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9화 (345/930)

제1부 묵향

마교의 장

무림의 초거대 문파인 천마신교(天摩神敎)가 아수혈교(阿修血敎)라는 단체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회의를 하는 장면이 <묵향(墨香)>의 시작이다. 아수혈교는 약 80년 전 마교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혈교(血敎)의 후신이다. 여러 가지 대책이 오가다가 결국 새로운 고수들을 대량으로 육성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게 된다. 중원 각지에서 10세 미만의 어린아이 3천 명을 납치하여, 그들을 고수로 키운다는.

그로부터 10년 후, 주인공 묵향이 등장한다. 마교가 납치한 3천 명 중 한 명이었던 그는 2044호로 불리며 성장한다. 그러다가 그가 마침내 살수(殺手)로서의 교육을 끝마쳤을 때, 묵향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그가 언제나 검은색 무복을 즐겨 입고, 그 외의 것들도 검은색을 너무 좋아했기에 붙여진 호칭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한 가지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살수로 쓰기 위해 키웠는데 그의 검술 실력이 살수로 써먹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상부에서는 그를 애초 계획대로 일회용품이나 다름없는 살수로 써먹을 것인지, 아니면 좀 더 교육시켜 고수로 키워 볼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묵향이 검술에 미쳐 있다는 것을 아는 대주는 묵향에게 따로 검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기초 검술 이외에 더 이상 검술을 배우지 못하자 묵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검술에 대해 끊임없이 파헤치고 분석하기 시작한다.

이때, 마교의 정보망에 아수혈교의 비밀 지부 한 곳이 걸려들게 된다. 이곳에서 수많은 강시가 제련되고 있다는 정보였다. 마교는 자신들이 직접 치는 것이 아니라 역 정보를 흘려, 정파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무림맹에 아수혈교 비밀 지부의 위치를 알린다. 하지만 마교의 바람과는 달리 무림맹은 황실 전복 세력이 있다는 거짓 정보를 황실에 흘려 그들을 끌어들인다. 황궁에서는 아수혈교를 모반을 일으켜 황실을 전복하려는 비밀 세력으로 오판하고 흑풍단(黑風團)이라는 황실 휘하 최강의 무력 단체를 투입한다.

결국 아수혈교의 비밀 지부는 전멸당하지만, 흑풍단 또한 강시의 위력에 쉽게 회복하기 힘든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첩자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본 마교는 자신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아수혈교가 훨씬 더 막강한 세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고수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묵향의 운명이 결정지어지게 된 것도 이때였다. 살수로 쓰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검술 교관을 배정하여, 그의 특기인 검술을 더욱 심도 깊게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에게 배정된 검술 교관은 환사검 유백이라는 자로, 묵향에게 절정에 이르는 편법을 일러 준다. 원래 절정의 고수가 되려면 자신이 익힌 초식의 틀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고수들은 책을 읽는다든지, 아니면 초식의 연마를 잠시 접고 다른 일을 한다든지 하는 등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유백이 개발해 낸 방법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초식을 분해하여, 더 이상 분해할 수 없을 정도까지 잘라 나가다 보면 결국에는 무초식(無招式)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묵향은 45세가 되었을 때, 사부 유백에게서 배운 편법을 완성해서 극강의 고수로 다시 태어나서는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아직 묵향이 어느 정도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던 마교의 수뇌부는 그를 낙양의 부분타주로 임명한다. 마침 낙양분타가 세력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강력한 무력이 필요하다며 마교 총단에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주위의 산적을 토벌하여 낙양의 표국 신용을 높인 묵향은 3년 후 표국 점유율을 6할 대까지 끌어올린다. 이때 소연이라는 소녀를 만나 나중에 수양딸로 삼게 된다. 낙양에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묵향은 그 공을 인정받아 마교 5대 무력 세력 가운데 하나인 천랑대(千狼隊)의 백인장(百人長)으로 임명된다. 그 후, 한 가지 사건을 통해 그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검술을 익히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이에 마교의 지휘부에서는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하달한다. 그것은 당시 무림 최강의 고수들이라고 할 수 있는 3황5제(三皇五帝) 중 한 명인 뇌전검황(雷電劍皇)을 암살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묵향은 뇌전검황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그와 밤을 새워 가며 무공에 대한 담소를 한 후 비무를 벌인다. 결국 비무에서 이기고 뇌전검황을 죽일 때 그의 정체를 묻는 뇌전검황에게 묵혼지주라 불러 달라 말한다. 뇌전검황과의 비무를 통해 그의 검술 실력이 당대 최정상급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그리고 그 공을 인정받아 마교에서는 묵향을 부교주로 임명하게 되지만 교주의 질시를 받게 되는 것 또한 이즈음이다. 왜냐하면 교주가 봤을 때 부하로 부리기에는 묵향의 무공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이다. 마교는 강자지존(强者之尊)의 율법이 지배하는 세계, 묵향보다 무공이 떨어지는 교주로서는 그가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부교주가 된 묵향을 위해 교주의 명으로 현철로 묵향의 상징인 묵혼검과 묵영비가 만들어지고, 묵향의 독립 호위대인 매·란·국·죽의 사군자가 결성된다. 유백은 부교주가 되어 돌아온 묵향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며 기회가 된다면 마존무고에 있는 북명신공을 꼭 보라고 권한다.

