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크론 요새의 포스타나 대신관의 집무실에는 지금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포스타나 대신관으로서는 지금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보고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형제가 지금 하는 말은 민란이 발생했다는 말과 같은 뜻 아닌가?”
대신관의 말에 보고를 올린 사목관은 변명했다.
“아니지요, 대신관님. 민란하고는 거리가 있습니다. 점령지의 주민들이 대대적으로 크라레스 쪽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보고는 어제 드렸잖습니까?”
“물론 그랬었지. 그래서 내가 형제에게 그것을 막으라고 지시했던 것 아닌가? 땅이란 것은 몇 달만 경작을 하지 않아도 황무지로 변하니까 말이야. 형제도 알다시피 주교원에서 아직까지 전쟁이 완료되지 않은 이곳에 이주민을 보낼 리가 없지 않겠나? 또 많은 이주민들을 보내온다 하더라도 산맥을 통과하여 여기까지 도착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네. 그러니까 본국에서 이주민이 도착할 때까지 토지를 경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구는 남아 있어야만 하기에 내린 지시였네.”
“예, 그래서 각 사단장들에게 대신관님의 지시를 전했습니다. 사단장들의 보고에 따르면 피난 가던 주민들은 병사들을 보자마자 공격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지금 곳곳에서 군대와 주민들 간에 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게 민란이란 소리 아닌가?”
사목관은 얘기가 통하지 않아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민란은 아니죠.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태니까요.”
서로의 해석 차이로 인해 말이 겉돌자, 대신관의 눈초리가 위로 올라갔다. 주민들이 군대를 향해 무기를 들었다면 그것이 민란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형제, 지금 나하고 말장난을 하자는 것인가?”
사목관은 대신관의 눈을 마주 쏘아봤다. 하지만 그는 곧 시선을 아래로 푹 내렸다. 그는 대신관에게 따지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도저히 그 말을 할 용기가 없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대신관의 무리한 이교도 사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왜 농노들이 자신들의 정든 터전을 버리고 이동을 시작했겠는가? 도망갈 틈도 안 주고 막다른 통로로 계속 밀어붙이니 반발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사목관은 대신관에게 고개를 조아려 사과했다. 따져 봤을 때 대신관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지만, 어차피 상대는 자신보다 월등하게 높은 직위를 지녔기 때문이다.
“아, 아니 죄송합니다, 대신관님. 결코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좋아, 어차피 청소 작업이 앞당겨졌을 뿐이야. 병력을 총동원하여 반항하는 무리들은 싹 쓸어버려라. 내가 관장하는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주교원에서 안다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나? 다시는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싹부터 철저히 짓밟아 버리게. 알겠나?”
“하지만 그렇게 하면 더욱 사태는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민란을 일으키면 어떤 꼴이 되는지 보여 주면 다시는 그러지 못할 거야. 원래 민중이란 것은 겁이 많거든. 즉시 실행하게.”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자 사목관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대신관님.”
사목관은 대신관의 집무실을 나와서는 휘하 장교들을 불러서 대신관이 명령한 사항을 전달했다. 일단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으니 그것이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도 일단 실행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 후 사목관은 걸음을 옮겨 자신의 숙소를 향했다. 사목관의 숙소는 그 전에 이곳 요새에 소속되었던 장교들이 묵었던 방이었다. 사목관은 한숨을 푹 내쉰 후 장문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 현재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말이다. 그런 다음 그는 서랍을 열고 얇으면서도 작은 양피지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여 있던 두툼한 책자 하나도 꺼냈다. 그런 다음 사목관은 자신이 방금 썼던 편지의 내용을 두툼한 책자 안에서 찾아내서는 그것을 얇은 양피지 안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전서구를 통해 편지를 보내려면 비밀 유지를 위해 이렇듯 암호를 이용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사목관은 편지를 모두 다 쓴 후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사목관님.”
사목관은 양피지를 아주 조그마하게 돌돌 말아서는 작은 통 속에 넣었다. 그 통과 밀랍으로 봉인한 편지를 경비병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전령에게 보내게. 지급으로 말이야. 주교원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전서구는 3일이면 도착하겠지만, 편지는 족히 한 달은 걸릴 것입니다. 그렇게 급하신 일이시라면 엔드슨 수사(修士)님을 불러다 드릴까요?”
엔드슨 사제라면 통신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 사제였다. 하지만 지금 사목관이 하고 있는 일이 만약 대신관의 귀에 들어간다면 큰일이었다. 그렇기에 사목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닐세. 엔드슨 수사도 일이 많이 바쁠 테니 그를 부를 필요는 없네. 자네가 처리해 주게. 이건 전서구로 보내고, 이건 전령을 통해서 보내게. 될 수 있다면 빠르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사목관님.”
경비병이 밖으로 나가고 나자 사목관은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요새의 담장 저 밖으로 삐죽삐죽 솟아오른 나무 장대들이 보였다. 오늘도 많은 시민들이 이교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것으로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사목관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처절한 복수가 시작될 것이다
“전하, 방금 크라레스에서 사신이 도착했사옵니다.”
