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자 다크 일행은 조촐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내일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뭐? 벌써 가려고?”
“이제 더 이상 할 일도 없잖아. 후작 녀석이 처형되는 것도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했고, 융숭한 대접도 받았으니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
“하지만 미카엘이 아버지하고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가자고 하는 건 너무하는 것 아냐? 그리고 미카엘에게 들으니까 사흘 후면 어머니 기일이라고 하던데 말이야. 성묘라도 할 만한 시간 여유를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팔시온의 말을 듣고 다크는 미카엘에게 즉시 질문을 던졌다.
“너, 솔직히 말해 봐. 여기에 남을 거야? 아니면 우리와 함께 갈 거야. 어떻게 하고 싶어?”
다크의 노골적인 질문에 미카엘은 당황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그, 글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20년쯤 전에 집을 나왔다는 것은 팔시온으로부터 들었어. 하지만 내가 들어 보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전에는 아주 원망스러웠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많이 늙으셨더군. 아버님이 마스터인 것은 알고 있지만, 왠지 몸이 예전보다 많이 안 좋아지신 것 같아서 눈물이 나더라.”
미카엘은 자신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난 근육질이었던 로체스터 공작의 몸이 예전보다 많이 말랐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사실 그것은 몸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로체스터 공작의 검술이 그만큼 더 발전했다는 것을 뜻한다는 걸 그는 모르고 있었다. 팔시온은 미카엘이 분위기를 잡고 얘기하자, 유쾌했던 술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투덜거렸다.
“짜식! 너 변한 건 생각 안 하냐? 그동안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말이야. 너 처음에 만났을 때 얼마나 가관이었는지 아냐? 비쩍 말라서는 오크 한 마리도 제대로 상대 못해서 헤매고 있던 것을 구해준 게 엊그제 같은데, 어휴∼ 지금은 그래듀에이트? 나를 따라다니면서 참 많이 컸지.”
팔시온의 말에 미카엘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부끄러운 과거를 왜 낱낱이 들춰내는 것인가? 그것도 여태껏 다크가 모르도록 아주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었는데 말이다. 미카엘은 발끈해서 말했다.
“웃기지 마, 새꺄! 네가 나한테 뭐 해 준 게 있다고 그래. 네가 보수가 좋은 데다 실전 경험까지 쌓을 수 있어서 일거양득이 된다고 꼬드기는 바람에, 로우니 산맥의 오크 토벌전에 참전했다가 하마터면 몽둥이에 맞아 죽을 뻔했지. 그뿐이야? 역시 기사의 힘은 근육에서 나온다고 해서 한 달 동안 성벽 보수 작업장에서 벽돌 나른다고 허리가 휘도록 죽을 고생을 했더니, 세상에, 그 돈을 몰래 훔쳐내서 술값으로 탕진한 놈이 누구였지?”
“짜식! 쫀쫀하게, 그런 건 잊어버려. 그리고 남자의 로망은 근육이야.”
팔시온은 자신의 근육들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말했다.
“이 우람한 근육질을 보면 여자들이 뿅뿅 가잖아? 그때의 아픔이 없었다면 그 몸매가 만들어지는 줄 알아? 다 나 같은 훌륭한 동료를 만난 덕인 줄 알아야지.”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르티어스가 한심하다는 듯, 팔시온의 뒤통수를 갈기며 이죽거렸다.
“그딴 비곗덩어리는 오크 때려잡는 데나 필요하지, 정작 검술의 궁극을 익히는 데는 방해만 된다는 것을 몰라? 이런 머저리 같은 것들. 다크를 봐라.”
팔시온 일행의 눈이 다크에게로 모아질 때, 아르티어스는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필요 없는 근육은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잖아. 최적화된 몸매라는 것은 저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지. 대가리 속까지 비곗덩어리가 가득 찼으니 알 도리가 있나? 쯧쯧.”
“아야야야. 그런 말씀 마시라구요. 저런 새 다리같이 가는 게 근육입니까? 역시 근육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죠.”
팔시온은 옆에서 가만히 술을 홀짝거리고 있던 미디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남자들도 혀를 내두르는 저 오우거 같은 파워, 강하고 민첩한 검술도 근육이 아니면 어디서 나온다는 말입니까? 마나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역시 그 밑바탕은 근육이죠. 어르신은 마법만 쓰시니까 그걸 모르시는 거라니까요. 하기야 검이라고는 한 번도 휘둘러 보지 않으신 분이 어찌 그걸 아시겠어요?”
미디아는 팔시온이 자신의 강점이자 최대의 약점을 지적하자, 기분이 상한 듯 투덜거렸다.
“그래, 나는 여자의 탈을 쓴 오우거다, 왜, 보태 준 거 있냐? 가만히 있는 남의 아픈 데를 왜 건드렷! 젠장!”
팔시온의 완강한 저항에 아르티어스는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 이 자식이? 요 며칠 전부터 갑자기 뭘 잘못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는 말에 슬슬 딴지를 건단 말이야. 젠장, 그때 교육이 좀 약했나?”
