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내놔!
아르티어스는 자신의 눈에 띈 길 가던 행인을 아무나 몇 명 잡아다가 닦달을 하여 루비의 눈이라는 호텔에 도착한 것은 사위에 어둠이 깔린 지 오래인 매우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바로 이곳이군.”
거대하고 으리으리한 건물, 확실히 온갖 영화를 누려 온 코린트의 수도인 만큼 그 건물 또한 거기에 맞게 호화로웠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을 맞이하러 나오는 종업원의 멱살부터 다짜고짜 틀어쥐고 아르티어스는 으르렁거렸다.
“여기에 다크 폰 치레아라는 아이가 있느냐?”
“이것 보십시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한밤중에 찾아와서 이렇게 행패를 부리시는 겁니까? 그리고 저희 업소에서는 투숙하는 손님들의 신상을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 억!”
종업원의 마지막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아르티어스의 주먹이 그의 턱을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아르티어스는 자신의 말에 대꾸를 한 종업원의 얼굴에 계속하여 친절한 예절 교육을 시키며 입을 열었다.
“여기 책임자 나오라고 해, 빨리! 이따위 건물 통째로 날려 버리기 전에 빨리 나오라고 하란 말이다.”
그런 아르티어스의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아르티엔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한마디 이죽거렸다.
“내가 그래서 나이아드한테 그 아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빠를 거라고 했지.”
“지금 불난 데 부채질하시는 겁니까? 정 안 되면 이딴 건물, 가루를 내서라도 찾아낼 수 있다구요.”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요.”
포도주를 마시고 있던 다크는 언제 술을 마셨냐는 듯 재빨리 창쪽으로 다가가서 밖의 동정을 살피며 말했다.
“글쎄, 무슨 일일까?”
“혹시 이곳까지 코린트 군이 수색하러 들어온 것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
“제가 한번 살짝 나가서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저는 엘프로 변장하고 있으니까 아저씨가 가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밖으로 나갔던 라나는 곧이어 돌아왔다.
“웬 이상한 사람이 호텔의 종업원들과 싸우고 있더군요. 호텔 측에서 신고를 했는지 병사들도 눈에 띄었는데,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인 것 같았어요. 벌써 몇 명인가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그래? 희한한 일이군. 코린트의 수도 한복판에서 싸움질을 벌이다니 말이야. 그것도 이렇게 높은 사람들이 많이 묵는 호텔에서 말이야. 그래, 어떤 녀석인데 그렇게 간 큰 짓을 하지?”
“모르겠습니다. 한 명이었는데, 정말 아름답게 생긴 청년이더군요. 붉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크는 더 이상 들어 볼 것도 없다는 듯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드디어 아버지가 자신을 구하러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폭력적인 자신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달려왔던 병사들의 우두머리와 또 다른 한 명의 멱살을 그러쥐고는, 그중에서 한 명을 병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다가 힘껏 던진 후 또 다른 한 명을 어디에다가 던져 버릴까 궁리하며 빙 둘러보던 도중에 달려 나오는 아들을 발견했다.
“아빠!”
“아들아!”
아르티어스는 한쪽 손에 쥐고 있던 병사를 아무 곳에나 던져 버린 후 후다다닥 달려가서는 가냘픈 아들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그런데 이런 그들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아르티엔의 눈이 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한눈에 그녀가 헤즐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몸속에 감춰져 있는 호비트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마나의 기운도.
“저 아이가 나약한 손자라고? 흥! 저 아이가 나약하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호비트들에게 있어서 강자(强者)라는 개념이 좀 수정되어야 하겠군. 그래, 그건 나중에 저놈을 족쳐 보면 자연히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아르티엔은 다시금 아르티어스에게 꽉 안겨서는 숨이 막히는지 버둥거리고 있는 소녀를 차근차근 훑어봤다. 아르티엔이 알기에는 호비트들은 드래곤과 달리 암컷과 수컷이라는 성이 분리되어 존재했다. 그리고 호비트는 자식을 성별에 따라 두 가지로 분리해서 부른다. 아들과 딸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가 아무리 쳐다봐도 아르티어스가 ‘아들’이라고 우기고 있는 대상은 제법 뛰어난 미모에 봉긋한 가슴이 튀어 나와 있는 ‘딸’이 아닌가? 아르티엔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 수 있겠지. 하기야 내가 바깥세상을 돌아다닌 것이 4천 년도 전이었으니까 말이야. 그때는 수컷 호비트를 아들이라고 부르고, 암컷 호비트를 딸이라고 불렀었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서로가 가지는 뜻이 뒤바뀌어 버렸나? 뭐 호비트들의 짧은 수명으로 봤을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봐야 하겠지.”
