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2화 (328/930)

헬 프로네의 새로운 주인

까미유는 황당하다는 듯 외쳤다.

“어? 어? 잠깐! 왜 나한테는 안 주는 거야? 응?”

잠시 제임스가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까미유는 음흉스레 미소 지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너, 나 놀리려고 괜히 그러는 거지?”

하지만 제임스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여기에 너한테 줄 타이탄은 없어.”

“그럼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거구나. 괜히 사람을…….”

“그것도 아니야.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분명히 전하께 지시를 받았어. 여기 있는 적기사들을 로젠 형하고 메글리, 오스카, 스칼에게 전해 주라는 거였지. 하지만 너한테 적기사를 주라는 지시는 들은 것이 없어. 그리고 너한테 줄 타이탄은 생산 중이라는 말도 들은 바가 없고 말이야.”

제임스의 말에 까미유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기사에게 타이탄이 없다면 뭐가 된단 말인가? 그것도 자기처럼 뛰어난 기사에게 말이다. 이건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럼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타이탄도 없이 검만 들고 전장을 뛰어다니라는 말이야?”

“글쎄,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제임스는 자신에게 할당된 각각의 적기사와 계약을 끝마친 기사들 쪽으로 시선을 돌려 외쳤다.

“형! 오랫동안 쉬었을 테니 밖에 나가서 몸이나 푸는 것이 어때요?”

“좋지, 너무 오래 쉬었더니 몸이 근질거리는군.”

“자, 함께 나갑시다. 제가 상대해 드리죠.”

“그럼, 나는?”

“너는 어디 구석에 처박혀서 왜 너한테만 타이탄이 배당되지 않았는지 무릎 꿇고 반성해 봐.”

“뭣이?”

까미유는 우울한 얼굴로 적기사Ⅰ 네 대와 적기사Ⅱ 한 대가 드넓은 대지에서 굉음을 울리며 치고받고 있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물론 적기사Ⅱ는 제1근위대장인 제임스의 것이었다. 제임스의 타이탄은 제1근위대 소속의 타이탄답게 여러 가지 문장들이 붙어 있었다. 왼쪽 어깨에는 발렌시아드 가문을 상징하는 노란색 히아신스가 그려져 있었고, 오른쪽 어깨에는 코린트를 뜻하는 백장미가 그려져 있었다. 그 외에 흉갑에는 제1근위대를 뜻하는 ‘Ⅰ’이라는 숫자가 그려진 불을 뿜는 레드 드래곤의 문장이 흉폭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렇듯 제임스의 타이탄에 각종 문장들이 그려져 있는데 반해 다른 타이탄들은 흉갑에 제2근위대를 뜻하는 문장 하나만이 달랑 그려져 있었다. 원래 비밀 작전에 많이 동원되는 만큼 기밀유지의 필요성 때문에 그려 넣지 않은 것이다. 6년 전의 전쟁 때 적기사가 사용되기 전에는 아예 문장 자체를 하나도 그려 넣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적기사가 코린트의 타이탄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기에 근위 기사단의 문장만 그려 넣은 것이다. 물론 그 적기사에 누가 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가문의 문장은 빼 버리고 말이다.

로젠이 검술로는 까미유보다 조금 뒤진다고 하지만, 발렌시아드 가문의 우두머리이자 지금은 없어진 발렌시아드 기사단장이었다. 까미유는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는 적기사들을 보며 우울한 시선을 던졌다. 아마도 자신에게 적기사를 주지 않고 로젠에게 준 것을 보면 로체스터 공작은 로젠을 제2근위대장으로 점찍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제2근위대를 파멸로 몰아넣은 자신은 좌천된 것이 확실하리라.

‘젠장!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살짝 귀띔이라도 해 줬어야 할 거 아냐! 그리고, 나만 부하들을 다 잃었나? 그건 로젠 형도 마찬가지잖아!’

화가 난 김에 벽을 너무 세게 후려 쳤는지 까미유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벽에 둥근 구멍이 뚫린 다음이었다. 뒤에서 병사 하나가 놀란 눈초리로 보고 있는 가운데 까미유는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훈련을 마친 후 로젠 형이나 제임스가 이것을 보면 뭐라고 할 것인가? 그것까지 생각하면 자신에게 더욱 화가 났다. 겨우 그 정도를 참지 못하고 애꿎은 벽에다가 화풀이를 하다니…….

“제기랄!”

