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럼 편히 쉬시기를.”
처음 만났을 때 아르티어스에게 접근하여 둥루젠 말로 통역을 했던 병사는 아르티어스와 묵향을 숙소로 안내해 준 다음, 얼른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뒤로 돌아섰다. 원래는 방까지 안내를 해야 마땅했지만 아르티어스의 첫인상이 워낙 흉흉했기에 조금이라도 같이 있기 싫었던 것이다.
병사는 혹시라도 아르티어스가 자신을 부를까 두려운지 도망치듯 황급히 사라져 버렸다. 병사가 가고 난 후, 아르티어스는 방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묵향에게 물었다.
“이거 어디가 문이고, 어디가 벽이냐? 아니면 이게 전부 다 문인가? 내가 살다 살다 손잡이도 없는 이런 문은 처음 본다. 그나저나 이건 도대체 어떻게 여는 거야? 에이, 성질나는데 그냥 부수고 들어가?”
아르티어스가 은근히 짜증난다는 듯 투덜거리자 묵향이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문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문도 못 여는 드래곤이라는 말이 묵향에게서 튀어나올까 봐 아르티어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딴청을 피웠다.
“흐흠, 여기에 사는 호비트들은 여태껏 내가 봐 왔던 놈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특이한 문화를 지니고 있는 것 같군. 너도 오면서 봤잖냐? 성(城)도 아주 이상하게 만들어 놨고 말이다.”
아르티어스의 말처럼 오키타의 안내를 받아 영주가 살고 있는 성으로 왔을 때 자신들이 알고 있던 성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그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날아오를 듯 아름답게 지어져 있는 내성은 아르티어스는 물론이고 묵향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10미터는 됨직한 높은 성곽 위로 내성의 3층 누각이 아름답게 솟아올라 있는 성은 마치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놀란 것은 성안으로 들어갈수록 복잡한 구조였다. 돌로 치밀하게 쌓아 올린 성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방어가 용이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아르티어스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이곳도 결코 평화로운 곳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만 하면 이곳에서도 흥미진진한 하루하루를 만끽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내심 입이 찢어져라 웃었던 아르티어스였다.
그리고 성안으로 들어왔을 때, 내부 구조를 본 아르티어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밖에서 봤을 때를 생각한다면 성안에도 분명 두터운 벽들로 가로막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제의 모습은 그것과 아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빛을 싫어하는 뱀파이어가 사는 성처럼 어두컴컴한 좁은 복도가 마치 미로와도 같이 이리저리 뚫려 있었고, 그 복도의 양 옆으로는 희멀건 종이를 바른 문들이 쭉 연결되어 있었다.
아르티어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그들을 안내한 병사가 성의 정문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이들이 다른 영지의 간자들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의식해 구석진 성벽을 따라 내성 가장 깊숙한 곳으로 곧장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르티어스가 뭐라고 주절거리든 묵향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나무 창살에다가 얇은 종이를 발라놓은 문에 다가가 이리저리 살펴보다 곧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이거, 미닫이 문이네. 아빠는 처음 보시죠? 이런 식으로 여는 것을.”
드드드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묵향도 처음 보는 형태의 방이 그들을 맞이했다. 자신과는 달리 묵향이 너무 쉽게 문을 열자 슬쩍 인상을 찡그리며 안으로 들어서던 아르티어스는 금이 든 궤짝을 한쪽에다 던져 놓고, 재미있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호오, 여기는 주거 문화가 아주 독특하구나. 방바닥을 온통 짚으로 깔아놨을 뿐만 아니라 벽은 없고, 사방이 온통 문이네. 네가 태어났던 중원도 이런 식이냐?”
묵향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고개를 흔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뇨, 이런 식으로 벽이 없으면 여름에는 시원할지 모르겠지만 겨울에는 얼어 죽기 딱 알맞죠.”
말을 하던 묵향은 짚으로 만든 바닥을 천천히 만져 보더니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아마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는 방인가 봐요. 그나저나 이거 굉장히 촘촘하게 잘 만들었네. 그리고 여름에 문을 전부 열어 놓으면 굉장히 시원하겠죠?”
