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락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전하, 치레아 기사단과 접전에 들어갔다고 연락했었던 윌리엄스 후작 말이옵니다.”
레티안의 보고에 로체스터 공작은 흥미를 느낀 듯 질문을 던졌다.
“왜? 새로운 정보라도 있는가? 벼룩으로부터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고양이는 그대로 있다고 했잖은가? 또 치레아 기사단은 미란에 파견 나갔다고 했고 말이야. 그래서 밀티성에 나타난 것은 아무래도 치레아 기사단은 아닌 것 같다고 결론짓지 않았던가?”
레티안은 고개를 끄덕여 로체스터의 기억이 맞다는 것을 확인해 주며 말을 이었다.
“그랬사옵니다. 하지만 그게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사옵니다. 윌리엄스 후작은 황금빛 타이탄들, 그러니까 치레아 기사단이 가지고 있는 드라쿤들과 교전에 들어갔다고 했었으니까요.”
“뭣이? 그렇다면 미란에 간 것은 또 뭐라는 말이냐? 분명히 벼룩은 치레아 기사단이 미란으로 갔다고 했잖은가?”
“예, 그래서 미란에 있는 정보원들에게 자세히 알아 보라고 지시해 뒀사옵니다. 그리고 밀티성에서 연락이 왔사온데…….”
“그런데?”
“윌리엄스 후작 이하 타이탄 부대가 그때의 보고 이후로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부하의 보고에 로체스터 공작은 엄청나게 놀랐다. 타이탄 40대로 이루어진 막강한 부대가 행방불명이라니…….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요한 사안을 왜 이제야 보고하는가?”
“적들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던 타이탄이 40대이옵니다. 적들과 교전한 후 노획품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까지 생각하며 기다리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숲 쪽으로 척후병을 파견했는데, 전투의 흔적만 발견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옵니다.”
“멍청한 것들!”
로체스터 공작은 마법사의 꼴이 더 이상 보기 싫다는 듯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쪽에는 해골 가면을 쓴 용병대장이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용병대장도 이번 사건이 뭔가 상당히 석연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40대의 타이탄을 흔적도 없이 박살 낼 정도의 실력이라면, 이건 엄청난 적일 것이다. 로체스터 공작은 다시금 시선을 제임스 쪽으로 돌렸다.
“까미유는 어디 있나?”
“예, 후작 각하께서는 금십자 기사단을 도와준다고 나갔사옵니다, 전하.”
“좋아, 까미유한테 수도로 돌아오라고 전해라.”
“옛, 전하.”
“그리고 근위 기사단에도 출동 명령을 내려라. 내가 직접 가겠다.”
“예? 그렇게 되면 수도가…….”
“괜찮아, 로젠 공작이 있으니까 말이야. 안 그런가? 로젠 경.”
로체스터 공작의 호명에 로젠 드 발렌시아드 대공은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서며 외쳤다.
“맡겨만 주십시오, 전하.”
로젠은 2차 제국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발렌시아드 기사단을 거느리고 이곳 수도에 진을 치고 있었다. 흑기사들로 이뤄진 발렌시아드 기사단이 있는 한 근위 기사단을 밖으로 빼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으므로 로체스터 공작은 자신이 직접 근위 기사단을 이끌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한 30분쯤 후에 까미유의 제2근위대가 도착하면 경이 그 지휘를 맡아 주게. 발렌시아드 기사단과 제2근위대가 있으면 수도를 지키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을 게야.”
“알겠습니다, 전하.”
“좋아, 이동 마법진을 준비하라고 일러라. 참, 자네도 갈 텐가?”
로체스터 공작의 물음에 용병대장은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공손히 대답했다.
“예, 전하.”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거대한 도시. 이것이 코린트 최대의 상업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케락스의 모습이었다. 케락스는 예전에도 코린트 제2의 도시에 어울릴 정도로 거대한 도시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곳에 황궁이 들어서면서 황족들과 함께 모든 귀족들과 신하들까지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거기에다가 덧붙여 기사단과 대규모 군대까지 주둔하게 되어 더욱 흥청거리는 거대 도시로 변모하고 있었다.
“흐흐흐흣! 저 거대한 성을 보니 제대로 찾아왔군.”
시 외곽에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뱉은 다크의 소감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성은 최강의 제국 코린트를 상징할 만큼 규모가 대단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팔시온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더니 참견을 시작했다.
“이봐, 진짜로 할 거야?”
“그럼, 내가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다크는 저 멀리 보이는 코린트의 황궁을 확인한 후 일행에게 지시했다.
“자, 이제 목표지에 도착했으니까 밥이나 먹자.”
“뭐?”
“새벽에 출발한다고 아직 밥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 우선 식사나 하고 일을 시작하자구.”
느긋하게 말하는 다크를 보며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가 그게 적국의 한복판에 도착해서 할 말인가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명령은 떨어졌으니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짐 보따리를 뒤적거려서 먹을 것을 꺼내기 시작했고 곧이어 식사가 시작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황궁을 힐끗거리며 하는 식사는 상당히 스릴이 있었다.
가스톤은 음식을 우물거리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여기는 적국의 수도에 가까운 곳이니까 어딘가 탐지 마법진이 쳐져 있을지도 몰라. 놈들이 먼저 알아채고 공격해 오면 어쩔 거야?”
“어쩌기는… 싸우면 되지. 거기까지 찾아갈 수고를 덜 수 있으니 더욱 좋잖아.”
태평스레 말하는 다크를 보며 모두들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 시간은 종료를 고했다. 다크는 천천히 일어서서는 뚜둑 소리가 나도록 이리저리 몸을 흔들더니 가스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 이제 식사는 했으니 가볍게 한판 해 볼까? 너희들은 탈출 준비를 해 놓고 여기에서 기다려.”
“뭐? 그렇다면 저길 너 혼자 갈 거야? 미쳤냐?”
“제정신이야. 대신 좀 위태로워지면 이리로 돌아올 테니 탈출 준비를 해 놓고 있으란 말이야. 재빨리 도망치게 말이야. 또다시 명령이란 단어를 떠올려야 말을 들을 거야? 자자, 군소리하지 말고 준비들 하라구.”
“알았어.”
가스톤이 마법진을 그리고 있을 때, 다크는 자신의 타이탄을 불러냈다. 거대한 청색 타이탄이 다시금 긴 잠을 깨고 공간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안드로메다는 타이탄 특유의 저음으로 말했다.
<불렀는가? 주인이여.>
“멍청한 녀석! 불렀으니까 나왔지. 자 가자구. 한바탕 멋지게 휘저어 놔야지.”
<바라던 바다. 오늘은 일거리가 많아서 좋군.>
“자, 머리를 열어라.”
다크는 청기사 위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일행들에게 외쳤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꼼짝하지 말고 기다려!”
이윽고 청기사의 그 거대한 머리가 원상태로 돌아갔다. 청기사는 허리에서 거대한 검을 뽑아 들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걸리는 놈은 모두 다 죽여 줄 테다! 자, 기대하라구. 오호호호홋!”
청기사는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대지에는 거대한 발자국을 남기며…….
“정말 못 말리겠군.”
“어쩌겠냐? 아무리 해도 말을 안 듣는데……. 가스톤! 탈출 준비나 서두르라구. 우리가 할 일은 그것뿐이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