거칠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까미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이탄들끼리 싸우는 굉음을 들을수록 괜히 더 신경질만 나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의 숙소 뒤편, 까미유는 그곳에서 하늘을 봤다가 땅을 봤다가를 반복하다가 그것도 지루해지면 애꿎은 땅바닥을 몇 대 쳤다가 하면서 울화를 삭이고 있었다. 타이탄들끼리 격투를 벌이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기는 했지만, 원체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크게 들려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까미유는 자신의 못난 꼴을 병사들에게 보이기 싫었기에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공간의 한쪽 귀퉁이가 열리면서 타이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이탄의 몸체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울퉁불퉁한 기하학적 흔적들.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흔적이었지만, 그것만 봐도 그 타이탄에는 미스릴이 입혀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타이탄은 거대한 몸체를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까미유에게 다가갔다. 까미유는 타이탄의 흉갑에 그려져 있는 레드 드래곤의 문장을 보고 경악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째서 헬 프로네가 여기에…….”

아무런 숫자 표시도 없는 레드 드래곤의 문장이 그려져 있는 타이탄은 이 세상이 아무리 넓고, 타이탄이 많다고 하지만 단 두 대뿐이었다. 하나는 코린트의 총사령관용과 또 하나는 황제 전용이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그 문장을 달고 있는 타이탄이 여기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네 녀석은 나의 주인이 될 충분한 조건이 갖춰져 있는 상태다. 나와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골렘의 맹약을 맺고 싶으냐?>

매우 건방지게 울려 퍼지는 나지막한 저음의 투박한 말소리. 그제서야 까미유는 왼쪽 어깨에 그려져 있는 노란 히아신스의 문장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타이탄의 주인이 누군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바로 코린트 최강의 검객인 키에리 드 발렌시아드 대공이었다.

“설마, 발렌시아드 대공 전하께서 돌아가셨나?”

키에리는 권력의 전면에서 물러났을 뿐, 소문처럼 전사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까미유였다.

<그놈은 주제도 모르고 감히 나와의 계약을 파기했다. 그러면서 네놈을 추천했지. 일단 네 녀석의 실력도 나쁜 편은 아니니 제안하는 거다. 좋으냐? 아니면 싫으냐? 싫다면 새로운 주인을 찾아서 머나먼 여행을 떠나야 하니 빨리 대답해라.>

그제서야 까미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자신에게 적기사가 주어지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그에게는 적기사 대신 키에리로부터 물려받은 헬 프로네의 주인이라는 명예로운 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까미유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이것이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헬 프로네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무인이 꿈꾸는 최고의 영광이었던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

“뭐야! 나보고 신관 나부랭이가 되라고?”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아저씨의 미모는…….”

라나는 아무래도 아저씨라는 단어를 붙인 상태에서 ‘미모’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는 것이 조금 어색했는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을 수정했다.

“아무래도 지금 얼굴로는 아무리 변장해도 곧장 눈에 띄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무녀로 변장을 하시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한참 궁리를 하던 다크, 힘이 제대로 돌아온 상태라면 구태여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없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탈출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겠는가? 무녀들은 모두들 미인들이니만큼 무녀로 변장하는 게 가장 그럴듯할 것은 분명했다. 그것을 잘 알기에 다크는 떨떠름한 어조로 대답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이것을 입으세요. 오늘 낮에 구해 온 겁니다.”

라나는 자신의 짐 보따리를 뒤진 후 무녀복을 건네줬다. 하지만 그 무녀복은 라나의 옷과는 생긴 것도 조금 달랐고, 거기에 그려져 있는 문양도 달랐다.

“이건 뭐지? 네가 입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아, 예. 이것은 대지의 여신 케레스를 모시는 무녀들이 입는 옷입니다. 아데나를 모시는 무녀들은 아주 드물기에 아무래도 위장을 하기에는 조금 안 좋다고 봐야 하겠죠.”

무녀들이 호신용으로 검을 차고 다니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다크는 서둘러 무녀의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에 검을 찼다. 그런 다음 겉옷인 헐렁한 로브를 걸쳤다. 로브에 달린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자 다크는 흔히 볼 수 있는 무녀의 모습이 되었다.

그에 비해 라나는 무녀의 옷을 벗은 후 날렵한 수렵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몸에 꽉 끼는 가죽 바지와 가죽 재킷을 걸친 후 그 위에 약간 얇아 보이는 가죽으로 된 갑옷의 상의를 걸쳤다. 그것을 옆에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다크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외쳤다.

