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티어스는 만족한 표정으로 손을 탈탈 털며 밖으로 나오다가 기겁을 했다. 문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다크와 수녀가 얘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그것을 본 아르티어스는 뭔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아르티어스는 즉시 방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서 카르토 백작을 불렀다.
“야! 야, 이 자식아. 빨리 튀어 와.”
아르티어스에게 얼마나 두들겨 맞았던지 바닥에 축 늘어져 있던 카르토 백작은 사력을 다해 엉금엉금 일어서며 겨우 입을 벌려 대답했다.
“에?? 예. 에 그어시니가? 어으시.(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빨리 안 와?”
아르티어스가 으르렁거리자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거의 실신 지경이었던 카르토 백작이 좀비가 마법으로 움직이듯 비틀거리며 아르티어스에게 필사적으로 걸어갔던 것이다. 카르토 백작의 육신은 이미 한계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아르티어스에 대한 두려움이 무의식을 자극해 힘겹지만 그의 몸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카르토 백작의 멱살을 틀어잡아 쓰러지려는 그를 바로 세운 후, 치료 주문을 사용하며 투덜거렸다.
“젠장, 내가 호비트의 멍 자국 따위를 없애려고 힘들게 마법을 배웠나. 내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지?”
이때 아르티어스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가 부르르르 진동했다. 아르티어스는 신경질 난다는 듯 멱살을 잡고 있던 카르토 백작을 놔 버렸다. 카르토 백작은 거의 반쯤 실신해 있는지 아르티어스가 손을 놓자마자 풀썩 쓰러져 버렸다. 겉에 보이는 멍 자국은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속으로 든 골병은 하나도 치료가 안 되었던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보석으로 아름답게 세공된 목걸이를 쓱 꺼내 들었다.
“이상하네. 레어에 누가 침입한 줄 알았더니 누가 통신을 보내는 거지?”
슬며시 주문을 외우자 곧이어 목걸이에 박혀 있는 붉은 보석 위로 금발을 길게 기른 근육질의 사내가 등장했다.
“여어, 내 친구여. 오랜만이야.”
반갑게 인사하는 상대에게 아르티어스는 버럭 화부터 냈다.
“뭐야, 새꺄? 친구 좋아하고 있네.”
“에이, 너무 화내지 말라구. 친구 좋다는 게 뭔가. 우리가 어디 하루 이틀 사귄 사이야? 무려 수천 년을 함께한, 형제보다도 더욱 끈끈하게 맺어진 우정이 아닌가?”
느물거리는 듯한 브로마네스의 말투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 아르티어스였다.
“우정 좋아하고 있네. 그런 놈이 나를 아버지한테 팔아넘겨? 아버지의 마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자네 마음은 십분 이해해.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자고 나까지 걸고 넘어져? 그러고도 이제 와서 친구와 우정을 찾냐?”
“에이,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하잖아. 그건 그렇고 어르신은 어때? 선물이 마음에 든다고 하시던?”
그 말에 아르티어스는 머리꼭지가 확 도는 것을 느꼈다.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원래부터 그 반은 자기 것이 아니던가. 그것을 선심 쓰듯 선물로 써먹는 것도 모자라서 효도가 어떻고, 불효자가 어떻고 주절거려 괜히 아버지의 눈총을 받지 않았던가. 아르티어스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겨우 참다가 선물이라는 말에 뭔가 생각났다는 듯 브로마네스에게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너 빨리 튀어 오래.”
아르티어스의 말에 브로마네스는 흠칫하는 듯하더니 곧이어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뭐? 왜? 에이∼ 너 농담하고 있는 거지? 그렇지? 하지만 농담이라도 섬뜩하다, 야.”
아르티어스는 일부러 정색을 하고는 퉁명스런 어조로 말했다.
“농담 좋아하고 있네. 너 그 포도주 시음이라도 하고 아버지한테 드린 거냐?”
“뭐? 내가 먹던 걸 어떻게 어르신에게 선물을 해. 왜? 선물에 무슨 문제가 있었냐?”
“야,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상한 걸 선물하면 어쩌자는 거야?”
아르티어스의 말에 브로마네스는 기겁을 할 정도로 놀랐다.
“뭐? 상했다고?”
“그래, 밀봉이 좀 부족했는지 한 모금 드시더니 바로 뱉어 내며 불같이 화를 내시는데, 애꿎은 나만 왕창 깨졌잖아.”
“그, 그래? 이거 큰일 났구나. 어, 어쩌지? 큰일 났네.”
허둥거리며 당황해하는 브로마네스를 보면서 아르티어스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행여 어디로 도망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너,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잘 알고 있지? 대륙 끝까지 도망쳐 봐라, 못 찾아내시는지. 그리고 도망치다가 붙잡히면 아예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걸!”
