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4화 (270/930)

루빈스키 대공의 피

코린트의 크라레스 국경 부근. 그곳에는 지금 거의 1백여 명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 화려한 복장을 걸친 인물들이었고, 상당수는 화려한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이렇듯 엄청나게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는 기사단은 코린트 내에서도 하나밖에 없기에 쉽사리 그들의 신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코란 근위 기사단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중앙에 위치한 가장 큰 천막의 위에는 코란 근위 기사단을 뜻하는 붉은 드래곤이 그려진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천막 안에는 코린트 전군의 총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로체스터 공작과 제임스 후작, 까미유 후작, 그리고 혐오스러운 해골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용병대장이 얇은 로브를 입고 서 있었다. 로체스터 공작은 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쑤군거리다가 통신실로 사용되고 있는 옆 천막에서 걸어 나오는 레티안을 발견하고는 말을 걸었다.

“모든 기사단의 배치는 끝났다고 하던가?”

“예, 전하.”

레티안의 대답에 로체스터 공작은 뒤에 서 있는 부하들을 향해 시선을 돌려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미소를 지었다. 지금 크라레스를 향해 공격 준비를 갖추고 있는 기사단은 1, 2개가 아니었다. 알카사스 국왕 휘하의 레드 이글 기사단, 아르곤의 정예인 타리아와 네리아 성기사단, 코란 근위 기사단 그리고 코린트의 금십자 기사단이었다.

본국에 있는 모든 기사단이 전장에 투입되는 관계로 수도에는 발렌시아드 기사단이 이동해 와서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습에 의해 괴멸되다시피 한 은십자 기사단과 철십자 기사단의 잔여 세력들은 모두 다 금십자 기사단에 편입되어 있었다.

로체스터 공작은 다시금 레티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크루마에서 연락은 오지 않았나?”

“예, 미네르바는 아무래도 포기하심이 옳을 듯하옵니다. 그렇듯 망설이는 것으로 보아 우리 쪽에 가담한다고 하더라도 믿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군. 크라레스의 동태는 어떻던가?”

“예, 10분 전에 스바시에 대공이 회담 장소에 도착했사옵니다. 그는 네 명의 기사를 대동하고 도착한 후, 회담 장소를 점검한 후 부근에 배치되어 있는 호위 부대들을 점검했사옵니다. 그런 후 그들과 함께 회담 장소로 들어갔다고 보고받았사옵니다.”

로체스터 공작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모든 것이 예정대로였다.

“베르딘으로부터 새로 연락 온 것은 없었나?”

“예, 고양이는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하옵니다.”

“좋았어. 그녀만 개입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지. 정찰조로부터 크라레스 호위 부대 증강에 대한 정보는 들어온 것이 없던가?”

“예, 전방에 3개 연대(3천 명)가 주둔하고 있을 뿐 별다른 이상은 없사옵니다. 그리고 20킬로미터 후방에 위치하고 있는 마로덴 요새도 잠잠하옵니다. 그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놈들은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한 듯하옵니다. 하지만 회담 장소 부근에는 기사들이 몇 명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적의 기사단이 존재하는 듯하옵니다. 하지만 오너들이 몇 명이나 투입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사옵니다. 적들의 기사들이 깔려 있는 관계로 먼 거리에서 관찰만 하고 있었기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사옵니다.”

“뭐, 신경 쓸 것은 없다. 많아 봐야 1개 전대 정도겠지. 기사단에 전투 준비를 명하라.”

“예, 전하.”

“적의 구원 부대가 도착할 가능성도 있으니 전 기사단을 한꺼번에 투입한다. 스바시에 대공이 탈출할 우려도 있으니 후방에 열 명을 투입하라고 일러라.”

“예, 전하.”

이제 로체스터 공작은 시선을 까미유 쪽으로 돌렸다. 까미유는 기대에 넘치는 표정으로 공작의 시선을 맞받았다.

“까미유!”

“옛, 전하.”

“그대만 믿겠다.”

“옛, 전하. 목숨을 걸고 해내겠사옵니다.”

“도착한 즉시 인사를 하는 척하고 공격을 시작하라. 그것을 신호로 우리도 공격해 들어가겠다.”

“옛, 전하.”

까미유는 공작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마차를 타고 회담 장소로 향했다. 로체스터 공작이 거느린 것과 같은 네 명의 기사만을 거느리고 말이다. 물론 그 기사들의 등급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까미유 휘하의 제2근위대원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차가 출발한 후 로체스터 공작과 함께 근위 기사들은 이동을 시작했다. 코란 근위 기사단이 보유하고 있는 30명의 오너들 중에서 열 명은 몇 명의 기사들을 거느리고 후방으로 적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마법진을 이용하여 이동했다. 그리고 스무 명은 남은 기사들을 거느리고 로체스터 공작을 뒤따랐다.

까미유가 행동을 개시하기 전까지 그들은 최대한 적에게 가까운 돌격 위치에 도착해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마차가 오고 있사옵니다, 전하.”

“그래? 그 외에 이상은 없는가?”