아르티엔이 등 뒤에서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잊은 채, 아르티어스는 다크를 꼭 끌어안고는 연신 주절거렸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어디 보자,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으잉? 그런데 이건 또 뭐야? 어떤 망할 놈이 이딴 것을 몸에 달아 놓은 거냐?”
아르티어스는 다크의 몸에 상처가 없는지 유심히 살펴보다가 그녀가 차고 있는 팔찌들을 발견하고는 화가 나서 외쳤다. 그리고 곧이어 그는 그 두 개의 팔찌를 제거해 버렸다. 드래곤인 그에게 있어서 이따위 팔찌를 해제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아르티엔은 뒤쪽에서 이 희한한 두 부자가 하는 꼬락서니를 찬찬히 보고 있다가 아르티어스가 팔찌들을 해제하는 것을 본 후, 이 정도면 아르티어스가 ‘손자’라고 주장하는 아이에게 그 어떤 위험도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자 슬그머니 아르티어스의 뒤쪽으로 다가왔다. 아르티엔은 헛기침을 해 대며 말문을 열었다.
“험험, 감격스러운 부자 상봉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옆에서 가만히 보아하니 우리 둘 사이에도 너무나 많은 대화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이게 무슨 소린가 해서 다크는 그 말을 꺼내는 소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소녀는 자신과 아르티어스를 슬그머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고 있었다. 다크가 슬쩍 아르티어스의 눈치를 보자 그는 그 말을 듣고 질겁한 듯 얼굴색이 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그것을 얼버무리려고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헤헤헤.”
억지웃음을 짓는 아르티어스를 바라보며, 아르티엔은 생긋이 미소를 지었다.
“아들아, 대화라는 것은 원래 서로 간에 오해를 없애는 데 최적의 수단이 아니겠느냐?”
갑자기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고 느끼며 아르티어스는 잘만 말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후 재빨리 변명을 시작했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절대로 숨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물론,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아비를 속인 것에 대한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아르티어스는 아버지가 결코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아르티어스는 감춰 두고 있던 비장의 한 수를 급히 써 먹었다. 자신은 진실만을 말했었다. 그것을 엉뚱하게 오해를 한 아르티엔이 잘못한 것이 아닌가?
“절대로 아버지를 속인 적은 없습니다. 기억해 보시면 알 것 아닙니까? 제가 언제 손자를 헤즐링이라고 한 적 있습니까? 안 그래요?”
“오호라, 그러니까 네 녀석은 의도적으로 나로 하여금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이거로군. 그렇다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겠는 걸. 일단 몇 대 쥐어 팬 후에 대화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진실에 보다 빠르게 접근할 수 있겠어.”
“아, 아버지! 그게 아니라니까요!”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아르티엔은 주문을 외워서 어디론가 아르티어스와 함께 공간 이동해 버렸다. 어딘가 한적한 곳으로 아들놈을 끌고 가서 실컷 쥐어 팬 후에 오붓한 대화를 나눌 생각으로…….
팔찌만 없애 버린 후 갑자기 아르티어스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웬 어린 계집애하고 사라져 버리자, 다크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드래곤이라는 것들은……. 도대체가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를 할 수가 없군. 그건 그렇고… 흐흐흐, 이 힘, 단전에서부터 시작해서 사지의 끝까지 휘몰아치는 이 느낌! 드디어 해방이야. 하하핫!”
다크는 잠시 호텔의 정문 앞쪽에서 아르티어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무작정 이러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여기서의 볼일부터 해결해 두는 것이 좋겠군. 안 그래도 꼭 해야겠다고 작정해 둔 일이 몇 가지 있으니까 말이야.”
