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3화 (379/930)

번개의 신 당케 탱게르

“밖이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이냐?”

두툼한 호랑이 가죽을 깔아 놓은 의자에 앉아 있던 대족장 타르티는 밖이 시끌벅적 시끄럽자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 서 있던 해리바가 즉시 문 앞에 서 있던 호위 병사에게 지시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 봐라.”

“옛!”

병사가 달려 나간 후, 타르티는 해리바와 방금 전까지 나누던 대화를 계속했다.

“흐음, 아무래도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 명확한 확증도 없는 상태에서…….”

해리바는 침중한 표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계속 타르티에게 밀어 붙였다.

“대한(大汗)이시여,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습니까? 작년에 스루 한님은 딸을 시집보냈습니다. 여자가 나이가 차면 결혼을 시키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그 상대가 우구나이 한님이었습니다. 우구나이 일족은 둥루젠 북쪽에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대부족이 아닙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며칠 전에는 구로 한님께 딸을 달라고 청혼을 넣은 모양입니다. 물론 스루 한님의 둘째 아들이 장성해서 결혼할 나이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그 상대가 구로 한님이라면 저희로서는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만약 이번 혼사가 성립된다면 둥루젠의 북방 전체는 스루 한님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스루 한님께서 대한께 대항하고자하는 뜻을 한번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세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세력을 결집한 후에 대항을 시작하면 저희로서는 이미 늦습니다. 그러니 빨리 뭔가…….”

하지만 해리바의 말은 여기서 끊겨야 했다. 왜냐하면 방금 자신이 내보냈던 병사가 허겁지겁 달려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 대한이시여. 큰일 났습니다.”

해리바는 인상을 찡그리며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대한께서 계신 곳에서 이 무슨 무례한 짓이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리 호들갑을 떨고 난리냐?”

“탱게르께서 현신하셨습니다. 번개의 조화를 부리시는 것으로 보아 당케 탱게르이신 것이 분명합니다. 오오, 탱게르시여!”

해리바는 대한과의 밀담이 방해를 받은 것도 짜증이 났지만, 그 대화를 방해한 병사가 횡설수설하고 있자 더욱 화가 치밀었는지 언성을 높여 질책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좀 더 자세히 말해 보라!”

“예, 두 분의 탱게르께서 오셨습니다. 두 분 다 정말 여인처럼 아름다우신 분들인데, 한 분은 불타는 듯 붉은 머리에…….”

병사의 보고를 다 들은 후 해리바는 손을 내저어 병사를 물리쳤다. 그런 다음 타르티에게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당케 탱게르께서 왕림하신 것을 보면, 대한께 탱게르의 축복이 함께 하시는 모양입니다.”

그 말에 타르티는 시큰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병사의 보고를 듣다 보니 아무래도 씨쥬 상인 놈이 농간을 부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부족민들이 탱게르를 열성적으로 받드는 것이 부려먹기 편해서 좋기는 하지만 그런 허무맹랑한 전설이나 신화를 믿는다는 것은 바보짓이야.”

해리바는 타르티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난 뒤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현명하신 생각이십니다. 물론 그들이 진짜 탱게르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가짜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한께서는 그들을 진짜로서 받아들이십시오.”

해리바의 조언에 타르티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언성을 높여 외쳤다.

“뭐라고? 왜 내가 그런 바보놀음에 장단을 맞춰 줘야 한다는 말이냐?”

“탱게르께서 대한께 나타났다는 것은 대단히 상서로운 징조가 아니겠습니까. 예순넷씩이나 되는 탱게르들 중에서 그들이 누구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설혹 그들이 사기꾼들이라도 상관없는 일이지요.”

타르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해리바를 바라봤다. 하지만 해리바는 그런 타르티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계속했다.

“예, 그런 하찮은 것들은 모두 다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탱게르께서 그 누구도 아닌 대한께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잘 이용하신다면 동루젠 부족의 진정한 화합을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서야 해리바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타르티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옳거니, 그런 것이 있었군. 탱게르의 뜻이 나에게 이어졌다면 그 누구도 감히 내게 반항할 수 없겠지?”

