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3화 (299/930)

“이런 젠장!”

다크는 한 모금 가득 물을 들이켠 후 욕설을 내뱉었다. 병을 흔들어 보고는 속에 액체가 들어 있는 것만 확인하고 가져왔는데, 이게 물이 아니고 포도주였던 것이다. 그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던 탓이었다.

“끄윽! 완전히 빈속에 마셨더니 술기운이 오르는데? 가만, 이럴 때가 아니지. 시간이 없어.”

다크는 고기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우물거리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발에는 아무것도 신지 않았기에 그녀의 발걸음 소리는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무슨 건물이 이렇게 커? 하기야 크루마의 황궁이니 클 만도 하겠지…….”

한동안 달려왔는데도 불구하고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마차 두 대는 족히 지나갈 수 있을 만한 넓은 복도, 그리고 또 마차 한 대 정도 지나갈 만한 복도,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중무장한 병사 두세 명이 통과할 수 있는 복도들이 층층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방들이 그 안에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지 넓은 복도들을 제외하고는 횃불이 놓여 있지 않았기에 전체적으로 컴컴했다. 오히려 그편이 다크를 안심시켰다. 몸을 숨기기에는 제격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횃불을 하나 뽑아 들고 달려가다가 어떤 방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곳에서 묵직한 촛대 한 개를 주워 들었고, 촛대가 놓여 있던 가구의 서랍을 뒤져서 부싯돌도 찾아냈다. 그런 후 횃불은 버렸다. 횃불이 이런 곳에서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아무래도 들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다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기를 끌어올릴 수가 없었고, 그로 인해 어둠 속에서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나은 시력밖에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사용한 방법이 이것이다.

“탁!”

부싯돌이 섬광을 발하는 순간 주변의 지리를 머릿속에 기억한다. 그런 후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다크는 한 번 요령이 생기자 그다음부터는 달려가면서 부싯돌을 한 번씩 탁탁 쳤다.

다크는 한참을 달려가다가 막다른 벽에 부딪쳤다. 여태까지는 연결되는 크고 작은 통로가 있었지만, 이 부분에서 단절되어 있었다.

“이건 또 뭐지? 아하……. 그렇군. 건물의 외벽이야.”

다크는 촛대로 벽면을 슬쩍 두들겨 봤다.

“툭툭.”

들려오는 소리는 아주 둔탁했다. 속이 꽉 차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이 벽의 두께가 매우 두껍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거 1, 2미터 두께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하기야 타이탄이 설쳐 대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어딘가에 통로가 있을 거야.’

다크는 벽을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육중한 강철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힘껏 그것을 밀어 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힘이 모자라거나, 아니면 문이 잠겨 있다는 증거였다.

“제기랄!”

그녀는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또 다른 통로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혹시나 열려 있는 통로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복도의 저편에서 불빛이 비쳐 왔던 것이다. 그 불빛은 움직이고 있었고, 두런두런 말소리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벽 쪽에 바싹 붙어서 숨었다.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 아니 괴물들 같았다. 사람의 몸통이었지만 머리는 꼭 커다란 개대가리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한 번씩 바닥에 엎드려 킁킁대기도 하면서 천천히 이동해 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통로 주변에 있는 모든 문을 열면서 철저하게 내부를 수색하고 있었다.

“최악의 사태군.”

다크는 서둘러서 빛이 없는 구석진 곳으로 슬그머니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크가 몸을 숨긴 후, 드디어 수색대가 지척에까지 도착했다. 잠시 바닥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본 견인족은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냄새를 찾았습니다!”

“어느 쪽이냐?”

“이쪽으로 간 것 같습니다.”

견인족 사내가 가리킨 곳은 통로가 있는 방향이었다. 견인족의 보고를 들은 기사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쪽으로 가 봐야 통로가 굳게 잠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 이쪽을 수색해 봐. 그리고 너는 저쪽!”

기사는 양쪽에 있는 건물에 또다시 견인족을 한 마리씩 집어넣어 수색하게 하고는 냄새를 따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10여 미터쯤 전진했을까?

“깨갱!”

어디선가 뭔가에 두들겨 맞는 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여기서 말한 개 소리는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당치도 않은 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개가 내는 소리를 말함이다.

“저쪽이닷!”

기사와 견인족들은 그쪽으로 잽싸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마에 커다란 혹이 난 채 기절해 있는 견인족 한 마리뿐이었다. 그리고 그 견인족이 가지고 있던 무기도 사라진 상태였다.