라나는 갑자기 밖으로 달려 나간 다크가 돌아올 생각을 안 하자 걱정이 되어 따라 나왔다. 그러다가 호텔 정문 쪽에서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는 다크를 발견했다. 라나는 그쪽으로 달려가서 말을 붙이려고 하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지냈던 다크와 뭔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황금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잃지 않는 소녀. 그리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오만하게 눈을 치켜뜨고는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저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 여기까지는 그전과 같았지만, 라나는 바로 그때 지금까지 그녀의 행동이나 모습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느긋한 여유를 말이다.
라나가 주춤거리는 사이, 다크는 어느샌가 그녀의 앞을 통과하고 있었다. 라나는 뭔가 조금 달라진 분위기 때문에 아무래도 말을 걸기가 좀 힘들어서 그대로 그녀를 따라갔다. 어쨌건 그녀가 갈 곳은 방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있었던 그 방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간 다음에 천천히 눈치를 봐서 대화를 나눠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크는 라나에게 배정되어 있던 방을 지나친 다음 더욱 안쪽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냐? 너는 내실 담당의 하녀가 아닐 텐데……?”
공녀가 거주하는 내실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던 호위병 둘은 더 이상의 말은 꺼내 보지도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 자신들이 어떻게 두들겨 맞았는지도 느끼지 못하고 말이다. 상대가 들을 수도 없게 만들어 놓은 후에야 다크는 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이죽거렸다.
“내가 내실 하녀가 아닌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어.”
라나는 다크를 따라가며 그녀를 말렸다. 갑자기 왜 이렇게 바뀐 것일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저씨는 저렇지 않았었는데.
“저… 아저씨, 갑자기 왜 그러세요?”
“몰라서 물어? 공녀라는 계집이 감히 나를 일개 노리개쯤으로 만들려는 망상을 품었잖아. 내게 그딴 생각을 품고도 무사할 줄 알았나?”
“예? 아무리 그게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해도 이렇게 일을 크게 벌여 놓으면 안 됩니다. 발각될 우려가 있다구요.”
그 말에 다크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는 라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자신을 그저 바라봤지만, 라나는 어느샌가 자신의 몸에 소름이 돋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크는 다시금 내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내뱉듯이 말했다.
“이제, 더 이상 그딴 것은 신경 안 써도 돼!”
“이게 무슨 짓이냐? 게 누구 없느냐? 빨리 저년을 잡아서 내 앞에 꿇려라!”
물론 공녀도 자신의 말이 부하들에 의해 실행될 것이라고는 조금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공포에 가득 찬 그녀의 ‘머리통’은 습관적으로 여태껏 해 오던 말을 내뱉도록 ‘입’에게 명령한 것이다.
“크어어억!”
다크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저항하던, 아니 공포에 질려서 도망치려고 하던 호위병의 뒷덜미를 꽉 틀어쥐고는 벽에다가 우악스럽게 처박아 버렸다. 그런 다음 축 늘어진 병사를 놓고는 손바닥을 탈탈 털었다. 실력이 좋아서 여태껏 살아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병사는 머리가 깨진 채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뜬 상태로 거품을 물고 뻗어 있었다.
“이런이런, 어쩔까나. 그 명령을 이행할 녀석은 이제 더 이상 없는 것 같은데 말씀이야.”
잔인하게 이죽거리면서 천천히 다가오는 상대를 보며, 공녀는 발작적으로 외쳤다.
“이이, 괴물! 다가오지 마!”
“흐흐흣! 감히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것이 나를 후작이라는 놈의 노리개로 선물하겠다고 야무진 꿈을 꾸다니 말이야.”
다크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공녀의 멱줄을 감아쥐었다.
“헉!”
상대가 다급하게 숨을 들이키는 찰나, 다크는 살기 어린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 빨리 복수의 순간이 다가 올 줄은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흐흐흐, 너 따위 죽여 봐야 내 손만 더러워질 뿐이고……. 네가 여태껏 해 온 대로 노예 시장에 내다 팔아 버릴까? 이 정도 미모라면 용돈 벌이 정도는 될 것 같은데 말이야, 하하핫!”