그 말을 듣자마자 아르티어스는 한쪽 방문을 드르륵 열며 말했다.
“안 그래도 방구석도 좁은데 지금 열……?”
문을 열던 아르티어스는 뭘 봤는지 잠시 두 눈을 꿈벅거리다 도로 방문을 탁하며 닫았다. 옆방에는 검을 든 무사들이 우글우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젠장, 설마 손님이 있을 줄은 몰랐네.”
묵향은 피식 웃으며 아르티어스에게 빈정거렸다.
“아빠는 꼭 문을 열어 봐야 사람들이 있는 줄 아시나 보죠?”
아르티어스는 대꾸도 않고 반대편 문을 벌컥 열어 젖혔다. 하지만 그 방에도 무사들이 정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문을 닫으려던 아르티어스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둥루젠 말로 지껄였다.
“젠장, 갑자기 문을 열어 미안하네.”
그러자 그들은 당황한 듯 잠시 허둥거리다 벌떡 일어나 아르티어스에게 깊숙이 머리를 숙이며 뭐라고 지껄였다. 무례했던 것은 자신인데 그들이 더욱 고개를 조아리자 아르티어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로 문을 닫았다.
별 웃기는 놈들을 다 본다는 듯 투덜거리던 아르티어스는 뭘 봤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묵향에게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불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이미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의 흥미로움이 전부 사라진 아르티어스로서는 이젠 짜증만이 남아 있었다.
“근데 이 자식들은 손님 접대가 왜 이 모양이야? 우리들이 무슨 마구간지기인 줄 아나. 짚으로 대충 만든 방에서 자라고 하다니, 영 기분이 안 좋네.”
아르티어스의 말에 묵향도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 말이에요. 아무리 봐도 침대가 없는데 어디서 자란 말인지 모르겠네요.”
“그건 그렇고 일단 쉬었으면 좋겠는데 어디에 앉지?”
연신 투덜거리며 이리저리 방 안을 둘러보던 아르티어스의 눈에, 방 한쪽에 쌓여 있는 쿠션 같은 것들이 보였다. 아르티어스는 그것을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젠장, 바닥이 더러우니 이것을 깔고 앉으면 되겠군.”
쿠션을 가져다가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앉았지만, 아무래도 자세가 불편한 아르티어스였다. 불편한지 이리저리 몸을 뒤틀던 아르티어스는 쿠션을 벽 옆으로 옮긴 후 벽에 기대어 앉으며, 편안히 쿠션에 앉아 있는 묵향에게 물었다.
“넌 그러고도 편안하냐? 나는 도통 자세가 불편해서 원.”
“글쎄요, 저는 내공수련 때 보통 이런 자세로 몇 시간씩 앉아 있기에 별로 불편한지 모르겠는데요.”
바로 이때 방문 밖에서 간드러지는 듯한 여성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자신들의 방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두 사람이었기에 아예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한 번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스르륵 방문이 열렸다. 방문 밖에는 웬 여인이 꿇어 앉아 묵향과 아르티어스 쪽에는 눈길도 돌리지 않고 깊숙이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두 사람이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발밑만을 보면서 방 안으로 살그머니 들어와서는 다시 꿇어 앉아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살짝 뒤로 돌아앉더니 다시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는 것이었다.
절을 끝내고 그녀가 고개를 살며시 들었을 때, 그때서야 두 사람은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갸름한 얼굴에 귀엽게 생긴 소녀였다. 그녀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아르티어스의 발을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놀란 듯 하던 표정과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나긋나긋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나 싶어 어리둥절해 있는 아르티어스와 묵향의 반응에, 그녀는 이들이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들임을 그때서야 깨닫고, 살그머니 다가와서는 두 사람의 신발을 벗겨서 방문 밖에다가 내 놨다.
“아, 이제야 알겠네. 여기는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공간이 아닌 모양이네요.”