“이봐, 나한테는 이따위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게 하고 너는 뭘 입고 있는 거야? 그거 빨리 벗어서 나한테 내놔.”

“그건 곤란합니다, 아저씨. 저는 아데나의 무녀이기에 케레스의 무녀복을 입을 수 없어요. 그래서 이걸 입는 거죠.”

“네가 아까 말했잖아. 이 얼굴로는 뭐로 분장해도 힘들다고……. 그러면서 이 망할 무녀복을 권했잖아. 너도 나하고 똑같은 얼굴인데, 왜 나만 이 빌어먹을 옷을 입어야 하는 거야?”

“그건 아저씨한테만 통용되는 거였죠. 저는 엘프로 분장을 하려고 합니다.”

그 말에 다크는 아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엘프? 그, 당나귀 귀를 가진 놈들 말이야?”

“예.”

라나는 조용히 신성 마법의 주문을 외워서 분장을 시작했다. 푸르게 빛을 뿜고 있는 그녀의 손이 쓱 훑고 지나가자 그녀의 귀는 아주 길고 끝이 뾰족해졌다.

“이건 신성 마법으로 유지되는 것이기에 저만이 할 수 있습니다. 아저씨에게도 해 드리고 싶지만, 신앙심이 없는 상태에서는 10분도 유지가 안 되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계속 주문을 외워 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자, 가시죠.”

“케락스시에 도착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거야?”

“그것도 생각해 뒀습니다. 여행자 길드에 가 보면 코린트의 남쪽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들과 뒤섞여서 이동한다면 손쉽게 케락스시를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다크는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호오, 제법인데?”

“감사합니다.”

다크는 다시 한 번 찬찬히 라나를 바라봤다. 과연 10년이라는 세월은 무서웠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라나와 탈출을 하는 동안 여태껏 쌓여 있던 서로 간의 두터운 벽이 약간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 벽은 다크가 일방적으로 쌓아 둔 것이었지만.

대단한 미모에 완벽한 무녀의 복장, 어디서든지 흔히 볼 수 있는 무녀의 모습이었다. 만약 무녀의 복장을 하기는 했지만, 미모가 받쳐 주지 않았다면 모두들 가짜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중간 중간에 서 있는 검문소에서도 신분증을 제시하라는 따위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그녀와 함께 지나가는 엘프 여성은 엄청난 미모에다가 뾰족한 귀, 늘씬한 몸매하며… 누가 봐도 엘프가 아닌가? 알카사스에서는 엘프를 노예로 사용하기에 혹시나 도망친 엘프가 아닌가하여 신분 확인을 하겠지만, 여기는 코린트였다.

총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신관, 특히 아데나 신전의 무녀를 중점적으로 색출하여 ‘라나 슈바이텐베르크’라는 무녀를 잡아들이기 위해 수도권 일대의 검문검색이 강화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의 일행도 무조건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져 있긴 했지만, 그 일행의 신분에 대한 자료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명령서에 따르면 그녀는 주로 아데나 신전의 무녀로 분장하고 돌아다니지만 사실은 밀수, 사기, 강도, 강간, 납치, 인신매매 따위의 매우 추잡한 범죄를 저질러 대고 있는 ‘푸른 표범’이라는 강도 패거리 두목의 정부(情婦)라고 되어 있었다. 대단한 미모에 황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과거에 진짜 무녀였던 적이 있었기에 상당한 수준의 신성 마법까지 쓸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당부 또한 잊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정체가 발각되자 케락스시를 탈출하여 패거리와 합류하기 위해 도주 중인 상태이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체포하라는 지시였다.

원래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해 먹는다는 말이 있다. 총사령부에서 내려온 지시 자체가 이렇게 엉터리였으니, 그 밑에서 일하는 병사들도 엉터리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케락스에서 탈출하는 도둑의 정부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상대의 생김새라든지 기타 모든 것은 거의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케락스에서 빠져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검문검색은 철저하게 이루어졌지만, 그 반대로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 조사가 없었다. 그리고 그 망할 공문 덕분에 케락스 시외로 나가려고 하던 각 종파의 무녀를 포함한 ‘금발’의 미녀들이 곤욕을 치러야 했다.

“또, 생사람 잡는 모양이군.”

아닌 게 아니라 검문소 쪽에 거의 20여 명의 병사들이 늘어서서 무녀를 포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협조해 주십시오.”

