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0화 (316/930)

“정말인가?”

“예, 전하. 분명 그렇게 말했사옵니다.”

“흐음……. 그 외에 수녀에게서 알아낸 것은 없나?”

“예, 더 이상은 말해 주지 않았사옵니다. 아무래도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은 확실하오나, 그렇다고 잡아다가 고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옵니까?”

“그거야 그렇지. 이런 상황에서 괜히 아데나 교단까지 자극할 이유는 없지. 그럼 어떻게 한다? 참, 그녀를 치레아 대공과 자주 만날 수 있게 해 주게나. 그러면 둘 사이에 뭔가 대화가 오고 갈 거고, 그것을 엿듣다 보면 뭔가 실마리가 잡히지 않겠나?”

“저도 그렇게 생각하옵니다, 전하.”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레티안이 끼어들었다.

“치레아 대공을 시중들고 있는 시녀를 닦달해 본 결과, 그녀는 며칠 전에 월경을 끝마쳤다고 하옵니다.”

“그런가?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예, 그렇다면 그녀는 완전한 여자라는 것이옵니다. 정말 발렌시아드 후작 각하의 말씀대로 수녀가 ‘아저씨’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면, 그녀는 도중에 변신을 거쳤다는 말이 되지 않겠사옵니까?”

“그거야 그렇지.”

로체스터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레티안은 말을 이었다.

“트랜스포메이션 마법으로는 절대로 성별이 바뀔 수는 없사옵니다. 만약 여자가 근육질의 남자 모습으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형상은 여성일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자 또한 마찬가지구요. 오로지 단 한 존재를 제외하고는 남녀의 모습을 완벽하게 바꿀 수는 없사옵니다. 바로 그것은 드래곤이죠.”

“드래곤? 하지만 전에도 말했지만 그녀가 드래곤이나 헤즐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결론짓지 않았었나? 헤즐링이 그렇듯 엄청난 검술을 익힐 수는 없어. 마법이라면 몰라도.”

“그것은 저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그녀가 헤즐링이라면 사건은 더욱 복잡해지옵니다. 자신의 자식이 행방불명되었다고 그 골드 드래곤이 떠들어 댄다면, 이 세상의 모든 드래곤들이 그녀를 찾기 시작할 것이옵니다. 드래곤 한 마리라면 몰라도, 그 많은 드래곤들이 설치고 다닌다면 곧이어 들통 날 것은 확실하옵니다.”

레티안의 말을 들은 로체스터 공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과연 일이 그렇게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드래곤의 헤즐링에 대한 광적인 보호는 익히 알려져 있으니까 말이다. 공작은 단호한 어조로 제임스에게 말했다.

“수녀를 잡아서 고문을 하든지, 아니면 치레아 대공과 대질 심문을 시키든지,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그녀의 정체를 빨리 밝혀내라.”

“옛, 전하.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제임스가 서둘러서 밖으로 나간 후, 레티안은 서류 몇 장을 로체스터 공작에게 건네며 말했다.

“사흘 뒤에 있을 폐하의 대관식 말이옵니다. 거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사옵니다.”

공작은 서류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뭔가?”

“황제 폐하께서 암살당하시는 바람에, 크라레스의 황제가 케락스에 오는 것이 연기되지 않았사옵니까? 사실 이쪽에서도 그동안 반대파의 숙청을 감행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크라레스에 압력을 넣을 형편도 아니었사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국내 사정이 안정되었기에, 그쪽에 황제 폐하의 대관식에 참석하여 새로운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고, 항복 문서에 서명하라고 권고를 보냈사옵니다. 이것이 그 답장이옵니다.”

“그런가?”

로체스터 공작은 서류를 뒤져 봤다. 앞부분은 크라레스에 보낸 명령서의 복사본이었다. 그리고 제일 뒤쪽에 붙어 있는 답장……. 그것을 읽은 로체스터 공작은 화가 난 어조로 말했다.

