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소 네 마리를 보내 주시오
“에…, 그러니까 경의 말은 토리아 왕국을 침공해 달라는 것인가요?”
이제 갓 스무 살이 될 듯 말 듯 보이는 새파랗게 젊은 왕을 잔잔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뚱보가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어린 왕은 애써 생각하는 척하다가 자신의 뒤쪽을 슬며시 바라봤다. 그곳에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기사가 듬직하게 서 있었다. 젊은 왕은 그 기사를 향해 뭔가 도움을 청하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그 눈길을 이해했는지 그 기사가 앞으로 슬쩍 나서면서 뚱보를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전하께서는 생각할 시간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이쪽에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와리스 후작 각하.”
와리스는 상대의 망설임이 당연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비대한 얼굴에 일부러 실망감을 잔뜩 드러내며 투덜거렸다.
“아니, 시드미안 공. 저는 공이나 전하께서 이 계획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실 줄 믿고 왔소이다. 그 때문에 폐하께는 전하께서 이쪽에서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곧장 토리아로 진격하실 것이라고 장담을 드렸었소. 과거 트루비아가 어려울 때 오직 본국만이 그대들을 도와주지 않았었소?”
“하지만 본국의 군사력으로는…….”
와리스 후작은 일부러 시드미안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루빈스키 대공으로부터 특명을 받고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그는 대공에게서 자신이 이번에 맡은 임무가 얼마나 국가의 안위에 절대적인 보탬이 될 것인지를 상세하게 설명을 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필사적이었다. 무슨 수단을 쓰든 간에 트루비아를 꼬셔서 토리아를 박살 내야만 하는 것이다.
토지에르가 습격당한 후, 크라레스 황제는 계획을 앞당겨 토리아 침공 작전을 시작할 것을 루빈스키 대공에게 명했다. 그만큼 그 사건은 황제에게 엄청난 분노와 초조함을 안겨 줬던 것이다. 그리고 크라레스 황제는 토지에르를 습격했을 것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잡지 못한 범인, 즉 코린트를 향해 이것을 통한 간접적인 복수를 하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와리스 후작은 일부러 대국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거만한 어조로, 혈맹의 부탁을 무시하는 상대의 태도에 분노를 느낀다는 듯 말했다.
“폐하께서 전하께 무리한 부탁을 드리는 것이 아니지 않소이까? 지금 트루비아는 본국에서 지원해 준 카프록시아급 타이탄 테리아를 6대나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안토로스급도 2대나 남아 있지 않소? 합쳐서 타이탄 전력만 8대에다가 6개 사단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소이까? 그에 비한다면 토리아 왕국은 12개 사단의 병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기사단은 형편없지 않소이까? 타이탄이 21대라고 하지만 그 대부분이 정규 출력도 내지 못하는 고철들이오.”
여기까지 말한 와리스 후작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슬쩍 젊은 국왕의 안색을 훔쳐본 후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가 상대에 대한 질책이라면, 이제부터는 전쟁을 선택했을 때의 장밋빛 가득한 미래를 달콤하게 말해 줘야만 하니까 말이다.
“물론 전하께서 전쟁을 결심하신다면 본국에서는 테리아 4대를 추가로 드릴 것이오. 합계 12대의 타이탄이라면 충분하지 않겠소? 그리고 타이탄 전투가 자신이 없다면 이쪽에서 1류 기사 몇 명을 타이탄과 함께 추가로 빌려 줄 수도 있소. 순식간에 토리아 왕국의 타이탄들을 파괴하고 그 여세를 몰아 보병들을 박살 낸다면 아주 손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그런데 그것이 뭐가 어렵다는 것이오?”
시드미안은 신중하게 와리스 후작에게 자신이 우려하는 바를 말했다.
