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0화 (336/930)

죽음의 기사

펄럭이는 망토를 아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기에 그 생김새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농민들이 밀을 거둬들일 때 사용하는 거대한 낫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농민으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밀을 거둬들일 시기도 아니었고, 또 이런 무덤 앞에서 무슨 농작물을 거둬들일 것이라고 낫을 들고 설치겠는가? 무덤을 단장하기에 그 낫의 크기는 너무나도 컸다. 그는 뼈가 앙상하게 보이는 손을 이용해서 큼직한 책자를 뒤적거리다가 나직한 웃음을 터뜨렸다.

“클클클클… 바로 이곳이군.”

그곳은 바로 코린트의 모든 전쟁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황실의 묘역이었다. 물론 자신이나 그 후손들이 그가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딴 곳에 장사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귀족들이나 기사들에게 있어서 이곳에 묻힌다는 것은 자손 대대로 이어질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었기에 아직까지 단 한 사람도 이곳에서 잠들 수 있는 특권을 거절한 경우는 없었다.

그는 주위를 잘 살펴봤다. 하지만 예상외로 경비는 아주 허술했다. 코린트 최고의 성역이라고는 하지만, 무덤들이 모여 있는 묘지일 뿐이었다. 무덤 속에 들어 있을 값진 부장품(副葬品 : 시체와 함께 넣는 물건들)을 노리는 도둑들 정도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렇듯 경비가 허술한 것이었다. 그는 일단 가장 유명하면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의 묘지부터 선택했다.

“어디에 있나?”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찾은 무덤, 고생해서 찾아내긴 했지만 이번에도 그의 예상과는 달리, 위대한 무인의 무덤치고는 너무나도 검소해 보이는 무덤이었다. 그는 상대가 코린트 최고로 지칭되는 무인이었던 만큼 무덤 또한 아주 호화로울 것으로 생각하고 그 순서로 뒤졌기에 시간이 더욱 많이 걸렸던 것이다.

“젠장! 아무리 검약한 것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영웅의 무덤을 이따위로 만들다니,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도 모르는 것들 같으니라구.”

그는 잠시 투덜거린 후 두 손을 하늘 위로 뻗으며 주문을 외웠다.

“잠들어 있는 위대한 기사의 영혼이여, 대마왕 크로네티오 님의 권능을 받아 그대에게 명하오니 지저(地底)의 혼돈에서 깨어나, 나 캐론(Charon) 일족의 권능을 이어받은 라쿠나의 명령에 따르라.”

잠시 기다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라쿠나는 당황한 듯 다시 한 번 주문을 외웠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무덤 안에서 사자(死者)의 응답 소리가 들려와야만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원한이 무엇인지 죽은 자가 말하고, 그다음 그 원한을 푸는 것에 대해서 몇 가지 흥정이 오고간 후에 이쪽에서 그를 만족시켜 줄 수 있다면 그는 죽음의 기사(Death Knight)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라쿠나는 당황하여 다시 한 번 책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곳에는 분명히 ‘전사(戰死)’라고 되어 있었다. 전쟁터에서 죽은 인물인 만큼 그 원한은 당연히 뼛속까지 사무쳐 있을 것이고, 웬만한 조건만 충족된다면 깨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처음부터 좌절된 것이다.

“이럴수가… 어떻게, 전사했는데도 그 어떤 원념(怨念)도 남아 있지 않을 수가 있지?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군.”

무덤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무덤 속을 관찰하던 라쿠나는 이윽고 뭔가 느꼈다는 듯 외쳤다. 그는 사자(死者)를 관장하는 마족인 만큼 정신만 집중한다면 직접 무덤을 파 볼 필요도 없이 충분히 자세한 관찰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제기랄! 전사한 것이 아니라, 참수(斬首)당한 시체였군. 게다가 이건 위대한 무인 따위가 아니야. 해골 병사(Skelton)로도 만들 수 없는 형편없이 삭아 빠진 뼈다귀…….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이따위 장난을 해 놓은 거야?”

