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2화 (368/930)

대륙 동맹군의 결성

코린트의 수도 케락스는 난데없는 손님들의 방문으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황궁 외곽에 만들어져 있는 이동 마법진에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경비병들은 일순 기겁을 할 정도로 놀랐다. 이때 먼저 연락을 받았는지 기사 한 명이 달려 나오며 그들을 맞이했다.

“빨리 오셨군요.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 나왔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로체스터 공작 전하께 연락을 드렸으니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로체스터 공작은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그들을 환대했다. 로체스터 일행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들어서는 다크 일행 중에서 우선 아르티엔과 아르티어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크는 한눈에 용병대장이 누구인지 눈치 챘다. 그렇기에 빙긋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야∼, 역시 살아 있었군. 하기야 처음부터 나는 자네가 죽었다는 소문을 믿지 않았어. 그때 죽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히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그 말에 용병대장은 해골 가면 밑으로 일그러진 미소를 띠었다. 출혈 과다로 거의 죽을 뻔하게 만들어 놓고는 저딴 소리를 내뱉다니 말이다.

“자네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 같지 않군.”

“참, 소개할게. 이쪽은 카렐이야. 숲 속에서 조용히 사는 친구인데, 내가 끌어냈지.”

“설마, 그랜드 마스터?”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용병대장은 한눈에 카렐의 실력을 알아보고 경악했다. 그런 그를 보고 카렐은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크 외에도 이렇듯 대단한 실력을 지닌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소. 나는 카렐 아미타유스라고 하오. 그리고 이쪽은 내 아내인 키아드리아스라고 하지요.”

아내라는 말에 로체스터 등은 놀란 듯했다. 드래곤을 데리고 사는 엘프가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 대륙에 성질 더럽기로 소문이 난 블루 드래곤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저는 키에리 발렌시아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현재 코린트의 총사령관인 까뮤 드 로체스터 공작입니다. 그리고 저쪽은…….”

키에리의 소개에 따라 회의실에 모여 있던 로젠, 제임스, 까미유 등이 카렐, 키아드리아스, 그리고 루빈스키와 인사를 나눴다. 일단 서로 간에 소개와 인사가 끝난 후 로체스터의 권유에 따라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아르티엔과 아르티어스는 없었다. 아르티엔이 자신은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밖으로 나가면서 아르티어스의 귀를 잡아당겨 같이 나가 버렸던 것이다.

“현재 마왕군의 세력은 알카사스 쪽으로 점차 집중되고 있소.”

얼마 전까지 마왕 편에 가담해서 싸웠기에 누구보다도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루빈스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확실한 정보입니까?”

“그렇소, 새로운 마수들이 대거 등장한 덕분에 알카사스의 기사단이 뒤로 밀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소.”

로체스터 공작의 말에 루빈스키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며칠 전 서부 전선에 투입된 몬스터의 대군은 알카사스 기사단의 허를 찌르는 기습 작전으로 3만에 이르는 막심한 피해를 입은 후 점차 뒤로 후퇴하는 중이었다.

그 전투는 알카사스의 주력을 한꺼번에 투입하여 아주 짧은 시간에 끝내 버린 것이었기에, 루빈스키 대공으로서는 뒤로 빠져 있던 기사단을 투입할 여유가 없었다. 그 때문에 무려 3만이라는 몬스터를 잃고 대패했던 것이다. 그 전투가 끝난 후 토지에르에게서 새로운 지시가 내려왔다. 모든 기사단을 뒤로 후퇴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런 지시가 내려왔던 것일까? 토지에르는 서쪽에 대량의 몬스터를 추가 투입한 모양인데…….

“그렇다면 알카사스 쪽에는 마왕 토벌군을 보내 달라는 말을 할 수 없겠군.”

다크의 말에 로체스터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도 그럴 거요. 그들은 지금 자기들 앞가림을 하기에도 벅찰 테니까 말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한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어?”

“일단 크루마와 아르곤에 마왕 토벌대를 파견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도록 합시다.”

