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3화 (279/930)

다크는 보통 여자가 아니야

자욱하게 솟아올랐던 먼지가 차츰 가라앉고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성은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수많은 인간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엄청난 폭발이 있었는데도 아직 이만한 인간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그 끈질긴 생존력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방에 엄청난 클래스의 마법사가 있는 게 분명했기에 그들은 일단 성을 포기하고 넓게 산개하면서 방어진을 치며, 또 한편으로는 부상자들을 구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마법사들은 지금쯤 구원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리라.

“히야…….”

“정말 대단하군.”

모두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한마디씩 했다. 다크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성의 반쪽이 날아가 버릴 정도의 엄청난 폭발은 그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게 마력검이었어? 거의 뽑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마력검인지도 몰랐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다시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있는 다크를 바라보며 팔시온이 부러운 듯, 또 탐난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도 마력검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저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력검이 얼마나 구하기 힘든 진품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팔시온은 곧이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머릿속의 탐욕을 쫓아냈다. 돼지에게 진주목걸이를 걸어 주는 것처럼 자신에게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물건임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저 검을 쓴다면 채 마법을 뿜어내기도 전에 마나가 고갈되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때? 내 말대로지?”

다크가 가리킨 곳으로 팔시온이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서 공간을 뚫고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거의 50여 명. 그들은 타이탄 50대로 마법사를 때려잡고,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르는 타이탄들을 없애는 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상대방의 기사들이 저마다 타이탄들을 꺼내어 탑승하는 것을 지켜보며 미카엘이 물었다.

“조용히 해치우려면 일단 목격자 수가 적은 게 중요해.”

“그렇다면?”

“녀석들을 저기 보이는 숲으로 유인하기로 하지. 나는 저쪽 숲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너희들은 대충 녀석들과 싸우면서 유인해서 끌고 와.”

“자신은 있는 거지?”

미디아는 아직도 걱정이 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다크가 아무리 마스터급의 검객이라고 하지만 상대방의 타이탄은 50여 대나 되는 것이다.

“걱정 말고 불러들여.”

“알았어.”

다크와 가스톤이 언덕 뒤에 펼쳐져 있는 숲 속으로 몸을 감추고 나자, 미디아의 타이탄을 선두로 해서 황금빛 나는 타이탄 세 대가 공간을 가르고 모습을 드러냈다.

“죽자고 싸우면 안 돼, 알았어?”

“잘 알고 있어. 내가 그렇게 돌머리인 줄 아냐? 대충 싸우고 빠지면 되는 거 아냐?”

“네 녀석은 적군이 앞에 있기만 하면 이성을 잃어버리니까 그렇지.”

세 대의 황금색 타이탄이 성을 향해 달려 나가자 곧이어 성 쪽에서는 수십 대의 타이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상대는 곧장 달려들지 않고 조금 웅성거리는 듯 보이더니, 그들 중 몇 명이 성 뒤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뭐 하는 짓이지?”

“글쎄……. 이쪽이 양동 작전이라도 벌이는 것으로 착각하는 모양이지. 사실 여기 나타난 세 대는 숫자가 너무 적잖아. 앞에 몇 대 보여 주고 자신들의 뒤쪽으로 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쩝, 그럴 수도 있겠군. 하여튼 쓸데없이 잔머리를 굴리는군. 이렇게 되면 계획하고 조금 차질이 생기잖아.”

“차질이 생길 것도 없어. 저 봐, 놈들 타이탄 숫자가 장난이 아니야.”

거의 30여 대에 달하는 타이탄들이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들은 일단 타이탄에 모두들 탑승한 상태에서도 돌격해 들어오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고 있었다. 아무래도 뒤쪽이 켕기는 모양이었다.

“젠장! 되게 쫀쫀한 놈들이군. 뒤로 쳐들어가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걱정 말고 달려오라니까.”

