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5화 (361/930)

말 한마디에 얻은 미란

그랜딜 공작과 뭔가 쑥덕쑥덕 나지막한 어조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황태자는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서는 미네르바를 보고는 사무적인 어조로 딱딱하게 말했다.

“어서 오시오, 켄타로아 공작.”

“황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그래, 협상은 어떻게 되었소?”

“예, 전하. 드래곤은, 아니 그와 함께 온 치레아 대공은 미란의 독립을 원하고 있사옵니다.”

미네르바의 말에 황태자는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미란의 독립을?”

“예, 전하.”

“아버님이 그 땅을 획득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데, 감히 그 땅을…….”

“그래도 미란을 포기하셔야 하옵니다, 황태자 전하.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번에는 프루니아의 황궁이 파괴될 것이옵니다. 그러고도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크루마를 멸망시키려고 할 것이옵니다. 물론 제가 감히 황태자 전하께 뜻을 꺾으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옵니다. 그랜딜 공작에게 물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협상이 결렬된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사실을 말씀드린 것뿐이니 오해는 말아 주시옵소서.”

황태자는 핼쑥하게 질린 얼굴로 그랜딜 공작과 나직한 어조로 몇 마디 주고받은 후, 최대한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어쩔 수 없군. 미란의 독립을 허가하오.”

“예, 전하. 그리고 치레아 대공은 크루마, 크라레스, 미란 3국의 영구적인 동맹 및 불가침 조약을 제안했사옵니다.”

“뭐! 영구적인 동맹 및 불가침 조약이라고?”

“옛, 전하. 인간들의 관점에서 영구적인 조약이라고 해도 채 10년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옵니다. 하지만 에인션트급에 가까운 골드 드래곤이 그 보증을 선다면 드래곤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 조약은 지켜질 것이옵니다. 본국의 경우 크라레스보다 월등한 대국인 것이 사실이옵니다. 하지만 그들이 드래곤의 지원을 받는다면, 단 몇 시간 만에 본국을 멸망시킬 수 있는 것도 사실이옵니다. 그런 만큼 두 번째 제안은 본국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하옵니다.”

또다시 그랜딜 공작과 의견을 주고받은 후, 황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예, 전하. 그리고 마지막으로…….”

잠시 그랜딜 공작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본 미네르바는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드래곤은 의회 의장인 그랜딜 공작과 국무대신인 얼스웨이 후작을 원하고 있사옵니다.”

미네르바의 말에 그랜딜 공작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런 그를 힐끗 바라보며 황태자는 놀라서 물었다. 자신이 가장 아끼며 존경하는 두 명의 충신을 왜 드래곤이 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뭣이? 아니, 드래곤이 왜 그들을 원한다는 말이오?”

“저도 그것은 잘 모르겠사옵니다. 하지만 치레아 대공과 함께 찾아온 드래곤에게 그랜딜 공작이 큰 실례를 저지른 것 같사옵니다. 아마 그에 대한 분노 때문이 아니올지…….”

“그게 무슨 말이오, 그랜딜 공작? 드래곤에게 무슨 실례되는 행동을 했기에 경을 원한다는 말이오?”

“그, 글쎄 말이옵니다. 반도로스 후작이 조금 실례되는 언동을 한 적은 있사옵니다. 하지만 저는 대지의 여신께 맹세코, 드래곤에게 실례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사옵니다. 믿어 주시옵소서, 전하!”

자신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외치는 그랜딜 공작을 향해 황태자는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그 역시 자신이 가장 아끼는 부하 둘을 잃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켄타로아 공작, 경이 드래곤에게 잘 말해서 딴 것으로 그의 노기를 가라앉힐 수는 없겠는가? 얘기를 들어 보니 그랜딜 공작이나 얼스웨이 후작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만약 보석 같은 것으로 안 된다면, 그 원인 제공자인 반도로스 후작을 데려가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나? 아무런 죄도 없는 그의 상관들을 잡아가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미네르바도 황태자가 그 둘을 순순히 내줄 것이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쯤에서 뒤로 물러섰다. 그만큼 황태자를 원로원파가 꽉 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결코 조국 크루마의 미래는 밝을 수가 없었다.

엘프리안이 파괴된 후,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뼈저린 죄책감에 미네르바는 스스로 투옥되었었다. 하지만 감옥에서 그녀가 듣고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 새로운 수도를 중심으로 크루마의 국력을 재정비해야 할 때, 원로원은 그들의 세력 확장에 혈안이 되어 수많은 충신들을 투옥하거나 좌천시켰다.