병사들이 무기를 겨눈 채로 협조해 달라니……. 일단 이런 일을 당해 보면 매우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당한 듯한 무녀의 떨떠름하고 묘한 표정, 불꽃 문양이 그려진 무녀복치고는 비교적 화려한 로브를 입고 있는 무녀였다. 무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로브의 모자를 뒤로 젖혔다. 저 지휘관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괜히 병사들하고 드잡이질을 해 봐야 좋을 것이 없으므로 무녀는 순순히 말을 들었다. 그녀에게는 죄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자 깊숙한 로브에 감춰져 있던 탐스런 금발이 드러났다. 아무래도 수도 생활에 거추장스러웠던지 짧게 자르기는 했지만 아무튼 ‘금발’이었다.

“역시, 금발이군요.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무녀는 당황해서 외쳤다.

“저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금발인 것도 죄인가요? 무언가 착오가…….”

“무녀님 말씀대로 죄가 없으시다면 결국은 무죄가 입증될 겁니다. 저희들은 무녀로 위장한 죄수들을 체포하라는 명령만 받았습니다. 그 도망자는 금발에 무녀라는 것밖에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자, 협조해 주시죠.”

“무녀로 위장했다면 신성 마법을 쓸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증거로 하면 안 될까요?”

“범인 또한 예전에 무녀였기에 약간의 신성 마법을 쓸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으로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이곳 검문소의 지휘관은 무녀에게 상당히 정중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전에 봤던 검문소의 지휘관은 매우 강압적으로 나갔다가 호된 전투를 치르지 않았던가? 무녀와 그 일행이 반항을 시작하자 사방에서 구원하기 위해 병사들이 달려들어 왔고, 결국은 여러 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대규모 패싸움으로 발전했다. 결국 그들의 반항은 어딘가에서 연락을 받고 출동해 온 기사가 도착한 후 종말을 맺었다. 두 명의 기사는 반항하는 그들을 거의 개 패듯이 팬 다음 꽁꽁 묶어서 질질 끌고 가 버렸었다.

다크의 의문점을 알아본 듯 라나가 나지막한 어조로 속삭였다.

“저 무녀는 아레스를 모시는 무녀입니다. 코린트가 가장 숭배하는 신이 아레스인 만큼 병사들도 그녀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지요.”

“역시 모든 것에는 차별이 없을 수가 없군.”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금발의 처녀들 또한 무녀의 신세와 다를 것이 없었다. 힘이 없는 그녀들은 아예 저항조차 변변하게 못해 보고 튼튼해 보이는 죄수 수감용 마차에 실려서는 어딘가로 출발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금발이라는 죄 아닌 죄로 끌려가는 그 무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케락스 시내로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검문은 거의 없었기에 그들은 쉽사리 시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사실 병사들은 시외로 나가는 ‘금발 소녀’를 체포하는 작업만 해도 힘겨운 실정이었기에, 시내로 들어오는 사람한테까지는 감시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라나는 케락스 시내로 들어오자마자 여행자 길드로 갔다. 아마도 케락스 외부로 나가는 것에 대한 검문검색을 아무리 강화해도 걸리는 것이 없으면, 그다음부터 시내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할 것이 분명하기에 하루라도 빨리 케락스시를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라나는 앞서가다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이 여행자 길드입니다. 케락스는 아주 큰 도시이기 때문에 여행자 길드가 네 개씩이나 있다고 하더군요. 저것은 그중 남쪽에 있는 거죠. 남쪽으로 여행하기 위한 동료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빨리 들어가서 동행할 만한 어수룩한 놈이 있는지 알아 보자.”

“예, 함께 가시죠.”

여행자 길드의 건물은 그렇게 크지 않은 2층 건물이었다. 건물 내부의 벽에는 수많은 종이들이 붙어 있었다. 라나는 그 종이들을 샅샅이 읽어 나갔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하여 다크도 그 옆에 서서 그 종이에 쓰인 글을 읽어 봤다.

「11월 23일 아르곤 뮤크시를 향해 출발. 크루마령 쟈코니아 평원을 통과하여 오실롯 왕국을 거쳐 아르곤으로 입국 예정. 크루마를 거치게 되므로 크루마에 입국 금지된 분은 사절. 자세한 것은 안내원에게 문의 요망.」

「11월 15일 엔테미어 공국 렉슨시를 향해 출발. 몬스터들이 활개를 치는 크라레스를 피해서 발렌시노 산맥을 통과하여 쥬리오 왕국, 탄벤스 공국, 토리아 왕국 순으로 이동할 예정. 자세한 것은 안내원에게 문의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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