그 후, 차분히 무공만 연마하고 있던 묵향은 어느 날 마교 뇌옥을 탈출한 천지문의 제자 세 명이 있다는 말에 신분을 숨긴 채 그들을 도와주다 그중 한 명이 자신의 수양딸인 소연임을 알게 된다. 그들을 마교에서 탈출시켜 주고 소연을 위해 천지문과 마교의 동맹을 맺어 주는 대신 5년간의 근신을 하게 된다.

묵향은 얼마간 수련에 열중하다가 더 이상의 진전이 없자 교주에게 북명신공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북명신공을 익힌다. 그러던 어느 날, 묵향은 사천당문과 마교의 한 분타 간의 분쟁을 해결하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 일을 처리하러 사천으로 가다 우연히 무림맹주의 딸인 옥령인을 납치하게 된다. 옥령인을 앞세워 사천의 일을 원만히 해결하고 마교로 돌아왔을 때, 한 가지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암흑마교의 장인걸이 마교와 합치자는 요청을 해 온 것이다. 이에 마교의 수뇌부는 장고 끝에 암흑마교와 재결합을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조용히 지내던 묵향에게 마교의 교주가 다시 하나의 부탁을 한다. 무림맹주 옥청학의 140세 생일 초대를 받아 마교 교주의 딸인 한영영을 보내는데 그녀가 워낙 안하무인이라 묵향이 동행해 주었으면 하는 부탁이었다.

사실 옥령인이 묵향을 그리워한 나머지 할아버지 생신 때 묵향을 볼 수 있게 해 달라 조른 것이었고, 그 요청을 받은 마교 교주는 한영영을 핑계 삼아 묵향을 보낸 것이다. 무림맹주를 만난 묵향은 담소 중 현경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임무를 마치고 마교로 돌아온 묵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교주의 배신이었다.

교주는 장인걸의 이간질에 넘어가 자신보다 강한 묵향이 적인 무림맹주에게 현경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끼고 묵향을 제거하려 한다. 어느 날, 교주는 묵향을 비밀리에 불러 장인걸이 무림맹주의 두 손녀를 납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며, 그게 사실이라면 그녀들을 구출해 달라고 부탁한다. 장인걸이 그녀들을 납치한 것이 정확한 정보인지 알기 힘들었기에, 교주가 직접 손을 쓰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이미 무림맹 맹주의 손녀 중 옥령인과 인연이 있었던 묵향은 그 부탁을 흔쾌히 수락한다. 장인걸의 거처에 몰래 침투해 그녀들을 구출해 낸 묵향은 사전에 교주와 약속한 장소를 향해 달려간다. 그곳에서 교주는 장인걸 등 마교의 혜성 같은 고수들과 함께 주연을 베풀고 있는 참이었다. 교주는 그 자리로 그녀들을 데리고 오면, 아무런 의심 없이 주연에 참석하고 있는 장인걸을 윽박질러 해치우면 될 거라고 묵향에게 말해 놨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사건은 의외의 반전으로 흘러간다. 묵향과 장인걸이 싸우고 있을 때, 갑자기 교주와 또 다른 부교주 한 명이 묵향을 협공해 왔던 것이다. 묵향으로서는 무방비 상태에서 뒤통수를 맞은 거나 다름없었다. 묵향이 큰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을 때, 그가 보호하고 있던 무림맹주의 손녀들이 그를 암습해 온다. 묵향이 그녀들을 구출하며 건네줬었던 그의 검과 단검을 가지고.

이 모든 것은 음모였다. 묵향을 제거하려는 마교 교주의 제안에 무림맹주 옥청학은 마교의 최고수 하나를 없앨 수 있겠다는 판단에 자신의 손녀딸들을 이용하여 묵향을 암습하게 한다. 묵향은 앞에 포진하고 있는 교주 이하 고수들을 상대로 그녀들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들에게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급습을 받다 보니,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묵향은 단전과 심장에 검상을 입은 채 도망치다 결국 탄령하(嘆靈河)라는 마교 근처를 통과해 흘러가는 거친 강줄기에 몸을 던지게 된다.

전쟁의 장

마교에서 간신히 탈출해 생존하는 데 성공한 묵향. 하지만 그의 몸 상태는 절망적이었다. 지독하게 거친 물살에 떠밀려 내려오는 동안 그의 몸은 여기저기 짓이겨진 상태였고, 더군다나 심장과 단전에 치명적인 상처까지 입은 상태였으니.

대 송제국의 상장군 옥상은 그런 시체나 다름없는 묵향을 낚시 도중 건져 낸 후, 그를 치료해 준다. 하지만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묵향은 자신의 이름마저 기억하지 못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며 왼손마저도 이상하게 붙어 사람들은 그를 병신이라 불렀다.

묵향은 옥상 상장군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며 차츰 몸을 회복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옥상이 의원에게 묵향을 진맥하게 하자 그의 몸에서 점차 막힌 혈도가 뚫리고, 내력이 돌아오고 있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옥상은 묵향의 과거를 궁금해하면서 의원에게 무공을 가르치게 한다.