“크루마에는 공문 같은 거 보낼 필요가 없어. 통신으로 내가 미네르바에게 부탁하면 되겠지. 하지만 아르곤도 지금 몬스터와 전쟁 중인데 보내 줄까?”

“글쎄, 하지만 시도는 한번 해 봐야지요. 일단 병력을 치레아 공국에 집결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오. 안전을 위해서 실력이 우수한 몇 명은 타이탄에 탄 채로 공간 이동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려면 공간 이동을 위한 거리가 짧은 것이 훨씬 유리하지 않겠소? 그런 면에서 치레아가 가장 적격인 것 같소. 치레아 공국 북쪽에 있는 치론시 근처를 기점으로 잡으면 어떻겠소?”

다크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다크가 동의하자 로체스터 공작은 지금껏 자신이 짜 놓은 작전을 설명했다.

“먼저 마왕의 주력 부대는 이쪽 알카사스에 있소. 하지만 우리 쪽 정찰대가 상대해 본 결과 발록을 주축으로 하는 상급 마족들의 경우 상당한 수준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오. 그놈들은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기에 어디로든지 이동 가능하다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이쪽에서 기습 공격을 가한다고 해도, 그들은 곧 크라레인시로 돌아올 거요. 하지만 그 많은 부하들까지 함께 거느리고 오지는 못할 테니, 엄청난 수의 마물들과의 격전은 피할 수 있어 다행이 아닌가하오.”

“그렇다면 마왕을 처치한 후에 남은 마물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 마물들은 마왕이 불러낸 것들이오. 그런 만큼 그들을 소환한 주체인 마왕이 사라지면 그들 또한 마계로 돌아갈 거라는 것이 우리 쪽 마법사들의 의견이오.”

“그래? 그렇다면 알카사스가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 마왕군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는 말이군.”

다크의 말에 로체스터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건 치레아 대공의 말이 맞소.”

“흐음, 그래?”

잠시 머리를 굴리던 다크는 루빈스키에게 말했다.

“이봐, 이 기회에 알카사스에도 빚을 만들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 말에 루빈스키는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방금 전에 말했던, 그 의미 없는 싸움에 끼어들어서 본국도 피를 흘리자는 말인가?”

“아니, 그게 아니야. 기습 작전에는 근위 기사단만 있으면 돼. 그러니까 나머지는 알카사스로 보내 그놈들을 도와주는 거야. 현재 격전을 벌이고 있을 테니까, 그들이 마왕군을 피해서 후퇴할 수 있게만 해 주면 되지 않겠어?”

루빈스키는 다크의 말에 뭔가 깨달았다는 듯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아하, 그러니까 정면충돌은 할 필요 없고, 후퇴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말이군.”

“맞아, 그렇게 해두면 알카사스와의 관계 개선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마왕의 능력이 그렇게 강하다면 웬만한 기사들로서는 보탬이 될 수 없거든. 그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라도 그 작전에 투입해야 해. 안 그러면 황제를 구출하는 신성한 작전에 자기들이 빠질 수 없다고 난리를 부릴 테니까 말이야.”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쪽은 대충 끝내 놓고 빨리 돌아와. 여기도 자네가 필요하니까 말이야.”

“황제 폐하를 구출하는 일인데, 내가 빠질 수는 없지 않겠나? 조금만 기다려. 금방 끝내고 돌아올 테니까.”

그렇게 말한 후, 루빈스키 대공은 기사단을 거느리고 알카사스로 떠났다.

다크와 통신을 끝낸 미네르바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것을 보고 이블리스가 슬쩍 말을 건넸다.

“근위 기사단에 출동 명령을 내릴까요?”

한동안 어떻게 하는 것이 크루마에 도움이 될 것인지 머리를 굴리던 미네르바는 이윽고 결심했는지 명령을 내렸다.

“아니, 지발틴 기사단에 출동 명령을 내려라. 상대는 마왕…, 아마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본국의 영광을 위한 전쟁도 아닌데 근위 기사단의 엘리트들을 낭비할 수는 없다. 이런 명분만 세워 주면 되는 싸움에는 일류 정도만 데려가도 충분히 생색을 낼 수 있어.”