장교의 보고에 로체스터 공작의 눈썹이 꿈틀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그토록 크로나사 지방을 들쑤셔 댔으니까 말이다.
“그래, 누가 왔던가?”
“예, 크라레스의 공식 외교 담당관인 와리스 후작이옵니다.”
“그래? 그 녀석 얘기는 많이 들었어. 아주 노회한 놈이지. 그래 무슨 일로 왔다고 하던가?”
“예, 휴전을 청하러 왔다고 하옵니다. 어떻게 처리할지 하명해 주시옵소서.”
“좋아, 뭐 밑져 봐야 본전이겠지. 내가… 아니, 아니지. 딴 놈들은 보내 봐야 영 미덥지가 않으니……. 제임스를 불러라.”
로체스터 공작은 자신이 직접 와리스 후작을 만나려고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겨우 외교 담당관 따위를 자신이 직접 만나 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코린트에 쓸 만한 외교 담당관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기에 로체스터 공작은 제1근위대장인 제임스 후작을 부른 것이다. 제임스라면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할 테니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각하.”
제임스 후작이라면 크라레스의 루빈스키 공작과 거의 동급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문이 열리면서 제임스 후작이 걸어 들어왔을 때, 와리스 후작은 사력을 다해서 입 밖으로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아 낸 후 상대에게 미소를 보냈다. 아무래도 오늘의 설전(舌戰)은 아주 힘들 것 같았다.
“그래, 무슨 일로 왔소?”
“예, 프랑크 폰 그래지에트 황제 폐하의 서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와리스 후작이 건네는 편지를 쭉 훑어본 후 제임스는 차갑게 질문을 던졌다.
“휴전을 하자고? 그래, 어떤 조건으로 휴전을 하자는 말이요?”
“본국과 귀국은 과거 30년 전에 치른 대 전쟁을 제외하고는 아주 평화롭게 지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6년 전에 불행스러운 격전이 있었지만, 그것은 크루마와 귀국 간의 전쟁이었지요. 본국의 경우 크루마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쓸데없는 잔소리는 집어치우시오. 크로나사 평원이 원래 귀국의 영토였고, 그것을 귀국이 6년 전에 되찾은 것에 대해서 이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요. 그때 귀국은 그것을 되찾을 힘이 있었소. 지금은 어떻소?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시오. 귀국에는 그만한 힘이 있소?”
“예, 그것 때문에 찾아뵈었습니다. 귀국도 크로나사 평원을 차지할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그 단적인 예로 여태껏 전쟁이 벌어진 지 며칠 되었지만, 귀국의 군대는 아직도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흥, 그건 작전 때문이요. 쓸데없이 병사들의 피를 흘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지금 15개 사단에 이르는 병력이 국경선을 넘을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소. 그러니 그따위 궤변은 때려치우는 것이 좋을 거요.”
“전쟁이 오래 지속되어 봐야 좋을 것은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아르곤이, 또 한쪽에서는 알카사스군이 진격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전쟁이 오래 지속된다면 귀국의 몫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크로나사 평원의 북쪽을 떼어 드리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충분하지 않소. 황제 폐하께서는 귀국의 멸망을 원하시오. 그런데 겨우 크로나사 평원의 북쪽만으로 만족하라는 말이요? 그것도 승리하고 있는 전쟁에서 말이요.”
와리스 후작은 손수건을 꺼내어 땀을 닦은 후 항변을 시작했다.
“정 귀국이 그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본국도 전력을 다해서 귀국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국도 전쟁을 통해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아직까지 4개 전대와 3개 기사단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전쟁으로 귀국의 피해도 엄청나지 않습니까? 전쟁이 계속된다면 상호 간의 피해는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으시는 편이…….”
제임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차갑게 말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소. 나도 쓸모없는 말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할 만큼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럼 잘 가시오.”
와리스 후작은 당황해서 주절거렸다. 말로는 도저히 통하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지 마시고……. 예, 예. 크로나사 평원을 포기하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제임스는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그는 와리스 후작의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느끼한 얼굴을 혐오스런 표정으로 쏘아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오.”
“예? 크로나사 평원은 엄청나게 기름진 대지입니다. 사실 그 때문에 양국이 반목해 온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말토리오 산맥 이남의 땅까지도 원하신다는 겁니까?”
“훗, 땅은 더 이상 필요 없소.”
“그렇다면 기사단을 감축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기사단을 줄인다면 귀국도 어려워지겠지. 폐하께서는 귀국에 그렇게 많은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요.”
“그렇다면?”
“일단 귀국이 소유하고 있는 청기사의 엑스시온 설계도를 넘기시오.”
이건 이미 예상하고 있던 요구 사항이었다. 그렇기에 와리스는 겉으로는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청기사의 엑스시온은 루빈스키 전하께서 대마법사 안피로스의 던전을 발굴하던 도중에 입수한 것입니다. 완성된 것 열 개를 발견했지요. 설계도는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귀하의 그 요구에는 응할 수가 없겠군요.”