놀랍다는 묵향의 반응과는 달리 아르티어스는 짜증난다는 듯 투덜거렸다.
“젠장, 내 살다 살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방은 또 처음이네. 그나저나 이거 도무지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해서 죽겠구만.”
“그러니까 누구 하나 붙잡아서 말을 배우시라니까요. 아까 통역했던 그 병사 녀석을 불러 달라고 하려고 해도 말이 통해야 불러올 것 아닙니까?”
“에잇, 젠장! 어떻게 이 차원에 와서는 가는 곳마다 미개한 호비트들의 말을 배워야 하는지, 귀찮게스리…….”
아르티어스는 신발을 밖에다가 놔두고 들어오는 소녀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너, 이리 좀 와 봐.”
그녀는 아르티어스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모양을 보고 상대가 뭘 원하는지 알아챈 듯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아르티어스는 자신의 바로 앞에까지 다가온 소녀의 머리에다가 손을 올렸다. 그녀는 움찔했지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것을 보고 옆에서 묵향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한마디 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그렇게 다짜고짜 머리에다가 손을 올리면 어떻게 해요? 그건 아주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라구요. 만약 어떤 놈이 내 머리에다가 그렇게 손을 올렸으면 대가리를…….”
“시끄러워! 한참 정신 집중을 하고 있는 판에 옆에서 말 걸지 말란 말이야.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아르티어스는 소녀의 머리에서 손을 뗀 후,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상대가 지닌 과거의 기억들. 둥루젠의 언어를 배우면서 비참할 정도로 동물적인 그들의 삶을 읽었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던 아르티어스였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오랜 시간 아르티어스가 가만히 앉아 있자 묵향은 약간 불안해졌다. 아르티어스의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상대가 지닌 과거의 기억을 읽어서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단 한 번에 언어는 물론이고, 생활 습관과 관습 등 상대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지식까지도 흡수할 수 있었다.
이런 방법을 드래곤밖에 할 수 없는 것은 단시간에 쏟아져 들어오는 방대한 자료를 모두 기억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욱 큰 문제는 상대의 감정 상태까지도 모두 여과 없이 전달되어 온다는 것에 있었다. 상대가 이제는 거의 잊어버린 과거의 기쁨이나 슬픔, 그리고 비참했던 기억이나 절망감까지도…….
드래곤이나 되니까 그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견뎌 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것은 조금 자극이 지나쳤는지 아르티어스도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것을 보고 묵향은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괜찮아요? 이번에는 마법이 실패한 모양이죠? 아니면 여기 말이 너무 복잡해서 이해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아르티어스는 길게 한숨을 내쉰 다음 애써 대답을 회피했다. 위대한 드래곤인 그가 한낱 호비트의 삶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예전에 유희 삼아 돌아다녔던 호비트 왕국에 있던 그 어떤 노예들도 이 소녀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아르티어스는 생각했다. 그만큼 소녀의 기억에서 파악한 이곳의 관습이나 풍속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투에는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그게 아니다. 따로 좀 생각할 것이 있어서…….”
아르티어스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소녀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그녀는 이 이국적인 생김새의 청년이 마치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유창한 이 지방 사투리로 말하자 깜짝 놀란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곧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저는 오키타 사마께서 보내신 하나코라고 합니다. 뭐든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저를 시켜 주십시오.”
“그래? 알겠다.”
하나코라고 자신을 소개한 소녀는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앞으로 두 분을 제가 모시려면 뭐라고 불러야 할지 가르쳐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르티어스는 소녀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약간 거만한 투로 말해 주었다.
“나는 위대하신 아르티어스라고 한다.”
그 말에 하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아루테에스?”
아르티어스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하녀를 노려봤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묵향이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리며 빈정거렸다.
“아루테에스? 오, 이름이 괜찮은데요?”
“이런 젠장! 재미있기도 하겠다.”
아르티어스는 언짢은 표정으로 묵향을 째려 본 뒤, 묵향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하녀에게 말했다.
