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5화 (301/930)

기사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믿기에 지하 궁전에 도착하자마자 견인족 한 마리씩을 거느리고 흩어졌다. 그들은 견인족의 전투력이 아닌 코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기사가 50여 명이나 투입되었기에 토끼 사냥은 맹렬한 가속도를 붙이며 전개되었다. 이렇듯 맹렬히 뒤지는 상황에서 아무리 지하 공간이 넓다고 하지만, 다크가 계속적으로 몸을 숨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캉!”

검과 검이 부딪치며 작은 불꽃을 튕겼다. 다크가 숨어 있다가 일격을 날렸지만, 상대 또한 노련한 기사답게 여유 있게 검으로 막았다. 이미 견인족이 냄새로 상대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려 줬기에, 충분히 대비를 하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쥐새끼 같으니라고……. 여기 숨어 있었군.”

다크는 기습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재빨리 뒤로 물러서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기사는 이제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포로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문 밖에서는 견인족이 동료를 불러 모으기 위해 불어 대는 호각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이거 순 꼬맹이 아냐?”

기사는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이런 계집애를 잡기 위해 제2근위대를 총출동시키다니……. 얼마나 윗사람들이 제2근위대를 만만하게 봤으면 이딴 일을 시키겠느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인원을 투입한 것을 보면 이 꼬맹이가 뭔가 한가락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기사는 상대의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한 공격을 슬쩍 던졌다. 기사의 검이 아름다운 은빛 궤적을 남기며 소녀의 눈앞을 통과했다. 물론 처음부터 소녀의 눈이나 기타 딴 곳을 공격할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기선 제압 및 상대의 대응 행동을 관찰하기 위한 허위 공격이었다.

그 기사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이런 검술 대결은 다크의 주특기가 아니던가? 상대의 속셈을 빤히 아는 이 음흉하신 다크 어르신은 상대의 검이 눈앞을 통과하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야 그것을 눈치 챈 듯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폴짝 뒤로 물러섰다. 그것을 본 기사는 이 꼬맹이가 진짜로 검술에 있어서는 맹탕이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자신의 검이 지나간 다음에야 반응을 보이지 않는가?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이 기사는 씁쓰레한 미소를 지으며 일격에 꼬맹이를 제압하겠다는 듯 큰 기술을 휘둘러 왔다. 그리고 노련한 다크의 숙련된 눈은 그 기술의 숨겨진 허점을 재빨리 찾아냈다.

그러나 다크는 상대의 허점을 눈으로는 찾아냈지만, 자신의 육체가 그 허점을 재빨리 공격할 정도로 민첩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일부러 허둥거리면서 엉뚱한 방향을 막는 척했다. 기사는 자신의 검이 흘러가는 방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딴 방향으로 느지막이 검을 움직이는 소녀를 완전히 얕잡아보고는,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하고 끝까지 검술을 밀어붙이려고 들었다.

목표는 지금 흘러가는 검의 방향과는 달리 상대의 오른쪽 어깨였다. 어깨에 검상을 입으면 더 이상 반항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에 취한 공격이었다. 기사의 검이 아주 기괴한 곡선을 그리며 다크의 어깨를 관통하려는 그 순간 다크의 어깨가 아래로 푹 꺼지며, 동시에 여태껏 기사의 검로도 찾지 못하고 허둥대던 것처럼 보였던 다크의 검은 어느새 조금 더 움직여 상대의 오른편 어깨를 꿰뚫고 있었다.

“크윽!”

요란하게 호각을 불며 동료들을 모으고 있던 견인족은 활짝 열린 문을 통해 기사가 검상을 입고 비틀비틀 물러서는 것을 보고는 기사를 구하기 위해 황급히 돌진해 들어왔다. 삽시간에 검을 뽑아 들며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 오는 견인족의 위용은 과연 대단했다. 하지만 다크에게 그것은 불을 좇아 뛰어드는 불나방의 행동과 다를 것 없게 느껴졌다. 다크는 일부러 견인족이 휘두르는 검 끝에 자신의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생포’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견인족은 놀라서 황급히 검을 뒤로 뺐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순간 다크의 검이 견인족의 가슴을 관통해서 심장 깊숙이 꿰뚫고 들어갔던 것이다.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헤헤헷!”