의원은 묵향이 잘 따르는 옥상의 막내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면 묵향이 따라 배울 거라 생각하고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토납법을 가르치던 중 ‘대자연의 기’라는 말이 나오자 묵향은 본능적으로 북명신공을 기억해 내고, 그의 몸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파괴됐던 단전이 복구되고, 모든 혈도가 뚫린 다음 환골탈태를 거쳐 다시 한 번 정상의 몸이 된 것이다. 모든 걸 다 잊었을지라도, 그의 몸이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옥상은 이런 사실을 자신의 아버지인 옥영진 대장군에게 알린다. 흑풍대의 수장인 옥영진 대장군은 과거 아수혈교와의 전투 때 막심한 피해를 입은 흑풍대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고수를 모집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옥영진 대장군은 묵향을 데려다가 본격적으로 무공을 가르치는데 국화를 광적으로 좋아해 사람들은 묵향을 국광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옥영진 대장군의 도움으로 황궁무고에 들어간 묵향은 2년간 3천여 무공비급을 모두 읽는다. 옥영진은 청성파에서 5년간 수련하고 돌아온 손자 옥항을 제자로 삼아 가르쳐 보라고 한다. 옥항을 가르치다 보면 과거의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무공을 가르치며 소일하고 있던 묵향은, 몽고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옥영진 대장군을 따라 흑풍대에 소속되어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묵향의 매력은 그 장대한 스케일에 있다. 그 당시 중원의 동북방을 주름잡고 있었던 것은 요나라였다. 그리고 차츰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는 몽고도 무시하기 힘든 세력이었다. 그리고 제국의 안전을 위해 이들을 정벌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장군들의 발목을 잡는 간신배들. 그들은 자신의 권력욕에만 집착할 뿐, 대 송제국의 앞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묵향> 소설에서 주인공이 이끄는 주 스토리의 뒷배경에는 이런 거대한 제국 간의 정세가 인과율로서 깔려 있기에, 읽는 맛을 더해 주고 있는 것이다.

송과 요, 고려와 몽고. 이 네 개의 나라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을 때, 그 전환의 기회를 만든 것은 고려였다. 요가 송과의 싸움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먼저 후방을 튼튼히 한다는 목적으로 고려를 침입했는데 그것이 최악의 수가 되고 말았다. 고려에 침입했던 요의 대군이 몰살당하자, 송으로서는 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송은 주력 부대를 이끌고 요를 향해 진격하고 싶었지만, 요와 몽고가 손을 잡으면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기에 군부에서는 몽고를 어떻게 할지 고심하게 된다. 이때, 옥영진 대장군이 1만의 보병만 지원해 준다면 자신이 몽고를 토벌하겠다고 장담한다.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묵향은 옥영진 대장군과 함께 몽고 벌판으로 달려가게 된 것이다.

옥영진 대장군이 거느린 것은 흑풍대 1만 기(騎)와 보병 1만 명이 고작이었다. 그는 이 제한된 병력만으로 몽고의 제왕이 거느린 10만 이상에 달하는 거대한 세력과 싸워 나간다. 묵향은 옥영진 대장군의 골칫거리인 찬황흑풍대 사륙 백인대장이 되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같이 할 수하들인 마화와 임충을 만나게 된다. 묵향의 활약으로 11만의 몽고군 중 9만을 섬멸하며 초전을 승리로 장식한다.

몽고의 마을로 간 묵향은 과거 소연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하부르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이상한 감정을 느껴 그녀를 하녀로 삼는다. 전투가 계속되면서 묵향은 어검술을 되찾게 되고, 어검술로 1대 1천의 대결을 승리로 이끈다. 몽고족은 철진천을 중심으로 12만 대군을 만들어 대항하지만 옥영진 대장군은 찬황흑풍대를 이용해 전투에 참여한 부족에게는 잔인한 공격을 가해 몽고 부족의 연합된 힘을 깬다.

몽고와의 전쟁이 서서히 막을 내릴 때 마교에서 묵향이 아직 살아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기억을 잃어버려 예전의 무위까지는 아니지만 만약 기억을 되찾아 예전의 무위가 되살아난다면 마교에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판단, 묵향 암살 작전을 시행한다.

옥영진 대장군의 위상이 높아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던 간신 엄승과 묵향의 생존을 눈치 채고 호시탐탐 그를 끝장낼 기회를 노리고 있던 마교가 손을 잡은 것이다. 그들의 기습 작전은 철저하기 그지없었다. 마교에서는 묵향이 동자공을 익혔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음희 설약벽을 보내 그를 유혹하고, 그의 뒷배를 봐 주는 옥영진 대장군을 없애려고 한다. 하지만 묵향은 동자공을 익힌 것이 아니었다.

뒤늦게 설약벽에게서 그런 사실을 알게 된 묵향은 옥영진 대장군의 집으로 가지만 옥영진은 이미 규화보전을 익힌 해공공에 의해 숨진 상태였다. 분노한 묵향은 쳐들어온 마교 천랑대의 천랑검진을 황궁의 미완성 무공인 파황천류도를 시전하여 박살을 낸다. 하지만 예전의 몸 상태가 아닌 묵향이었기에 곧 위기에 빠진다. 능비계와 해공공은 묵향이 기억을 되찾기 전에 죽이려고 추적을 하고, 도망을 가다 물에 빠진 묵향은 그제야 예전의 기억을 모두 되찾고 북명신공을 이용해 주위의 대지로부터 공력을 흡수한다.

마지막 순간에 기억을 되찾은 묵향은 자신을 죽이러 온 마교 세력들을 오히려 자신의 부하로 삼아 버린다. 그가 자신은 외인(外人)이 아니라 마교의 한식구임을 밝히고, 현 상황은 교주와 자신 간의 세력 다툼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약육강식, 강자지존의 율법을 지키는 마교는 능력만 있다면 쿠데타를 인정하는 집단이다. 그렇기에 묵향이 교주가 되겠다는 야심을 천명한 이상, 그 밑에 있는 마교의 고수들은 교주와 묵향 둘 중 하나를 택할 자유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묵향은 자신을 이 모양으로 만든 교주와 장인걸 부교주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혼돈의 장

묵향은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염왕대를 흡수한 후, 옥영진 대장군의 관저에서 3백 리 떨어진 흑룡문을 접수하여 거처로 삼는다. 묵향은 곧 커다란 세력을 원활하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모사(謀士)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천마문의 문상이었던 설무지를 영입한다. 그러면서 살아남은 찬황흑풍대의 잔존 세력을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인다. 자신의 무공이 천하제일일지는 모르지만 한 손이 여러 손을 당하지 못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력 확장에 최선을 다한다.