“옛, 모든 것이 이상이 없사옵니다. 전방 정찰대의 보고로는 그의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것은 네 명의 기사들뿐이라고 하옵니다. 모두들 호화로운 정복을 입고, 간편하게 검만을 착용한 상태라고 하옵니다.”

코린트는 이번 기습 작전에서 군대를 아예 사용하지 않고 기사단만을 살짝 움직였기에 크라레스의 정보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사단의 경우 군대와 달리 그 엄청난 전투력에 비해 수가 적었기에 포착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래? 알겠다. 도착하면 이곳으로 정중히 모시도록!”

“옛, 전하.”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고 마차 소리가 들려오자 루빈스키 대공은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마차와 그것을 호위하는 기사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에 따라 1백여 명의 호위병들이 일렬로 정렬하여 귀빈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고, 기사들은 루빈스키 대공의 뒤에 정렬했다.

루빈스키 대공은 호위 기병은 한 명도 없이, 호화로운 복장의 근위 기사 네 명이 마차를 호위해 오는 것을 보고 약간의 의아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은 곧이어 잊혀졌다. 왜냐하면 마차의 문이 열리면서 까미유가 당당하게 내려올 때, 그 안을 힐끗 보니 안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경호 기병들이 밖에 둘러싸고 기사들은 마차 안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협상을 하러 올 때는 실무자인 문관이나 마법사가 동행하게 되는데 왜 마차 안에 그들이 한 명도 없는지 의구심을 가지기도 전에 까미유는 루빈스키 대공의 앞에 섰다. 그런 후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것을 보고 루빈스키 대공도 고개를 숙이는 순간 상대의 검이 거의 투명하다시피 한 궤적(軌跡)을 그리며 순식간에 날아왔다. 과연 마스터라고 불릴 만한 검술이었다.

“헛!”

루빈스키 대공은 거의 검을 뽑을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노련하게 순간적으로 검을 잡고는 뽑아 올리며 적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까미유는 단독으로 그를 공격해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데려온 네 명의 기사들 또한 제2근위대란 이름에 걸맞은 검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대장이 공격을 가함과 동시에 둘은 좌우에서 루빈스키를 공격해 들어갔고, 남은 둘은 상대방 기사들을 제압하기 위해 뛰어 들었다.

루빈스키는 까미유의 공격을 막는 것도 힘든 판에 양쪽에서 둘이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예 전의를 상실했다. 그렇다고 항복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상대와 대적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공간 이동 주문을 외웠다. 그의 왼손에 끼워져 있는 것은 토지에르의 목숨을 건진 것과 같은 이동용 마법 도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동이라는 단 두 마디 주문을 외울 시간에 상대방의 검은 그의 몸통을 좌우에서 훑고 지나갔다. 검이 휩쓸고 지나간 후 곧이어 희뿌연 빛 무리가 대공의 주위를 감쌌고, 그 순간 그의 몸은 사라지고 없었다.

적이 사라지고 나자 루빈스키를 공격했던 기사 두 명은 이제 흩어져서 4대 2로 싸우고 있는 접전장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루빈스키의 경호병들이 그 난장판 안으로 달려들었지만, 사상자의 수를 늘릴 뿐이었다. 도저히 상대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막강했던 것이다.

사방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접전을 벌이는 동안 까미유는 루빈스키 대공이 빛 무리와 함께 사라진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겨우 두 발자국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는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 후 그는 고개를 숙여 물기가 있는 흙을 매만졌다. 핏기에 젖은 축축한 흙이었다. 순간적인 칼부림으로 인한 것치고는 매우 많은 피……. 그것을 확인한 까미유의 얼굴에 살기 어린 미소가 맺히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기습 공격으로 크라레스군은 거의 묵사발이 나 버렸다. 북쪽에서 기습을 가해 온 금십자 기사단에게 제3전대가 요새와 함께 박살 났다. 그리고 협상을 위해 나갔던 루빈스키 대공은 치명상을 입은 채 돌아왔고, 그를 호위하던 부대는 전멸당했다. 그리고 루빈스키의 호위를 위해 파견되었던 제4전대 또한 적의 근위 기사단에게 치명타를 당한 채 후퇴했다.

동쪽으로는 치레아의 감시역으로 그곳을 지키고 있던 제1, 2전대가 아르곤의 갑작스런 개입으로 인해 원래 위장용으로 선포해 놓았던 목적, 즉 아르곤의 침입을 저지한다고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적의 타이탄 수는 2개 기사단 60대. 만약 이쪽도 2개 전대 60대였다면 어느 정도 대결을 펼칠 수 있었겠지만, 초기에 코린트와 접전을 벌인다고 제1전대가 많이 소모된 상태였기에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제1, 2전대가 치레아 대공의 기습을 저지하기 위해 건설했던 요새에 주둔하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판가름이 났을 것이다.

서쪽으로는 알카사스의 레드 이글 기사단이 엔테미어 공국을 경유해서 침입해 들어왔다. 그들은 국경 수비군을 돌파한 후 토리아 왕국이 멸망한 후 엔테미어 공국과의 국경선으로 이동 배치되어 있던 제6전대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레드 이글 기사단이 50대의 타이탄을 보유하고 있는데 반해서 제6전대는 30대뿐이었기에 전투는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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