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사냥 용병단 출격
의장은 자신의 탁자 앞에 제멋대로 서 있는 험상궂은 다섯 명의 기사들을 둘러봤다. 과연 그들의 몸에 감춰진 마나의 기운은 일류급 기사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의장은 흐뭇한 얼굴로 그들 중에서 제일 앞쪽에 서 있는 사내를 향해 물었다. 그의 어깨에는 진홍색의 까마귀가 그려진 문장이 달려 있었다.
“자네가 크로우 용병단장인가?”
의장이 묻자, 그 말을 옆에 서 있던 벨리아드가 더듬더듬 약간 서투른 어조로 통역했다. 서방과 동방은 워낙 오랫동안 교역이 없어서 그런지, 완전히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타이렌 제국까지 끼어들어 서로 간의 언어가 상대 쪽으로 유출되는 것을 틀어막았기에 상대 쪽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극히 드문 상황이었다. 그런 악조건에서 이 정도라도 서쪽 대륙의 언어를 배운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험상궂게 생긴 젊은이가 뭐라고 대답하자, 즉시 벨리아드가 통역했다.
“저자가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대승을 거뒀다는 보고를 들었네.”
“그는 아무래도 불만이 좀 많은 모양입니다. 자신들의 승리가 대단치 않다는 듯 말하면서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거리를 원하고 있습니다.”
벨리아드가 용병단장의 말을 통역하자, 의장은 퉁명스런 어조로 물었다.
“돈은 많이 줬잖소?”
“예, 의장님. 하지만 그는 벌레 같은 몬스터는 아무리 죽여도 돈이 안 되니까 타이탄 같은 부수입이 있는 상대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파괴된 타이탄이라도 그 가치는 엄청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부수입이라…….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니까 말이야.”
회의적으로 중얼거리던 의장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벨리아드에게 말했다.
“참, 그렇다면 저자에게 드래곤 사냥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시오.”
“예? 드래곤이라고요? 잘 알겠습니다.”
벨리아드의 서투른 말이 어느 정도 통했는지 알 수 없지만, 용병단장은 함께 온 부하들과 뭔가 한동안 쑥덕거리더니 대답했다.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상대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예, 해 본 적이 있답니다. 놀랍게도 그는 두어 마리 잡아 본 적이 있다고 하는군요.”
용병단의 대답에 벨리아드도 놀랍다는 말투로 통역을 했다.
“정말인가? 오오, 드래곤 슬레이어를 단장으로 삼고 있었으니, 피에 젖은 까마귀단이 서쪽 대륙의 최강 용병단으로 불렸겠지. 정말 대단하구먼.”
“예, 의장님. 그리고 그는 드래곤을 잡을 때 보통 방법으로는 힘들다고 합니다. 일종의 요령이 필요하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그 방법은 사업상 기밀이기에 가르쳐 줄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 하기야 저들의 비장의 수법까지 알 필요는 없겠지.”
의장은 그 수법이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정말 급한 것은 그놈의 망할 드래곤을 잡는 것이었기에 궁금증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그리고 그 준비를 하기 위해 돈이 좀 많이 필요하답니다.”
“그래? 돈이야 얼마든지 내주게. 그 드래곤만 잡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딴 것은 몰라도 그 드래곤의 사체는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을 정확히 일러두게. 레어에서 나오는 보물이야 저놈들이 다 가져도 상관없어. 그리고 마법 도구도……. 아쉽기는 하지만 저들이 원한다면 양보해야겠지. 하지만 마법서만은 안 돼. 마법서하고 드래곤의 사체는 결단코 양보할 수 없지 않겠나?”
“예, 알겠습니다.”
벨리아드가 뭔가 한참 동안 중얼거리자, 그 말을 들은 상대는 뭔가 알아듣기 힘든 듯 그의 동료들과 오랫동안 떠들어 댔다. 그런 다음 벨리아드를 향해 말했다.
“허락한답니다. 드래곤의 고기는 저쪽 대륙에서도 고가에 매매되는 데다가, 가죽으로 방패나 갑옷 따위를 만들 수 있기에 그 사체의 가치는 엄청나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그는 그 정도는 의뢰인의 체면을 생각해서 자신들이 포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 훌륭하군. 그래, 혹시 지원은 필요 없는지 물어봐 주게. 기사는 좀 힘들지만, 마법사라면 얼마든지 지원해 주겠다고 말일세.”
“자신들에게도 마법사는 있답니다. 공간 이동 좌표만 알려 달라고 하는군요.”
“좋아, 그럼 자네가 확실하게 일러 주게.”