“토리아를 치는 것이 쉽다는 것은 이쪽에도 이견이 없습니다, 와리스 후작 각하. 하지만 토리아 왕국의 배후에는 코린트 제국이 있습니다. 그쪽에서 간섭해 들어온다면 그 뒷감당을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와리스 후작은 트루비아에서 우려하는 것이 뭔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사태까지 발전해 나간다면 최악의 경우 트루비아를 도와주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상대에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와리스 후작은 일부러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뒷감당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상관없소. 만약 코린트가 간섭한다면 이쪽에서도 당당하게 기사단을 파견하여 도와주겠소. 귀국은 본국의 혈맹이 아닌가요? 귀국이 어려울 때 도와준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분이 서지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이미 트루비아 접경 부근에 1개 사단의 병력을 대기시켜 놨고, 비밀리에 수도에서 중앙 기사단 제7전대를 빼내서 트루비아 접경 부근에 포진시켜 뒀소이다. 7전대가 지닌 타이탄 30대라면 만약 코린트가 간섭해 온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을 것이오. 그런 후 코린트가 투입하는 타이탄의 수량에 따라 기사단을 추가적으로 증파해 드리겠소. 폐하께서는 귀국에 결코 무리한 주문을 하는 것이 아니오.”
트루비아의 근위 기사단장인 그라드 시드미안 후작을 향해 여기까지 설명을 한 후, 와리스 후작은 젊은 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전하, 코린트의 동맹국들을 치는 데 본국에서 직접 나선다면 자칫 전면 전쟁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사옵니다. 그렇기에 트루비아에서 코린트 동맹을 해체시키는 것을 조금만 도와 달라는 것이지요. 과거 트루비아가 어려울 때 본국에서 성심껏 도와 드린 것을 기억해 주시옵소서.”
이렇게까지 말하자 젊은 왕은 결심한 듯 말했다. 그는 아직 젊었기에 어려울 때 도와줬던 크라레스에 대해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순수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경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알겠네. 폐하께는 짐이 승낙했다고 전해 드리게나.”
“그렇다면 언제 행동을 시작하실 것이온지?”
“이쪽에도 준비할 시간 여유가 필요하네.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 정도는 시간이 필요하네.”
“알겠사옵니다, 전하. 폐하께서도 전하의 전폭적인 지지에 크게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그리고 전하께 약속드린 테리아 4대는 3일 안에 보내 드리겠사옵니다.”
일단 협상이 아닌 협박에 성공한 와리스 후작은 느긋한 표정으로 궁을 나섰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을 완수해 낸 것이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기사 한 명과 마법사 한 명이 그에게 급히 다가왔다. 원칙상 사절이라고 하면 이들 외에도 두 명 정도의 수련 기사가 대동해야 하지만, 이것은 워낙 기밀을 요하는 방문이었기에 매우 단출하게 왔던 것이다.
“협상에 성공하신 모양이군요. 축하드립니다, 각하.”
와리스 후작의 표정을 보고 짐작을 한 기사가 먼저 축하 인사를 올렸다. 그들은 와리스 후작을 수행하고 경호하라는 명령만을 받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와리스 후작이 처음 이리로 올 때는 매우 초조한 표정이었는데, 이제 약간은 미소를 띤 느긋한 표정인 것을 보고 짐작을 했던 것이다.
“고맙구먼. 그건 그렇고 가로 경.”
와리스 후작의 말에 노마법사가 즉시 대답했다.
“예, 후작 각하.”
“본국에 지금 통신을 보내게나.”
“뭐라고 보고를 올릴까요?”
“트루비아의 국왕이 일주일 후에 사용하기 위해서 암소 네 마리를 보내 달라고 했다고 전하게나.”
“예? 암소라뇨?”
“자네는 그렇게만 전하게.”
“옛, 각하.”
노마법사는 그게 암호라는 것을 눈치 채고는 급히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마법사가 통신용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며 와리스 후작은 뒤에 서 있는 기사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르베이 경.”
“옛, 각하.”
“자네 시간을 좀 내줄 수 있겠나?”
“예?”
“기왕에 나온 김에 엔테미어 공국하고 크루마에도 잠깐 들를까 하는데 상관없겠느냐 이 말일세.”
“예, 곧장 돌아가야 할 정도로 특별히 바쁜 일은 없습니다, 각하.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고맙군. 그렇다면 통신이 끝난 후 먼저 엔테미어 공국으로 가세나.”
“옛, 각하.”
괴물 키메라의 정체
“웁…, 웁…….”
허공에 손을 휘저어 대는 늙은이를 향해, 그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복면을 한 사내가 으르렁거렸다.
“가만히 있어! 죽여 버리기 전에…….”
그 노인은 지금 자신이 처한 사태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곳은 그 이름도 유명한 마도 왕국 알카사스의 도시들 중의 한 곳에 있는 그의 저택이었다.
