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3화 (329/930)

그것은 모두 각종 여행의 동반자들을 모집하는 광고들이었다.

라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것들을 읽더니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말했다.

“역시 요즘 들어 남쪽에 몬스터들이 창궐한다는 소문은 들었었는데……. 아마도 그 때문인지 크라레스 쪽으로 가는 여행객은 없네요.”

“그래도 코린트 남부에 가는 사람은 있을 거 아냐?”

“원래 여행자 길드라는 것은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산적이나 몬스터 따위에게서 몸을 지키기 위해 뭉쳐서 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그러자면 서로가 약간씩 손해를 보더라도 출발 시간을 정하고, 또 그 일정을 정합니다. 하지만 코린트 국내의 경우 도로가 아주 잘 정비되어 있는 데다가 요소요소에 병력들이 주둔하고 있기에 치안 상태가 매우 좋다고 봐야 하겠죠. 물론 변경 지방에는 몬스터나 도둑들이 사는 곳도 있지만, 각종 물자들이 수송되는 도로망에 대한 경비는 철저합니다. 그런 만큼 코린트 국내 여행객들의 경우 길드를 통해 동행자를 모집할 이유가 없죠. 여러 명이 서로의 편의를 존중해 주며 출발 시간이나 여행 경로를 정하는 것은 매우 성가신 작업일 테니까요.”

“호오, 그렇군.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는데…….”

“어쩔 수 없죠. 여기는 일단 포기하고 딴 곳으로 가시죠.”

“어디로?”

“용병 길드요. 만약 몬스터가 창궐한다면 용병 길드에는 일거리가 있을 테니까요.”

“혹시 거기 신청하면 용병 사단이나 뭐 그런 군대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냐?”

“아니, 그때 만난 후로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그동안 뭘 배우셨어요?”

기가 차다는 듯 라나가 물어 오자, 다크는 난처한 듯 얼버무렸다. 사실 이런 ‘서민’들의 생활과는 상관없는 특수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자신도 새삼 느꼈던 것이다.

“글쎄…….”

“용병 사단은 정규군이나 마찬가지예요. 몬스터 사냥 같은 일회용으로 모집하는 집단이 아니란 말입니다. 소규모의 산적들이 날뛴다든지, 몬스터들 몇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때, 각 지방의 영주들은 치안 확보를 위해 그들을 토벌하게 되죠. 하지만 그들의 규모가 자신들이 거느린 사병들로는 제압하기가 조금 힘들고, 그렇다고 중앙에 정규군 파병을 요청하기에는 작은 규모일 때 일시적으로 용병들을 고용해서 해결하죠.”

“호오, 무녀가 그런 일들을 상세하게도 알고 있군.”

“전에 수련하면서 용병들과도 지냈기 때문입니다.”

“좋아, 그럼 그쪽으로 빨리 가자.”

용병 길드에는 남쪽으로 가는 일행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원래 떠돌이 용병들이라는 것이 산적이나 몬스터들이 성업 중 일수록 그들도 덩달아서 일거리가 풍족하게 늘어나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이다.

“흐음, 남쪽에서 일거리를 찾으신다구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매우 깐깐해 보이는 40대 여성이 말했다. 그녀는 용병 길드의 접수를 받는 사람으로서 온몸이 깡마른 것이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듯한 모습이었다.

라나는 예의 신중하면서도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예.”

“여러 가지 일거리가 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거리를 찾으십니까?”

라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예, 당신 같은 엘프라면 귀족 부인이나 딸의 경호 같은 따분하면서도 보수가 짭짤한 것부터 시작해서 몬스터 사냥이나 산적 토벌 같은 힘만 들고 보수는 별로인 것까지 다양하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라나는 저쪽에 서 있는 다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동행이 있어서 말이죠.”

“흐음… 무녀라, 얼굴이 너무 앳된 것 같은데, 혹시 신전에서 도망친 수련생이 아닙니까?”

수상쩍은 듯 눈길을 보내는 그녀를 향해 라나는 딱 잘라서 대답했다.

“결코 아닙니다. 아직 정식 무녀는 아니지만, 세상 경험을 시키기 위해서 허락을 받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녀의 보호자죠. 그녀가 있던 신전의 제사장과 친분이 있었기에, 그녀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어서 데리고 다니는 중입니다.”

“수고가 많으시군요. 사연은 이해하겠지만, 치료 마법도 제대로 구사할 수 없는 무녀를 고용하겠다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물론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아이는 보수가 적어도 상관없고, 없어도 괜찮습니다. 목적은 세상 경험이니까요.”

“그런 각오라면 좋습니다. 아무래도 저 애송이 무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셔야 할 테니까 어렵거나 힘든 것은 무리겠군요.”

“어떤 일이라도 괜찮습니다. 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흐음… 어떤 일거리라도 상관없기는 하지만, 될 수 있다면 무녀 지망생과 함께 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이 말씀이죠?”

“예.”

한참 궁리하던 그녀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두터운 책자를 이리저리 뒤져 본 후 말했다.

“마침 괜찮은 일거리가 있습니다. 드루이드 후작님의 영애(令愛 : 딸)께서 케락스에 쇼핑하러 오셨는데, 그분을 드루이드 성까지 안전하게 호위하는 일입니다. 물론 그분께서는 처음부터 호위병들을 여럿 거느리고 오셨으니 호위는 문제될 것이 없을 겁니다.”

