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3화 (389/930)

화염의 술을 쓰는 닌자

성내의 3층 중심부에 마련되어 있는 영주의 밀실에는 후지와라 영주와 그의 심복 부하 사메지마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성내의 3층은 영주와 그의 가족이 머물고 있는 곳이었기에, 그 경비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삼엄하였다. 그렇기에 3층에 들어올 수 있는 자는 오직 영주가 신뢰하는 최측근 몇 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밀실은 3층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영주는 아주 비밀스런 대화를 하고 싶었는지 자신의 경호대장만을 대동한 채, 사메지마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만큼 후지와라 영주는 사메지마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주군께서 그들을 직접 만나시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다시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십시오.”

“괜찮아. 일단 나는 그들을 만나기로 결정했네.”

“주군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며칠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아무래도 좀 더 조사를 해 본 후에 그들을 만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여기저기 첩자들을 보내 봤지만, 어디서도 그런 특이한 용모를 가진 이방인이 상륙했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해적들이 사용하는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은 상당히 수상하지 않습니까? 물론 아직까지는 해적들과의 연관성을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신다면 증명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메지마의 말에 후지와라 영주는 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겨우 해적들의 말을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 해적의 첩자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수는 없지 않겠나? 나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그들이 해적일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네. 첫째, 그들은 해적과 용모가 완전히 다르다고 들었네. 해적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눈에 띄는 용모의 첩자를 파견할 리는 없겠지. 그리고 둘째, 첩자는 원래 그들이 가고자 하는 침략로를 중심으로 배치하는 것이 정석이 아닌가? 그런데 해적들은 지금 북상하면서 노략질을 하고 있다고 자네가 보고했지 않나? 만약 저들이 해적의 끄나풀이라면 해적들은 이쪽으로 왔어야지. 안 그런가?”

물론 그들이 첩자가 아니라면 다행이겠지만, 마음을 놓기에는 사메지마의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그렇기에 후지와라 영주는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어도 사메지마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주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습니다.”

“그래, 자네 생각은 뭔가?”

“예, 북쪽 해적들의 경우 왜구(倭寇)와는 달리 여태껏 동북 지방의 해안을 약탈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전례가 없을 정도의 큰 규모로 훨씬 남쪽으로 내려와서 고다이 영지에 상륙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서 그 이방인들이 이곳에 나타난 것입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후지와라 영주는 사메지마의 말을 듣다 뭔가 생각이 났는지 호쾌하게 웃었다.

“핫핫핫, 그 정도는 우연의 일치로 볼 수도 있지. 그건 그렇고, 해적들이 고다이 영지를 쓸어버린 것은 정말이지 통쾌한 일이었어. 안 그런가?”

“물론입니다. 거기에다가 해적들이 남하하여 이쪽 미우다 영지로 들어오지 않고, 북상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것도 다 주군께서 평소에 부처님을 열심히 섬기신 보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잠시 말을 멈춘 사메지마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달라는 듯 안타까운 눈길로 후지와라 영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건 저에게 며칠만이라도 더 조사할 시간을 주십시오. 신분이 불분명한 자들과 주군께서 만나시는 것은 너무 위험이 큽니다. 혹시라도 그들이 주군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핫핫핫! 그만 두게나. 만약 그들이 자객이어서 내가 죽게 된다면, 그것도 다 내 운명이겠지. 어쨌든, 그들을 지금쯤 내가 만나 봐야 해.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거든. 만약 그들이 딴 곳을 둘러보겠다면서 떠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가? 그동안은 내가 일이 바쁘다든지, 혹은 사냥을 떠났다든지 해서 시간을 끌었지만 계속 미룬다면 그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걸세. 그리고 정작 서로 간의 면담을 원하는 것은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야. 안 그런가?”

확고한 후지와라 영주의 말에 사메지마는 더 이상 주군을 말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메지마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자 후지와라 영주는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현 상태로는 더 이상 이쪽의 세력을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해.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무역뿐이지. 비록 위험 부담이 크기는 하지만 무역이 얼마나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는지는 자네도 알지 않는가?”

“물론입니다, 주군. 하지만 그만큼 잘못되었을 때의 위험도 큽니다.”

끈질긴 사메지마의 만류에 후지와라 영주의 오른편에 앉아 있던 무사가 심히 불쾌하다는 듯 퉁명스러운 어조로 끼어들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후지와라 영주가 하고 있는 대화에 끼어든다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일이었지만, 그는 그만한 자격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후지와라 영주의 둘째 아들이자, 영주의 경호대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메지마 상께서는 경호대장인 저를 못 믿으시겠다는 겁니까? 설혹 그들이 고도의 훈련을 받은 자객이라 할지라도 제가 있는 한 아버님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말에 사메지마는 난처한 듯 두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건 오해이십니다, 요시나가 상. 제가 염려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외국과의 무역은 간바쿠의 인허를 받은 공식 무역상이 후쿠오카에서만 할 수 있다는 덴노〔天皇〕 폐하의 칙령이 내려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밀무역을 하다가 발각되면 주군께서는 ‘무법자’로 선포될 것이며, 그것은 곧 후지와라 가문의 파멸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들이 진짜 대국에서 온 상인인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그들과 면담을 하신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무역법을 반포한 인물은 영주들의 수장인 간바쿠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법을 반포하는 것보다는 덴노의 이름을 빌리는 편이 훨씬 더 강력한 구속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반쯤은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덴노의 허가를 받아냈던 것이다.

