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5화 (331/930)

“갑자기 나를 공격한 이유가 뭐지?”

덩치가 산만 한 네 명의 사내들은 모두 다 방금 전 격투를 벌였던 도로 옆에 나 있는 컴컴한 뒷골목에 꿇어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눈앞의 소녀가 소녀로 보이지 않고 있었다.

퍽!

“흐어어억!”

명치 부분을 발로 호되게 가격당한 후 앞으로 꼬꾸라지는 동료를 보며, 남은 세 명의 안색은 더욱 핼쑥해졌다.

“갑자기 나를 공격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니야?”

퍽!

“케엑!”

이번에는 명치를 부여잡고 헉헉거리고 있는 놈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녀석의 턱이 홱 돌아가며 이빨 부스러기가 날아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턱이 날아간 놈의 오른쪽 녀석이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하녀의… 하녀의 부탁을 받았습니다요.”

“하녀라고?”

“예, 후작 가문의 하녀라고 하던뎁쇼. 이름 같은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우리들에게 좋은 일이 있는데 한번 해 볼 생각은 없냐고 하면서…….”

“그래서?”

“쓸 만한 계집을 하나 살 생각은 없느냐구요.”

다크로서는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산다고?”

“예, 원래 이 바닥 일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쓸 만한 계집을 구해서 매음굴에 넘기면 최소한 20골드는 받을 수가 있잖습니까?”

매음굴에 넘긴다. 이제서야 산다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예전에 살아왔던 중원이나 이곳 이상한 세계에서도 여자들은 그녀들의 신체적 특성 때문에 매매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 정도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대략적으로 알고만 있는 것과, 그 대상에 자신이 들어갔다는 것은 얘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야말로 머리꼭지가 돌 정도로 열화가 치미는 일이었다.

“이런 망할 자식! 그래서 나를 매음굴에 넘기려고 했단 말이냐?”

“아닙니다요.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 미모라면 좀 멀리 가서 노예 경매장 쪽으로 넘기면 최소한 60골드는 족히… 흐어억!”

다크는 더 이상 들어 볼 것도 없다는 듯 그놈의 턱에 깨끗한 발차기를 날린 것을 시작으로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놈들은 살아남으려는 일념으로 어기적어기적 기어서 큰길 쪽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것은 안 될 말씀이었다. 네 명이 모두 다 두들겨 맞다가 맞다가 지독한 고통 때문에 기절해 버린 후, 다크는 손바닥을 탈탈 털면서 어둑한 뒷골목에서 걸어 나왔다.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감히……. 나를 팔아 버리려고 하다니, 그년을 가만히 두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다크가 하녀를 향해 복수의 감정을 불태우고 있는 그 시각, 로체스터 공작은 자신의 심복인 레티안에게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젠장! 아직도 잡아들이지 못하다니…, 제임스로부터 연락은 없었나?”

“예, 전하. 시 외곽으로 더욱 범위를 넓혔지만… 그렇게 범위가 넓어서는 아무래도 수색 작전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사옵니다.”

“경의 말대로 시내에 숨어든 것일까?”

“시내에서도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사오나, 아무래도 워낙 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기에 그것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옵니다.”

씨근덕거리면서 실내를 한동안 왔다 갔다 하며 생각을 정리하던 로체스터 공작이 손가락을 탁 튕기면서 말했다.

“이렇게 된다면 아예 화근의 뿌리를 없애 버리는 것은 어떨까?”

“예? 무슨 말씀이시온지…….”

“그녀가 무슨 이유로 크라레스의 손을 들어 주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코 그녀는 크라레스 태생이 아니야. 그 정도로 뛰어난 고수가 갑자기 만들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당연히 그렇사옵니다. 본국에서도 뛰어난 기사 한 명을 키우려면 최소한 30년은…….”

“그러니까 뭔가 모종의 밀약이 그녀와 크라레스 황제 사이에 맺어져 있다고 봐야 하겠지.”

“지당하신 생각이시옵니다.”

“그러니, 그녀를 잡아들이는 것이 힘들다면, 크라레스를 아예 없애 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예?”

“크라레스는 이번 전쟁에서 치명타를 입었어. 그리고 더불어 몬스터들까지 날뛰면서 그나마 남아 있는 국력을 갉아 먹고 있지. 오죽하면 크라레스에서 사신이 와서 지원을 요청했겠나?”

“아, 그러니까 이 기회에 아예 크라레스를 없애 버리면 그녀가 더 이상 본국을 적대시할 명분도 함께 없어지겠군요.”