“이놈들이 지금 정신이 있는 건가? 항복 따위는 할 수 없다니 그게 제정신을 가진 놈들이 할 수 있는 대답이냐 그거야.”

“글쎄요. 그건 잘 알 수 없사옵니다. 복잡한 국내 사정 때문에 본국은 그동안 타이탄 생산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사옵니다. 그에 비해 크라레스는 이를 악물고 전쟁 준비를 했을 테니, 최소한 카프록시아급 타이탄 15대는 더 만들었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큰소리 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옵니까?”

“혹시, 크루마와 다시 손을 잡은 것이 아닐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사옵니다. 크루마는 치레아 대공을 이쪽으로 넘겨주지 않았사옵니까? 왜, 크라레스와 손을 잡으려고 하겠사옵니까?”

“글쎄, 그건 알 수 없지. 미란을 털도 안 뽑고 꿀꺽한 후 시간이 좀 흘렀으니 또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본국이 크라레스와 한판 하고 나면 중간에서 이익을 볼 국가는 현재 크루마뿐이지 않은가? 제2차 제국 전쟁에서 아무런 피해도 당하지 않았으니 그놈들의 군사력은 최고조를 달리고 있을 것이야.”

“서둘러서 조사를 실시해 보겠사옵니다, 전하.”

몬스터들의 대 진격

“쉭쉭! 선발 부대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쉭!”

오크의 보고를 들은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는 씩하고 음충한 미소를 지은 후 명령했다.

“적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돌격 태세를 정비하라. 공격은 오우거들이 도착한 후 내일 새벽에 시작한다. 준비하도록!”

“옛.”

오크는 이빨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며 달려갔다.

오크나 트롤 같은 몬스터들은 쇠를 제련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또 방법을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재료가 되는 쇠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기에 그들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가죽이나 나무껍질 따위로 원시적인 갑옷을 만들어 입는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 또한 나무 몽둥이나 돌도끼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농가를 급습하든지 또는 토벌 부대를 상대해서 노획하든지 하여 각종 무기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검은 로브를 입은 인물이 거느리고 있는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번쩍이는 강철 갑옷을 입고 있었고, 강철로 만든 크고 작은 도끼나 철퇴 따위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눈에 척 봐도 누군가 인간들이 그들에게 맞는 갑옷과 무기를 제작해서 제공했다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갑옷이나 무기들이 새 것인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들이 인간과 손잡은 것이 요 근래의 일이라는 것 또한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날 밤, 40여 마리의 거대한 오우거들과 함께 다섯 마리의 미노타우르스도 도착했다. 그것들 역시 엄청나게 두꺼운 철갑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고, 초대형 도끼나 철퇴 따위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듣고 나서 로브를 입은 사내는 지도를 꺼내서 쫙 펼쳤다. 그들은 쟈코니아 산맥을 통해 이 대 부대를 거느리고 조심조심 이동해서 이곳까지 도착했다. 내일 전투가 끝나면 아르곤의 주력 부대는 두 토막으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크로나사 평야 깊숙이 진격해 들어간 부대와 본토에 남아 있는 부대로 말이다. 그 둘을 연결해 주는 통로가 바로 이곳이었다.

로브를 깊숙이 눌러쓴 그 인물은 수정 구슬을 통해 통신을 시작했다. 그는 수정 구슬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그 앞에 정중히 무릎 꿇고 앉았다. 그런 다음 수정 구슬 안에 사람의 모습이 보이자 상체를 앞으로 푹 숙였다.

“모든 준비가 갖춰졌사옵니다, 폐하. 하명을 내려주시옵소서.”

“예정대로 공격을 시작하라.”

“옛.”

서둘러서 천막 밖으로 뛰어나온 그는 대기하고 있는 몬스터들에게 외쳤다.

“공격하라!”

“꾸에에에엑!”

“크와아아악!”

몬스터들은 저마다 괴성을 질러 대며 이제 어스름하게 밝아오기 시작하는 산길을 달려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몬스터들이 돌진해 들어간 곳은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크라레스의 국경 곳곳에서 이런 공격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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