“옛.”
그들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나가고 난 후 의장은 한동안 드래곤을 잡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통쾌한 심정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더 그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의장은 이윽고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한순간의 꿈이었지만 유쾌하긴 유쾌했어. 하지만 아무리 그놈들이 강하다고 해도 그렇지, 에인션트급 드래곤을 물로 보다니……. 도무지 믿음이 안 간단 말이야.”
의장은 서류 한 장을 뽑아내어 거기에다가 유려한 필치로 쓰기 시작했다.
「크로우 용병단, 행방불명. 그들의 생존이 확인될 때까지 타이렌 제국을 통한 1차 고용 대금의 지급을 정지할 것.」
의장은 간단히 서류 작성을 끝낸 후 중얼거렸다.
“죽은 놈들한테까지 급료를 줄 이유는 없지.”
크로네티오는 불같이 분노했다. 며칠 전보다 더욱더 어마어마한 힘을 내뿜고 있는 그가 분노하자 지하의 구조물들이 흔들리며, 대리석 조각들이 떨어져 내릴 정도였다.
“서쪽 전선에서 대패를 했다고?”
대마왕의 분노에 불칸(Vulcan)은 부들부들 떨면서 대답했다. 신장이 거의 10미터에 달하는 이 검붉은 색의 거대한 악마는 중급 마족 계열에 속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흉폭한 성정을 기반으로 한 엄청난 위력의 화염계 마법은 마계에서조차도 경원의 대상일 정도였다. 하지만 화염계 마법을 제외한 전반적인 마법 능력은 발록보다도 한참 뒤떨어진다는 것이 흠이었다.
“예, 대마왕님. 적들이 대규모로 기습 작전을 펼쳤기에 서쪽에 투입한 몬스터들의 거의 태반을 잃었사옵니다.”
“기사단은? 그 알량한 기사단은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이냐? 그것 때문에 그놈들을 살려 두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예, 호비트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사옵니다. 상대의 기습으로 시작되었기에, 그들은 정체를 들킬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작전을 전개할 수 없다며 기사단 투입을 포기했사옵니다.”
“뭣이? 이런 망할 놈들! 내 이것들을…….”
“그 쓸모없는 것들을 모두 다 처치해 버리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크로네티오는 분노에 찬 노성을 내뱉었다.
“닥쳐라.”
“옛, 대마왕님.”
“지금은 그래도 그놈들은 아직 쓸모가 있다. 그것들을 동부 전선으로 보내 성기사단을 상대하도록 해라.”
잠시 궁리하던 마왕은 마음을 정했는지 불칸을 쏘아보며 말했다.
“네놈에게 발록 열 마리와 전체 마신군(魔神軍)의 절반을 주겠다. 그 알량한 호비트 족속들을 완전히 쓸어버려라.”
“제게 그렇게 큰 영광을 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불칸이 쿵쾅거리며 나간 후 대마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벌써 바크로니아와 비슈누를 설득하기 시작한 지도 4일째……. 어떻게 해야만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지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이래가지고는 자신이 가진 힘의 절반 정도를 간신히 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망할 드래곤을 확실하게 가지고 놀면서 처참하게 끝장내기 위해서는 네 명의 마왕들 중에서 최소한 셋 이상의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질 더러운 아르티어스
“아웅, 며칠 침대에서 뒹굴었더니 온몸이 다 찌뿌둥하네.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없나? 이거 심심해서 죽겠네.”
한껏 기지개를 켠 후 다크가 심심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옆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던 아르티어스는 순간적으로 얼굴에 힘줄이 뻗쳤다. 모든 일을 애비에게 떠넘기고 저런 소리가 나올 수가 있는 거야? 아무리 사랑하는 아들놈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곧이어 아르티어스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마음을 고쳐먹고 은근한 목소리로 아들놈에게 말을 건넸다.
“음, 이럴 때는 여행이 최고지. 한적한 산길을 걸으며 머리도 식히고, 또 알아! 순진하고 예쁜 엘프라도 나타나면 꼬시는 재미도 쏠쏠하잖아. 그래, 간혹 겁 대가리를 상실한 오크라도 뛰어나오면 맛있는 별식을 즐길 수도 있고, 허 그러고 보니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군.”
아르티어스의 은근한 부추김에 잠시 생각해 보던 다크는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맞아, 예전에 언제 한번 붙어 보자고 약속한 엘프가 있었지. 그래, 그 녀석에게 놀러 가면 되겠네.”
다크가 손뼉을 치며 좋아하자 아르티어스는 얼른 표정 관리를 하며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하, 오랜만에 너와 오붓하게 여행을 가면 좋을 텐데,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정말 안타깝구나.”