상대는 한 20여 분 정도 웅성거리면서 시간을 끌더니 급기야 돌격을 시작했다. 30여 대의 타이탄들이 달려 나오는 것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거대한 덩치와 무게에 짓눌린 대지는 비명을 질러 댔고, 더불어 뿜어 오르는 먼지로 인해 앞의 10여 대만이 제대로 보일 뿐, 그 뒤는 먼지만이 자욱했다.

“우힉! 저렇게 보니까 정말 엄청난데?”

“우리들끼리 연습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박력이야.”

“어떻게 할래? 계획대로 여기서 한판 하고 튈 거야?”

“미, 미쳤냐? 저놈들하고 한판 하기 시작했다가는 곧장 포위당해서 도망칠 수도 없어. 빨리 도망치잣!”

“놈들이 퇴각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부하의 말에 후작은 잠시 고민을 했다. 놈들이 저쪽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봤을 때 뭔가 대비가 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매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위협적인 숫자일 수는 없었다. 치레아 기사단의 정수는 20대. 숨어 있다고 해 봐야 17대를 넘을 수는 없었다.

치레아 기사단 외에 또 다른 기사단이 지원을 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크라레스와 연결되는 직접적인 전략적 이점도 없는 시골구석에 2개 기사단 이상을 밀어 넣는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었다. 분명히 놈들의 규모는 1개 기사단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후작은 이윽고 결심한 듯 외쳤다.

“쫓아라, 놈들이 숨어 있을 가능성은 있으니 주위를 경계하도록!”

“놈들이 숲 속으로 도망칩니다, 각하.”

과연 놈들이 언덕을 슬쩍 돌아서 평지 쪽으로 도망치지 않고 숲 속으로 들어갔기에, 후작은 쾌재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놈들은 이제 자기들 꾀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모르겠지만, 놈들의 행동은 벌써 이쪽에서 예측하고 있는 그대로였다.

“흐흐흐, 숲 속이라……. 그렇다면 독 안에 든 쥐로군. 양쪽에서 협공하여 박살 낸다. 자, 돌격하라!”

80톤이나 되는 타이탄이 탑승한 기사와 동등한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엑스시온을 1.0급이라고 부르며, 대부분의 타이탄이 이 기준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금십자 기사단의 주력인 미노바-P2가 90톤이나 나가는 중형 타이탄이라고 하지만, 그 심장은 1.5나 되었기에 그 움직임은 더욱 빨랐다.

지축을 울리며 앞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을 파괴하며 돌진하는 그 위용은 이 세계 최강의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위압적인 것이었다.

10미터가 넘는 굵직굵직한 나무들이 모여서 숲을 이루는 장대한 삼림이라고 하지만 90톤이 넘는 타이탄들의 앞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쫓는 자들도, 쫓기는 자들도 걸리적거리는 나무들을 간단하게 밀어붙이며 달려가고 있었다.

“어? 저건…….”

거대한 푸른색의 타이탄이 나무를 헤치며 쓱 나타나자, 여태껏 도망치기에 급급하던 금빛 나는 타이탄들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재빨리 푸른색의 타이탄의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각하.”

윌리엄스 후작은 상대편 타이탄을 구석구석 훑어봤다. 그러는 도중 후작의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악취미하게 이상한 황금색 드래곤을 그려 놓은 견갑부를 보는 순간, 아무래도 키에리를 때려 눕혔다는 그 타이탄인 것 같았다.

하지만 로체스터 공작은 ‘그녀’가 크라레스의 수도에 그대로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눈앞에 보이는 저 녀석은 누구라는 말인가?

“뭘 어떻게 해? 곧 있으면 매트 경이 뒤쪽에서 포진해 올 거다. 놈들의 퇴로는 막힌 상태니까 마음 놓고 몰아 붙여라.”

“하지만 저 거대한 타이탄은…….”

“어차피 대단한 상대는 아니다. 근위 기사단의 얘기를 못 들었나? 이번 기습 작전에서 저런 놈을 세 대나 격파했다는 무용담을 말이다. 겉모습만 대단할 뿐이야, 밀어붙여라.”

