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근위대의 출현
“헉헉헉∼.”
혹시나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까해서 이리저리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가빠 오고 있었다. 다크는 이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멈춰 서서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숨이 가빠 온 것이 몇 년 만이었던가? 이 여자 애의 육체로 뒤바뀌었을 때, 한동안 나약한 육체로 인해 고통을 받았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힘을 되찾았을 때 이후로 그녀는 땀 한 방울 흘린 적이 없었다.
두 번의 환골탈태를 거친 강력한 육체의 힘은 똑같은 신체 조건을 가진 계집아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고, 거기에다가 마나까지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순간적으로는 수십 배 이상의 힘까지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마나를 쓸 수 없게 된 지금, 너무나 처량한 상태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헉헉, 젠장! 한동안 게으름을 부렸더니 그 덕을 톡톡히 보는군. 헉헉.”
다크는 아무리 뒤져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때는 아직까지 포위망이 느슨할 때 뚫고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포위망이 좁혀지기 시작한다면 그 두께는 더욱 두꺼워질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녀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놈들이 포진하고 있는 곳 앞쪽의 으슥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실내라서 바람이 불지 않았기에 바람 때문에 위치 선정에 신경 쓰는 성가신 작업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차근차근 숨을 고르며 상대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아마도 포위망이 완전해지면 놈들은 앞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한동안 기다리자 “삐이이익!”하는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곧이어 여기저기서 삑삑거리는 응답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저 앞쪽에 위치한 똥개들도 그것에 답하듯 뭔가를 입에 물고 삐이익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내였기에 그들은 복도를 중심으로 천천히 앞으로 이동해 들어가면서 문을 만나면 두세 마리가 그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밖에 대기하고 있는 똥개들은 실내의 수색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대기했다. 괜히 수색조가 나오기 전에 앞으로 나가게 되면 또 다른 문을 만나게 될 것이고, 또다시 병력을 분산해서 그 안에 투입해야 하지 않겠나? 그들은 최대한 많은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점차 그들과 다크와의 거리는 좁아지기 시작했다. 상대와의 거리가 약 10미터 정도로 좁아졌을 때, 그들은 또 다른 문을 만났고 세 마리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다크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것은 일곱 마리. 처음에 서너 마리씩 보일 때 치고받는 편이 좋았을 텐데, 괜히 탈출할 곳을 찾는다고 싸우는 것을 회피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다크는 똥개들이 실내를 뒤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대충 측정해 두었기에, 잠시 더 기다려서 수색조가 실내로 깊숙이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돌진해 들어갔다.
“삑삑삐이이익! 삑삑삐이이익!”
제일 뒤쪽에 서 있던 견인족이 동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신호를 보내는 순간, 다크는 상대의 지척까지 거리를 좁혔다. 남은 똥개들도 저마다 검을 뽑아 들고 상대를 잡기 위한 준비 태세를 끝낸 상태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다크에게 매우 유리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똥개들은 포로를 무조건 살아 있는 채로 잡아올 것을 명령받았지만, 다크는 똥개들을 살려 주건 죽이건 보신탕을 끓여 먹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단 한 가지 사실이었다.
아무리 마나를 쓰지 못한다는 제약이 가해졌다고 하더라도, 일단 달릴 수 있고, 뛸 수 있고, 팔을 휘두를 수 있고, 또 손에 검을 쥘 수 있는 한 다크를 겨우 똥개 몇 마리가 사로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상대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견인족들은 매우 큰 체구를 가지고 있었고, 또 두툼한 근육질을 가지고 있는 아주 강인한 족속이었다.
묘인족이나 호인족(虎人族) 등 고양이과(猫科) 수인족의 경우 덩치와 힘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고양이 특유의 유연하면서도 매끄러운 몸놀림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견인족 같은 개과(犬科)는 그런 유연한 몸놀림보다는 강력한 힘과 초인적인 맷집으로 승부하는 족속들이었다. 정면으로 맞부딪쳤을 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미꾸라지처럼 파고든 그녀를 잡는 데는 그러한 그들의 특성이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했다.