다크가 여행을 떠나면 즉시 모든 일을 호비트들에게 떠맡기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싶은 아르티어스였다.
“그래요, 그럼 할 수 없죠. 뭐.”
그때였다. 뭔가 쿠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아르티어스와 다크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집무실 한쪽 구석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 더미에 파묻혀 머리만 보이던 카르토 백작이었기에 다크와 아르티어스는 잠시 그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황급히 일어섰는지 의자가 뒤로 넘어지며 큰 소리를 낸 것이다. 그는 일어서자마자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함께 가십시오, 어르신. 모든 일은 제가 맡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다크는 급하게 말을 내뱉는 카르토 백작의 얼굴을 기묘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봤다. 한 며칠 그를 못 봤기에 얼굴이 온통 퉁퉁 붓고, 푸르죽죽한 멍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다.
“쟤 얼굴이 왜 저래요? 아빠가 그랬어요?”
싸늘한 다크의 시선에 아르티어스는 당황해서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그러니까… 애들이 게으름을 피우기에 조금 교육을 시켰을 뿐인데…….”
“내가 나 모르게 아무도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욧!”
다크의 눈초리가 높게 올라가며 사나운 눈빛을 보이자 아르티어스는 당황하면서도 열심히 변명했다.
“그, 그러니까 그게 말이다. 그 약속을 하기 전에 한 거였거든. 사실 너도 생각해 봐라. 열심히 두들겨 패고 치료 마법으로 증거 인멸을 할 수 있는데도 내가 왜 그냥 놔뒀겠냐? 이것은 너하고 한 약속 이전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그런 거야.”
“뭐, 그렇다면 할 수 없죠. 하지만 제발 적당히 하세요. 아빠가 마음먹고 패면 최소 사망이라구요. 그건 그렇고, 카르토 백작. 아빠와 함께 가라고?”
다크의 질문에 카르토 백작은 힘차게 대답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아르티어스가 제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기를 신에게 갈구할 만큼 간절하기만 했다.
“옛, 전하. 두 분께서 오붓하게 여행을 다녀오십시오. 모든 것은 제가 책임을 지고 확실하게 처리해 두겠사옵니다.”
“그래? 그럼 잘됐네. 아빠도 함께 가죠.”
“그, 그래? 오랜만에 함께 가자꾸나.”
아르티어스는 당황해서 말했다. 잠시 동안이라도 여유로운 휴식을 만끽하려던 그의 모든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르티어스가 카르토 백작을 향해 사나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을 때, 아르티엔이 대낮부터 무슨 포도주를 그렇게나 많이 마셨는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뭐, 여행을 간다고?”
아르티어스는 황당하다는 듯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니, 여행 간다는 말이 언제 나왔는데, 벌써 오십니까?”
“하하, 전에 네 녀석이 나를 떼놓고 놀러갔잖냐. 그래서 나도 나름대로 준비를 해 뒀지. 그래, 어디로 갈 건데?”
다크가 말하는 엘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던 아르티어스는 대충 얼버무리며 다크에게 떠넘겨 버렸다.
“그, 그… 그러니까 얘야, 네가 말씀드려라.”
“카렐이라는 엘프한테 놀러갈 건데요.”
아르티엔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카렐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카렐이라……. 혹시 그 키아드리아스하고 함께 사는 별종 엘프 말이냐?”
“예.”
다크와 아르티엔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아르티어스의 안색이 더욱 찌푸려졌다. 안 그래도 가기 싫은 여행을 따라가야 하는 데다가, 아버지까지 같이 간다는 것이 영 불만이었다. 뭐, 거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하지만 사이가 좋지 못한 키아드리아스의 집을 방문해야 한다니…….
“일단 준비 좀 해야 하지 않겠냐?”
아르티어스의 말에 다크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뭐 준비할 거나 있나요. 아빠가 옆에 있을 건데…….”
“그, 그래도 한 며칠 신세지려면 이것저것 좀 챙겨야 할 것도 있을 테고, 뭐 그렇잖냐?”
황급히 얼버무리듯 대답하는 아르티어스의 말에 그런 대로 수긍을 하던 다크는 세린을 떠올리고 대답했다.
“그러죠, 뭐. 세린한테 준비하라고 이를게요.”
다크가 나가고 난 후 아르티어스는 카르토 백작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너, 이 자식. 빨리 이쪽으로 튀어 와!”
“예? 왜, 왜 그러십니까?”
“내가 하는 일에 끝까지 방해를 해? 넌 이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