와리스 백작이 열 개라고 말한 것은, 코린트가 이번에 크라레인시 공략 작전을 펼치면서 근위 기사단과 결전을 벌이면서 어느 정도 청기사의 수가 드러나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를 호위하기 위해 근위 기사 한 명이 빠져 있었기에 열 대라고 둘러 댈 수 있었다.
제임스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크라레스가 그 막강한 타이탄인 청기사의 생산을 포기했는지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좋소. 그렇다면 모든 청기사를 본국에 넘겨주시오.”
“예? 그것은 너무 무리하신 주문이…….”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요. 전쟁을 계속하고 싶소? 그것만 말하시오.”
“허허헛, 이거 너무하시군요. 계속 그렇게 사람을 몰아붙이시다니……. 저는 결코 청기사를 넘겨드리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귀국 기사단이 크라레인시 기습 작전을 펼쳤을 때, 세 대의 청기사가 파괴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열 대를 다 드릴 수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파괴된 것도 넘기시오.”
“그것도 힘듭니다. 이미 재처리를 시작했기에 절반쯤 녹아 버렸을 테니까요.”
와리스 후작은 절대로 청기사의 잔해를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특명을 받고 있었다. 적들이 청기사의 엑스시온을 녹여 본다면 그 안에서 루비 대신에 드래곤 하트를 발견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한 녀석을 넘겨준다면 그들은 결코 청기사를 분해하지 못할 것이다. 겨우 전 세계에 일곱 대밖에 남아 있지 않은 청기사를 어떻게 분해하겠는가?
“으음, 곤란하게 되었군. 하지만 청기사의 덩치는 엄청나게 크니까 분해 작업이 완료되지는 못했을 거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재생산을 위해서 엑스시온의 분해 작업은 끝났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군요.”
“젠장, 좋소. 분해 작업이 끝난 것이라도 우리에게 넘기시오.”
“알겠습니다. 귀국에는 황금이 엄청나게 많을 텐데도 그렇게 욕심을 부리시다니……. 뭐 귀국이 원한다면 드려야 하겠지요. 참, 살아 있는 청기사는 여섯 대만 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그건 왜 그렇소?”
“치레아 대공 전하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도저히 반납받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건 황제 폐하께서 그분께 직접 하사하신 것으로 그분 개인 소유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반납하라는 말씀을 올린다면, 가만히 계시지 않을 가능성이…….”
그러면서 와리스 후작은 상대의 눈치를 힐끗 봤다. 치레아 대공이라는 말이 나오자 제임스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와리스 후작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귀국 황제가 하사한 물건이라면 어쩔 수 없겠구려. 개인의 소유물까지 뺏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오.”
“감사합니다, 후작 각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예?”
“치레아 대공을 귀국에서 영구히 추방하시오.”
마지막 한마디에 와리스의 입이 한껏 벌어졌다. 설마 치레아 대공을 추방하라는 조건이 제시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코린트 측의 입장은 달랐다. 원래는 세 명의 공작을 모두 추방하라고 할 예정이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너무 심한 것 같아서 치레아 대공 단 한 명으로 줄인 것이었다.
“그, 그것은 폐하와 상의를 해 봐야 하겠습니다.”
“좋을 대로 하시오. 내일 회의를 다시 할 테니 그때까지 한번 의견을 모아 보시오.”
“예, 감사합니다. 발렌시아드 후작 각하.”
제임스가 회담장에서 돌아오자 로체스터 공작은 초조한 어조로 물었다. 잘만 하면 이 아슬아슬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이다. 로체스터 공작은 발렌시아드 기사단을 전멸시킨 이후 더 이상 고양이의 행동이 계속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상대가 너무 조용하다 보니 우려감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
“예상대로였습니다. 크라레스는 안피로스의 던전을 발굴하면서 엑스시온만을 구한 것이더군요. 그래서 더 이상 청기사의 수가 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홉 대의 청기사를 받기로 했습니다. 세 대는 용광로에 들어 있던 거라도 꺼내서 달라고 했습니다.”
“잘했군.”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레아 대공을 추방하라고 했더니 그 뚱보 녀석 얼이 빠져서는 폐하와 상의해 본 후에 다시 회의를 하자고 하더군요.”
“잘했다. 그녀만 추방해 버린다면 크라레스 따위는 하루아침 식사거리도 안 되지. 그리고 더 이상 그녀 때문에 근심할 일도 없어질 거야.”
“그렇사옵니다, 전하. 하지만 휴전을 한 국가를 침공한다면 안 좋은 소문이 퍼질 텐데요?”
“그런 것은 상관없어. 덫을 놓은 후 시간을 주고 기다리다 보면 놈들은 언젠가 걸려들 테니까 말이야. 그때 가서 박살 내 버리면 되겠지.”
로체스터 공작이 살기 어린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 제임스도 동조의 미소를 보냈다. 언젠가 돌아올 그날이 기다려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은거하게 만든 원흉인 치레아 대공이야 그 뒤에 드래곤이 버티고 있기에 복수를 할 수 없지만, 치레아 대공을 데리고 있는 크라레스 제국은 얘기가 다르다. 그날이 오면 처절한 복수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