투덜거리며 라쿠나는 딴 무덤으로 향했다. 그가 두 번째로 시도한 무덤은 리사 드 크로데인 후작 부인이라는 뛰어난 무사였다. 그녀도 키에리가 전사했다고 전해지는 바로 그 전쟁, 그러니까 제1차 제국 전쟁에서 크루마와 교전 중에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라쿠나는 리사의 무덤 앞에 서서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군. 이번에도 가짜인가?”

라쿠나는 전번처럼 두 번이나 주문을 외우지 않고, 곧장 무덤 내부의 관찰로 들어갔다. 곧이어 라쿠나는 감탄 어린 신음을 삼켰다.

“정말 대단한 뼈야. 화려한 영기(靈氣)가 감도는군. 진짜가 분명해. 그런데도 왜 응답이 없는 거지?”

잠시 생각해 보던 라쿠나는 그녀가 아무런 원한 없이 죽었다고 결론짓고는 또 다른 무덤으로 미련 없이 자리를 옮겼다. 원념 없이 죽은 기사의 시체는 무슨 짓을 해도 깨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원한을 품은 기사의 영혼은 그 원념이 강한 정도에 따라 복수를 하기 위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십 년간 세상을 떠돈다. 그런 그들을 죽음의 기사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육체를 부여받은 후 복수를 위해 날뛰는 마물이 되는 것이다.

마왕은 1천5백 년 만에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세계 정복이 그렇게 만만한 작업이 아님을 곧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것은 1천5백 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타이탄이라는 마법 병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월이 흘러서 자신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진다면, 마계의 강력한 힘을 지닌 부하들을 불러들여 타이탄을 직접 상대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불러들일 수 있는 부하들의 양과 질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대마왕 어르신이 생각해 낸 새로운 돌파구가 이것이었다.

자신을 향해 원한을 품지 않은 기사들에게 다시금 육체를 부여하여, 꼭두각시로 삼는 것이었다. 물론 죽음의 기사들은 예전만큼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충분한 숫자는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조종할 수 있는 특별한 엑스시온의 제작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엄청난 힘이 순식간에 굴러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걸 생각해 낸 후 카론 일족 네 명을 불러들여 죽음의 기사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파워가 좀 떨어지더라도 암흑의 마나에 동작할 수 있는 엑스시온의 개발 작업 또한 병행하고 있었다.

정신계 마법의 치료

한 시간쯤 후에 아르티어스는 아르티엔과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다크에게 채워져 있던 팔찌를 제거한 상태였기에, 아르티어스는 그녀의 위치를 언제 어디서든지 파악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곧장 그녀의 바로 옆으로 공간 이동해서 나타났다.

“살아서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구나.”

반쯤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아르티어스가 다크를 본 후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도대체 누구한테 얼마나 쥐어 터졌는지, 얼굴이 밤탱이가 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디 가서 뭘 했기에 모양새가 이래요?”

아르티어스가 힐끔 아르티엔을 바라본 후 대답을 해 주려는 찰나, 다크는 아르티어스를 그 꼴로 만든 상대가 누군지를 눈치 채고는 아르티어스를 옆으로 살짝 밀면서 앞으로 쓱 나섰다.

“네년이 아빠를 저 모양으로 만들었냐?”

다크의 공격은 거의 순간적으로 이루어졌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아르티엔의 목줄기는 산산이 부서진 채, 아래로 허물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르티어스조차도 언제나 감탄하던 다크의 기술. 순간적으로 움직이며 상대에게 방어할 틈을 주지 않는 공격. 언제 어떤 기술을 썼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다크의 손은 희미한 푸른빛을 뿜어 대며 상대의 멱줄을 관통한 후였다. 너무나도 허무할 정도로 빠른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아르티어스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르티어스로서는 아들을 말리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던 것이다. 아르티어스가 엉거주춤하게 서서 아버지의 주검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때, 다크는 질퍽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시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너무나도 현실감 있는 영상이었고, 또 확실하게 손에 와 닫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여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왔던 그녀였기에 사람의 목을 관통할 때 나타나는 미묘한 느낌에서의 차이점을 즉시 눈치 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는 그녀로서도 알 수 없었다. 미세한 기의 흐름조차도 감지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저기 쓰러져 있는 것이 진짜 시체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다크는 수많은 격투를 통해 다져진 자신의 감각을 믿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만하게 서서 보이지도 않는 상대를 향해 외쳤다.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었기에 방어 자세는 아예 갖추지도 않았다.

