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4화 (320/930)

“이 녀석이야. 자네를 위해 특별히 설계했네. 적기사의 두 번째 변형 모델이야.”

용병대장은 지하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거대한 타이탄의 모습에 압도감을 느꼈다. 몸체 전체에 예전의 흑기사처럼 시커먼 페인트를 칠해 놓은 이 타이탄은 웬만한 타이탄보다 월등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오른손을 쓰는 키에리를 위해 타이탄 또한 오른손에 거대한 검을, 왼손에는 방패 대신 묵직해 보이는 소드 스토퍼를 달고 있었다.

“크기가 청기사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당연히. 청기사하고 똑같은 크기야. 그리고 덩치도 비슷한 것 같지? 하지만 청기사에 비해 이놈은 알맹이가 비었어. 적기사Ⅰ과 같은 중공장갑을 썼기에 120톤밖에 안 나가는데도 아주 크게 보이는 거지. 그녀가 사로잡히기 전에, 그녀를 상대하기 위해서 만든 녀석이야. 어때, 훌륭하지? 이놈 하나만을 만들었기에 정식 명칭은 정하지 않았어.”

용병대장은 엄청난 위용을 과시하며 지하 공간에 서 있는 타이탄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하군.”

“키에리 발렌시아드가 살아 있다는 것을 숨기고 싶다면 싫더라도 이놈을 써야 할 거야.”

“알겠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 같군.”

키에리는 자신의 타이탄, 크로테아를 불러냈다. 크로테아는 키에리의 말을 듣고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반박했다.

<내가 미쳤냐? 너 같은 놈을 어디서 찾을 수 있다고 계약을 해지해 달라는 것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낸 크로테아의 그 걸쭉한 입담에 키에리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놈을 떼어 놔야 저기 대기하고 있는 녀석과 계약을 맺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 너를 쓸 수 없다. 너 또한 계약의 사슬을 통해 나에게 일어난 일을 잘 알고 있지 않나? 나와 계약을 맺고 있는 한 더 이상 너는 모습을 드러낼 수 없을 거야. 그러지 말고 까미유에게로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까미유라고? 그 애송이 말이냐?>

“몇 년 더 기다려 봐. 훌륭한 놈으로 성장할거야.”

<그럴까?>

“당연하지.”

키에리는 슬쩍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크로테아를 어르고 달래서 떼어 놓는 데 성공했다. 크로테아는 까미유의 몸이 낫기를 기다린다며 공간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키에리는 크로테아와의 계약 해지에 성공하자 성큼성큼 시커먼 타이탄에게로 걸어갔다.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키에리 드 발렌시아드다. 앞으로 내게 남은 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지 않겠나?”

엄청난 능력을 소유한 인물이 동반자가 되어 달라는 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타이탄은 재빨리 응답해 왔다.

<나는 기꺼이 그대의 종이 될 것을 수락하겠다. 이제부터 그대와 나는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골렘의 맹약에 따라 주종이 되었다. 내 이름은 게레리아다. 언제든지 내가 필요할 때 불러다오.>

“알겠다. 공간의 저편에서 기다려라.”

시커먼 타이탄이 공간의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는 것을 보며 키에리는 중얼거렸다.

“게레리아.”

“뭐?”

무슨 말인가 해서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는 로체스터를 향해, 키에리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앞으로 저놈은 게레리아야. 적기사Ⅲ로 불리는 것보다는 게레리아로 불리는 것이 낫겠지.”

“좀 특이한 이름이기는 하지만 뭐, 자네 좋을 대로 하게.”

몬스터와 인간의 대 결전

가니에 법왕은 열 명의 성기사를 호위로서 대동한 채 비룡을 타고 날아올랐다. 통신의 권능을 가진 사제를 통해 일단 대략적인 보고는 해 놨지만, 아무래도 이번 일의 심각함에 대해 교황을 비롯하여 세 명의 법왕들과 상의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배후에 마왕이 있다면 얼마나 위험한지, 정작 법왕 자신도 잘 모르고 있었다.