그런 후 그 자리에 그들의 수하들로 채워 넣었다. 그렇지 않아도 수도가 파괴되어 모든 지휘 체계가 삐걱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지휘부의 대대적인 교체는 크루마를 거의 통제 불능에 가까운 상태로까지 몰아가고 있었다. 미네르바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있는 조국이 망해 가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치레아 대공과 모종의 밀약을 맺은 것이었다.

“예, 알겠사옵니다, 전하.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다시 협상을 해 보겠다고 물러났던 미네르바는 잠시 후 두 명의 낯선 방문객과 함께 황태자의 집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기른 미청년과 금발의 아름다운 소녀였다.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붉은 머리의 청년은 그 아름다운 얼굴에서 나온 말이라고 안 믿어지는 상스러운 소리를 다짜고짜 내뱉었다.

“어떤 자식이 황태자야?”

갑작스러운 드래곤의 등장에 그랜딜 공작이 기절할 듯한 표정을 지으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붉은 머리의 미청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황태자를 발견한 듯 화가 잔뜩 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물론 인상을 잔뜩 구긴 채로.

“오호, 바로 네놈이구나. 그래, 저 엘프 떨거지 둘 달라는데, 뭐 그렇게 군소리가 많아!”

미네르바가 슬그머니 아르티어스를 말리기 위해 말을 걸었다. 황태자에게 자신의 성의를 보이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뭐, 나중에는 각본대로 되겠지만.

“위대하신 분이시여, 제발 노여움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위대하신 분께서 지명하신 두 명은 저희 크루마의 충신이기 때문에 저희가 이러는 것입니다. 혹시 보석이라든지 황금, 보물 기타 뭐 이런 것…….”

그 말에 다크의 언질을 받은 아르티어스는 불같이 화를 내며 외쳤다.

“뭣이? 크루마 자체를 없애 버리려다가 아들이 말려서 가만히 놔뒀더니 이것들이 슬슬 화를 돋우고 있네? 엘프 떨거지 둘 달라는데 뭔 잔말이 그렇게 많아?”

그 말에 미네르바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슬쩍 장단을 맞췄다.

“저, 그렇다면 방금 전 무례를 범한 반도로스 후작을 데려가심은…….”

“뭐야? 몇십 년 살지도 못하는 호비트 따위 데려다가 어디에다 쓰라는 말이야? 그래도 엘프 정도는 되어야 한 5백 년쯤 잡일이라도 시키지, 안 그래? 그리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때깔도 좋아 보이잖아.”

그 말에 황태자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 그래도…….”

아르티어스는 고개를 홱 돌려 황태자를 향해 눈알을 부라리며 말했다.

“오호라, 그럼 네놈이 대신 죽을 때까지 레어 청소를 하고 싶다는 거냐?”

아르티어스의 광폭한 살기에 짓눌린 듯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황태자는 그랜딜 공작을 향해 재빨리 말했다.

“그랜딜 공작, 크루마 황실은 그대의 충절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오.”

갑작스런 황태자의 돌변에 그랜딜 공작의 얼굴은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저, 전하, 제게 이러실 수가…….”

“전하, 발렌시아드 대공 전하와 크로데인 후작 각하께서 도착하셨사옵니다.”

문이 활짝 열리며 로젠이 까미유와 함께 들어왔다. 그들을 보며 로체스터 공작은 다급히 물었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옛, 아버…, 아니 용병대장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사옵니다. 실종 지점에서 계속 흔적을 따라 추격해 들어간 결과 리런드 숲에서 부상을 당한 그를 발견할 수 있었사옵니다.”

로젠은 힐끗 주위를 둘러봤다. 그것을 눈치 챈 로체스터 공작은 레티안과 까미유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을 밖으로 내보낸 후 낮은 어조로 로젠에게 물었다.

“그가 부상을 입었다고? 믿기지 않는군. 누가 있어 그를 부상 입힐 수 있단 말인가?”

“예, 아버님께서는 지금 신관의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그런데 마법사가 아버님의 기억을 통해 분석해 본 결과, 믿을 수 없게도 그분과 싸운 상대가 발록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발록이라고? 발록이 뭔가?”

발록이라는 말에 로체스터 공작은 어리둥절한 듯 되물었지만, 같이 듣고 있던 레티안은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로젠에게 물었다.

“발록이 확실하다고 했사옵니까? 대공 전하.”

로젠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레티안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사옵니다. 발록은 하급 마족이긴 하지만, 그 힘은 타이탄에 비교될 정도로 강력하다고 하옵니다.”

