에 거의 걸레가 되어 버린 옷을 벗어 버린 후 화사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는데, 깜찍하게 생긴 작은 조끼가 그녀의 가냘픈 몸매에 아주 잘 어울렸다.

“이것을 입어요. 내가 입던 옷이기는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죠. 키가 나보다 좀 작긴 하지만 잘 어울릴 거예요.”

“당신은 누구지…요?”

다크는 상대의 몸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강렬한 마나를 통해 상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저 크고 뾰족한 귀에다가 저 얼굴…, 어렴풋이 기억에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잠시 뒤 예전에 자신을 쫓아다니던 도둑 엘프의 모습이 떠올랐다.

“엘프?”

그녀는 살포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엘프는 아니지만 키아드리아스라고 해요. 그 옷을 입고 나와요.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요. 그도 당신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죠.”

키아드리아스라고 소개한 여인은 옷가지를 건네준 후 수수께끼 같은 말만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다크가 예쁘게 차려 입고 밖으로 나섰을 때, 그의 눈에는 아들의 예쁜 모습을 보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르티어스와 방금 전에 봤던 수수께끼 같은 엘프 여인, 그리고 카렐이 탁자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카렐은 다크를 보고 빙긋이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야. 내가 선물한 아쿠아 룰러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했다니 정말 미안해.”

그 말에 다크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 만약 그게 없었다면 아빠를 만나지 못했겠지.”

다크의 사랑이 듬뿍 배어 있는 눈길을 받은 아르티어스의 얼굴이 헤벌쭉 벌어졌다. 그것을 보며 키아드리아스는 자신이 카렐을 정말 사랑하듯, 아르티어스도 저 소녀를 엄청나게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키아드리아스로서는 아르티어스의 저런 바보스러운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으니까…….

풀리지 않는 비밀의 내공술

아르티어스가 사라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청기사까지 갑자기 모습을 감춰 버렸기에 모두들 초조하게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르티어스와 다크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에 모두들 기뻐했다.

다크는 치레아의 왕궁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우선 옷도 갈아입어야 했고, 신발도 신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크는 자신의 방에 돌아간 후 세린에게 부탁하여 옷부터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작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푸른빛 나는 작은 보석이 박힌 반지가 우연히 다크의 눈에 띄었다.

다크는 신발을 신은 후, 그 반지를 집어 들고는 아르티어스에게로 갔다. 아르티어스는 다크가 언제나 입고 다니는 그 시커먼 군복으로 갈아입은 것을 보고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쯧, 옷을 갈아입었군. 네게는 이런 옷이 안 어울린다니까 그러는구나. 아까 그 키아드리아스가 선물한 옷은 정말 보기에 좋았는데…….”

하지만 다크는 아르티어스의 말을 무시하고 그의 손에 작은 금속성의 물건을 쥐어 주며 말했다.

“잔말 마시고 이거나 받으세요.”

아르티어스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푸른색의 작은 보석이 박혀 있는 반지가 뭔지 즉각 알아봤다.

“이건…, 아쿠아 룰러?”

“이게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게 없애 버리세요. 아니면 아빠가 가지든지…….”

아르티어스는 충분히 아들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그 반지를 받아서 주머니 안에다 집어넣었다.

“알겠다.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지.”

“그건 그렇고, 해 놓으라는 일은 다 끝내셨어요?”

갑자기 대화가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왔기에, 아르티어스는 허둥지둥 대답했다.

“뭐? 중간에 네가 실종되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는데…….”

“그렇다면 내일 아침까지 끝낼 수는 있겠죠?”

사정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다크를 야속하게 생각하며 아르티어스는 아들의 청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차근차근 따지기 시작했다. 그걸 인간들한테 한번 시켜 보라구!

“아무리 내가 드래곤이라고 하지만 그건 너무 촉박한 시간이 아니냐? 좀 더 시간을 줘야지.”

“이잉∼, 내일 아침까지∼∼. 알겠죠?”

다크는 아르티어스가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어오자 속이 메스껍긴 했지만 비장의 무기를 동원했고, 아르티어스는 거기에 홀딱 넘어가서는 모든 것을 잊고 호언장담을 해 댔다. 물론 오늘 밤을 새우면서 투덜거릴 것이 분명했지만…….

“그럼, 내가 누구냐. 저 자랑스러운 골드 일족의 후예인 아르티어스가 아니더냐. 내일 아침까지 완료하지.”

“그럼 부탁드려용∼.”

생긋 웃으며 돌아서는 아들을 향해 아르티어스는 헤벌쭉거리다가 갑자기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깨닫고는 얼굴이 벌게져서 비명을 터뜨렸다.

“이런, 또 당했닷!”

아르티어스와 헤어진 후 궁전 밖으로 나온 다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이아드와 절망적인 대결을 펼치고 있을 때를 돌이켜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어렴풋이 생각나는 대로 자신의 앞에 있는 나무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도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살짝 접어 그것이 남의 손이나 되는 듯 찬찬히 들여다봤다. 그러다가 손을 쓱 뻗으며 내공을 뿜어 넣었다. 그러자 손에서 내공의 덩어리가 뿜어져 나가 그녀의 앞에 서 있던 나무에 선명한 손자국을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그녀도 예상하고 있었고, 또 잘 알고 있는 기술이었다.

그녀는 또다시 자신의 손을 쓱 나무가 있는 쪽으로 뻗었다. 하지만 내력의 이동이 없이 그냥 손만 뻗었기에 전과 같이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런 다음 뻗었던 손을 뒤로 물리며 하염없이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렴풋이 떠오르는 나이아드와의 대결 후반부를 다시금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절대 절명의 순간, 자신의 모든 내공을 폭발적으로 운용한 결과 자신의 몸에는 단 한 올의 내공도 남아 있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무리한 내력의 운용으로 말미암아 심각한 내상까지 당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밑에서 뿜어 올라오는 엄청난 열기와 시뻘겋게 타오르는 대지를 어렴풋이 보고는 본능적으로 탈출을 시도했었다. 그때 그는 급한 대로 대기의 기운을 흡수하며 그것을 급히 공력으로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서 비등술(飛騰術)을 펼쳤던 것이다.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로 그런 억지 수법이 오래 계속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이며 날아오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곧이어 진기가 역류하면서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말았다. 그 덕분에 자신의 내상이 더욱 악화되었고, 혈도 몇 군데가 터져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급속도로 거리를 좁혀 오는 대지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그대로 있으면 그야말로 맨땅에 박치기를 하며 돌아가실 최악의 상황. 그는 내공을 끌어 모아 그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몸에 남아 있는 내공은 한 올도 없었고, 이제는 더 이상 외부에서 내공을 흡수할 방법도 없었다. 진기가 역류하면서 내상만 더욱 심화시켰던 그때 완전히 끝장났던 것이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은 거의 반쯤은 무의식중에 손을 앞으로 뻗었었다.

“젠장! 그다음은 어떻게 한 거야?”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도 해답을 얻어 낼 수 없었다. 한 올의 내공도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대지에 격돌하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그것 덕분에 지금 살아 있는 것이니까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사용했던 한 수를 도저히 기억해 낼 수도 없었고, 또 어떻게 된 노릇인지 이성적으로 아무리 궁리해 봐도 해답을 얻어 낼 도리가 없었다.

만약 그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그녀를 한 단계 더욱 높은 무예의 차원으로 이끌 수가 있을 텐데 말이다. 그녀는 그날 아르티어스가 그렇게 바쁘게 일하고 있는 동안 밤새도록 나무 앞에서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작만을 반복했을 뿐,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머리가 돌머리라는 사실만을 뼛속 깊이 새겼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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