“뭐 좋아. 아루테에스라고 불러라. 그리고 저놈 이름은 묵향이야. 아주 성질이 더러운 놈이지. 절대 겉모양에 속으면 안 돼. 알겠어?”
소녀는 잠시 난감한 표정으로 묵향의 이름을 중얼거려 보았다.
“무크향?”
이번에는 묵향의 인상이 팍 찌그러졌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을 거의 만나 보지 못했던 묵향은 곧이어 생각을 바꿔 낄낄거리고 있는 아르티어스에게 말했다.
“묵향보다는 다크라고 해 봐요, 다크. 그편이 발음하기 쉬울 테니까.”
묵향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나코에게 다시 이름을 가르쳐 줬다.
“이봐, 차라리 저놈 이름을 다크라고 불러라.”
하나코는 곧 묵향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옛, 다쿠 사마.”
순간 묵향의 얼굴은 아까보다 훨씬 더 찌그러졌다.
“에잇, 이놈의 종족은 혓바닥이 짧나? 왜 이렇게 발음을 못하는 거야? 젠장, 다쿠가 뭐야, 다쿠가?”
투덜거리던 묵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나코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래, 다크든 다쿠든 너 편한 대로 불러라.”
젠장, 이제 겨우 4천 살인데
이제 대충 발음 문제에 대한 합의가 끝났기에 하나코는 깊숙이 절을 하며 말했다.
“아루테에스 사마, 다쿠 사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 아르티어스와 묵향의 인상이 팍 찌그러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코는 절을 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나코는 절을 끝내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먼 여행을 하셔서 피곤하실 텐데, 목욕 준비를 시킬까요?”
하나코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묵향에게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목욕을 하겠냐고 묻는데 어떻게 할래?”
묵향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에이, 일주일 전에 했잖아요. 무슨 목욕을 그렇게 자주 해요?”
“너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하루에 한 번씩 꼭 목욕을 하거든. 아주 광적일 정도로 청결한 족속들이 살지.”
묵향은 놀랍다는 듯 아르티어스에게 되물었다.
“정말이에요? 무슨 목욕을 그렇게 자주 해요?”
“여기 여름은 아주 습하면서도 후덥지근하거든. 그래서 그런 습관이 생긴 모양이야.”
“하지만 지금은 봄이잖아요. 그리고 이 정도면 깨끗한데 귀찮게 뭐 자주 목욕을 하고 그래요?”
중원에서나 크라레스에서도 어쩌다 생각나면 가끔 목욕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 묵향으로서는 하루에 한 번씩 목욕을 한다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르티어스는 묵향을 보며 혓바닥을 끌끌 차더니 하나코에게로 시선을 돌려 말했다.
“목욕은 됐으니까 그냥 물러가거라.”
아르티어스의 말에 하나코는 난처한 듯 계속 목욕을 권했다.
“저…, 하지만 오키타 사마께서 손님들께 목욕하실 것을 꼭 권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아르티어스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하나코에게 물었다.
“오키타? 오키타가 어떤 놈인데 감히 목욕을 하라 마라 헛소리를 하는 거냐?”
“저 이런 말씀드리기는 죄송하지만, 오키타 사마께서 두 분의 몸에서 야릇한 냄새가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야릇한 냄새라고?”
아르티어스는 즉시 하나코에게서 읽어낸 기억을 차근차근 되짚어 봤다. 곧이어 그의 머리 속에 작달막하게 생긴 무사 한 명이 하나코에게 거드름을 피우면서 명령을 하는 것이 떠올랐다.
“너는 손님들에게 목욕할 것을 반드시 권하도록 해라. 영주님을 뵙는 자리에서 그따위 노린내를 풍겨 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
“옛!”
하나코를 바라보던 오키타는 미덥지 않은 듯 다시 엄중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들의 옷도 가져다가 깨끗하게 세탁해라. 만약 영주님께서 그들의 옷이 더럽다든지, 혹은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말씀을 단 한마디라도 하신다면 너는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알겠느냐?”
“옛, 명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