상대의 말에 라나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왜 용병 길드에 호위를 요청하신 거죠?”

“예, 사실 그분은 이번 나들이를 위한 일회용 호위병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분을 충성스럽게 모실 개인 호위병을 원하십니다. 그분의 우아한 취향에 어울리는 세련되고, 품위 있는 여성 용병을 추천해 달라고 하더군요. 드루이드가 제법 큰 성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케락스보다는 촌구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수도에서 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경호원을 구하는 것이죠. 그런데 당신의 경우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품위 있는 언어를 구사하니 아마도 그분의 마음에 드실 것 같군요. 우선 그분을 드루이드까지 수행하세요. 그분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앞으로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될 겁니다.”

원래 엘프라고 해서 모두 다 품위 있는 행동거지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 섬세하고 가녀린 몸매와는 달리 엘프는 숲 속에서 사는 매우 호전적인 종족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숲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유명했다. 그런데도 숲을 떠나서 이렇듯 세상을 떠돈다면 대부분 뭔가 사연이 있는 엘프들인 경우가 많았고, 그만큼 성격은 더욱 모가 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출발은 언제인가요?”

“4일 후입니다.”

4일씩이나 이곳 케락스에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제 수색 방향을 케락스 내부로 돌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좀 더 빨리 떠날 수 있는 일거리는 없나요?”하는 식으로 물어볼 수는 없었다. 용병들의 경우 일거리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얼마나 많은지, 혹은 일거리의 위험 부담은 어느 정도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결코 시간 따위를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라나는 최대한 표정이 변화하지 않도록 신경 쓰며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렸다.

“그것 말고 딴 일자리는 없나요?”

“글쎄요…….”

한참 책자를 뒤적거리던 그녀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딴 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런 소녀를 데리고 함께 할 만큼 만만한 일거리는 없습니다. 일단 제가 권하는 것부터 한번 해 보시고, 정 안 되겠으면 그때 다시 상의하기로 하죠.”

라나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분께서는 ‘루비의 눈’이라는 고급 호텔에 묵고 계십니다. 거기에 가서 드루이드 후작님의 집사를 찾으세요. 아니, 저와 함께 가는 것이 좋겠군요. 저를 따라오시죠.”

“예.”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예, 전하.”

제임스는 풀이 죽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검문검색 및 수색 범위를 좀 더 넓혀 보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어쩌면 빠져나갔을 수도 있기에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경은 어떻게 생각하나?”

레티안은 곰곰이 궁리를 해 보더니 신중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잔꾀를 쓴 것이 아닐까, 생각되옵니다.”

“어떻게?”

“황궁에서 탈출한 후 곧장 시외로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케락스시로 다시 돌아간 것이 아닐까요? 그녀가 탈출한 후, 저는 제임스 각하께서 도착하시는 시간 동안 수도 방위 사령부 예하의 모든 부대들을 동원하여 수도에서부터 반경 50킬로미터에 걸쳐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형성했사옵니다. 아무리 병사들이 투입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해도 마법사가 개입하지 않는 한 그 짧은 시간 동안에 5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추격하는 기사들을 따돌리면서 이동할 수는 없사옵니다.”

레티안의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는 듯 로체스터 공작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을 보며 레티안은 말을 이었다.

“제한된 인력으로 시외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철저히 조사하여, 무조건 압송하다 보니 시내로 흘러 들어오는 인구들에 대한 감시는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상태이옵니다. 그 점을 역으로 이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사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숨어서 경계가 허술해질 때를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

여태껏 자신이 헛수고만 하고 있었다는 레티안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제임스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점을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레티안은 서로 간의 의견을 절충해서 또 다른 안을 내놓았다.

“그럴 가능성도 있사옵니다, 각하. 그러니 더 이상 검문검색의 범위를 늘리지 말고, 지금까지 확보한 지역에 대한 철저한 수색 작전을 벌여 나가자는 것이옵니다. 케락스시 또한 그 범위 안에 들어 있지 않사옵니까?”

레티안의 말이 상당히 그럴듯했기에 제임스는 수긍했다. 현재의 인력으로 더 이상 수색 범위를 늘린다는 것은 힘들었다. 물론 여기저기에다가 병력을 보내 달라는 전문을 보내 놨지만, 그들이 도착하는 데 최소한 이틀은 필요했다.

“경의 말이 타당하겠군.”

제임스가 레티안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하자 로체스터 공작은 레티안을 향해 물었다.

“수색 방법은 어떻게 하면 좋겠나?”

“일단 지금까지 확보하고 있는 지역을 1백 개 정도로 세분화시킨 후 숨기에 좋은 곳부터 우선적으로 철저히 수색해 나가는 것이옵니다. 그러면서 차츰 포위망을 케락스시 쪽으로 압축해 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녀가 잡힐 때까지 절대로 포위망을 풀어서는 안 되옵니다.”

로체스터 공작은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만약 그녀가 경의 말대로 케락스시에 숨어 있다면 어떻게 하지? 적국의 이목이 있는데, 초상화를 곁들인 수배 전단을 뿌릴 수도 없지 않나?”

“당연하옵니다. 그녀의 얼굴이 그려진 수배 전단을 뿌려 봐야 크루마에게 그녀를 놓쳤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밖에 안 되옵니다.”

“이래저래 쉽지 않은 체포 작전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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