이쯤 되자 무림의 모든 이목이 묵향에게 집중된다. 그러나 묵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무림을 휘젓고 다닌다. 그러다가 정보 단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살막을 흡수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거절당하고, 하오문의 총타가 있는 구산 천영루를 찾아가기로 한다. 살막에서는 묵향이 하오문을 흡수하게 되면 살막의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는 필사적으로 묵향을 추적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묵향은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검을 우연히 본 뒤 그 검을 가진 사람을 몰래 따라간다. 검의 주인이 검을 뽑자 그 검이 자신의 사부 유백의 명옥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묵향은 검을 누구에게 얻었냐고 물어본다. 그는 자신에게 10년 동안 검술을 가르쳐 준 사람에게 받았다고 하자 묵향은 그 사람의 이름을 묻는다. 이름은 모르고 별호가 독고구패라고 대답하는 명옥검의 현 주인.

묵향은 독고구패가 자신의 사부를 죽이고 명옥검을 빼앗아 물려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부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 검의 주인을 잡아 모진 고문을 가한다. 그냥 쉽게 죽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독고구패와 자신의 사부 유백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백은 묵향이 죽었다고 오해를 하고 마교를 나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자신의 검법인 무형검법이 사라질까 봐 새로운 제자를 받아들인 것이다.

묵향은 그 검의 주인과 한 번 겨루어 보고는 사부에게 제대로 배웠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독고구패의 마지막 제자 묵향이란 것을 밝힌다. 묵향은 여기서 유백이 몹시 괴로워하다가 숨을 거뒀다는 말을 듣게 된다. 묵향에서의 설정은 정파 무공은 내력이 조금씩 오르지만 안전하고, 마공은 단시간 내에 급격하게 내력이 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마공의 단점은 어느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죽을 때 내공이 흩어지며 엄청난 고통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겨 기억만 잃지 않았다면 사부를 그렇게 죽게 만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묵향은 너무나 괴로워한다. 현재 묵향의 실력이면 별 고통 없이 사부의 내공을 없애 버리고 북명신공을 이용해 죽을 때 고통스럽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공력을 채워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부를 극마의 경지에 오르게 해서 오래 살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최악의 경우 사부가 고통받지 않고 죽도록 한 번에 베어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어릴 적 기억이라고는 끌려와 혹독한 훈련만을 받았던 기억밖에 없는 묵향으로서는 자신의 진전을 아낌없이 전해 주며 관심을 주던 사부 유백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옆에 없었기에, 더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옆에 있었기에 묵향이 가장 존경했던 사부는 내공이 깊은 만큼 장시간의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는 걸 마교에서 자라난 묵향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묵향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부를 잃었다는 슬픔에 젖어 지내던 중 또 한 명의 현경 고수인 전진의 혈마를 만나게 된다. 그와의 만남에서 많은 것을 깨달게 된 묵향. 그리고 묵향의 뒤를 추적하던 살막은 묵향에게 자신들을 받아 줄 것을 요청한다.

섬서분타로 돌아온 묵향은 마교 교주로부터 양녀로 삼은 소연을 잡고 있다는 말을 듣지만 묵살하고 전면전을 벌일 것을 선포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비무대회를 열고 강자들만 골라서 포섭한다. 묵향은 혈마를 만나 자신이 현경의 경지에 오르고 너무 자만에 빠졌다는 것을 안 뒤 수련을 다시 시작한다.

그러던 중 마화의 부탁으로 진영 공주의 호위를 맡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진영 공주가 묵향을 핍박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일로 묵향은 진영 공주에게 복수할 마음을 먹게 된다. 묵향은 진천왕이 공주를 노리고 있음을 이용하여 공주를 빼내 온갖 생색을 내며 괴롭힌다.

진천왕의 살수들이 습격을 해 오자 경공만 잘하는 표사 역할을 하며 진영 공주의 진을 다 빼놓는다. 실컷 분풀이를 한 묵향이 진천왕의 마수에서 빠져나와 진영 공주를 무사히 어림군 사령부에 인도할 때 진영 공주는 자신이 그동안 당한 걸 복수하기 위해 1만 어림군에게 묵향을 잡으라는 명을 내린다.

하지만 묵향은 오히려 진영 공주를 볼모로 삼아 오뉴월 개 패듯 두들겨 패 버린다. 어림군은 공주가 묵향 손에 잡혀 있었기 때문에 감히 손도 못쓰고 공주가 두들겨 맞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공주 신분에 맞는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공주가 울면서 살려 달라고 빌자 그제야 겨우 묵향은 공주를 용서해 준다.