발록의 힘을 설명하기 어려웠던 레티안은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기사들인 점을 감안하여 타이탄을 예로 들었던 것이다. 레티안은 주변을 둘러본 후 발록의 위력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확인한 후 계속 말을 이었다.

“만약 흑마법사가 발록과 계약을 맺었을 때라면, 그가 발록의 마법은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막강하기 그지없는 본체를 현세에 드러낼 수는 없사옵니다. 그만큼 마계의 생명체가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옵니다.

그런데 만약 발록이 그런 모든 제약을 깨고 현세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그를 직접 소환할 만큼 월등히 강한 자, 즉 마왕 정도가 세상에 강림했음을 뜻하는 것이옵니다. 옛 문헌에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마왕이 강림했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사옵니다.”

“이상하군. 경도 알고 있는 사실을 내가 모르고 있다니 말이야. 마왕이 강림하면서 피바람을 일으켰다면, 응당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을 것 아닌가?”

마왕이라는 말이 나오자 로체스터 공작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마왕이 강림하는 것은 거의 수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문 일이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인간이 아닌 드래곤에 의해 말살되었사옵니다. 우리들 마법사들은 태곳적부터 전해 내려오는 잊혀진 수많은 언어로 기록된 자료들을 배우기도 하고, 누군가 드래곤을 사냥했을 때, 그 레어에서 찾아낸 문헌들을 통해 지식을 얻기도 하옵니다. 그 때문에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월등하게 광범위한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흠, 그런가? 경의 말대로라면 발록의 등장은 곧 마왕이 강림했다는 말이 되겠군. 참, 그러고 보니 전에 왔었던 그 라나라는 무녀 말일세. 치레아 대공을 탈출시킨…….”

“아, 암흑의 기운이 세계를 뒤덮는다는 아데나 여신의 신탁을 가지고 찾아왔던 그 무녀 말씀이옵니까?”

“그래, 그 무녀 말이야. 그러고 보니 암흑의 기운이 세계를 뒤덮는다는 말이, 마왕의 강림을 예고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군.”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발렌시아드 대공 전하의 말씀대로 발록이 출현했다면 마왕의 강림이 확실하다고 봐야 할 것이옵니다.”

잠시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겼던 로체스터 공작은 뭔가 기억이 났다는 듯 고개를 들어 말했다.

“그, 그렇다면 그 신탁에서 밝혔던 영웅은 치레아 대공이라는 말인가? 사실 그 무녀도 지금 치레아 대공에게 가 있으니 말이야.”

“속단하기는 이르오나, 그럴 가능성은 아주 크옵니다. 사실 그녀가 세계 최강의 검객이라는 점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니 말이옵니다.”

레티안의 말이 계속될수록 주위의 공기는 무거워져 갔다. 모두들 침중한 얼굴로 레티안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로체스터 공작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흐음, 그런데 마왕이라는 존재가 있기나 한 것인가? 사실 나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동화나 영웅담에서나 등장하는 악역이 마왕이라고 알고 있었거든. 그런 게 과연 있을까?”

“물론 있사옵니다, 전하. 신관들은 신의 힘을 받아 신성 마법을 쓰고 있사옵니다. 만약 신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어떻게 신성 마법을 쓸 수 있겠사옵니까? 마찬가지로 흑마법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사옵고, 각국에서는 흑마법사들을 발견하는 대로 처형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그것도 다 마왕의 강림을 막자는 의도에서 하는 행동이옵니다.”

“그런가? 하지만 과거 영웅담을 들어보면 마왕도 그렇게 강한 것 같지는 않던데? 사실 아무리 전설에 나오는 영웅이 강하다고 해도, 타이탄만 하겠는가?”

“그것은 잘 모르겠사옵니다. 하지만 이번에 마왕의 수하라고 할 수 있는 발록에게 용병대장께서 부상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결코 마왕의 힘을 얕볼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레티안은 일부러 키에리 전하라고 하지 않고 용병대장이라고 불렀다. 사실상 코린트에서 키에리는 이미 죽은 존재이지 않은가? 하지만 로체스터는 그런 부하를 책망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속에도 키에리라는 대륙 최강의 기사가 발록이라는 마물에게 당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로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왕의 힘이 그렇게 강하다면, 본국의 힘만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그녀를 끌어들이는 것은 어떨까?”

“치레아 대공 말씀이시옵니까?”