알카사스의 치안은 대단히 튼튼해서 한밤중에 이렇듯 괴한이 침입해 올 가능성은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자신의 저택은 견인족(犬人族) 노예 스무 마리가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견인족들이 경비를 서면서 개처럼 끌고 다니는 네발짐승은 거대한 투견이 아니라 자신이 손수 제작한 난폭하기 그지없는 키메라였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저택의 외곽에는 불의의 침입자에 대처하기 위해 알람 마법진까지 쳐져 있었는데, 상대는 아무런 기척도 없이 이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복면을 쓴 사내가 늙은이를 틀어쥐고 있는 사이, 또 다른 복면의 사내가 재빨리 품속에서 쇠사슬을 하나 꺼내어 그 늙은이의 목에 걸었다. 늙은이는 발버둥을 쳤지만 상대의 우악스러운 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좀, 잘 잡고 있으라구.”
“젠장, 늙은이 힘이 보통이 아니군.”
“목걸이 채웠으면 빨리 입을 봉해.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각하께서 밑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구.”
“알았어.”
그들은 허우적거리며 발버둥을 치는 노인의 입을 틀어막은 후, 팔다리를 묶어서 큼직한 포대 자루에 집어넣었다. 복면을 쓴 사내는 노인 한 명쯤의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포대 자루를 등에 짊어진 후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포대 자루를 짊어진 그들이 땅에 착지하자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물이 그 꿈틀거리고 있는 포대 자루를 향해 시선을 슬쩍 던졌다.
“잡았나?”
“옛, 각하.”
“퇴각!”
그 각하라고 불린 인물의 지시에 따라 세 명의 인물은 재빨리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달려가는 정원에는 토막 난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우선 초대하는 방법이 예의에 어긋났던 점을 사과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 외에는 그대와 대화를 나눌 길이 없었기에 취한 조치였기에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복면을 쓴 사내가 정중하게 말을 하자 늙은이는 꽁꽁 묶여 있는 자신의 손과 발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과연 그 늙은이는 뛰어난 노마법사답게 배짱 또한 대단했다.
“어울리지도 않게 정중한 척하지 말고 이것부터 좀 풀어 주는 것이 어떻소? 손발이 저려서 참을 수가 없구먼…….”
그 복면을 쓴 사내가 눈짓을 하자, 그 옆에 서 있던 복면을 쓴 사내가 재빨리 노인에게 다가와서 손발을 묶어 놨던 줄을 풀어 줬다. 그 복면인은 노인의 손발에서 풀려 나온 줄을 집어 든 다음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대의 마법을 봉인하기 위해 마법 도구를 사용했지만, 그걸 사용한 덕분에 이쪽에서도 당신에게 마법을 걸 수 없게 된 것이 문제였소. 안 그랬으면 편안히 잠자는 사이에 이리로 오셨을 텐데 말이오. 그렇다고 한 대 때려서 기절시키자니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저질스런 방법을 사용했소. 이해해 주시기 바라오.”
노마법사는 탐탁치 않은 듯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쇠사슬을 이리저리 당겨 봤지만 이제 마나를 구동시킬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야윈 모습의 노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젠장, 아주 잘 만든 물건이군.”
“그럴 겁니다. 아주 특별히 제작한 것이니까요.”
“이렇게 나를 납치한다고 해서 네 녀석들 일에 협조할 것 같으냐?”
“아마 협조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우실 테니까요.”
복면 뒤로 희번뜩거리는 상대의 눈초리를 겁먹지 않고 느긋하게 받아 내면서 노마법사는 배짱 좋게 나갔다. 이런 경우 한 번 꺾이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오랜 세월을 빈둥거리며 헛살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훗, 이제 다 늙어가지고 아직도 생에 미련은 없다. 키메라는 대단히 위험한 생명체야. 그런 위험한 것의 제조법을 알려 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니 좋을 대로 해.”
“크라드마 경, 제가 원하는 것은 키메라의 제조법 따위가 아닙니다. 혹시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노마법사는 약간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복면한 사내가 주섬주섬 풀고 있는 보따리를 쳐다봤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낫같이 보였다. 하지만 보통의 낫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손잡이 부분이 매우 특이하다는 점이었다.