“나를 깔보는 거냐? 저따위 허상으로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나?”

허상이라는 말에 아르티어스는 제정신을 차렸다. ‘그러면 그렇지’하고 생각하면서 아르티어스는 다급한 어조로 아들을 말렸다. 지금이라면 그냥 애교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심기를 진짜로 건드려 놨다가는 아예 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를 위해서 싸우려고 하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너는 절대로 그분과 싸워서는 안 된다.”

“왜지요? 그렇게 강한 상대인가요?”

“이건 강하고 강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분은 너의 할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주신 분이시거든.”

아르티어스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아르티엔은 언제인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채 쓰러져 있는 허상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을 뒤늦게 눈치 채고 아르티어스가 뭐라고 말할까 궁리할 때, 아르티엔은 슬그머니 손짓을 했다. 그 손짓 한 번에 방금 전까지 선혈이 낭자한 가운데 쓰러져 있던 소녀의 시체는 먼지가 날리듯 푸스스스 사라져 버렸다.

“정말 대단한 공격이로군. 이 정도 기습 공격이라면, 웬만한 놈들은 자기가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황천으로 가겠어.”

투덜거리는 아르티엔의 목소리를 애써 못들은 척하면서, 아르티어스는 아버지에게 다크를 소개했다.

“아버지, 정식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양자로 삼은 다크 폰 치레아라는 아이입니다. 아버지도 많이 사랑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글쎄다. 그런데 어디서 꼭 너 같은 녀석을 하나 골라내어 양자로 삼은 거냐? 앞뒤 가리지도 않고 무조건 손부터 나간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참 특이한 습관이야……. 이렇게 닮은꼴도 구하기 힘들 텐데 어디서 구한 거지?”

“아버지도 그렇잖아요”하고 한마디 쏘아붙이려다가, 아르티어스는 생각을 되돌리고 한껏 억지 미소를 지어 대며 주절거렸다.

“그렇게 빈정대지 마시라구요. 재롱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면 될 텐데, 손자가 장난 좀 친 걸 가지고 꽁하시기는…….”

“헛! 요즘은 그런 것을 재롱이라고 하느냐? 손자가 재롱 두 번만 떨었다가는 할애비 목숨이 남아나지를 않겠군. 그건 그렇고, 너는 저 아이를 보면서 뭔가 느낀 것 없냐?”

아르티어스는 아버지의 말 중에서 ‘할애비’라는 단어가 들려오자 적이 안심하기 시작했다. 일단 아르티엔은 다크가 그의 손자가 될 만한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며 합격점을 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예? 뭘 말입니까? 원래 처음부터 조금 과격한 성격이라서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쯧쯧, 아직도 멀었구나. 내 말은 누군가 저 아이의 정신세계에 침입한 것 같다는 말이야.”

“정신계 마법이라구요? 어떤 빌어먹을 녀석이 그딴 짓을…….”

아르티어스는 화들짝 놀라며 다크의 머리 위에 손을 대고는 열심히 수상한 곳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를 탐색해 본 결과 과연 아르티엔의 말대로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이 있었다. 그것도 깨끗하게 침입했다가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다크의 정신세계에 상당한 상처를 남겨 둔 상태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아르티어스는 다크에게 물었지만, 다크로서는 별로 대답할 말이 없었다. 미네르바는 다크에게 정신 마법을 쓴 후에 그때의 기억을 완전히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젠장, 가만히 있어 봐라. 이 아빠가 금방 치료해 줄 테니까.”