상대가 ‘죽여 주쇼’하면서 저돌적으로 달려들었지만, 그들은 그 순간에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강한 팔 힘으로 검을 휘두르면 소녀의 몸은 그대로 두 토막이 날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그 한순간의 망설임이 끝났을 때 요란한 개 잡는 소리가 지하에 울려 퍼졌다.
“컹!”
“캥!”
두 마리의 견인족이 다크의 검에 치명상을 입은 후에야 그들도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상대에게 검을 휘두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동료들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데다가 상대는 미꾸라지 같은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동료들을 방패막이로 쓰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은 놈을 ‘생포’하라는 명령이었다.
거기다가 세 마리는 실내를 수색하러 들어갔기에 동료들과의 합류가 아주 조금 늦었다. 수색조 세 마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두 마리는 확실히 저세상에 한 다리를 걸치고 있는 상태였고, 네 마리는 크고 작은 부상으로 완전한 제 실력을 낼 수 없었다. 거기에 셋이 더해져 봐야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기는 힘들었다. 또, 이곳 자체가 기나긴 복도를 통한 미로의 구조였기에 저쪽에 있는 아군들이 합류해 들어오는 데도 시간이 꽤나 필요했다.
“히힛! 아주 좋은 것을 발견했군. 그렇다면 탈출은 식은 죽 먹기겠어.”
다크가 방어는 완전히 무시하고 왕성한 공격력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처음 부딪칠 때 똥개들이 과감하게 검을 휘두르지 못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싸우면 싸울수록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상대는 그녀를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설혹 자신들의 숨이 끊어진다 하더라도.
다크는 모든 똥개들을 처치한 후 싸우느라 가빠진 숨을 고르며 다시금 암흑 속으로 달려갔다.
“아차! 늦었군.”
뒤늦게 달려온 기사들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견인족들의 전투 능력은 대단했다. 그렇기에 충분히 그녀를 붙잡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이미 포위망이 뚫려 있었던 것이다.
“믿을 수가 없군요. 견인족 열 마리라면 웬만한 기사도 막을 수 있는데……. 그녀는 지금 마나가 봉인되어 기사급의 파워를 낼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인 것을 어떻게 하겠나?”
그중에 계급이 높은 듯한 기사가 우선 지시를 내렸다. 일단 추격도 중요했지만, 죽어 가는 견인족들을 살리는 것도 중요했다. 견인족 한 마리 한 마리가 얼마짜리인데…, 그냥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황궁 내에도 견인족은 통틀어 2백 마리도 안 된다. 그런 그들의 숫자가 줄어든 이유를 위에 보고해야만 할 것이고, 그에 대한 문책 또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래저래 입맛이 쓴 생포 작전이었다.
“아직 죽지 않은 놈은 빨리 보루로 호송해서 치료를 받게 해라. 그리고 나머지는 그놈을 추격한다.”
“옛!”
“병력을 좀 더 지원해 주십시오.”
“뭐라고?”
지오그네는 기사가 허겁지겁 달려오기에 생포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올리려고 온 줄 알았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저따위 소리나 지껄이고 있다니, 정말 저 기사 놈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상관의 눈초리가 아주 매서워지는 것을 포착한 기사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견인족 30마리가 당했습니다.”
“뭣?”
“지하가 너무 넓어서 포위망을 구축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거기에다가 칼부림까지 해 대는 상대를 겨우 그 인원으로 생포해 오라는 것은 너무 무리하신 명령입니다.”
“이런 멍청한 녀석들! 겨우 힘없는 계집애 하나 못 잡아온단 말이냐?”
상관의 질책에 기사는 묵묵부답으로 저항했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네가 가서 잡아 보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그 꼴을 보며 지오그네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었다. 이렇게도 쓸 만한 놈이 없다니……. 그녀는 하마터면 자신이 내려가겠다는 말을 내뱉을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내뱉지 않았다. 자신이 내려가 봐야 바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탁 트인 공간도 아니고, 미로와 같이 복잡한 곳에 자신이 내려가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견인족도 죽어 나가는 판에 공격 속도가 느린 마법사가 내려가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또, 멀찍이서 막강한 마법 공격을 퍼부을 수도 없었다. 지하 궁전을 박살 내 놨다는 것이 들통 나면, 그녀를 잡고 못 잡고 간에 목이 떨어져 나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지. 전하께 말씀드리는 수밖에. 경은 밑에 내려가서 일단 수색 작전을 잠시 중지하고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라고 전하게.”