법왕 일행이 쟈코니아 산맥 주위에 다다랐을 때였다. 본토와 점령지를 가르고 있는 것이 쟈코니아 산맥이었으니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곳을 향해 날아갔고, 본토로 가는 도중에 혹시나 몬스터의 대 부대가 이동하는 모습도 정찰을 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기에 잡은 진로였다. 그런데 그들의 진로 저 앞쪽에서 작은 점 수십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것들은 뭐냐?”

수십 개의 점들은 점점 더 가까워 오고 있었다. 법왕 일행은 그것이 비룡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진작 알아봤다. 하지만 그들이 적인지 아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저들은 적일까? 아니면 본토에서 황급히 오고 있는 증원군일까?

“거리가 멀어서 잘 모르겠사옵니다. 좀 더 접근해야 알 수 있사옵니다.”

법왕 일행은 조금 더 접근한 후에야 접근해 오는 와이번들이 아군이 아니라 마왕에게 포섭된 몬스터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이번 위에 타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트롤들이었다.

“모두들 퇴각하라.”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법왕 일행은 왔던 곳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하지만 마왕의 사악한 마력을 받은 적들의 비룡은 이쪽보다 월등하게 빨랐다. 곧이어 자신들이 따라잡히자 성기사들은 각자 오라 소드를 뽑아 들고 적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일단 성기사들이 오라 소드를 뽑아 들자 몬스터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트롤들은 준비해 뒀던 강철 도끼나 창 따위를 던졌지만, 오라 소드가 형성하는 굳건한 반원형의 방어벽을 뚫지는 못했다. 강철 도끼를 간단하게 튕겨 낸 성기사는 그대로 전진해 들어가서 트롤의 상체를 베어 버렸다.

사람이 길들인 와이번이라면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이 죽으면 도망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와이번들은 위에 아무도 없는데도 도망가기는커녕 혼자서 공격을 가해 왔다. 하지만 와이번이 뿜어내는 불길마저도 막강한 오라 소드의 방어벽을 뚫지는 못했다. 이렇게 일방적인 싸움이 전개되는데 뒤쪽에 처져 있던 와이번이 앞쪽으로 쓱 나섰다. 그 와이번에는 트롤이 아닌 시커먼 로브를 걸친 인간이 타고 있었다.

그 마법사는 곧바로 검붉은 원구를 만들어 냈다. 성기사들은 그 마법사가 원구를 언제 던질 것인지 대비하는 순간, 자신이 타고 있던 와이번이 미친 듯이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성기사들과 법왕의 안색이 노래지는 그 순간, 그들이 타고 있던 와이번은 하늘 높이 비상하면서 별의별 곡예비행을 해 대며 그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곡예비행을 해도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는 안장에 앉아 있는 그들은 사력을 다해 안장에 몸을 고정시키며 버텼다. 그것을 침착하게 보고 있던 로브를 입은 사내가 외쳤다.

“떨어져랏!”

그와 동시에 열한 마리의 와이번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주인이었던 인간들을 태우고 땅바닥을 향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이 길들인 와이번의 경우 자신의 목숨을 버리라는 명령을 결코 듣지 않았지만, 흑마법에 의해 제어되기 시작한 와이번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지킨다는 자연의 법칙조차도 통하지 않았다.

와이번이 급강하함에 따라 순식간에 땅바닥이 성기사들의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들 더 이상 앞을 보고 싶지 않은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곧이어 엄청난 굉음을 울리며 흙먼지와 함께 피에 젖은 고깃덩이들이 흩뿌려졌다.

그것을 만족스런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던 로브를 입은 사내는 자신의 옆에 있는 트롤에게 명령했다.

“밑에 모습을 드러낸 타이탄들을 수거하라고 육상 부대에게 연락해라.”

명령을 받은 트롤은 크르르 목이 울리는 기묘하면서도 굵직한 저음으로 대답했다.

“크르르, 이예.”

트롤은 와이번을 몰아서 급하강을 하며 저 밑 숲 쪽으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르곤 제국의 군대나 기사단은 이동 속도가 느렸기에 아직까지 몬스터의 주력 부대와 충돌하지 않고 있었지만, 알카사스의 주력 부대는 엔테미어 공국으로 재빨리 급파되어 이미 몬스터의 대군과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것도 다 알카사스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영구적인 공간 이동 마법진 덕분이었다.