“그래.”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사옵니다. 하지만 전하, 아버님이 부상을 당하신 곳은 크라레스의 영토이옵니다. 그것을 보면 몬스터들의 난동도 마왕의 강림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리고 그녀 또한 크라레스의 대공이 아니옵니까? 만약 그녀가 마왕과 한통속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사옵니다.”

그 말에 레티안이 옆에서 조심스러운 어조로 반박했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옵니다, 대공 전하.”

자신의 의견이 곧바로 반박되자 불쾌한 표정으로 로젠이 말했다.

“어째서 그런가?”

“그녀의 양부는 드래곤이옵니다. 그리고 드래곤은 절대로 마왕과 손을 잡지 않사옵니다.”

레티안의 말에 로체스터 공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렇군. 그렇다면 이 사실을 그녀가 알고 있을까? 만약 모른다면 알려 주면서 서로 간의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지 않겠나? 사실 지금처럼 어떤 찜찜한 일이 벌어질지 모를 격변기에는 그녀와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지 않겠나? 사실상 그녀가 그 드래곤들을 움직이니까 말이야.”

“좋은 생각이시옵니다, 전하.”

레티안의 찬성에 힘을 얻은 로체스터 공작은 로젠에게 지시를 내렸다.

“로젠, 그대가 치레아 대공을 만나 보겠나? 서로 친분도 한번 쌓아 보고, 만약 얘기가 잘 풀리면 동맹도 맺고 말이야. 어찌 되었건 그녀에게 마왕이 강림했다는 사실을 알린다는 좋은 명분이 있으니까 말일세. 물론 그녀와 대화할 때 드래곤이 옆에서 듣는다면, 마왕의 등장에 대해 뭔가 반응을 보이겠지.”

로체스터 공작의 말에 로젠은 난색을 표했다.

“그것은 힘들지 않겠습니까? 사실상 마왕이 강림했다고 해서 그녀가 과연 흥미를 보이겠습니까? 사실 저는 그녀를 직접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남의 일에는 매우 무관심하다는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화해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동맹을 제안할 수 있겠습니까?”

로젠의 말에 로체스터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겠지? 일리가 있어. 나도 그게 걸리는군.”

이때 뒤쪽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까미유가 끼어들었다.

“말씀 중에 죄송하옵니다, 로체스터 전하.”

“뭔가 좋은 생각이 있나? 말해 보게.”

“예, 미카엘 말이옵니다. 미카엘에게 그 임무를 맡기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며칠 전, 오랜만에 제임스하고 셋이 모여서 술을 마셨사옵니다. 그때 그가 자신이 치레아 대공하고 굉장히 친하다고 자랑을 했었사옵니다. 자신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준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로체스터 공작은 기쁨과 함께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그 말이 가지는 의미는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정말인가?”

“예, 전하. 그날 미카엘의 얼굴이 영 엉망이었잖습니까?”

“그랬지.”

그날 미카엘의 얼굴을 떠올리자 왠지 기분이 떨떠름해지는 로체스터 공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말투에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사실은 그게 밤새도록 드래곤을 말리다가 입은 상처라고 하옵니다. 코린트를 그냥 두라는 미카엘의 부탁에 치레아 대공은 흔쾌히 승낙했지만, 원래 그 드래곤이라는 것들이 성질이 더럽잖습니까? 그래서 조국을 위해 자신이 대신 드래곤의 화풀이 상대가 되어 줬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드래곤과 맞서 그 정도 상처로 끝났다는 것이 말이옵니다. 어쨌든 그래서 다음 날 그들이 본국에 도착했을 때는 드래곤의 분노도 완전히 풀린 상태였고, 덕분에 잘 넘어갔다고 하더군요.”

제임스의 말에 로체스터 공작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아들이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뒤에서 해내고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었다니……. 엉망이 되어 있는 아들의 한심한 모습에 잠시나마 부끄럽게 생각했던 자신이 후회스러워지는 로체스터 공작이었다.

“허,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작에 말할 것이지…….”

후회 가득한 로체스터 공작을 향해 까미유는 존경스럽다는 듯 말했다.

“옛, 전하. 그날 술을 많이 마시기는 했사오나, 분명히 그렇게 말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물론 치레아 대공이 옆에 있었기에 죽을 염려는 없었겠지만, 밤새 드래곤에게 두들겨 맞으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 말을 하면서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더군요. 듣고 있던 저희들마저도 가슴이 찡해졌을 정도였사옵니다.”

“오오, 아레스신께서 코린트를 도우시는군. 자네는 급히 가서 그 아이를 불러오게.”

“옛,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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