“예, 물론입니다. 설혹 반항하는 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대한께서 군대를 끌고 가신다면 항복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그 어떤 부족민도 탱게르의 군대를 상대로는 싸우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타르티는 호탕하게 웃으며 해리바에게 지시했다.

“크하하핫! 좋아좋아. 그렇다면 주술사를 빨리 불러라!”

대족장 타르티의 명령이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해리바는 조금도 미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주술사는 왜 찾으시는 것이옵니까?”

“탱게르가 왔다면 당연히 주술사와 함께 맞이해야 할 것 아닌가?”

타르티의 대답에 해리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술사는 지금 마을에 환자가 생겨서 성밖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대한께 오히려 더 잘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타르티는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째서?”

“탱게르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여태껏 주술사가 해 왔지 않습니까. 탱게르의 뜻이라고 한다면 심지어 한(汗)까지도 바꿔치울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있죠. 그만큼 위험한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탱게르가 직접 현신하셨으니, 이번 경우는 주술사를 통하지 않고 대한께서 직접 대화를 시도해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타르티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호오, 그러니까 탱게르를 끼고 있기만 하면 내 말이 곧 탱게르의 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만약 주술사가 탱게르를 만나게 그냥 놔둔다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해리바는 타르티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오자 곧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예, 만약 주술사가 탱게르가 가짜라는 것을 밝혀낸다면 아주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렇겠지.”

“그러니까 주술사가 탱게르께 접근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타르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을 하다 해리바에게 지시를 내렸다.

“좋아, 그럼 자네는 곧장 주술사에게 가서 시간을 끌어. 아니, 그보다는 아예 만나지 못하게 막아.”

지시를 받고 급히 밖으로 나가려던 해리바는 뭔가 떠올랐는지 뒤로 돌아 타르티에게 말했다.

“대한,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일주일 후에 또 다른 선단이 지팡그로 출발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감사제를 대대적으로 올리도록 주술사에게 지시하는 겁니다. 물론 감사제 준비를 넉넉하게 할 수 있도록 금을 듬뿍 집어 주면 되겠지요. 그리고 이번 감사제는 매우 성대한 것이니, 감사제가 무사히 잘 끝마쳐질 수 있도록 부정이 타지 않는 곳에서 감사제 전까지 탱게르께 기원을 해 달라고 하는 겁니다.”

타르티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 무릎을 치며 찬성했다. 그러나 곧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호오, 그것 정말 좋은 생각이군. 그나저나 젠장, 그 탐욕스러운 주술사 놈에게 또 얼마나 많은 금을 집어 줘야 되는 거야?”

잠시 투덜거리던 타르티는 해리바에게 지시했다.

“황금은 필요한 만큼 자네가 알아서 가져가게. 어쨌건 자네는 지금 바로 주술사에게 가 보게. 주술사가 언제 성으로 돌아올지 모르니까, 한시가 급해.”

“옛!”

지시를 내린 타르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이제 둥루젠을 일통시키는 한판 연극을 하러 가 볼까. 흐흐흐.”

한동안 목청껏 천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던 병사들의 외침이 서서히 잦아들면서 주위가 점차 잠잠해지기 시작했을 때, 웬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근엄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르티어스의 눈에 보였다. 그의 뒤에는 네 명 정도의 기골이 장대한 호위 무사들이 허리에 칼을 찬 채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아르티어스로부터 3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부터 땅바닥에 엎드리더니, 엉금엉금 기어서 아르티어스에게로 다가왔다. 이윽고 아르티어스 앞에 도착한 그 사내는 정중한 어조로 한동안 중얼거리더니 양손을 뻗어 아르티어스의 발을 살며시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렸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묵향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저놈은 도대체 제정신이 박힌 놈인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발을 자기 머리 위에 올릴 수 있는 거죠? 내가 저런 꼴을 당했다면 칼을 물고 죽었을 건데, 저놈은 자진해서 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네.”

묵향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거드름을 피웠다.