부하들에게 그렇게 명령은 내렸지만 후작 자신은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금십자 기사단의 경우, 제1차 제국 전쟁 때 다른 곳에서 작전을 하고 있었기에 키에리를 격패시켰다는 그 타이탄을 본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후작은 상대가 누군지 어느 정도 짐작은 하면서도 확실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능성은 50퍼센트. 진짜 아니면 가짜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은 이상 후작 자신이 달려 나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거대한 타이탄의 검이 거대한 반원형의 푸른 원반을 그릴 때, 이미 두 대의 타이탄이 고철이 되어 뒹굴기 시작했다. 푸른 타이탄의 동작은 엄청나게 재빨랐다. 완전히 늑대가 양 떼를 헤치면서 그들 중에 맛있는 먹잇감을 고르듯 재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검이고, 방패고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거대한 타이탄이 휘두르고 있는 불타는 듯한 검은 앞을 가로막는 것이 검이든 방패든, 타이탄의 몸통이든 가리지 않고 둘로 쪼개고 있었다.

“이건, 악몽이야…….”

몇몇 실력 있는 검사들이 타고 있는 타이탄들의 경우 검과 방패에 마나를 충만하게 주입하여 버텨 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상대방의 공격을 막는 것도 두세 번의 칼부림이 고작이었다. 곧이어 방패가 찢겨 나가고, 검이 잘라져 나갔다.

어느덧 코린트의 타이탄들은 엉거주춤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처음에 돌격해 들어갔던 그 패기만만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그들은 모두들 한껏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도저히 상대가 불가능한 괴물에 대해서…….

“후퇴, 후퇴하랏!”

몇 분 되지도 않는 격돌이었지만, 후작의 뒤를 따라 도망치는 타이탄은 열 대도 되지 않았다. 도대체가 어떻게 된 노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후작의 뒤쪽에서 쿵쿵거리는 뭔가 거대한 물체가 땅에 부딪치는 소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슉!’하는 날카로운 칼부림 소리와 함께 곧이어 뭔가 거대한 물체가 땅바닥을 구르는 굉음이 함께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이럴 수가…….”

후작이 제일 먼저 도망쳤고, 또 그의 실력이 자신의 부하들보다는 우월한 만큼 적 타이탄으로부터 제일 멀리 떨어져 있던 것도 후작이었다.

처음 후퇴를 시작했을 때, 아니 도망치기 시작했을 때 후작의 타이탄을 뒤따르는 부하들의 발소리가 쿵쾅거리며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후작은 채 3분도 달리지 못해 더 이상 자신과 보조를 맞춰 달리는 부하들의 발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쿵, 쿵, 쿵…….

그 대신 부하들이 내던 발소리보다는 훨씬 더 크고 둔중한 소리가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제 후작의 심장은 가슴을 박차고 뛰어나올 듯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길은 없어. 반전하여 반격을…….’

하지만 윌리엄스 후작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뒤에서 날아온 검에 의해 자신의 몸과 타이탄은 두 토막이 나 버렸던 것이다.

“젠장, 비무할 때는 몰랐는데, 정말 겁나는군.”

“그러게 말이야. 우리들이 나설 틈도 없었어. 30대의 타이탄이 순식간에 전멸이라니……. 이게 말로만 듣던 마스터의 실력인가?”

“코린트에는 저런 실력자가 세 명이나 있는 거야. 그야말로 세계 최강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

팔시온의 말에 미카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 나도 마스터를 한 명 알고 있지만…, 결단코 저 정도는 아니었어.”

이때 푸른색 타이탄의 머리 부분이 열리면서 다크가 뛰어내렸다.

“이봐, 가스톤!”

엄청난 실력에 얼이 빠져 있던 가스톤은 무심결에 바짝 긴장한 어조로 대답했다.

“옛!”

“예?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대답이 그 모양이야?”