한편 마교 교주는 자신이 장인걸의 꾀에 넘어가 묵향을 축출했다는 것을 깨닫고 묵향에게 장인걸의 손이 미치지 않은 마교의 세력 일부를 보낸다. 마교 교주는 그 후 마교 제일의 무력 단체인 천마혈검대까지 보내려 하지만 이미 그 수장인 구양운 장로는 장인걸의 편이 된 뒤였다. 교주의 행동을 알아차린 장인걸은 함정을 파서 교주와 무림맹주를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장인걸은 교주와 그의 가족을 인질로 삼아 어찌 보면 마교에서 가장 막강한 고수 집단인 원로원의 독수마제가 마교에 개입하려는 것을 막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때 정파에서는 무림맹주가 실종이 되자 신임 맹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세력 간의 신경전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복수의 장

묵향은 세력의 확장을 위해 실력이 뛰어나지만 소속된 방파가 없는 고수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을 포섭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던 와중에 살수 흑월야사 전룡의 암습을 받는다. 전룡은 만독불침인 묵향에게 독한 몽혼약에 춘약과 산공분을 섞어서 묵향의 엉덩이를 찌른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일대일 대결을 한 묵향은 전룡을 꺾고 정신을 잃는다. 전룡의 실력을 높이 산 묵향은 그를 죽이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그를 수하로 삼는다.

한편 장인걸은 꿈에도 그리던 마교 교주로 등극하고 마교를 완전히 장악한다. 하지만 이미 상당수의 세력이 묵향 쪽으로 넘어간 뒤라 온전한 마교가 아니었다. 이에 장인걸은 묵향을 이용해 정파 무림을 칠 계획을 세우고 그를 포섭하려 한다.

묵향은 장인걸과 손을 잡는 척하며 마교 본산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문파를 소리 소문 없이 점령하여 3백 리마다 하나씩 보급기지를 만들면서 착실히 마교를 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장인걸의 제의를 수락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정파의 몇몇 방파를 치는데 이에 장인걸은 인질로 잡혀 있던 묵향의 양녀 소연을 돌려보낸다.

정파의 최강 정보 수집 단체인 무영문의 너구리 옥화무제는 무영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묵향에게 정략결혼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녀 매영인을 인질로 주면서까지 묵향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황제가 죽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2황야를 빼돌려 그를 황제로 앉힐 계획을 세운다. 묵향은 설무지와 함께 마교 본산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때, 마침 정파에서 섬서분타를 공격한다는 정보가 입수된다.

위기를 느낀 장인걸은 원로원의 수장인 독수마제에게 묵향이 마교의 일에 외부 세력을 끌어들였다고 도움을 청하지만 마교의 율법은 바로 힘. 독수마제는 묵향이 자신보다 강하고, 또 흑풍단은 이미 해체되어 버린 단체이니 상관없다면서 자신을 비롯한 원로원은 개입하지 않겠다고 중립을 선언한다. 결국 장인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망친다.

도망치는 장인걸을 묵향은 더 이상 쫓지 않는다. 자신이 강한 만큼 자부심도 대단했기에 장인걸 정도는 언제든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자지존이 원칙인 마교는 묵향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로서 마교 내의 모든 크고 작은 일은 군사 설무지에 의해 입안되고, 수석장로 여지고를 통해 실행되게 된다.

묵향이 교주가 된 후, 교주가 지니고 있던 막대한 권한을 상당 부분 수하들에게 이양한다. 장로원의 권한을 크게 만들어 자신이 없어도 아홉 명의 장로가 설무지와 내·외총관과 협력하면 문제없이 마교를 이끌어 가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묵향의 성격상 복수를 하기 위해서 세력이 필요했었을 뿐, 그 외에 다른 것은 흥미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복수를 끝마친 이상 그의 관심은 오로지 무공으로만 집중됐다.

기분전환 겸 유유히 여행을 다니던 묵향은 우연히 한 객잔에서 전설적인 고수 구휘가 묻혀 있다는 무덤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그 무덤에는 흑묵검과 북명신공이 있다는 소문이었다. 구휘는 무림 역사상 최강자로 꼽히는 전설적인 고수로 북명신공은 그가 천하를 떠돌며 모은 무공과 그동안 깨달은 심득과 합해 적은 비급이었다. 북명신공은 원래 두 권이었고, 한 권은 자신의 아들에게 맡겼지만 다른 한 권은 품속에 지니고 있었다는 말과 함께.

묵향은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사람들을 몰래 따라가기 시작한다. 놈들을 10일이나 따라가 철우산에 도착했고, 그는 그곳에서 함정에 빠진다. 사실 구희의 무덤은 장인걸과 혈교가 묵향을 꾀어내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었고, 그곳에는 수많은 혈교의 고수들과 장인걸이 보유한 비장의 무기인 천령강시들이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묵향은 어검술로 하나씩 차분히 적들을 없애 나간다. 묵향에게 강시들이 차례차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본 장인걸은 대천악마나진의 발동을 명령한다. 대천악마나진은 마교의 1천 년 역사에서 단 두 번밖에 사용되지 않았던 전설적인 진세로서, 마기와 요기를 지닌 인물에게는 힘을 보태어 주고, 그렇지 못한 인물들은 평상시 힘의 반도 못 내게 만드는 그런 무서운 진세였다.

하지만 미처 장인걸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묵향 또한 마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오히려 대천악마나진 안에서 더욱 힘을 얻었고, 결국 강시들을 모두 다 파괴해 버리는 데 성공한다.

전세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자, 혈교도들이 앞으로 나선다. 혈교의 3백 명 고수 중에 혈교 교주와 1백 명 고수가 이상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나머지 2백 명은 묵향이 도망치지 못하게 옭아매는 주문을 외운다. 혈교가 자랑하는 최고, 최강의 주문인 묵령시분술을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묵향은 그 진세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가 거기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묵령시분술이 발동한다. 혈교 교주나 장인걸 등은 묵향의 시체도 남기지 않고 없애 버리는 것에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묵령시분술은 상대를 죽이는 술법이 아니라 상대를 차원 이동시켜 버리는 마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묵향은 검과 마법이 난무하는 판타지의 세계로 떨어지게 된다.