이블리스는 미네르바의 현명한 결정에 감탄했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전하. 곧, 알프레드 쟉센 후작에게 지시하겠사옵니다.”

“참, 오너들만 집합시켜라.”

미네르바의 말에 이블리스는 의아해했다. 타이탄이 움직이면 당연히 부수적으로 함께 이동해야 하는 보조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타이탄을 지급받은 오너만을 집합시키라는 것일까?

“예? 오너들만 말이옵니까? 하지만 타이탄을 보조하기 위해서는 정찰조와 마법사가…….”

“마물들을 상대로 정찰조는 무의미해. 기습해서 마왕의 본거지를 박살 내는 작전이다. 오직 마물을 상대하기 위한 타이탄만이 필요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옛! 그렇게 전하겠사옵니다, 전하. 그런데 전하께옵서도 가실 것이옵니까?”

“물론이지.”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미네르바에게 이블리스는 기겁을 한 듯 만류했다.

“그건 너무 위험하옵니다.”

“후후, 괜찮다.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으니까. 그럼, 준비하도록.”

“옛! 전하.”

최후의 전쟁

아르곤은 마법사를 사용하지 않는 체제 때문에 연락소라는 특이한 기관을 필요로 하는 국가였다. 왜냐하면 신성 마법과 마법의 차이점 때문이었다. 마법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국가 간에는 서로가 약속하여 개방해 놓은 통신 채널을 통해 마법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는 아르곤 제국과 그런 식으로 통신을 주고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아르곤 내부에서는 통신의 권능을 가지고 있는 사제들끼리는 통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통신의 권능을 가진 사제와 마법사 간에는 서로 간의 불일치점 때문에 통신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힘을 보태 달라는 로체스터 공작이 띄운 공문은 일단 아르곤에 있는 코린트 연락소에 상주하는 마법사를 통해 수신되었다. 그런 후 연락소에 근무하는 병사나 관리가 그 공문을 가지고 아르곤 쪽에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르곤에서 코린트에 연락을 보낼 때는 그 역순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아르곤의 수도에 이런 연락소를 설치해 놓은 국가는 상당히 많았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해 놓지 않으면 서로 간에 연락 한 번 하기 위해서 최소한 한 달 이상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왕이 출현했다는 공문은 아주 빠르게 위쪽으로 위쪽으로 전달되어 갔고, 공문을 받은 지 채 다섯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최고의 권력 기관인 주교원까지 도착했다. 아마 이토록 빨리 아래쪽에서 위쪽까지 이동된 서류는 아르곤 역사상 없었을 것이다.

루빈스키가 기사단들을 거느리고 알카사스에 도착했을 때, 알카사스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갑자기 쏟아져 나온 마물들 때문에, 근위 기사단까지 투입한 상태였지만 전세는 결코 호전되지 않고 있었다. 또한 발록과 처음 보는 마물들은 타이탄을 능가하는 위력을 보였기에 알카사스 기사단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빈스키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부하들에게 신속히 명령을 내렸다.

“모두들 타이탄을 꺼내라, 빨리.”

“옛!”

“각자 자신의 능력껏 싸워라. 나는 이곳에서 승리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상자 또한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알겠는가?”

“옛! 전하.”

“자, 그럼 돌격하라.”

알카사스의 병사들은 갑자기 후방에 나타난 대규모의 타이탄부대 때문에 잠시 혼란에 빠졌다. 이들이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뒤에서 돌진해 들어온 타이탄 부대들은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던 그들을 비껴 지나가서 마물들에게로 공격해 들어갔다. 이 모습을 본 알카사스의 기사들은 용기백배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원군이 온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규모의. 그들도 뒤처지지 않고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루빈스키 대공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마물들을 아주 능숙한 솜씨로 베면서 돌진했다. 확실히 마스터인 그의 실력은 부하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것이었다. 부하들이 한 마리 잡는 것도 힘에 부쳐서 난타전을 벌이고 있을 때, 그는 거의 칼질 한 번에 한 마리씩 끝을 내니 말이다. 그는 주위에 서 있는 붉은 매의 문장이 그려진 타이탄을 타고 있는 기사에게 물었다.