다크의 약간 짓궂은 듯한 물음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가스톤이 쑥스러운 듯 얼버무렸다.

“아…, 왜?”

“본국에 연락해서 5전대를 이리로 보내서 타이탄을 수거해 가라고 해.”

“이봐, 다크.”

“왜?”

“지금은 타이탄 수거가 문제가 아니야. 네 말대로라면 누군가가 첩자일 거 아냐? 5전대를 이쪽으로 불러들인다면 네가 이 일을 했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렇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냥 놔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니야……. 실력 있는 놈이라면 여기저기 엎어져 있는 타이탄의 잔해만 봐도 상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유추해 낼 수 있어. 그냥 놔두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야.”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아빠한테 연락해. 그래 가지고……. 뭐 아빠한테 말하면 어떻게 하겠지.”

“알았어, 연락하지.”

잠시 후 수정 구슬에 예쁜 소녀가 권태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하품을 쓱 하더니 퉁명스레 말했다.

“아아아항∼ 무슨 일이냐?”

가스톤은 아르티어스의 말투나 표정이 정말 다크와 쏙 빼 닳았다는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역할을 거꾸로 해 보니까 과연 이 부자(父子)가 얼마나 닮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 예, 아르티어스 님. 여기는 그러니까…….”

가스톤은 허겁지겁 품속을 뒤져서는 지도를 꺼내 자신들이 위치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 좌표가 328345 234763인데요. 이곳에서 적 타이탄 부대를 해치웠습니다.”

“그런데?”

“여기 적 타이탄의 잔해가 쭉 널려 있으니까 회수해 가시라구요. 그리고 절대로 증거를 남기지 말라는 대공 전하의 부탁이십니다.”

가스톤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자기를 이곳에 처박아 두고는 아들놈이 혼자서만 재미보고 다니는 것에 속이 상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아들 녀석에게 따지기에 아르티어스의 속마음은 너무나도 여렸다. 덕분에 그 분풀이를 애매한 가스톤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헷! 내가 그런 뒤치다꺼리나 해 주는 사람이냐?”

중간에 끼인 가스톤만 입장이 난처해져서 버벅거렸다. 다크도 무서운 존재였지만, 아르티어스는 그보다 백배는 더 무서운 존재였다. 물론 다크가 앞에 있을 때는 그런 표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녀가 눈앞에 없을 때는 그 표정부터가 몬스터쯤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포악하고 잔인무도하게 바뀌는 것이다.

“저, 그런 말씀을 하셔도…….”

가까스로 반론을 제기하려고 드는 가스톤을 그 광포한 눈빛으로 제압하면서, 아르티어스는 퉁기듯 내뱉었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하라고 해.”

이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다크가 슬며시 약이 올라서는 끼어들었다. 아르티어스의 소행이 괘씸했기 때문이다. 자신한테 직접 말하기 뭣하니까 밑의 사람만 들볶고 있어. 쪼잔한 드래곤 같으니라구…….

“뭐라구요?”

갑자기 수정 구슬에 약이 바짝 오른 아들 녀석의 얼굴이 나타나자 아르티어스는 낮게 비명을 질렀다.

“엑! 그, 근처에 있었냐?”

“다 들었다구요. 아까 하신 말 다시 한 번 더 해 보세요.”

다크가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말하자, 아르티어스는 허둥지둥 뒷수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뒷수습이라기보다는 완전히 오리발 작전이었다.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가스톤에게는 꼭 쥐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 잡아먹을까 하고 노려보던 것 같은 그런 눈빛을 보냈었지만, 다크가 나타나자마자 언제 그게 바뀌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이 확 바뀌어 버렸다. 오히려 먼저와는 반대로 꼭 고양이 앞의 쥐처럼 되어 버렸다고 해야 할까?

“응? 내, 내가 뭐라고 했다고 그러냐? 곧 누군가 보내서 아주 깨끗하게 처리할 테니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잖니.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아르티어스는 허둥지둥 통신을 끊어 버렸다. 그러자 다크는 아차하는 표정으로 허둥지둥 말했다.