“그렇지, 그건 그렇고 타이탄 훈련장에 가 있는 말썽꾸러기들의 상태는 어떻다고 하던가? 제임스가 빠졌다고 농땡이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로젠 대공 전하로부터 모든 적응 훈련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사옵니다. 참, 대공 전하께서는 덧붙여서 크로데인 후작 각하께서 헬 프로네를 손에 넣으셨다고 전해 오셨사옵니다.”

보고를 올리면서 레티안은 로체스터 공작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하지만 로체스터 공작의 안색은 변함이 없었다. 헬 프로네의 입수가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지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그때, 레티안은 헬 프로네가 까미유에게로 갈 것을 그전부터 공작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적기사들을 지급하면서도 까미유에게만 타이탄을 할당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로젠에게 전해라. 제2근위대장에 임명한다고 말이야.”

‘헬 프로네’ 건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고 있던 레티안은 갑작스런 로체스터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제2근위대장은 크로데인 후작 각하신데요?”

“까미유는 제2근위대 부대장으로 강등한다. 오히려 그녀석도 그것을 좋아할 거야. 녀석은 언제나 책임이 무거운 대장보다는 부대장 쪽을 좋아했으니까 말이지.”

“그렇게 전하겠사옵니다.”

“그리고 제2근위대원으로는 오스카, 스칼, 메글리로 한다.”

“예.”

“대충 훈련이 끝났으면 그 녀석들을 수도로 불러들여라. 그런 다음 근위 기사단과 금십자 기사단에 출동 준비를 지시해 둬.”

“예? 곧바로 크라레스를 침공하실 계획이시옵니까?”

“당연하지. 본국에 남아 있는 모든 타이탄 전력을 한꺼번에 쏟아 부으면 약체된 크라레스는 며칠도 못 견딜 것이다. 그녀와 크라레스가 다시금 합해지는 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해.”

키에리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일행은 타이탄 운반 경로를 따라 크라레스의 영토 안으로 들어선 상태였다. 그리고 그 흔적은 말토리오 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물론 몬스터들의 소굴은 산맥 안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키에리의 고민은 그것이 아니었다. 크라레스 제국 영토 깊숙이 들어갈수록 모든 것이 명확해지고 있었다. 흔적은 앞쪽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사악한 기운은 북동쪽에서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으으음.”

침중한 신음 소리를 토해 낸 후 키에리는 부하들에게 물었다.

“저쪽 길로 쭉 가면 크라레인시가 아니냐?”

키에리의 뒤쪽에 서 있던 털보가 즉시 대답했다.

“맞습니다, 대장. 크라레인 쪽으로 가는 주 도로로 연결됩죠.”

“크라레인시라…….”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쪽 길로 쭉 가면 어디로 연결되나?”

키에리는 타이탄을 들고 갔을 거라고 추측되는 깊숙하게 패인 오우거의 발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질문에는 털보도 조금 아리송한지 다른 부하들하고 수근거리더니 대답을 했다.

“이 길은 말토리오 산맥의 서쪽 끝자락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길의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 마을 이름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케르바라는 작은 마을이 저희들이 알고 있는 제일 마지막 마을입니다. 아마 산길을 타고 들어가면 작은 마을이 몇 개 더 있을지도…….”

“흐음… 말토리오 산맥이라…….”

키에리는 잠시 중얼거리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오래전에는 크라레스의 수도가 말토리오 산맥에 위치하지 않았던가?”

“예, 맞습니다. 크로돈입죠. 크로나사 평원을 차지한 후에는 크라레인시로 수도를 옮겼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 바로 그거야…….”

키에리는 타이탄들의 잔해가 어디로 옮겨졌는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수도를 크라레인으로 옮겼다고 해도, 타이탄 생산 시설까지 모두 다 옮긴 것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산악 지역에 놔두는 편이 수비하기도 편할 것이 아닌가?

“좋아, 타이탄이 어디로 갔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니까, 지금부터는 저 묘한 기운을 탐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키에리는 저 북동쪽 하늘 위에 퍼져 있는 사악한 기운을 노려봤다.

“아니, 너는?”

포도주병을 껴안은 채 다가오는 다크를 발견한 시녀는 마치 한밤중에 유령을 본 듯 새하얗게 질렸다. 지금쯤 꽁꽁 묶여서 얌전히 노예 시장을 향해 떠났을 것으로 생각한 상대가 자신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런 그녀를 발견한 다크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게 맞이했다. 두 눈에 불을 켜고서…….