“그러니까 내가 사정하잖아. 어떻게 하지? 어쩌면 좋을까?”
역시 물에 빠져서 정신이 없으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드는 것은 당연한 심리였다. 그것을 느긋하게 즐기며 아르티어스는 아주 묵직한 쇳덩어리를 던져 줬다. 아예 이것을 잡고 그대로 침몰해 버리라고 간구하며.
“어쩌긴 뭘 어째. 아버지 명령대로 해야지. 노여워하시며 그러시던데, 아버지가 가실 때까지 내 레어에 꿇어앉아서 두 손 들고 있으래.”
“뭐? 그럼, 언제 오시는데?”
“몰라, 임마. 나도 지금까지 깨지다가 아버지가 뭔가 볼일이 있으시다고 어디 가셨어. 그 덕분에 지금 겨우 쉬고 있는 거 안 보여? 아마 나중에 레어에 가셨을 때 너 없으면 죽이려고 드실걸.”
그 말을 들은 브로마네스는 아르티어스의 얼굴을 꼼꼼히 살펴봤다. 혹시나 자기를 놀린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다크에게 매일 혹사당하고 있던 아르티어스의 얼굴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깔끔하던 그가 눈곱까지 끼어 있는 데다가, 왠지 수척해 보이기까지 하지 않는가? 브로마네스는 그것이 다 아르티엔에게 들볶여서 생긴 흔적인 줄로 착각하고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야, 임마! 나 지금 바빠. 언제 아버지가 오실지 모른단 말이야. 이만 끊자구.”
그 말에 브로마네스는 모든 것을 체념했는지, 풀이 죽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우리, 다음에 살아서 만날 수 있는 거지?”
브로마네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던 아르티어스는 도저히 웃음을 참아 낼 수 없을 것 같자 재빨리 통신을 끊었다. 그런 다음 아르티어스는 수백 년 묵은 체증이 쫙 내려간 듯 통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이제야 기분이 좀 풀리는군. 짜식, 거기서 수백 년을 기다려 봐라. 아버지가 가시는지…….”
아르티어스는 이번에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는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면서 문밖으로 나갔다. 그때까지도 라나와 다크는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너무 불안해요. 아저씨도 느끼실 거예요. 며칠 전부터 엄청나게 사악한 기운이 소용돌이치잖아요. 밤에도 몇 번씩이나 악몽을 꾸다가 깬다구요. 그러니까…….”
“아, 짜증나게 계속 그러네. 마왕이니 뭐니 그런 거는 없다니까.”
“그렇게도 저를 못 믿으시는 건가요?”
“이건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야. 내가 설명했잖아. 저 이상한 기운은 뭔가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만들어진 거라고 말이야. 그리고 그 이상은 국가 비밀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어. 그리고 내가 너한테 꼭 알려 줄 이유도 없고 말이야.”
완강한 다크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라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동안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녀는 이제야 신탁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좋아요. 저도 여행에 함께 데려가 주세요.”
“그것도 안 돼. 그냥 떠나는 여행이라면 몰라도 나는 키아드리아스라는 드래곤의 둥지에 갈 거야. 거기에 너를 데리고 갈 이유가 없잖아.”
“그래도…….”
“자자, 며칠 내로 돌아올 거야.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고 기다리라구.”
거칠게 말을 내뱉은 다크는 더 이상의 대화는 짜증난다는 듯 서둘러서 걸어가 버렸다.
엘프 최강의 전사 카렐
엄청난 드래곤의 존재감에 레어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리고 있던 키아드리아스는 후다닥 밖으로 튀어나갔다.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던 키아드리아스는 곧 반갑지 않은 방문객을 볼 수 있었다. 순간 평온하던 키아드리아스의 얼굴이 소태를 씹은 듯 일그러졌다. 그곳에는 재수 없는 아르티어스와 다크가 한 늙은이와 서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르티어스를 향해 쌀쌀맞게 말했다.
“흥, 오늘은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찾아온 거죠?”
“젠장, 겨우 날개 한 번 부쉈다고 너무 그러지 마.”
“뭐요, 겨우 날개 한 번? 정말 상종 못할 드래곤이군. 내가 당신의 날개를 부숴 볼까요? 그딴 소리가 나오는지…….”
적당히 달래서 넘어가려고 하던 아르티어스는 같잖게 보던 상대가 계속 강짜를 부리자, 성질을 참지 못하고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이게 가만히 듣고 있자니까……. 너 정말 죽으려고 환장했냐?”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르티엔은 아르티어스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갈기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놈은 심심하면 애들을 괴롭히네. 너는 언제 철들래?”