다크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꺽꺽거리고 있는 견인족의 몸통을 힘껏 차서 뒤로 밀어 버리며 검을 뽑아냈다. 다크의 검이 뽑힌 곳에서는 분수와도 같이 피가 솟구쳐 올랐다. 다크는 피 묻은 검을 들고 살기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뒤로 돌아섰다.

거기에는 자신을 만만하게 보고 덤비다가 도리어 깊은 검상을 입고 허우적거리는 기사가 경악한 듯 두 눈을 부릅뜨고는 다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방금 전에 견인족이 호각을 불기는 했지만, 또 다른 견인족이 이곳까지 오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크는 그것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는지라, 이 기사 놈까지 해치운 후에 달아나기로 작정했다.

“잠깐!”

다크는 갑자기 들려온 또 하나의 목소리에 멈칫 해서는 뒤로 슬그머니 돌아봤다. 그녀의 등 뒤에는 또 다른 기사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 녀석 또한 견인족 한 마리를 뒤에 달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견인족들끼리 패거리를 지어서 다녔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잘 안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기사들이 투입된 것이다. 다크는 괜히 여기에서 지체했다고 후회하며 다시금 검을 앞으로 들이밀어 방어 자세를 잡았다.

술 냄새를 풍기면서 워렌은 중얼거렸다. 워렌은 일부러 검을 슬슬 돌리면서 음흉한 어조로 말했다.

“솜털도 벗겨지지 않은 계집애를 얕잡아보고 덤비다가 상처를 입다니. 아직도 미숙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그게 통하지 않지. 나는 밀러처럼 몸과 마음이 약하지 않거든.”

워렌은 빈정거리듯 부드럽게 말을 하다가 갑자기 거친 어조로 말을 끝맺었다.

“반항하면 반쯤 죽여 놓을 거야. 어떻게 할 거냐? 빨리 선택햇!”

다크는 바짝 긴장하며 검을 중단으로 올린 후 상대가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렸다. 저런 뛰어난 놈을 상대로 선제공격을 가해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공격하는 틈을 노린다면 방금 전 밀러라는 놈이 당했듯이 가능성은 충분히, 아니 넘치도록 있었다.

미숙하다는 질책에 밀러는 도와주지 말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래도 상관에게 조언을 안 해 줄 수는 없었다. 그러면 부상자가 또 한 명 더 생길 것은 자명한 노릇이 아닌가? 양심이 아무래도 간질간질했던 밀러는 퉁명스레 말했다.

“워렌 경, 저 계집을 조심하십시오. 보통 실력이 아닙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워렌은 상대가 저항할 의사를 확실히 해 오자, 밀러의 조언에 퉁명스레 대꾸한 것과는 달리 매우 조심스레 상대하기 시작했다. 밀러도 수준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듀에이트급이었다. 그런 그가 당한 것을 보면 뭔가 숨겨 놓은 한 수가 있는 듯했다.

워렌이 처음 날린 검의 방향도 밀러처럼 상대의 얼굴이었다. 원래 이렇게 반반한 계집애들의 경우 자신의 얼굴을 끔찍하게 아끼니까 선택한 목표였다. 워렌의 검이 날아간 순간, 다크의 검은 살짝 위로 들려졌다. 저 옆에 있는 기사 놈이 조언을 해 줬으니 이번에는 연약한 척 속이기 힘들 것이 분명했기에 다크는 처음부터 대비에 들어간 것이다.

그대로 검을 그었을 때 상대의 얼굴도 절단이 나겠지만, 동시에 자신의 손목도 함께 날아간다는 것을 워렌은 즉각 눈치 챘다. 그렇다고 검을 멈출 수는 없었다. 맹렬히 휘두르는 기세 때문에 멈추기도 쉽지 않으려니와 그동안에 상대의 검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워렌은 검을 계속 휘두르면서 손을 살짝 안으로 당겼다. 그에 따라 워렌의 검이 그리고 있던 궤도 또한 약간 수정되었다. 이번 목표는 상대가 쥐고 있는 검의 측면이었다. 이때 다크는 살짝 손목을 움직여 검신을 옆으로 돌렸다. 그와 동시에 ‘챙’하는 소리가 울렸다. 워렌의 롱 소드는 의도와 달리 미들 소드를 박살 내지 못하고 엇비슷하게 부딪치며 튕겨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크의 검이 옆으로 누운 채 앞으로 쑥 밀고 들어왔다.