“오호라! 이거 내가 손수 찾아가야 하는 수고를 줄여 주시는구먼. 너 자알 만났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달려드는 다크를 피해 하녀는 도망가려고 했으나 그것은 마음뿐, 곧장 머리끄덩이를 붙잡혔다. 다크는 도망치려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우악스럽게 움켜쥔 후 한 바퀴 휙 돌려서 패대기를 쳤다. 그런 다음 숨쉴 틈도 없이 들려오는 가죽 두들기는 소리.

짝! 짝! 짝!

패대기쳐졌던 하녀의 뺨은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바로 이때, 저 먼 곳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뭣들 하는 짓이냐?”

“어?”

다크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공녀가 집사와 몇몇 하인들을 거느리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지금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행차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도중에 출입구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하녀들이 드잡이질을 하는 상스러운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집사는 아직까지도 엉켜 있는 두 하녀에게 눈을 부라리면서 꾸짖었다.

“냉큼 일어서지 못할까? 이것들이 뉘 안전이라고!”

주섬주섬 일어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하녀들을 보면서 공녀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집사에게 말했다.

“누가 이런 모습을 봤다면 어쩔 뻔했습니까? 앞으로 주의해 주세요.”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집사는 매우 호된 질책을 들은 듯 안색이 시뻘게졌다. 하인, 하녀, 그리고 노예들에 대한 단속은 모두 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불화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에게 책임이 있었다.

“예, 철저히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공녀님.”

공녀는 이제 볼일이 끝났다는 듯 앞으로 가다가 잠시 멈추면서 하녀들 중 한 명을 바라봤다.

“고개를 들거라.”

“예?”

공녀는 고개를 든 다크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집사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못 보던 아이 같은데…….”

물론 공녀가 라나를 고용할 때, 그녀와 함께 다크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공녀는 처음 보는 엘프에게 온 정신이 팔려서 그녀와 함께 왔던 다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다. 하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대단한 미모, 이런 아이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예, 엔테로아가 데려온 하녀입니다.”

엔테로아는 라나가 꾸며 댄 가명이었다.

“그런가?”

공녀는 자신의 뒤쪽에서 따라오고 있던 라나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저 아이를 나한테 줄 수는 없겠느냐?”

갑작스런 제안에 라나는 흠칫 했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공녀님.”

“서로 간에 좋은 일일 것이다. 저 아이에게도 앞으로 편안한 삶이 약속될 것이고, 그대에게도 원하는 만큼의 지위와 돈을 주겠다.”

“예? 그건 저 아이를 팔라는 말씀이십니까? 죄송하지만 저 아이는 제 하녀입니다. 노예 같은 것이 아니라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흐음, 그런가? 뭐, 시간은 많으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거라. 서로에게 좋은 일이 될 테니까 말이야. 그럼 가자.”

그날 저녁 늦게 돌아온 라나는 다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의 전말을 말했다.

“뭐라고? 그렇다면 공녀가 원하는 것은…….”

“예, 다크 님을 그녀의 아버지에게 노리개로 선물하겠다는 것이죠. 집사에게 자세히 물어봤는데, 후작은 상당한 호색한으로 벌써 여러 명의 미소녀들을 곁에 두고 있답니다. 집사는 나에게 아저씨를 넘겨준다면 후작 가문 내에서 상당한 직위와 돈을 약속하더군요. 그리고 더불어서 공녀님의 요청을 거절한다면 응분의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넌지시 말하며 협박했습니다.”

으드드득, 다크가 이빨을 가는 것을 보며 라나는 위로하듯 말했다.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여성들에게 아름다운 용모는 신의 축복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악마의 저주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녀들의 대부분은 귀족들의 성적 노리개로서 삶을 마쳐야 하는 운명이 기다리니까 말입니다. 그녀들의 신분이 낮은 이상,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거든요. 특히나 그녀가 농노 같은 노예 계층이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죠.”

화를 삭이기 위해서 포도주를 꿀꺽꿀꺽 마셔 대고 있는 다크를 힐끗 쳐다본 후 라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일단은 진정을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습니다. 케락스시를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적인 과제니까요. 그 외의 것은 나중에 생각하고 처리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태까지 다크가 살아온 방식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언젠가는 복수해 주겠다고 벼르면서 화를 삭였다. 언젠가는…….

‘좋아, 일단 나중에 힘을 되찾는다면, 그 망할 후작 놈부터 손봐주기로 하지.’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는 다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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