잠시 상대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다크는 장난감이 부서진 아이처럼 심드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런, 자극이 너무 강했나? 기절해 버렸군.”
다크가 갑자기 그 광폭한 이빨을 드러낸 그 순간, 다크를 팔아먹었던 하녀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공녀를 호위하던 수십 명이나 되는 호위병들이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바닥에 뒹구는 것을 보자마자,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미친 듯이 호텔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상대가 저렇게 강한 줄도 모르고, 뒷골목의 놈팽이들 몇 명에게 그녀를 팔아먹었다니. 그녀가 노예 시장으로 넘어가지 않고, 당당하게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녀는 공녀의 꾸지람을 받은 후 잠시지만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 잠잠하게 있었다. 그것을 보고 이번 일은 어떻게 잘 넘어가겠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이 저주스러워지는 그녀였다. 그 개망나니 하녀는 자신을 가로막는 호위병들을 해치우며 공녀가 묵고 있는 내실 쪽으로 걸어갔다. 호위병들이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픽픽 쓰러지는 것으로 봐서 머지않아 자신을 저 미친년으로부터 지켜 주고 있던 공녀가 조만간 어떻게 될 것인지 불을 보듯 뻔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공녀를 해치운 후에 저 미친년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당연히 자신을 씹어 먹으려고 달려올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결론은 뻔한 것이었다. 저 미친년에게 맞아 죽기 전에 가능한 한 멀리 도망쳐야만 했다. 그런 후, 군대가 출동해서 저 미친년을 끌고 가기 전까지 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헉헉헉.”
호텔은 아주 넓었기에, 출구 쪽까지 전력으로 질주해 온 그녀는 숨이 턱까지 차오를 지경이었다.
“사람 살려!”
있는 대로 비명을 질러 대며 도망가는 하녀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수군대며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하녀의 시야 저쪽 앞에서 십수 명의 병사들이 실내로 진입해 들어오는 것 또한 보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었다. 고르고 고른 후작의 호위병들이 간단하게 땅바닥에 내팽겨 쳐지던 장면을 공포에 질려 몰래 숨어서 훔쳐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 않은가? 그녀는 계속 치달려서 호텔 밖으로 도망쳤다.
그녀는 호텔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어떤 건물에 슬쩍 몸을 숨기고서야 호텔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야 숨을 고를 시간 여유를 가진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호텔 주위를 살펴봤다. 호텔 주위는 매우 어수선한 상태였다.
방금 전까지 아르티어스가 호텔에서 난동을 부리고 난 후였기에, 여기저기에서 병사들이 그쪽으로 집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많은 행인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궁금증을 느끼며 호텔의 안쪽을 지켜보며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이때, 그녀의 등 뒤에서 음흉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흐흐, 이렇게 빨리 찾아낼 줄은 상상도 못했군. 며칠 동안 여기에서 기다려야 하나 했는데 말이지.”
기절할 듯이 놀란 하녀가 뒤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얼굴 여기저기를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울긋불긋, 거무탱탱한 멍 자국이 아로새겨져 있는 남자 둘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수많은 멍 자국 때문에 더욱 괴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털보가 이죽거렸다.
“네가 팔아먹은 노예가 우리를 이 꼴로 만들었으니, 그 대가는 네가 치러야겠지?”
“아, 안 돼!”
그녀는 비명을 질렀지만, 곧이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반항은 끝이 났다. 털보 옆에 서 있던 사내가 천으로 잘 감싼 몽둥이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고 하던 하녀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다. 하녀가 쓰러지자, 털보는 주위의 동정을 살폈다. 원체 주위가 어수선해서 그런지 하녀의 비명 소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자, 빨리 자루에 쑤셔 넣어. 이거라도 대신 팔아 치워야 직성이 풀리겠다.”
털보 사내는 자신을 이 꼴로 만든 그 끔찍한 경험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꼭 복수는 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원한을 풀 수는 없다 보니, 당연히 그 원인을 제공한 놈, 아니 년이 대신 복수의 대상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