“옛, 각하.”
“포로가 탈출했다고?”
“예, 전하. 긴급히 병력을 투입했사오나 견인족 30여 마리만 사상을 당했사옵니다.”
지오그네는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미네르바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지시를 내렸다. 예상외로 그녀의 목소리는 별로 화가 난 것 같지 않았다.
“제2근위대를 비밀리에 투입해라. 그녀가 아무리 마나를 쓰지 못한다고 해도, 생포하는 것은 그렇게 녹록한 일이 아닐 것이야.”
미네르바는 일부러 생포라는 단어에다가 힘을 줘서 말했다. 미네르바는 이미 일이 어떻게 전개된 것인지 짐작했던 것이다. 견인족의 전투력은 매우 강력하다. 기사에는 못 미치겠지만, 그래도 수련 기사 정도의 전투력은 지니고 있는 강인한 종족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고 생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이상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예 죽여 버리겠다고 덤비지 않는 한 잡기 힘든 상대임을 미네르바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2근위대 전원에게 전해라. 포로의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되니까 마음껏 싸우라고 말이야. 대신 빨리 잡아서 끌고 오라고 해.”
“하지만 전하, 그렇게 지시했다가 큰 상처라도 입히면 어떻게 하옵니까?”
다급한 지오그네의 조언에 미네르바는 의미 있는 미소를 씩 지으며 비꼬듯 말했다.
“그때는 자네가 목숨을 걸고 살려 내야겠지. 안 그런가?”
“예, 전하.”
지오그네는 미네르바의 말에 얼굴색이 새하얗게 탈색되었지만, 일단 상관의 물음에 대답은 했다. 너무나도 심한 상처라면 자신의 마법 실력으로 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일단 대답을 한 이유는 제2근위대에 명령을 전달하는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휴식 중이었던 제2근위대에 비상소집령이 비밀리에 내려지고, 기사들이 하나 둘씩 복귀하기 시작했다. 비번이라서 술집에 처박혀 있던 인물들이나, 오랜만에 애인이나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인물들도 있었고, 또 친구들과 취미 생활을 즐기던 인물들도 있었기에 모든 인원을 소집해 들이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무슨 일이야? 비밀 소집령이 내려지다니.”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걸?”
“마법사들이 빠진 것을 보니 어디에 파견 가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기사들만 모아서 뭐 하자는 거지?”
나지막한 어조로 서로가 아는 정보를 교환하는 기사들. 제2근위대의 오너급 기사 20명과 정찰조 20명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기다리라는 지시뿐이었으니, 기다림에 지쳐 저마다 쑤군댈 만도 했다. 그것도 비밀리에 소집한 것이 아닌가?
모두들 갑자기 소집되어 와서 그런지 행색도 가지각색이었다. 사냥복을 입고 있는 기사부터 시작해서, 데이트 중이었는지 연미복으로 정장을 한 인물들, 그리고 일부는 입에서 술 냄새까지 팍팍 풍기고 있었다.
마지막 기사가 도착한 후에 지오그네가 슬며시 등장했다. 그리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들 잡담을 멈췄다. 지오그네는 득실대는 엘프들 덕분에 크루마 궁정 마법사들 중에서 서열이 그렇게 높지 못했지만, 총사령관이자 근위 기사단장인 미네르바의 심복이었기에 그녀를 통해 종종 지시가 내려졌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긴급한 사안이 발생했기에 모처럼 휴식을 즐기고 있던 경들을 불러내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지오그네는 기사들 중에서 제일 앞줄에 앉아 있는 브랜트 베리어스 후작을 바라보며 떨떠름한 어조로 경칭을 사용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브랜트는 드래곤 슬레이어였던 타론이 전사한 후 제2근위대를 이끌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부하에게 집합 대상에 그를 빼라고 지시했었는데, 아마도 근위 기사들 중 누군가에게 주워듣고 따라온 모양이었다.