“헉!”

워렌은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잘못하면 배에 구멍이 뚫릴 뻔한 것이다.

“이런 망할 계집애가?”

콩알만 한 계집애에게 조롱을 당했다는 생각에 안 그래도 술에 취해서 조금 벌겋던 얼굴이 더욱 벌게졌다. 그리고 옆에는 방금 전에 그가 미숙하다고 욕까지 한 밀러가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신경질 난 김에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그리고 뒤쪽에서 그들의 격투를 지켜보던 견인족은 동료들을 부르기 위해 건물 밖으로 달려 나간 후 호각(號角)을 불기 시작했다.

“삑삑삐이이익! 삑삑삐이이익!”

견인족이 호각을 얼마 불지도 않아 기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밀러를 안내하던 견인족이 이미 호각을 불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 다퉈 실내로 들어선 후 안의 광경을 보고 놀랐다. 실내의 한쪽 구석에는 커다란 견인족이 큰 대(大) 자로 뻗어 있었고, 밀러는 동료들을 보고는 고통을 참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걸어 나왔다. 그의 어깨에서는 피가 샘솟듯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실내의 중앙에서는 신호를 듣고 제일 먼저 달려온 워렌과 포로 간의 대결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워렌은 상당한 검술 실력을 지닌 오너급 그래듀에이트였다. 그런 그가 한낱 계집애를 상대로 광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그의 얼굴 한쪽에는 살짝 칼에 긁힌 상처가 나서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고, 옷의 여기저기가 조금씩 잘려 있었다. 아무리 그가 술에 취해 있다고 하지만, 동료들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으아아아! 죽여 버릴 테닷!”

자신이 아무리 검을 휘둘러 대도 상대의 검은 정말 머리꼭지가 돌 정도로 얄밉게 움직이며 방어와 공격을 병행하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으니 조금씩 살짝살짝 움직이면서 워렌의 공격을 모두 무위로 돌리고 있었다.

워렌 또한 대단한 실력자이니만큼, 상대 검 끝의 움직임을 세심히 관찰하고 있었고, 상대의 움직임에 대항하여 휘둘러 대다 보니 상대는 거의 검을 안 움직이는데 비해, 워렌은 아예 혼자서 칼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상대의 검이 이때라는 듯 그 틈을 노리고 들어와서 작은 상처들을 안겨 줬다.

여태껏 벌여 놓은 자신의 추태(?)가 수많은 동료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드디어 워렌은 이성을 잃었다. 이제 계집을 사로잡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어졌다. 자신에게 이런 치욕을 선사한 계집을 토막토막 잘라 놓고 싶을 뿐이었다.

워렌의 롱 소드에 마나가 한껏 주입되자 제법 두터운 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동치듯 떨리며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워렌이 무슨 짓을 하려고 드는지 눈치 챈 동료들은 기절할 듯이 놀라서 외쳤다. 포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생포해야 하는 것이다. 저런 기세라면 생포는 고사하고 온전한 시체도 건지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워렌! 안 돼!”

하지만 이미 분노로 인해 이성을 상실한 워렌에게 그딴 소리는 들려오지도 않았다. 이 좁은 실내에서 절정의 검술을 사용한다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는 검기 때문에 건물이 내려앉을 수도 있었고, 사방에 있는 동료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로를 생포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검법이 끝났을 때쯤 그의 눈앞에는 아마도 조각조각 잘려진 고깃덩이만이 존재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분노에 눈이 먼 그에게 그런 하찮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다크는 상대의 눈, 어깨와 팔, 그리고 손목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것들이 움직이고 나서야 검은 따라서 움직이니까 검의 움직임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는 상대방의 검이 움직이는 1미터라는 간격(間隔)까지 생각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상대가 검기나 검강을 쓰려고 작정한 이상, 간격을 유지한다는 것이 아무런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검술의 진로에 따라 사방으로 검기가 뿌려지는 가운데, 다크는 상대의 검이 움직이기 전에 자신의 몸을 움직였다.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검의 예상 경로에서 살짝 뒤로 몸을 빼던 것이, 이번에는 옆으로 살짝 비켜서야 했다. 왜냐하면 그쪽으로 검기의 덩어리가 지나가니까 말이다. 그런 후 다크는 여태껏 그렇게 해 왔듯 검술의 고수만이 가지고 있는 예리한 안목으로 상대의 빈틈을 찾아내어 주저하지 않고 거기에 검을 쑤셔 넣었다.