몬스터들은 지능지수가 낮기 때문인지 처음부터 작전이나 각 병과의 병사들끼리의 상호 보완 따위는 생각도 안 한 채 저돌적인 돌진을 감행해 왔다.

2만 마리에 다다르는 오크를 주력으로 하는 몬스터의 대 부대에는 트롤과 오우거, 고블린 따위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도끼나 철퇴 따위를 휘두르며 돌진해 들어오는 장면은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할 만큼 공포스런 그 무엇이 있었다.

알카사스 본토로부터 황급히 파견된 군대는 재빨리 방어 태세를 정비했다. 시간이 너무 없었기에 완벽한 방어선을 구축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2개 보병 사단과 1개 기병 여단이 우선적으로 도착한 상태였기에 기사단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중갑 보병(重鉀步兵 : Havy Footman)들이 3열로 늘어서서 창을 앞으로 곤두세운 상태로 두터운 방패로 막아 튼튼한 방어진을 형성했다. 그런 후 그 뒤에 궁병(弓兵 : Archer)들이 언제든지 쏠 수 있도록 준비한 상태로 대기했다. 궁병들과 함께 쇠뇌(弩)나 투석기(投石機)도 발사 준비를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기동력이 빠른 타이탄 따위가 등장할 가능성이 많은 통상의 전투에서는 쇠뇌나 투석기 따위의 굼뜨고 명중률도 낮은 무기를 들고 다니지 않지만, 상대는 몬스터였기에 몇 개 가지고 온 것이다. 그리고 중갑 보병을 중심으로 좌우익은 기민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경갑 보병(輕鉀步兵 : Light Footman)이 자리를 잡았고, 중갑 보병의 뒤에는 경갑 기병들로 이루어진 기병 여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원래 저 우악스런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데는 최강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중갑 기병(重鉀騎兵 : Havy Trooper)을 가지고 있는 편이 좋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듬직했다.

모두들 몬스터들이 돌진해 들어오는 것을 보며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 때, 기사들이 도착했다. 그것도 일부만이 아니라 원로원 소속의 정예 기사단이 통째로 온 것이다. 팔콘 기사단은 원로원으로부터 명령을 전달받은 즉시 출동했고, 엔테미어 공국에 도착한 후에야 사태가 위급함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서둘러서 전선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원로원에서 그들을 투입할 것을 재빨리 결정한 덕분이었다.

그들이 서둘러 전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상공을 까맣게 덮으며 수백 마리의 크고 작은 와이번들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보통 와이번들은 매우 난폭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야생의 와이번을 잡아서 길들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보통 알에서 깨어난 새끼 때부터 공들여서 키우는데, 그 과정에서 성질을 못 이기고 적응하지 못하는 것들이 태반이 넘었기에 와이번의 가격은 엄청나게 비쌌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나라에서 저렇게 많은 와이번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인가? 저마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와이번은 급속도로 거리를 좁혀 왔고 곧이어 시커먼 덩어리들이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왓! 피해랏!”

와이번들은 화살이 닿지 않는 저 높은 곳에서 저마다 발에 움켜쥐고 온 바위 덩어리를 떨어뜨렸다. 하늘 위에서 처음 떨어뜨릴 때야 별것이 아니었는지 몰라도 수백 미터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다 보니 엄청난 가속도가 붙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몬스터들과 일전을 벌이기 위해 촘촘하게 대형을 짜고 있는 보병들 머리 위로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바윗돌에 맞아서 납작하게 바뀐 전우들을 바라보며, 병사들은 길길이 뛰며 살길을 찾아 버둥거렸다. 그리고 바로 이때 몬스터의 떼거리가 보병들의 코앞에 당도했다. 와이번들은 몬스터가 도착하기 직전에 보병들이 화살이나 창 따위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기가 막히게 막은 것이다. 그리고 사방에서 몬스터들의 괴성이 들려오며 살과 피가 튀기 시작했다.