제2근위대장이라면 그녀가 아무리 영광스런 드래곤 슬레이어에다가 궁정 마법사라 하더라도 계급에서 밀렸다. 그 때문에 그를 뺀 것이었는데, 상대는 이미 와 버렸으니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 가라고 갈 사람도 아니었고…….
“긴급한 사안이란 게 뭔가?”
제2근위대장인 브랜트는 오만한 자세로 다리를 꼬고 앉은 채 툭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그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오그네의 얼굴이 조금 더 찌그러들었다. 기사들에게 일장 훈시를 내린 후 투입 명령을 내릴 작정이었는데, 처음부터 계획이 틀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 수감 중이던 포로가 탈출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지하 궁전에 숨어 있는 그 포로를 생포해 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지오그네는 ‘생포’라는 단어에 힘을 줘서 말했다. 그러자 기사들끼리 다시금 쑤군거리기 시작했다. 수감 중이던 포로라면 지하 감옥에 있었을 텐데 어떻게 지하 궁전까지 숨어들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다가 지하 궁전의 각 통로에 설치된 보루는 제1, 2근위대가 교대로 지키고 있지 않던가? 포로가 그 보루를 뚫고 통과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용히 해라. 여기가 선술집인 줄 아느냐?”
브랜트는 뒤를 슬쩍 보면서 짜증스레 외쳤다. 그도 부하들처럼 오랜만의 휴식이 물거품이 된 상태라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여기 와서 설명을 들어 보니 자신이 올 일도 아닌 것이다.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겨우 탈출한 포로 하나 잡자고 제2근위대 전체를 소환하다니! 자신이 지휘하는 제2근위대의 실력을 뭐로 보는 것인가? 그 때문에 그는 더욱 기분이 안 좋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브랜트는 지오그네를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공작 전하의 명령서는 가지고 있겠지?”
브랜트는 그녀가 감히 명령서도 없이 제2근위대를 소환할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일부러 명령서 제시를 요구했다. 제2근위대장인 자신이 미네르바가 아닌 마법사 따위에게 지시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지오그네에게 명확하게 인지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상대의 속셈을 잘 아는 지오그네는 소태 씹은 얼굴로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각하.”
브랜트는 앉은 채로 서류를 받아 들고는 꼼꼼히 읽어 봤다. 읽어 보니 지오그네의 말과는 약간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그것이 지오그네의 고의인지 아니면 실수인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꽤나 마음에 드는 차이점이었다. 브랜트는 살짝 고개를 뒤로 돌려 부하들을 향해 호기롭게 외쳤다.
“공작 전하께서는 포로가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반쯤 죽여 놔.”
안 그래도 소중한 휴식을 박탈당한 부하들은 살기등등하게 외쳤다.
“옛!”
“그리고 그 망할 포로 녀석을 최대한 빨리 내 앞에 대령해라. 알겠나?”
“옛! 각하!”
“그놈을 생포해 오는 놈에게 금화 20골드의 포상금과 선술집에서 동료들에게 술을 살 수 있는 영광을 주겠다.”
겨우 20골드 받아서 이 술고래들에게 술을 사 준다면 결국 포상금은 얼마 남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사들은 대장의 말을 듣고 환호했다. 그렇게 작은 포상금을 제시한 것을 보면 휴식 시간을 날려 버린 부하들을 위로하기 위한 이 술자리의 술값을 대장이 내면서도 그 영광을 잡은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우와와앗!”
근위 기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앞 다퉈 우르르르 눈에 살기를 띤 채 지하 궁전 쪽으로 달려갔다. 지오그네는 ‘생포’를 원했지만, 자신들의 대장은 ‘반쯤 죽여 놓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 말을 들어야 옳겠는가? 당연히 자신들의 대장 말을 들어야 한다. 또, 안 그래도 열 받는 김에 그들은 화풀이할 사냥감이 하나 생겼다고 좋아서 달려간 것이다. 그것을 보며 지오그네의 얼굴색은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이제 포로 체포 작전에 대한 지휘권은 자신의 손을 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