“귀국의 총사령관은 어디에 계시나?”

“예, 쥬프티안 공작 전하께서는 선두에 계셨습니다. 하지만 마물들의 세력이 더욱 증가한 이후는…….”

“알았다.”

루빈스키는 마물들을 베면서 앞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크라레스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스바시에 기사단과 치레아 기사단이 아그리오스 후작의 지휘 아래 뒤따르며 엄호했다.

“쥬프티안 공작!”

상대편 총사령관을 찾으며 점차 앞으로 진격해 가던 루빈스키는 점점 더 많은 마물들이 자신을 가로막는 것을 느끼고 다시금 뒤로 후퇴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쥬프티안 공작이 살아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철갑과도 같은 두꺼운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마물들. 마물들의 모양은 가지각색이었고, 4미터부터 시작해서 10미터 정도로 크기도 들쭉날쭉했다. 마물들은 강철보다 튼튼한 것 같은 두꺼운 껍질로 싸여 있었고, 별의별 희한한 무기들을 가지고 공격해 왔다. 가위처럼 날카로운 날을 가진 거대한 집게발이라든지, 칼 같은 형태로 진화한 앞발, 강력한 철침 같은 꼬리 등등…….

“이것들은 뭐야? 이렇게 생긴 몬스터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어.”

미디아가 마물들의 흉측한 모습에 기겁을 해서 외치자, 팔시온은 그들을 향해 덤벼드는 거대한 마물의 집게발을 향해 방패를 들이밀며 악을 썼다.

“닥치고 싸워!”

팔시온과 싸우는 마물은 그의 타이탄보다 거의 2미터 정도 키가 더 컸고, 떡 벌어진 어깨에 양손에는 집게발 같은 것이 붙어 있으면서 두 발로 돌아다니는 특이한 형태였다. 전체적으로 인간과 비슷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보다 훨씬 더 어깨의 폭이 넓었고 두터운 장갑판 같은 천연 갑옷을 두르고 있는 데다가 끔찍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팔시온의 거대한 검이 대기를 가르며 마물의 집게발 아래를 향해 직격했다. 하지만 불꽃이 번쩍 튀었을 뿐, 검은 튕겨져 나갔다.

“이, 이럴 수가…….”

팔시온이 앞에 있는 마물과 서로의 장갑이 얼마나 두터운지 내기라도 하듯 난타전을 벌이고 있을 때, 뒤에 처져 있던 미디아의 타이탄이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미디아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타이탄의 무게를 십분 이용하여 앞으로 검을 쭉 내밀며 충격에 대비했다.

퍽!

검이 마물의 어깨 부분에 깊숙이 박혔다. 하지만 마물은 더욱 괴성을 질러 대며 반대편 집게발을 쳐들어 타이탄을 떨쳐 내 버렸다. 쩡하는 소리와 함께 미디아의 검이 부러졌고, 그녀의 타이탄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일으킨 후 검 끝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검에서 빛이 나며 순식간에 검이 재생되었다.

“젠장, 엄청나게 강하네. 집게손이 두 개니까 각자 하나씩 맡자, 좋지?”

미디아의 말을 알아들은 팔시온은 약간 후퇴한 후 다시금 방패를 앞으로 밀며 마물에게 돌격했다. 마물의 오른쪽 집게를 팔시온이 후려치며 파고드는 순간, 미디아는 옆에서 마물의 왼손 집게를 방패로 저지했다. 그리고 곧이어 팔시온은 검을 곧장 심장이 있음직한 마물의 왼쪽 가슴을 향해 힘껏 찔렀다. 하지만 불꽃만 번쩍였을 뿐, 그의 검은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또다시 마물의 공격에 뒤로 후퇴한 후, 미디아는 팔시온에게 투덜거렸다.