단, 4권이라는 분량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에 무협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호쾌함이 묻어나는 <묵향> 1부. 어쩌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배제하고 굵은 획을 긁듯 이끌어 나간 스토리가 독자들의 환상을 극점까지 끌어올렸는지 모른다. 1부를 읽다 보면 아직 끝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제2부 외전 : 다크 레이디

묵향, 판타지 세계로 가다

혈교와 장인걸의 음모로 낯선 세상에 떨어진 묵향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두 개인 것을 보고 이곳이 자신이 살던 무림이 아닌 것을 마침내 알아차린다. 4일 밤낮을 달려 인가를 발견한 묵향은 그곳에서 만난 여자 아이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묵향은 말이 통해야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먼저 말부터 배우기로 작심한다.

묵향은 이곳에서 생활하자면 상대편이 발음하기 편리한 이름이 하나 있어야겠다는 것을 깨닫고, 묵향과 뜻이 비슷한 다크라는 이름을 짓고는 블레어 가족들과 생활한다. 그 후 2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이곳 언어를 어느 정도 익히고, 또 약간의 돈까지 저축한 다크는 마침내 무림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블레어 가족을 떠난다.

다크는 여행 도중에 용병인 팔시온 일행을 만나 그들과 합류하게 된다. 그는 팔시온 일행과 다니며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의 많은 정보를 알게 된다. 용병이라는 직업 자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생명을 담보로 돈을 버는 직업이었기에 아는 것이 많았던 것이다.

평화롭게 여행하던 것도 잠시, 그들은 우연히 한 가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 결과 악당들을 해치우고 기억이 봉인된 예쁘장한 여자 아이 한 명을 구하게 되는데 그녀의 이름은 라나였다.

2주간의 여행 끝에 트루비아의 수도 샤헨에 도착한 다크 일행은 샤헨 아카데미를 찾아간다. 다크는 그곳에서 자신이 당했던 진법을 도형으로 설명하며,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떨어졌다고 말한다. 이에 마법사는 그건 차원 이동 마법으로,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것은 쉽지만 특정 차원으로 되돌아가기는 힘들다며 다크가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대답을 해 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크는 절망하지만 하나의 위안도 있었다. 자신이 차원 이동을 해서 왔기 때문에 다시 차원을 넘어 자신이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샤헨 아카데미에서 마법사의 도움으로 기억을 되찾은 라나는 자신이 악당들에게 빼앗긴 물건이 ‘드래곤 하트’라는 것을 밝힌다. 우여곡절 끝에 트루비아의 근위 기사단장 시드미안의 요청으로 드래곤 하트를 되찾는 일을 떠맡게 된 팔시온 일행. 다크는 그 일에 동참하는 조건으로 라나와 헤어질 것을 요구한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끝까지 따지고 들며 재수 없게 말을 찍찍 내뱉는 라나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근위 기사단장 시드미안이 합류하여 더욱 전력이 증대된 상태에서 용기백배하여, 그들은 드래곤 하트를 훔쳐간 자들의 흔적을 쫓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잊혀져 버린 어떤 마법사의 폐가에서 다시 라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라나와 다크의 감정싸움이 다시 시작된다.

이때 일행들은 그 폐가의 지하에 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던전을 탐험해서 그곳에 숨겨져 있는 마법 서적 등을 발견해 낸다. 고위급의 마법 서적이나 연구서는 대단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었기에, 그들로서는 희희낙락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악당들의 두목이라고 할 수 있는 토지에르와 그의 제자가 등장한다. 토지에르는 5사이클 최강 마법으로 다크를 공격하지만 그게 통하지 않자, 나중에는 기사단에 연락하여 최강의 마법 병기인 타이탄까지 동원해서 공격을 가한다. 하지만 다크는 검 하나로 공격에 동원된 로메로급 타이탄들 중 한 대를 박살 내 버리고, 적들은 재빨리 후퇴해 버린다.

작전이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은 토지에르는 다크가 적국인 코린트에서 보낸 소드 마스터인 줄 알고 없애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마스터급의 검객을 없애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토지에르는 혹시나 하고 상대에게 저주를 걸기로 한다. 그전에 다크와 싸웠을 때, 상대가 검술은 강하지만 마법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점을 떠올렸던 것이다.

토지에르의 예상대로 다크는 어이없게 저주에 걸려 버린다. 그것도 최악의 저주라고 불리는 디스라이크에 말이다. 디스라이크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대상으로 변하는 저주다. 그때 다크는 라나와 함께 다니며 한참 그녀와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에 대한 짜증과 혐오가 극도에 이른 상황이었기에, 다크는 어이없게도 라나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아마도 그녀가 없었다면 다크의 모습은 장인걸의 그것으로 바뀌었겠지만…….

토지에르의 저주로 인해 검술의 궁극을 이론상으로만 완벽히 터득한 어린 여자 애가 되어 버린 다크. 팔시온 일행 중 미디아와 옷을 사러 간 다크는 남자 옷을 원하지만, 미디아는 다크에게 여자 옷을 입히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여자 옷을 주문한다. 다크는 옷을 벗지 않으려고 반항하지만 미디아의 “계속 반항하면 기절시켜서 벗긴다”는 말에 체념을 하고 만다. 천하를 오시하며 수많은 고수들을 수하로 거느렸던 다크가 그런 협박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에 다크는 매일 술을 마시며 지낸다.