“이런 아직 할 말도 다 못했는데 끊어 버렸잖앗! 가스톤! 통신 다시 걸어.”

“에, 그건 왜?”

“설마 너도 저기 엎어져 있는 타이탄들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너희들이 오기 전에 저 뒤쪽에서 공간 이동해 온 놈들이 있기에 손을 좀 봐 줬는데 그것도 남김없이 회수해야 한다구. 알았어?”

“알겠어, 다시 연락할게.”

또다시 아르티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아르티어스는 약간 아부성 짙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것이 다크의 모습이었기에 너무나도 깜찍스러웠다.

“왜 또 연락을 했냐? 좌표 잊어 먹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구. 곧 그리로 제5전대를 보내 줄 테니…….”

“물론 아빠는 좌표를 기억하고 있겠죠. 그게 아니라 아직 전할 말이 더 있어서 다시 통신을 한 거에요. 여기 말고 숲 안쪽에도 고철이 된 타이탄 열 대가 더 있어요. 그것도 회수해야 한다구요. 그리고 절대로 증거는 남기지 말구요. 알겠어요?”

“알겠다.”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 없었어요?”

“글쎄다……. 뭐 별일은 없었다. 네가 말한 대로 론가르트 녀석에게 내 정체를 말해 줬고, 만약 타이탄을 써야 할 때는 어떻게 하라고 말해 뒀지. 그리고 참, 알카사스에서 서로 휴전하자고 사신이 왔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녀석들이 가소롭게도 항구 하나만 주면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하더구나.”

“그래서요?”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서 보냈지. 어때, 잘했지?”

“아이고… 골치야. 그리고요?”

“그리고는 뭐가 그리고야. 그냥 두들겨서 보냈다구. 참, 미란에서 전쟁이 터진 모양인데…….”

“미란에서요? 코린트가 미란에까지 손을 댔다는 말이에요?”

“아니, 그게 아니고 크루마가 침공했다고 하더구나. 웬 꼬장꼬장한 영감이 계속 그쪽을 도와줘야 한다고 떠들어 대서 치레아 기사단을 그리로 보냈다. 뭐, 잘해 내겠지.”

“언제 보냈어요?”

“방금 전에 보냈지. 그래, 뭐 잘못되었냐?”

“아뇨, 별로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그 외는요?”

“뭐, 더 이상 중요한 일은 없었어.”

“알겠어요. 그럼 이만 끊어요.”

통신을 끝낸 후 다크는 씩 미소를 지으면서 일행들을 둘러봤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전체적으로 악의에 가득 차 있었다.

“왜? 왜 그래?”

“가스톤!”

“왜?”

“케락스로 가자. 코린티아가 박살 난 후 거기가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면서?”

다크가 내린 의외의 결정에 가스톤은 경악해서 만류했다.

“뭐, 뭣? 지금 제정신이야? 코린트의 수도에 가서 뭐 하려고…….”

“그거야 가 보면 알겠지. 자, 준비해 줘!”

“그만 둬. 우리들만으로 케락스로 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야.”

“절대로 자살 행위는 아니지. 지금 이곳을 박살 내 놨으니, 놈들은 곧이어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이곳으로 누군가를 파견할 거야. 그러니 녀석들의 전력은 상당히 줄어든다고 봐야겠지. 그 틈을 노리는 거야. 놈들도 나를 가지고 놀았으니 나도 그만큼은 갚아 줘야 할 것 아냐? 자, 빨리 준비해! 이건 친구로서가 아니라 치레아 대공으로서의 명령이야!”

명령이라는 말까지 나오자 가스톤은 마지못해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친구였기에 어느 정도 허물없이 지내고는 있었지만, 사실상 그녀와 자신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우정이니 뭐니 그런 것을 따지기에는 너무나도 복수라는 단어에 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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