다크의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아르티어스의 손이 희뿌연 빛을 뿜기 시작했다. 아마도 뭔가 마법을 사용해서 그녀의 정신세계에 남아 있는 상처들을 치료하기 시작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다크를 따라서 공녀의 방에 들어왔다가, 자신이 끼어들 틈을 발견하지 못하여 가만히 눈치만 보고 있던 라나는 놀라움에 약간 입을 벌린 채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정신계 마법의 후유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코린트 같은 대 제국에서도 그녀의 정신을 치료할 수가 없어서, 드로아 대 신전에 의뢰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어려운 일을 금방 해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는 저 젊은이에 대해 라나가 경외심을 느낀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이 장면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여성이 또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성으로 변신해 있는 아르티엔이다. 아르티엔은 아르티어스의 치료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찬찬히 바라본 후 한마디 툭 내뱉었다.

“제법이로구나. 하지만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어.”

“예? 그건 무슨 말씀이세욧! 저는 제대로 치료했단 말입니다.”

“훗, 그러니까 아직 미숙하다는 거야. 정신계 마법의 부작용 때문인지, 아니면 딴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주된 정신세계에 포함되지 못하고 떠도는 기억들이 있다는 걸 너는 모르겠느냐?”

아르티어스는 뒤통수를 슬그머니 긁어 대며 난처한 듯 말했다.

“그, 글쎄요.”

“내가 하는 것을 잘 봐 둬. 이게 기억이 헝클어진 것을 바로 잡는 데는 최고의 마법이야. 그리고 그 어떤 부작용도 없지.”

아르티엔은 다크쪽으로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리라이프(Re-life)!”

이것은 아르티엔이 고안하여 만든 마법으로서, 다른 정신계 치료 마법과는 달리 직접 상대의 정신세계에 침투하여 조각난 기억들을 퍼즐을 연결하듯 끼워 붙이는 저급한 마법이 아니라, 상대가 여태껏 살아왔던 모든 삶을 순식간에 다시 한 번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들을 어떤 식으로 골라 뽑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인지는 상대의 의지에 맡겨 버리는 것이다. 상대의 의지가 그것을 결정하기에 이 마법은 부작용이 있을 수가 없었다. 타인의 강제에 의해 재구성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잠시 후 다크는 멍한 머리를 들며 정신을 차렸다. 여태껏 잊고 살았던 수많은 기억들이 마치 어제의 일인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많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라서 그런지 머릿속이 띵한 것 같았다.

“어라?”

갑자기 한 줄기 눈물이 다크의 눈에서 또그르르 흘러서 떨어지는 것을 보며, 아르티어스는 기겁하듯 놀라서 아르티엔에게 따졌다.

“부작용이 절대로 없다면서욧! 그런데 왜! 갑자기 저 애가 저러는 거죠?”

아르티엔은 별것 아니라는 듯 딴청을 부렸다.

“글쎄다, 옛날 생각이라도 하는 모양이지. 아니면, 여태껏 살아온 삶이 너무나도 후회스럽던지.”

“그럴 리가… 없잖아욧! 절대로 후회라는 단어를 모르는 아이인데요.”

잠시 망설이듯 말하던 아르티어스는 곧이어 확신하듯 외쳤다. 자신이 아는 한 아들놈은 결코 후회를 모르는 녀석이었다. 설혹 뭔가 잘못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곱씹으며 두고두고 후회하며 고민하기보다는 아예 속편하게 “다음에는 잘하면 되겠지” 혹은, “에이 벌써 죽여 버린 것을 어떻게 해? 다음에 이런 경우를 당하면 살려 둬야지”하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

“글쎄다, 잘 모르겠구나. 나도 사실 이 마법을 고안하기는 했지만, 써먹기는 이번이 처음이라서 말이야.”

속 편한 아르티엔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이빨을 갈며 외쳤다.

“설마, 사랑하는 손자를 상대로 마법 실험을 했다는 말입니까?”

아르티어스가 아르티엔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을 때, 다크가 나직한 어조로 힘없이 말했다.

“아빠, 저 좀 쉬고 싶어요.”

“그래, 여기는 너무 시끄러우니까 딴 데로 가자.”

아르티어스는 방 안에 남아 있던 모든 사람들을 이끌고 어딘가 아들이 쉴 만한 곳을 찾아서 공간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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