토리아의 수도로 간 다크 일행은 아데나 신전을 찾는다. 아데나 신전은 신탁으로 유명한 곳이니만큼, 드래곤 하트의 행방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크의 저주를 풀기 위해 축복도 받아 보지만, 다크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아데나 신전에서 신탁을 통해 얻어낸 것은 머리에 뿔이 세 개 달린 청색 괴물이 그려진 그림이다. 그것을 보고 일행은 블루 드래곤을 떠올린다. 그 외에는 뿔이 세 개나 달린 위압적인 모습의 괴물을 생각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을 알아내려면 블루 드래곤을 만나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한 일행은 알카사스로 향한다.

한 달 후, 알카사스에 도착한 일행은 공간 이동을 통해 미네온으로 이동을 하고 미네온의 마법사 길드로 향한다. 마법사 길드를 찾아가서 노마법사를 만나 저주를 풀 방법을 물어봤지만 그 저주, 즉 디스라이크는 시전자밖에는 풀 수 없다는 것을 듣고 다크는 또다시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 마법사는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한 번 간 길을 다시 가기는 쉬운 법이라는 조언을 해 준다.

그 말에 힘을 얻은 다크는 예전에도 끈기와 집념만으로 현경의 경지를 이루었는데, 지금이라고 다시 못 할 이유가 없다 생각하고 예전 무공의 3할이라도 찾기 위해서 다시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한다. 그 처음 단계로 다크는 태허무령심법을 이용하여 기초를 다지기 시작한다.

드래곤 하트의 행방을 찾아 블루 드래곤 키아드리아스를 찾아간 일행은 그곳에서 키아드리아스 대신 카렐이라는 엘프를 만나게 된다. 그에게 블루 드래곤의 생김새를 물어본 결과, 뿔이 세 개가 아니라 한 개임을 알고 일행은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또 한편으로는 암담함을 느낀다. 목숨을 걸고 이곳에 온 것이 헛걸음이었던 것이다.

이때 다크는 가녀린 몸매를 하고 있는 카렐이 엄청난 실력을 보유한 검객이란 걸 알아봤고, 카렐 또한 다크가 범상치 않은 인간임을 느낀다.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 둘은 마음이 통했고, 다크는 자신에게 있었던 비극적인 일들을 카렐에게 솔직히 이야기한다.

카렐은 다크에게 힘을 되찾은 후 한번 겨뤄 보자는 뜻을 전하면서,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선물한다. 겉으로 봤을 때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반지지만, 이 반지야말로 물의 정령왕 나이아드를 봉인해 놓은 전설의 반지였다.

다크, 나이아드의 힘을 얻다

다크 일행은 신탁으로 받은 그림이 마왕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미네온 마법사 길드를 찾는다. 그들은 그곳에서 흑마법에 정통한 인물을 찾고, 그곳에서 한 노마법사를 소개받는다. 노마법사는 신탁의 그림을 본 후, 그것과 가장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어둠의 대마왕 크로네티오’라고 알려 준다.

흑마법의 설명을 들은 다크는 하위 마신의 흑마법으로는 상위 마신과 계약을 맺은 자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게 크로네티오보다 더 강한 마왕을 불러 달라고 부탁한다. 그 마왕과 계약하는 것으로 저주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마법사는 놀라운 얘기를 해 준다. 마왕과 계약하여 흑마술사가 되면, 그 시점부터 점점 마성이 자라나 일정 시간 후에는 영혼이 마왕에게 완전히 먹혀 버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편 코린트에서는 트루비아에서 드래곤 하트를 도난당한 사건의 조사가 진척이 없자, 자신들이 직접 개입하기로 결정한다. 발렌시아드 대공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마법사 지오네는 부하들을 이끌고 시드미안을 찾아온다. 그는 그곳에서 시드미안에게서 지휘권을 넘겨받고, 삼류 용병쯤으로 생각한 다크 일행을 즉석에서 해고한다.

코린트에서 드래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나와 지오네 일행은 다시 키아드리아스를 만나러 가게 된다. 시드미안은 이미 블루 드래곤 키아드리아스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지만, 지오네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사실은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키아드리아스가 살고 있는 그레이시온 산맥으로 간다.

한편, 지오네로부터 해고된 팔시온 일행은 따로 떨어져서 어디로 갈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 틈을 이용하여 미디아는 다크를 데리고 마법 상점으로 가 장갑을 하나 선물한다. 바로 근력 증가의 마법이 걸려 있는 마법 도구였다. 두 배의 힘을 낼 수 있는 이 장갑은 지금의 다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라 생각되어 일행들이 의논해 선물한 것이다.