“흐흐흐, 이것이 바로 이놈들이 하는 복종의 맹세지. 그러니까 자신을 노예처럼 부려 달라는 의미가 아니겠냐. 너는 이놈이 누군 줄 모르겠지?”

아르티어스는 자신의 발을 머리에 올리고 있는 중년의 사내를 가리키며 물었다. 묵향은 당연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점쟁이가 아닌 이상 처음 보는 원주민이 누군지 어찌 알겠는가? 그리고 원주민들은 머리 모양도 한결 같았고, 또 모두들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있었기에 그놈이 그놈 같아서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묵향이 맹한 얼굴로 서 있자, 아르티어스는 호기롭게 웃으며 말했다.

“으하하핫, 바로 이 녀석이 대족장 타르티라는 놈이야. 이것으로 둥루젠 부족의 모든 호비트는 모두 다 내 노예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아르티어스의 말에 묵향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서, 설마…….”

“쯧쯧, 그래서 내가 누누이 말했지. 아직도 너는 좀 더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르티어스도 이것을 공짜로 배운 것은 아니었다. 무슨 할 짓이 없어서 드래곤이 호비트의 심리를 연구하고 있겠는가. 한번 몸체만 쓰윽 보여 줘도 모든 것이 만사형통인데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다 다크 탓이었다. 그녀에게 휘둘리며 아르티어스가 그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수많은 호비트들을 거느리고 막노동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러다 보니 호비트들을 손쉽게 다루는 방법을 어쩔 수 없이 익힐 수밖에 없었던 아르티어스였던 것이다.

잠시 어깨를 으쓱거리던 아르티어스는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호비트의 심리 상태를 꿰고 있으면 뭐 하느냔 말이다. 정작 그가 휘어잡고 싶은 호비트 놈에게는 아예 자신의 말이 먹혀들지를 않는데 말이다. 아니, 먹혀 들어가기는커녕 그 지독한 똥고집과 드래곤도 손을 내저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파워, 이게 정말 호비트가 맞기나 한지 아르티어스도 가끔 헷갈릴 지경이었던 것이다.

“에이, 젠장. 만사를 잊어버리고 오랜만에 뜨뜻한 물로 목욕이나 하고 싶구나. 어서 성으로 들어가자.”

아르티어스의 속을 모르는 묵향은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예.”

묵향과 아르티어스는 타르티의 안내를 받으며 내전(內殿)으로 들어갔다. 아르티어스는 호랑이 가죽이 깔려 있는 상석에 거만한 태도로 앉아 타르티와 부하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타르티에게 목욕물을 준비하라고 지시했을 때 타르티는 왠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르티어스가 인상을 팍 찡그리자 허둥지둥 부하에게 뭐라고 지시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가 왜 그렇게 허둥댔었는지는 목욕을 하러 간 후에야 알 수 있었다. 타르티가 안내한 곳은 성의 부엌 뒤편에 급조한 커다란 천막이었다. 천막 안에 들어간 묵향이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이거 목욕탕 맞아요?”

아르티어스 역시 목욕탕을 둘러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글쎄다.”

“제가 보기에는 통돼지 한 마리 잡아넣고 삶는 곳 같은데요?”

묵향의 표현대로 이건 돼지를 잡아 삶는 곳인지, 목욕을 하는 곳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곳이었던 것이다. 소 한 마리는 통째로 삶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무쇠 솥에 물이 펄펄 끓고 있었고, 그 옆에는 찬물이 들어 있는 크고 작은 그릇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젠장, 용도는 네가 말한 그게 맞는 것 같은데 뭐 어쩔 수 있냐. 이놈들은 아무래도 목욕이라고는 거의 안 하고 사는 것 같단 말씀이야. 그래서인지 내가 알고 있는 원주민 말 중에서 ‘목욕’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었다. 그래서 뜨뜻한 물로 몸을 좀 씻은 후에 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지.”

“뜨뜻한 물이요? 이 정도면 고기를 삶아도 되겠는데요. 하긴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씻을 수만 있다면 이런 거라도 어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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