낮은 소리로 중얼거린 것이었지만,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팔시온이 그 말을 못 들었을 리 없었다. 팔시온은 이제 될 대로 되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헤헷! 좋을 대로 하십쇼. 그래,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마음대로 하시라 이겁니다. 그런다고 해서 내가 설설 기면서 기죽을 줄 아셨습니까? 싸·나·이 팔시온,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는다 이겁니다. 흥!”
“그만 좀 해요, 아빠.”
아르티어스는 다크의 짜증을 동반한 말 한마디에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입을 닫았지만,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오늘 저녁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미카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사실 미카엘은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많은 혼란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르티어스의 얼굴을 보자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옳은 결정이 무엇인지 곧장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말했다.
“나, 나 남을 거야. 아무래도 그게 좋겠어.”
그 말에 열심히 눈치를 살피던 가스톤이 미카엘에게 말했다. 재빨리 회전하는 마법사의 머리는 이 극악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제공해 줬던 것이다.
“혹시 여기 나도 같이 남으면 안 될까? 나 일 잘해. 그리고 열심히 할게. 치레아에서도 봤잖아. 짜증스러운 서류 작업이 바로 내 전공이잖아? 그리고 그것 말고도 머리 쓰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다 할 수 있다구.”
미디아도 재빨리 끼어들었다.
“나도 남으면 안 될까? 나도 열심히 할게. 로체스터 공작께 잘 말씀드려 줘.”
동료들이 다 떠난다는 말에 그제야 기가 팍 죽어 버린 팔시온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나, 나는?”
그 말에 미카엘을 비롯한 가스톤과 미디아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너는 안 돼!”
미카엘은 밤하늘의 달을 보며 울적한 마음을 씻어 내고 있었다. 적당히 오른 취기에다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밤. 달 하나는 중천에 걸려 있었지만, 다른 하나는 새벽이 오려면 멀었는데도 벌써 지고 있었다. 20년이나 정들었던 친구들과 이제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서로 악의 없이 싸우고, 웃고, 도와가며 수많은 모험을 했었다.
“지금 헤어지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남는다고 결정은 했지만, 크라레스와 코린트가 서로 적국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미카엘이었다.
“뭐, 괜찮겠지. 다크가 있으니까 말이야.”
애써 자위하고 있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미카엘이 뒤로 재빨리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는 다크가 서 있었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 있는 그녀는 아련한 달빛 아래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미카엘의 시선이 홀린 듯이 위에서 아래로 슬며시 이동하며 그녀를 훑어보다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검에서 멈췄다. 검을 바라보는 그 순간, 미카엘은 그녀가 누군지를 깨달으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무, 무슨 일이야?”
“으응, 오랫동안 함께 생활했는데, 그냥 떠나보내려니까 아무래도 아쉬움이 있어서 말이야. 한 가지 선물을 줄까하는데 괜찮겠어?”
그 말에 미카엘은 호기롭게 대답했다.
“나야 공짜라면 뭐든지 좋지.”
“그래? 그렇다면 이렇게 앉아 봐.”
다크는 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말했다. 미카엘은 다크가 수련을 한답시고 설칠 때 취했던 자세였음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 자세를 최대한 흉내 내어 앉았다. 다크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이건 과거 내가 살았던 곳에서 마나를 수련할 때 취하는 기본적인 자세야. 물론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그런 자세를 꼭 취할 필요는 없어지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거야.”
다크는 미카엘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잠깐만 참고 있어. 그리고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돼.”
순간적으로 미카엘은 의구심을 느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나가 흩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카엘은 경악해서 다크를 향해 고개를 획 돌렸다. 그 마음을 이해했던지 다크는 다급하게 다시 말했다.
“그냥 차분하게 앉아 있어. 나를 믿지?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 그리고 마나의 움직임을 느끼라구.”
순간적으로 소멸한 것처럼 느껴졌던 마나가 다시금 미카엘의 몸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 새로운 마나의 근원은 다크였다. 다크는 미카엘의 잡스러운 마나를 완전히 소멸시킨 후, 새로이 대기에서 마나를 끌어 모아 미카엘에게로 주입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마나의 움직임을 느껴. 그리고 그것이 움직이는 통로를 잘 기억해 둬.”
마나는 하나의 법칙에 따라서 미카엘의 몸속을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 법칙은 저 무림에서도 잊혀진 태허무령심법의 마나를 돌리고 조절하는 운기조식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미카엘의 몸속에는 태허무령심법의 법칙에 따라 다크에 의해 소멸하기 전보다 더욱 정순하고 강력한 마나가 뿌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충실하게 단전에 쌓여 가기 시작했다.
“이제 됐어. 마나가 움직이던 통로를 잘 기억했겠지? 앞으로 하루에 두 번, 한 시간 정도씩 똑같은 방법으로 수련해. 그렇게 계속 수련하다 보면 검술을 익히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거야.”
미카엘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주먹을 꽉 쥔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믿어지지가 않아.”