“이런 젠장할! 끝까지 말썽을 부리는군. 빨리 흩어져서 찾아라. 멀리는 가지 못했을 거다.”

“옛!”

기사는 재빨리 견인족들을 지휘하여 통로를 차단한 후 샅샅이 뒤졌지만 소녀를 찾을 수 없었다. 마나를 운용할 수도 없을 텐데 그 잠깐 사이에 어떻게 도망쳤을까? 그 소녀의 가냘픈 체구를 생각했을 때,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소녀를 찾을 수 없다는 보고가 들려오는 가운데 기사는 처음부터 뭔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그녀에 대한 예상이 잘못된 것일까? 가냘픈 소녀가 달리는 속도라면 절대로 포위망을 벗어날 수 없어. 그녀는 대단한 검객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도 얕잡아보고 시작을 했으니…….’

수색을 끝마치고 또 다른 지시를 받기 위해 모여든 견인족들에게 기사는 마음을 정한 듯 분명한 어조로 외쳤다.

“도망치는 상대를 소녀라고 생각하지 마라. 상대를 소녀가 아니라 매우 잘 단련된 검객이라고 생각해라. 그녀의 체력이나 속도, 근력 그 모든 것을 우수한 검객에 맞춰 행동하라는 말이다. 알겠느냐?”

“옛!”

“너희 둘은 딴 수색조들에게도 이 말을 전해라. 마나를 쓰지 못한다고 해서 그녀의 힘과 속도를 가냘픈 소녀쯤으로 지레짐작하지 말라고 말이다.”

“옛!”

견인족 둘이 달려가고 난 후, 기사는 또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이제는 한층 더 조심스럽게…….

“젠장할! 더럽게 무겁군.”

다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투덜거렸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긴 했지만, 그래도 상대가 포위망을 갖추기 전에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검까지 빼앗은 것이다. 자신의 손에 검이 들려 있는 이상 더 이상 겁나는 존재는 있을 수 없었다. 비록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숨을 고른 후 다크는 왼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검을 단단히 쥐었다. 검이 조금 무거워서 힘들기는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오랜 숙련도를 믿고 있었다. 검을 높이 들어 올린 후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내리찍었다.

“팡!”

검은 곧장 팔찌를 향해 떨어졌지만, 팔찌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뭔가의 힘에 가로막혀 불꽃을 번쩍이며 튕겨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지독한 고통이 시작되었다.

“으갸갸갹!”

한참 동안 몸에 찌릿찌릿한 전기가 통하는 듯한 고통에 이를 악물었던 그녀는 곧이어 고통이 멈추자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검으로 힘껏 내리찍었는데도 흠집도 없었을뿐더러, 온몸에 찌릿찌릿한 충격까지 안겨 주어 놀랐던 것이다.

“젠장! 사람 놀라게 하고 있어!”

하지만 이것은 다크였으니까 그냥 찌릿찌릿하고 끝난 것이었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감전에 의한 충격으로 기절에까지 이르게 하는 보호 장치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과거 블루 드래곤 카드리안의 뇌전을 자신의 마나로 끌어 들여 흡수해 버린 전례가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에게 흘러들었던 강력한 전기 충격의 대부분은 상당 부분 뇌전의 기운이 모여 있는 단전으로 끌려 들어갔기에, 그녀가 직접적으로 받은 충격은 크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이놈의 구속 도구들을 풀어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있다면 길은 한 가지, 이곳을 탈출하여 아르티어스에게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아르티어스라면 손쉽게 이것을 풀어 줄 것이다.

“포위망은 어떻게 되어 가나?”

“워낙 쥐새끼처럼 잘 도망치기에 이번에는 아예 폭넓게 둘러쌌습니다.”

“포위망이 약하지 않을까?”

“방금 전에 마지막 병력이 합류했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아무리 넓은 지하 공간이라고 해도,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각 보루에서 증원병들이 차례차례 도착하여 순차적으로 투입되었으므로 처음에는 잡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었다.

이제 포위 인원이 완전히 다 도착한 지금, 기사 아홉 명과 그들의 지휘를 받는 견인족 80마리가 포위망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좋아. 마지막 병력까지 합류했다면 이제부터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라고 이르게.”

“예.”

“독 안에 든 쥐이기는 하지만, 조심하라고 해! 언제 물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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