이렇듯 적이 고급 검술을 쓰건 그렇지 않건 그를 상대함에 있어서 다크에게는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대신 그녀를 상대하고 있는 워렌에게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냥 휘두르는 상황이었다면 상대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었겠지만, 최대한 마나를 끌어올려 고급 검법을 가동하는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상대의 검이 쓱 들어오는 것을 보며, 그에게 남은 것은 둘 중 하나의 선택뿐이었다. 일단 맹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마나의 흐름을 강제적으로 멈추고 뒤로 빠지든지, 아니면 그대로 곧이곧대로 검을 휘두르고는 한 칼 맞든지…….

사방에 뿌려지는 검기 때문에 기겁을 한 동료들은 저마다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저 검기에 휩쓸리면 목숨을 바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방심하지 않고 대비를 하는 가운데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고, 사방의 벽이 먼지를 뿜어내며 검기가 뿌려진 기나긴 흔적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갑자기 워렌이 뒤로 후다닥 물러섰다. 그런 후 술기운과 분노 때문에 벌겋던 워렌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우웨에엑!”

갑자기 피를 토하는 워렌. 일단 급속도로 돌기 시작한 마나를 강제적으로 멈추면서 크게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동료들은 왜 갑자기 워렌이 피를 토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부상을 당한 워렌을 구출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두 명의 기사가 달려 들어가 또다시 소녀를 상대하는 동안, 또 다른 기사 두 명이 워렌을 구출해서 끌고 나왔다. 안에서 워렌이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오면서 여태껏 문 앞에서 와글거리던 기사들과 견인족들이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열어 줬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 호기심을 불태우고 있던 샤트란 페르가 들어섰다.

“저… 저건?”

샤트란 페르는 경악했다. 기사들이 상대하고 있는 포로는 꿈에 나올까 무섭던 바로 그녀였다. 이 시대 최강의 검객이자, 스펜을 죽인 원수! 처음 그녀라는 것을 알자마자 샤트란은 재빨리 도망치려고 했다. 상대에 대한 공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동료들에게 가로막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1백여 명이나 되는 기사들과 견인족들이 문을 중심으로 우글대고 있으니, 그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샤트란은 남아 있는 모든 용기를 끌어 모아 검을 뽑아 들며 적을 향해 돌아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누구도 그녀를 공격하는 사람은 없었다.

“샤트란, 갑자기 왜 그래? 너도 몸이 근질근질하냐?”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까지 끼어들 틈이 없어.”

옆에서 그녀를 보고 있던 기사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좁은 실내에서 포로와 기사 둘이서 싸우고 있었다. 기사들은 원기왕성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소녀는 헉헉거리며 이리저리 회피 동작을 하면서 살짝살짝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샤트란 페르에게 있어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녀가 겨우 저 정도 기사 둘을 상대로 가쁜 숨을 몰아쉬다니 말이다. 이때 그녀는 다크의 손에 채워져 있는 팔찌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샤트란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샤트란은 싸우고 있는 동료들에게 외쳤다.

“이봐! 큰 기술을 쓰지 말고 상대를 지치게 만들어!”

“뭐?”

“아무리 미들 소드라도 무겁잖아. 그 계집애의 힘을 빼란 말이야.”

샤트란의 말을 들은 기사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상대의 검술이 예상보다 훨씬 정밀하면서도 매끄러운 것에 놀라고 있었지만, 일단 상대는 장시간 싸울 만한 힘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벌써부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지 않은가? 그들은 그때부터 큰 기술을 쓸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방어에 힘을 쓰며 장기전(長期戰)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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