중무장한 인간들 2만 5천과 몬스터 3만의 대결. 몬스터의 주력 부대가 비교적 덩치가 작은 오크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무리한 대결도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기사단까지 도착한 상태가 아닌가? 하지만 와이번의 바윗돌 투하로 인해 우왕좌왕하다가 적을 맞은 알카사스의 정규군은 초전부터 밀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알카사스 군 후방에서 타이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수는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벌써 적의 기사단이 도착해 있는 모양입니다.”

시커먼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인물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상대방이 몬스터들을 상대로 초장부터 기사단을 투입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몬스터들을 후퇴시키는 것이 좋겠소.”

발칸 폰 크로아 후작의 결정에 로브를 입은 사내는 의아한 듯했다.

“예? 적들은 50대 남짓입니다. 이쪽도 그 정도는 되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크로아 후작과 함께 서 있던 카슬레이 백작이 끼어들었다.

“각하의 말씀이 옳으신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카슬레이 백작은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가리켰다.

“저놈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타이탄을 꺼낼 수는 없다는 말일세. 전투는 그대들이 해야 하는 거야. 잊었나?”

로브를 입은 사내는 무너지는 전세 때문에 자신이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는 즉각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 두 명의 기사단장들은 지금은 아니꼽더라도 자신의 상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마법사들보다는 기사들의 계급이 한 단계 높은 것이다.

“아, 죄송합니다. 즉시 각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로브를 입은 사내는 앞에 대기하고 있는 오크에게 재빨리 지시했다.

“후퇴 신호를 보내라, 빨리.”

뿌우우우우∼∼∼.

뿔 나팔 소리가 길게 이어지자 몬스터들은 재빨리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서 타이탄과 병사들이 맹렬하게 추격해서 따라붙으며 도망치는 몬스터들을 살육했다. 후퇴 신호가 나오자 발이 빠른 오우거 같은 초대형 몬스터들은 이미 도망친 지 오래였고, 그다음으로 트롤들이 긴 다리로 날쌔게 튀어 버렸다. 남은 것은 자그마한 고블린이나 상체에 비해 하체가 짧은 오크였다.

병사들이나 기사들이 1미터도 채 안 되는 자그마한 고블린들을 베고, 뒤뚱뒤뚱 도망치는 오크들을 때려잡는 동안 타이탄들은 더욱 속도를 높여 오크나 트롤들을 깔아뭉개며 초대형 몬스터들을 잡기 위해 달려 나갔다.

자신이 마왕에게 할당받은 몬스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며 로브를 입은 사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엔테미어 공국의 수비대를 간단하게 전멸시켰고, 여기저기의 성과 요새들을 무참하게 박살 냈을 정도로 몬스터들의 전투력은 뛰어났다. 그런 몬스터들이 자신이 보는 앞에서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마왕에게 보고 되면 자신은 엄한 질책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바로 이때, 카슬레이 백작이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온다면 가능성이 있겠는데요? 후작 각하.”

크로아 후작도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경도 그렇게 생각했나?”

“예.”

카슬레이 백작은 크로아 후작에게 대답한 후, 로브를 입은 사내에게 시선을 돌려 지시했다.

“오우거들 보고 저 뒤편으로 도망치라고 하게.”

카슬레이 백작이 가리킨 곳은 높직한 언덕이었다.

“예?”

“저것을 이용해서 놈들의 시각을 차단한 후에 적 타이탄을 상대하자는 말일세.”

“아, 예. 알겠습니다. 즉시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호된 질책을 당할 것이라며 떨고 있던 로브의 사내는 다시금 솟아오르는 희망을 안고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타이탄들에게 쫓겨 맹렬히 도망치던 오우거들은 뒤쪽에서 동료가 죽어 나가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고 죽자고 산 뒤편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타이탄들도 그 뒤를 쫓았다.

크로아 후작은 기사들을 인솔하여 산 쪽으로 달려가면서 외쳤다.

“놈들이 산 뒤쪽으로 돌아가면 곧장 몬스터들에게 반격 명령을 내리게. 놈들이 저 뒤쪽의 장면을 볼 수 없게 해야 하네.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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