권력을 장악한 간바쿠는 자신의 세력을 굳건하게 유지하기 위해, 또 새로운 세력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역을 독점하고자 했다. 토지에서 얻어지는 수입은 뻔한 것이었기에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지만, 외국과의 무역은 얘기가 달랐다. 아무리 작은 영지를 가진 영주라도 무역을 하기만 한다면 엄청난 병사들을 키울 수 있는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만큼 무역에서 얻어지는 이익은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간바쿠의 세력이 강성하다고 하더라도 전국에서 몰래 행해지는 밀무역을 단속하기는 힘들었다. 그렇기에 간바쿠는 고려의 조정과 밀약을 맺게 된 것이다. 모든 무역을 고려와 하는 대신, 고려는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외해에서 간바쿠의 인허를 받지 않은 밀무역선을 단속하는 조건이었다. 동북부의 모든 해상 무역권을 휘어잡고 싶었던 고려는 물론 이 조건에 반대할 리 없었다. 이 양자 간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새로운 무역법이었다.

무역법이 반포된 후, 간바쿠는 해상 무역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공식 무역상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후쿠오카의 영주를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배치한 것도 모자라, 공식 무역상들까지 통제했다. 후쿠오카 영지에서 제출된 선박의 입출항 자료와 화물 적재 내역서, 그리고 무역상으로부터 제출받은 입출항 자료와 상품 거래 내역서를 비교하여 꼼꼼히 따졌기에 착오란 있을 수 없었다.

후지와라 가문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 말에 요시나가는 잠시 주춤거렸다. 그렇기에 사메지마가 이렇게까지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사실 후지와라 영주도 몇 번인가 자신의 심복을 상인으로 가장시켜 공식 무역상의 인허를 받으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 그것은 타 영주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간바쿠가 철저히 자신이 믿는 사람들에게만 인허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후지와라 영주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대국과의 밀무역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후지와라 가문의 영지를 탐내는 남쪽의 미나모토 대영주에게 대항을 하려면 밀무역 말고는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 미나모토 대영주가 다스리는 겐페이 영지는 후지와라 영주의 미우다 영지보다 훨씬 더 클 뿐만 아니라 기름진 땅이었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은 듯 잠시 주춤거리고 서 있던 요시나가는 자신이 너무 주제넘게 나섰다는 것을 곧 깨닫고,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사메지마에게 사과했다.

“사메지마 상, 제가 너무 경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메지마는 흔쾌히 사과를 받은 후,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요시나가 상께서는 아직 젊고, 또 패기가 있으십니다. 무사가 자신의 실력을 얕잡아 보는 말을 들었을 때 발끈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죠. 특히나 요시나가 상처럼 뛰어난 검술을 익힌 검객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사메지마의 말에 요시나가는 물론이고, 후지와라 영주도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들에 대한 칭찬은 자신에 대한 칭찬과 같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후지와라 영주는 짐짓 못마땅하다는 듯 요시나가를 꾸짖었다.

“상대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를 명확히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화부터 내다니, 좀더 인내심을 키우도록 해라. 이런 혼란기에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첫째도 인내, 둘째도 인내, 셋째도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알겠느냐?”

후지와라 영주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은 첫째 아들인 요시스네가 미나모토 대영주에게 볼모로 잡혀가 있기에, 어쩌면 둘째 아들인 요시나가가 자신의 뒤를 이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요시나가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옛!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후지와라 영주는 사메지마에게로 시선을 돌려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만약 내가 무역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그들을 만나지 않았을 걸세.”

후지와라 영주의 말에 사메지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이방인들이 최고급 닌자들이나 쓴다는 ‘화염의 술’을 사용한다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이지. 만약 그들이 나를 없애기 위해 온 닌자라면 결코 고다마 앞에서 화염의 술을 쓰지 않았을 거야.”

자신이 보고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화염의 술을 쓸 줄 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메지마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화염의 술을 대놓고 쓴 것 자체가 함정일 수도 있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후지와라 영주는 사메지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을 끊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물론 자네가 걱정하는 것처럼 그들이 진짜 대국의 상인이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그 나름대로 쓸모가 있네. 지금 겉으로 보기에는 간바쿠가 권력을 쥐고 있는 것 같지만, 간바쿠의 힘이 모든 지방 영주들을 통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 또한 사실이지 않은가? 이런 때에 그들에게서 화염의 술을 배울 수만 있다면, 아니면 그들을 내 가신으로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큰 힘이 되겠나?”