“야, 그냥 힘으로 찌르면 어떻게 해? 여태껏 배운 고급 검술은 어디에 써먹으려는 거야? 힘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저런 돌대가리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뭐야? 나도 힘껏 하는 중이라구.”

말이 안 통하는 팔시온에게 약이 바짝 오른 미디아가 악을 썼다.

“뭐가 힘껏 하는 거야? 이렇게 하란 말이야!”

미디아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휘둘러지자, 엄청난 마나의 회오리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마물의 머리 위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래쪽으로 피보라가 터진 것도 그 순간이었다.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끄덕도 않던 마물이 너무나 싱겁게 두 토막으로 갈라지며 좌우로 무너져 내렸다.

“뭐야? 검기를 쓰라는 말이었냐? 그렇다면 진작 말했으면 좋았을 거 아냐?”

아무래도 타이탄을 탄 상태에서 검기를 구사하는 것은 타이탄에 따라 다르지만 표준 출력(1.0)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약 네 배의 마나가 더 필요했다. 그렇기에 미디아는 순간적인 마나의 방출로 인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그 정도는 알아들었어야지, 이 돌머리야. 자, 빨리 가자.”

알카사스의 주력 부대는 크라레스군의 도움으로 겨우 전선에서 후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입은 피해는 너무나도 막심한 것이었다. 거의 태반에 가까운 기사가 전사한 것이다. 사실 크라레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전멸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적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자 그들은 크라레스의 도움에 감사를 표했다.

“이 자리에 계시지는 않지만 국왕 폐하를 대신해서 귀국의 도움에 충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귀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본국의 기사단은 아마 전멸했을지도 몰랐습니다.”

상대편 노기사의 말에 루빈스키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자자, 우리는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을 했을 뿐이오. 알카사스와 크라레스는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해 왔지 않소? 귀국의 어려움을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소.”

“그나저나, 큰일이군요. 본국은 오늘 전투로 총사령관 전하께서 전사하실 정도로 지독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저것들을 상대로 계속 싸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군요. 귀국의 상황도 어려울 텐데, 본국을 계속 도와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입니다.”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루빈스키 대공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과 꼭 맞서 싸울 필요는 없을 거요.”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일이면 본국을 비롯해서 코린트, 크루마, 아르곤의 연합 부대가 마왕을 해치우기 위해 움직일 거외다. 모든 국가에서 자랑하는 최고의 기사들에다가 드래곤들까지 동원되는 전쟁이니 승리할 것이 분명하오. 그때까지 귀국은 적들과 전쟁을 벌이지 말고 적당히 막으며 계속 후퇴만 하면 되오.”

루빈스키의 조언에 상대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드래곤들까지……. 그, 그게 정말입니까?”

“사실, 귀국의 기사단이 마왕군에게 전멸당하도록 그냥 놔둘 수도 있었소. 하지만 여태껏 귀국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었소. 귀국과는 요 근래 몇 년을 제외하고 아주 좋은 이웃이었지 않소?”

“제2차 제국 전쟁을 기회로 귀국을 공격한 본국을 위해 이렇게까지 힘을 써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뭘요. 기사도에 따라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그건 그렇고, 이만 실례해야겠소. 뒷일은 아그리오스 후작이 알아서 도와주게 될 것이오.”

루빈스키 대공은 서둘러서 아그리오스 후작을 찾았다. 자신이 빠져나간다면 이곳에 주둔하게 될 크라레스 기사단의 지휘권을 맡을 만한 경력과 지위를 지닌 사람은 아그리오스 후작뿐이었다. 연락을 받은 아그리오스 후작이 다가오자, 루빈스키 대공은 서둘러서 말했다.

“여기 일은 어느 정도 수습되었으니, 나는 치레아 대공과 합류하겠다. 뒷일은 경이 알아서 처리해 주기 바란다.”

“예, 전하.”

“황제 폐하를 구출하는 작전이다. 거기에 내가 빠질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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