그 장면을 키아드리아스는 황당한 듯 바라봤다. 이 세상에 그 누가 있어서 저 개망나니 드래곤의 뒤통수를 태연히 갈길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 궁금증은 곧 풀렸다.
“에이 씨, 아버지는 가만히 좀 있어 봐요. 이게 자꾸 까불잖아요.”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네. 너 정말 죽을래?”
인상을 확 구기며 아르티엔이 한쪽 손을 번쩍 들자 아르티어스는 재빨리 표정을 바꾸어 비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키아드리아스는 ‘아버지’라는 말이 들리자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뭔가 깨달은 듯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공손히 말했다.
“혹, 아르티엔 님 아니십니까?
“여, 정말 오랜만이군. 처음 봤을 때는 날개가 부러졌다고 징징 울고 짜고 하던 꼬질꼬질한 꼬맹이더니 그동안 많이 컸구먼.”
키아드리아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정중히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 속마음은 결코 편하지 못했다.
‘울고 짜고, 꼬질꼬질 꼬맹이? 빌어먹을! 꼭 표현을 해도 그딴 식으로 하다니!’
혹시 누가 들었을까 두려워 은근히 주위를 살피는 키아드리아스였다.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안녕히 지내셨는지요.”
“오냐오냐. 그래, 너도 잘 있었냐?”
“예.”
“그건 그렇고 어떤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아르티엔은 자상한 눈길로 다크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내 손자 녀석이 카렐이 보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아르티엔의 말을 들은 키아드리아스는 왠지 수상쩍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예? 제 남편을…요? 무슨 일로 말입니까?”
이때 다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카렐과 전에 약속한 게 있거든. 그래서 약속을 지키러 왔어.”
다크의 말을 들은 키아드리아스는 내심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놈, 그 애비나 아들이나 싸가지 없기는 마찬가지구만. 나이도 어린 게 계속 반말을 찍찍 내갈기고 있어.’
키아드리아스는 분을 삭이느라 길게 한숨을 내쉰 후에 말했다.
“제 남편을 불러오겠습니다. 아니, 그쪽으로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다. 그럼 안내해.”
빙그레 웃으며 끝까지 반말을 해 키아드리아스의 복장을 뒤집는 다크였다.
다크 일행은 키아드리아스의 안내를 받아서 카렐의 집으로 갔다. 다크는 집 뒤쪽에서 명상에 잠겨 있는 카렐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듯 소리쳤다.
“이봐, 카렐!”
카렐은 자신의 명상을 방해하는 인물이 누군가하여 눈을 살며시 떴다. 오랜만에 장시간 명상을 하기 위해 키아드리아스까지 레어로 돌려보냈는데 방해를 받자 약간 짜증이 난 것이다. 하지만 그를 부른 사람이 다크라는 것을 알자, 반가운 듯 미소 지으며 일어섰다.
“여, 다크, 안녕.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그리고 이쪽은…….”
“응, 할아버지셔.”
다크의 말을 보충하듯 키아드리아스는 카렐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골드 일족의 최고 연장자인 데다가, 아주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존재니까 조심하세요.>
“아, 그래. 안녕하십니까, 저는 카렐 아미타유스라고 합니다.”
골드 일족의 최고 연장자라는 말에 카렐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후 이채롭다는 듯 살그머니 상대를 관찰했다. 아르티엔은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 자네가 그 엘프의 이단아라는 카렐이로군. 만나서 반갑네.”
“예, 안으로 드시지요. 차라도 한잔하시지 않겠습니까?”
다음 날 아침 다크와 카렐이 검술 시합을 벌이겠다며 나가자, 키아드리아스는 연인의 실력을 믿으면서도 그에게 걱정스런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모두들 화끈한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좋아서 따라 나섰다. 아르티엔은 누가 이기든 오랜만에 보는 싸움 구경에 관심이 있었고, 아르티어스는 꼴 보기 싫었던 건방진 키아드리아스의 남편이 자신의 아들에게 박살 나는 광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카렐의 말에 다크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황금빛 찬란한 검신을 가슴으로 끌어당긴 후 고개를 끄덕여 상대에 대한 경의를 표한 후 천천히 기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둘 다 대륙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자부하는 인물들끼리의 싸움이었기에, 처음은 상대에 대한 탐색전으로 시작되었다. 서로의 검이 불타오르는 듯한 광채를 뿜어내며 대기를 가르기 시작했다. 둘의 치열한 접전을 지켜보던 아르티엔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와우, 저게 뭐냐? 화려한 것 하면 마법인 줄 알았더니, 검술이라는 것도 연출 효과가 대단한데?”