토지에르는 시드미안이 일행을 부른 것처럼 유인해서 다크 일행을 사로잡는다. 다크는 자신을 여자로 만든 토지에르를 보고 화가 나서 공격하지만 여자로서는 역부족. 다시 사로잡히고 만다. 토지에르는 다크가 예전에 자신이 저주를 건 그 소드 마스터라는 것을 알고 기억을 봉인하려 하지만,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자 자세히 조사해 본다. 그 결과 그녀의 손가락에 끼여 있는 최강급의 아이템, 아쿠아 룰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에 토지에르는 다크를 죽이기보다는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키아드리아스를 만나러 간 지오네 일행은 엘프 카렐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보물에 눈이 먼 지오네와 그의 부하들 때문에 스톤 골렘들이 깨어난다. 이때, 집으로 돌아온 카렐은 스톤 골렘들을 보고 분노한다. 그 골렘들은 집 안의 물건을 훔쳤을 때만 깨어나기에, 저들이 도둑질을 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카렐은 엘프답지 않게 곧바로 타이탄을 꺼냈고, 공간을 가르고 모습을 드러낸 타이탄은 골든 나이트였다. 드워프와 엘프가 공동 제작한 세상에 단 한 대밖에 없는 전설적인 타이탄으로, 단숨에 지오네와 그 부하들을 모두 해치워 버린다. 물론 시드미안과 그의 부하는 자신에게 반항하지 않았기에 살려 준다.

다크를 회유하려는 토지에르는 감금 생활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지내는 다크에게 세린이라는 묘인족 노예를 붙여 준다. 토지에르 나름대로는 다크를 회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게 다크의 마음에 들 리 만무했다. 자신의 몸을 이 모양으로 만든 원흉이 바로 토지에르였으니 말이다.

그다음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과거 코린트와 어깨를 겨룰 수 있을 정도의 대 제국이었다가 몰락해 버린 크라레스 왕국이 그 판도를 넓혀 가는 과정이다. 크라레스가 가장 먼저 선택한 제물은 바로 남쪽에 있는 스바시에 왕국이다. 비밀리에 숨겨 두고 있는 기사단까지 있었기에 스바시에 왕국쯤은 단숨에 점령해 버릴 저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크라레스 왕국은 자신들의 힘이 밖으로 드러나기를 원치 않는다. 자신들이 복수를 꿈꾸고 있다는 걸 코린트 제국이 눈치라도 채는 날에는 곧바로 멸망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크라레스가 스바시에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 왕궁에 배속된 병력을 밖으로 돌렸을 때, 다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탈출을 감행한다. 그녀는 탈출하던 도중에 크라레스 왕국 최고의 비밀 병기인 청기사와 만나게 되고, 계약을 맺게 된다. 최선을 다해 도망쳤지만, 결국 그녀는 탈출에 실패하고 도로 붙잡혀오게 된다.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온 다크는 그곳에서 세린의 손발에 나 있는 멍 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다크의 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한 세린이 문책당한 자국이었다. 울고 있는 세린을 토닥거리며 다크는 탈출을 포기한다. 힘이 없는 상태에서 탈출하면 어떤 꼴이 되는지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드디어 크라레스 왕국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스바시에 왕국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크라레스는 자신들의 속셈을 숨기기 위해, 스바시에와의 전쟁에서 자신들이 지닌 전력을 몽땅 다 쥐어짜서 투입한 것처럼 꾸며, 코린트를 속이는 데 성공한다. 그 결과 크라레스가 스바시에를 멸망시켰지만, 모두들 크라레스가 간신히 이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스바시에의 구원 요청에 응했다가, 파견했던 타이탄들을 몽땅 다 상실해 버린 이웃 왕국 치레아 역시 머지않아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그때 잃어버린 군사력을 보충할 여력이 없었던 탓이다.

한편, 다크는 크라레스의 국왕을 만나고, 국민들을 위하는 소박한 국왕의 인품에 매료된다. 자신을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국왕. 다크는 그 요청을 받아들인다. 그 결과 다크는 크라이드 남작으로 봉해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여자의 몸이라는 것을 서서히 인정하면서도, 남성인 자아와 여성인 육체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다크. 하지만 그는 평소의 성격대로 더 이상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대범하게 넘겨 버린다.

스바시에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크라레스는 승전 무도회를 여는데 그곳에서 다크는 코린트의 기사 까미유를 만나게 된다. 다크가 뛰어난 정령술사라고 오해한 까미유는 그를 납치하기 위해 한바탕 난리를 친다.

정령왕 나이아드를 봉인한 반지를 얻은 것이 행운이었을까? 아니면 불행이었을까. 나이아드는 자신과 인간계를 연결해 주는 약속의 매개체인 아쿠아 룰러를 소유할 만한 자격이 다크에게 있는지 시험한다. 그 시험은 너무나도 처절하다. 매일매일 죽도록 고생하던 다크는 천천히 무공을 회복하던 것을 포기하고, 가장 급진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힘들었기에 무리수를 둔 것이었다.

다크는 마교 최고의 속성심법인 천마구령심법에다가 북명신공까지 혼합해서 단 일주야의 수련으로 환골탈태를 이루어 낸다. 하지만 너무 심한 무리수를 둔 덕분에 다크는 마기(魔氣)가 골수까지 뻗어 이미 이성을 상실해 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폭주하지는 않고 있는 상태, 그 상태에서 시내 구경을 하던 도중 미쳐 버린 다크. 그녀를 막기 위해 소드 마스터인 루빈스키 공작이 나서게 된다. 루빈스키 공작은 이 상황을 진압하기 위해 자존심까지 던져 가며 3대 1로, 그것도 타이탄까지 동원해서 간신히 다크를 제압한다.

이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아르티어스. 거대한 말토리오 산맥을 통째로 자신의 안방으로 삼고 있는 골드 드래곤이다. 그는 한눈에 다크가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가 아쿠아 룰러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녀를 자신에게 넘겨줄 것을 요구한다. 정령왕의 반지가 악한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생각이었다. 처음 의도는 어떻든 간에 이런 사정으로 인해 희대의 고수와 골드 드래곤이 한 집에서 살게 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