“오오, 거기까지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단호한 음성으로 후지와라 영주는 계속 말을 이었다.

“일단은 그들을 만나 보기로 하세. 오키타에게 들으니 그들 중의 한 명은 우리말을 아주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하더군. 그러니 우선 만나 보고 은근히 그들의 의중을 떠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이 잡히겠지. 그 대신 요시나가 너는 수하들로 하여금 내 주위의 경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해라.”

“옛!”

사메지마는 경비를 강화하라는 말에 안심이 되는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주군.”

두 사람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밀담을 계속 나눴다.

잔대가리의 대결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늦은 오후, 사메지마는 알현실에서 후지와라 영주에게 한창 해적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었다. 이때 밖에서 경비 무사가 조심스럽게 들어와서 절을 하며 보고했다.

“오키타 상께서 이방인들과 오셨습니다.”

“흠,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자네는 옆방에서 무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겠군. 혹시 필요하면 부를 테니, 대화는 잘 듣고 있게.”

이것은 혹시라도 이방인이 자객일 경우를 대비한 조치였다. 만약 그들이 자객이라면 이곳에서 대판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후지와라 영주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두뇌를 보호하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오키타는 아르티어스에게 말한 뒤 먼저 영주의 알현실로 들어갔다. 처음에 오키타는 이 이방인들이 어떻게 이쪽의 말을 한마디도 못하면서, 이 드넓은 야마토를 통역관 한 명 대동하지 않고 여행 할 수 있었는지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의 의문은 곧이어 풀렸다. 이방인 중 한 명은 아주 유창하게 야마토어를 구사할 수 있는데도 그것을 일부러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하녀로부터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방인이 상당히 여성스러운 어투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오키타는 아르티어스가 하녀의 기억을 읽어 말을 배웠다는 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야마토 여자에게 배웠기에 그런가?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오키타는 후지와라 영주의 앞에서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그러자 후지와라 영주는 예법에 따라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답례를 했고, 그 후에야 오키타는 고개를 들어 이방인들이 알현실 밖에 대기하고 있음을 보고할 수 있었다.

“이방인들을 들라고 할까요?”

후지와라 영주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오키타는 고개를 뒤로 돌려 나직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대국 상인들을 들여보내라.”

하지만 이방인들은 곧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밖에서 두런거리는 듯한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후지와라 영주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고, 기겁을 한 오키타는 후지와라 영주에게 허락을 구한 후 밖으로 나가봤다. 그곳에는 아르티어스와 경비 무사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옛, 저들이 몸수색 받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습니다.”

오키타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경비 무사에게 질책하듯 물었다.

“저분들은 외국인이다. 먼저 왜 몸수색을 꼭 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드렸나?”

경비 무사는 곧바로 대답했다.

“옛, 오키다 상.”

“흐음, 그래?”

오키타는 아르티어스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정중하게 말했다.

“경비병의 설명을 들었다면, 꼭 몸수색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을 거요. 영주님을 만나기에 앞서 몸수색을 하는 것은 우리들의 오랜 관습이요. 협조해 주시기 바라오.”

아르티어스는 오키타의 말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잘 알고 있지. 그것도 다 영주를 암살로부터 보호하자는 뜻이라는 것을 말이야.”

“예, 그러니…….”

아르티어스는 슬쩍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 한 가지 물어보겠네. 내가 영주를 죽이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무기가 없다고 못 죽일 것 같나?”

오키타는 일순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는 화염의 술을 고도로 익힌 무사였다. 부하 한 명이 이 이방인의 손에서 쏘아져 나온 불덩어리에 당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귀하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면 무기가 있고 없고는 큰 제약 사항이 안 될 것 같소.”

아르티어스는 상대가 그렇게 대답을 할 줄 알았다는 듯,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바로 그거야. 우리 쓸데없는 일에 서로 신경전을 벌이지 말자 이 말이지. 믿건 안 믿건 자네의 자유! 그리고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영주가 나를 만나기를 원했기 때문이지, 내가 만나기를 원했기 때문이 아닐세. 이런 식으로 귀찮게 한다면 내가 구태여 영주를 만날 이유가 없지 않겠나? 나도 갈 길이 바쁜 사람이라구.”

아르티어스는 미련 없이 자리를 뜨는 척했다. 이것도 다 하나코를 통해 습득한 지식 덕분이었다. 만약 이런 식으로 아르티어스가 그냥 떠난다면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은 오키타였다.

최악의 경우 일처리가 미숙하다는 이유로 목이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잘 생각해서 판단하라는 듯한 말에 오키타는 다급히 아르티어스를 붙잡으며 말했다.

“너무 성급하게 이러지 마십시오. 예법에는 어긋나겠지만, 영주님께 허락을 한번 구해 보겠습니다.”

당황한 듯한 오키타의 만류에 아르티어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을 대로 하게. 다만 너무 기다리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급히 실내로 들어갔던 오키타는 잠시 후 밖으로 나왔다. 그는 모든 일이 잘 풀렸다는 듯 환히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이마에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영주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자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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