아르티어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글쎄 말입니다. 쇠막대기 가지고 하는 체조도 상당히 볼 만하죠? 역시 내 아들이라니까요.”
히히덕거리면서 그들이 지켜보는 동안 두 고수는 점점 더 치열한 싸움을 전개해 나갔다. 하지만 그 둘은 줄곧 싸우면서도 3미터 이상을 떨어지지 않았다. 지근거리에서 어검술이 부딪치면서 간혹 엄청난 충격파를 만들어 냈지만, 그들은 떨어지지 않고 자신이 익히고 있던 모든 몸놀림을 화려하게 펼쳤다.
점점 더 격전이 치열해지자 드래곤조차도 인상을 찡그릴 정도로 그들의 몸놀림은 빨라졌다. 웬만한 기사들이 봤다고 해도 희미한 잔상밖에 보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몸놀림은 쾌속했고, 그들의 검은 더욱더 빨라서 새하얀 궤적만을 간신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꽈꽝.
한동안 치열하게 싸우던 그들은 갑자기 검을 부딪치며 엄청난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귀청을 찢는 폭발음과 함께 사방으로 그 충격파가 휩쓸고 지나갔기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키아드리아스나 아르티어스가 약간 비틀거렸다. 아르티어스는 가볍게 기침을 하며 손을 휘휘 내저으며 투덜거렸다.
“콜록콜록. 젠장, 살살 좀 하지. 이게 도대체 뭐야?”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투덜거리는 아르티어스에게 시선도 보내지 않은 채, 아르티엔은 아주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검술이라는 것을 나는 여태껏 몸 풀기 위한 체조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법이군. 아주 날카로워. 다시 봤는걸.”
“참 내, 아버지가 그때 말리지만 않았다면, 저도 저 정도는 했을 거라구요. 역시 마법보다는 검이 훨씬 더 멋지잖습니까?”
“헛소리 마. 만약 네가 계속 익혔다고 해도 체조 수준을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을걸? 너는 저 아이들처럼 검술에 마나를 사용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무조건 근육만 잔뜩 붙인 몸매를 선호했잖아. 그래서는 아무리 수련해 봐야 체조 수준이겠지. 그건 그렇고 정말 볼 만하군.”
다크와 카렐은 서로의 검을 세차게 부딪치며 약속이나 한 듯 거리를 넓게 벌렸다. 그런 다음 곧이어 시작된 이기어검술 간의 싸움. 서로의 검이 불타오르며 대기를 날아다녔다. 그들의 검은 마치 그 하나하나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라도 된 듯, 마음껏 허공을 누비며 서로를 견제하기도 하고 또 충돌하기도 했다. 그것을 바라보며 아르티엔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굉장하군. 저 하나하나에 엄청난 파괴력이 담겨 있잖아? 저런 식으로 사용한다면 거리의 제약이 거의 없어지겠군. 정말 대단한 기술이야. 그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멋이 있군.”
이윽고 어검술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되자, 그 둘은 본격적으로 강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검이 이기어검술에 의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한편, 그들은 강기를 이용하여 상대의 빈틈을 노리기도 했고, 또 없는 빈틈이라도 만들기 위해 상대를 압박해 들어갔던 것이다.
서로 간의 강기 다발이 곳곳에서 부딪치면서 엄청난 폭발음이 휘황찬란한 빛과 함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두 강자들 간의 사력을 다한 대결은 엄청나게 빨랐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에 담긴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드래곤들로서는 자연 탄성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르티어스가 진정한 아들의 실력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아르티엔 또한 자신이 경시했던 호비트가 발전시켜 온 검술에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정말 저게 검술이란 말인가? 대단하군. 처음에는 몰랐는데 가만히 보니까 서로 간에 주고받는 공격들의 태반 이상이 가짜잖아. 지근거리에서 맞붙는다면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기 힘들겠어. 아마 저런 식으로 상대방의 시야를 현혹시키는 거겠지. 직접 맞붙어 보면 아주 상대하기가 까다롭겠어.”
잠시 더 대결을 바라보던 아르티엔은 뭔가를 깨달은 듯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말도 안 돼. 저 빛줄기 하나하나가 6사이클급 마법과 거의 비슷한 위력인 것 같은데? 아니지, 마법의 특성상 넓게 퍼지는 것에 비해 저것은 거의 한 점에 모든 힘이 집중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부분이 받는 충격은 8, 9사이클 이상이라고 봐야겠군. 웬만한 방어 마법은 그냥 뚫고 들어가겠어. 한낱 호비트나 엘프 따위가 저런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니……. 정말 직접 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