그는 꽉 쥔 손에서, 그리고 몸속에서 넘치는 힘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비실거리는 늙은 말만을 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젊고 힘이 넘치는 말을 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이감. 오늘 저녁 아르티어스가 술자리에서 근육을 두고 비곗덩어리라고 비꼬아 대던 것이 무슨 뜻인지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느낌은 아마도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이 새로운 힘을 쓸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지닌 그래듀에이트였기에 더욱 확연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검술은 로체스터 공작이 가르쳐 줄 테니까, 나는 마나를 운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거야.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이런 식의 기법은 별로 발달해 있지 않으니까. 검술을 배울 때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멍청하게 서 있는 미카엘의 어깨를 다독거린 후 다크는 방으로 돌아갔다.
차라리 전쟁터로 보내 줘!
다크 일행은 다음 날 아침 치레아 공국으로 돌아왔다. 일단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기에 산적한 문제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다. 카르토 백작이 낑낑거리며 어마어마한 서류 더미를 가지고 들어오자, 다크는 기가 막힌다는 듯 물었다.
“이게 뭐야?”
“전하께옵서 판단하시고 결재를 하셔야만 하는 서류들이옵니다. 아무래도 저 혼자서 독단적으로 처리하기에는 한계가…….”
다크는 한심스럽다는 어조로 말했다.
“이봐, 카르토 백작.”
“예, 전하.”
“그 한계라는 것은 누가 정한 것이지?”
카르토 백작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거야 엄연히 공국의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사항이옵니다.”
다크는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이거 뭔가 잘 모르고 있군. 자네 어깨 위에 달려 있는 것은 뭐야? 그 머리통으로 생각해 보고 꼭 해야 될 일이면 알아서 처리하면 될 거 아니야. 이따위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일일이 내 결재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대공 대리인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
“하, 하지만 저는 말단 관료…….”
다크는 모질게 카르토 백작의 말을 잘랐다.
“물론 자네는 그 일이 처리된 이후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만 책임지면 되는 거야. 알겠나? 아주 간단한 거잖아. 나는 자네를 믿어. 자네는 그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잖은가? 그럼 그거 다 가지고 가 봐.”
카르토 백작은 암담한 마음에 한숨을 푹 내쉬며 서류들을 챙겼다.
‘책임을 지라고? 내 직책이 뭔데, 이런 일들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거야? 이거 하나라도 잘못 처리했다가는 내 목숨은 물론이고 우리 가문 전체의 목숨을 걸어도 안 될 텐데……. 아마도 대공은 나를 죽이려고 작정한 모양이지?’
사실상 그는 행정부에서 일하는 관료였다. 지금 카슬레이 백작이 치레아 기사단을 모두 거느리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에 억지로 대공 대리라는 어마어마한 직함을 받고 있지만, 그것은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다 기사단에 소속되어 자리를 비워 버렸기에 빚어진 결과였다.
말이 안 통하는 상관과 더 이상 실랑이를 할 마음이 사라져 버린 카르토 백작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서류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고 다크가 말했다.
“밖에 나가면 실바르를 불러 주게.”
카르토 백작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예? 드미트리 실바르 경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그 녀석 말고 실바르가 또 있나?”
“이곳에 도착하셨을 때, 제가 보고드리지 않았사옵니까? 치레아 기사단은 황제 폐하의 칙명에 의해 전장에 투입되었다고 말이옵니다. 그러니 당연히 실바르 경도…….”
다크는 이마를 살짝 치면서 말했다.
“아아, 깜빡 잊었군. 그래, 자네가 보고했었지.”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사옵니다.”
어깨가 축 늘어져서 나가는 카르토 백작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크는 짐짓 능청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참,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지?”
결재 서류를 황급히 챙겨 오느라고 바빴던 카르토 백작이 아르티어스의 행방을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고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카르토 백작은 오랜 관료 생활을 통해 몸에 밴 모범 답안을 무의식중에 즉시 내뱉었다.
“예? 예, 곧장 알아 보고 보고드리겠사옵니다.”
“그래? 그럼 자네는 그 서류들 여기에 놔두고 아버지부터 빨리 찾아와.”
“옛, 알겠사옵니다.”
상관의 의중을 읽은 카르토 백작은 그 한마디에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치레아 대공의 아버지가 얼마나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인지 말이다. 아무리 많은 서류를 쌓아 놔도 하룻밤 새에 깔끔하게 끝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아르티어스의 밑에서 일해 봤기에 인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그 엄청난 능력을 직접 보기까지 했던 것이다. 방금 전과는 달리 희색이 만연하여 활기찬 걸음걸이로 나가려는 카르토 백작의 뒤통수에 대고 다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참, 루빈스키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보게. 한참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안 가 볼 수는 없겠지.”
“예, 전하.”
“그리고 오랜만에 루빈스키와 만나는데, 쓸 만한 포도주나 한 병 준비해 주게. 그리고 자네는 출세할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군.”
그때서야 카르토 백작은 방금 전 자신에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기회가 왔다가 사라졌는지를 깨달았다. 다크는 자신에게 그 정도는 처리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고 일을 맡긴 것이다. 아마도 그것을 자신이 다 처리해 낸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행정 관료들 중에서는 최고의 위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카르토 백작은 다시금 어깨가 축 늘어지며 힘 빠진 어조로 말했다.
“아, 알겠사옵니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