“키메라…인가?”
“예, 우리나라의 대단히 높은 분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낸 놈입니다. 겨우 네 마리의 키메라만으로 그분을 경호하던 그래듀에이트 한 명과 경호병들을 해치우고 말입니다.”
노마법사의 눈이 뭔가 골똘한 궁리를 하는 듯 살짝 가늘어졌다.
“키메라의 크기는?”
“인간 정도의 크기입니다. 대략 2미터 정도……. 두 다리와 두 팔을 가진 인간형입니다. 그런데 양팔에는 이런 것이 붙어 있었지요.”
상대의 설명을 제대로 들어 보지도 않고 크라드마는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그건 불가능해. 그래듀에이트와 대등하게 대결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키메라는 아직도 만들어 낼 수 없었어. 왜 그런지 아나?”
“글쎄요…….”
“그래듀에이트는 오랜 수련에 의해 근력에다가 마나의 힘을 보태서 엄청난 힘을 끌어낼 수 있지. 그 때문에 그래듀에이트는 상상하기도 힘든 속도와 파워를 낼 수 있는 것이고. 그런데 보통의 생명체는 근력만으로 움직이는 거야. 키메라가 아무리 마법의 생명체라고 하지만, 일단 그 뿌리가 되는 동물이 존재해야만 해. 트롤의 몸뚱이에 그래듀에이트의 다리를 붙인다고 해서 그 다리 부분이 엄청난 속도를 낼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실험해 봤다네. 전쟁터에서 사망한 기사의 시체를 이용한 실험이었지.
하지만 그 다리는 인간의 다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정도의 힘밖에 내지 못했어. 다리만 잘라서 붙인다고 마나가 함께 구동하지는 않았던 것이지. 또, 기사의 몸통에 트롤의 팔다리를 붙인다고 해서 마나가 함께 움직이지는 않네. 키메라라는 것은 마법 생물. 살아 있는 사람에 그런 것을 붙일 수는 없기 때문이지. 키메라라는 것은 죽은 것을 마법으로 합성시켜 되살리는 것이야. 그 때문에 기사가 살아생전에 익혔던 모든 것이 키메라에게 계승되지는 않는다네.”
“그렇다면 살아 있는 것에 다른 생명체의 몸을 접합시킬 수는 없을까요?”
“그것을 시도해 보지 않은 마법사가 누가 있겠는가? 키메라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시도를 한 번쯤은 해 봤겠지. 내 선배는 뭔가 실수를 했을 것이고, 나는 그것을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아집을 가지고 실험을 해 보는 거야. 하지만 모두 실패하지. 나도 노예나 몬스터들을 엄청나게 죽여 놓고 나서야 그 연구에서 손을 뗐으니까 말이야.”
“흐음…,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군요. 겨우 네 마리가 모여서 본국의 그래듀에이트를 해치운 것이 사실인데, 크라드마 경께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우기시니 말입니다.”
“우기는 것이 아니야.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노마법사는 신중하게 궁리하고 있는 상대를 힐끗 바라 본 후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원하는 것은 뭔가? 저 해괴한 키메라의 제조법인가? 아니면 그걸 만든 사람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제 대충 짐작을 하셨을 텐데요? 저것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저따위 것을 만들라고 의뢰한 나라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으음…, 그렇다면 이렇게 해 보는 것은 어떻겠나? 저것을 가지고 내가 연구를 해 볼 수 있게 시간을 좀 주게. 저런 특이한 것이라면 아주 특별한 재료가 사용되었을 거야. 그 재료를 알아낸다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글쎄요. 고작 그런 것으로 도움이 될까요?”
“충분할 걸세. 널리 분포하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실험 재료로 다 써먹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세. 오크, 고블린, 트롤, 오우거 등등……. 하지만 저것은 아주 특별한 속도와 근력을 지닌 존재야. 그 재료가 되는 몬스터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 안 그랬다면 내가 그전에 벌써 만들어 냈을 테니까 말이야. 안 그런가?”
노마법사가 보자기 위에 펼쳐져 있는 키메라의 일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노마법사의 어조에는 자신이 키메라에 있어서는 알카사스에서도 최고봉에 올라서 있다는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대도 그럴 듯하다고 느끼는 것인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시간을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며칠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